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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 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 10장. 공산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독재2020.11.04 PM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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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 10장. 공산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독재
이번엔 정치체제에 대해서 알아보자.
사회가 발달하자 정치/사회체제 구분법도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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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블렌델 고스초크 모델
존 블런델(John Blundell)과 브라이언 고스초크 (Brian Gosschalk)는
영국에서 사회적ㆍ정치적 태도에 따라 보수주의적, 자유지상주의적, 사민주의적,
권위주의적이라고 일컫는 네 집단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발견함.
경제적 자유, 즉 자유시장에 대한 신념이 한 축에서,
그리고 개인적 자유가 다른 한 축에서 측정되는데
기존의 좌파 우파 구분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유권자 태도변화나 현실설명이 가능하게 됨
출처: http://www.pncreport.com/series/pollintro.html?lm=04
아래 링크에서도 정치성향 테스트가 가능하다.
https://cyluss.github.io/politicalcompass/
결과물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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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식욕으로 설명했듯이,
드러나는 현상은 복잡해도, 출발점은 단순하고 포괄적이다.
단계적으로 설명하면,
최초 인지거리의 길고 짧음으로 인해
1단계: 좌파와 우파가 나눠지고
2단계: 다시 그 안에서 극좌, 극우, 중도좌파, 중도우파 등, 세분화 된다.
3단계: 그 상태에서 '상하로 이어지는 축'을 만들어 쭉 잡아 늘리면, 4분면의 다양한 체제가 나온다.
지금 우리는 본질을 탐구하는 중이니, 이분법적 관점으로 나누어진 2단계 수준에서 살펴보자.
인지거리를 디테일하게 나누면 위 그림처럼 일렬로 나열할 수 있다.
전체 인지거리를 100으로 잡으면, 대충 30까지는 우파, 31~70은 중도파,
70~100은 좌파 성향으로 볼 수 있다.
당연히 개체간의 거리가 멀수록, 인식체계가 달라져 서로의 논리를 이해하기 힘들다.
이때 좌측 끝에서 나타날 수 있는 대표체제가 공산주의이고, 그 안쪽이 사회주의다.
우측 끝은 독재가 나타나고, 그 안쪽은 파시즘이다.
흔히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경제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으로 나눈다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 나타난 체제에 이름을 붙인 것 인만큼, 굳이 경제/사회로 나누어 볼 필요는 없다.
※주의할 점은 해당 위치에 속한 사람이 이런 체제를 주장하거나, 지지할 수 있다는 의미지
무조건 그런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체제를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럼 먼저 양 끝단부터 알아보자.
■ 극우와 극좌의 전체주의 (공산주의 vs 독재)
왼쪽 끝(극좌)은 인지거리가 사회 끝까지 닿는다.
인지거리가 사회 끝까지 닿으면, 사회전체를 하나로 보는 시각이 생긴다.
‘하나의 통’으로 보는 것이다.
그럼 평등을 넘어, 모두 똑같아야 한다는 관점이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나온 체제가 공산주의다.
1%미만의 마르크스나 엥겔스 같은 사람이 이런 주장을 한다.
모두 똑같아야 하므로 계급을 인정하지 않고, 기득권(계급)에 저항한다.
오른쪽 끝(극우)은 인지거리가, 한 발짝까지만 닿는 사람이다.
그럼 나는 가장 고귀한 존재가 된다.
나머지는 모두 하찮고, 내 발 아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이 나온다.
그러니 어떡해서든 위로 올라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 하고,
자기 아래는 모두 자신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재자적 시각을 가지는 것이다. (초엘리트주의)
역시 1%미만의 박정희 같은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위로 올라갈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회주의자들이 많다.
회사나 단체 등의 조직에서, 항상 꼭대기만 추구하고 지향하는 사람이 이런 부류다.
그리고 자신이 갈 수 있는 최 정점에 이르러도,
자신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서는 고개를 숙인다. (ex. 사대주의)
결과적으로,
극좌에서는 모두 같아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시각이 나오고,
극우에서는 모두 한사람을 따라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시각이 나온다.
추구하는 바는 달라도, 결과는 비슷한 형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극좌는 ‘모두 같은 수준으로 만들려고’ 공산주의를 추구하고, (공동생산 공동분배)
극우는 ‘모두 한사람을 따르게(떠받들기) 하려고’ 독재를 선호한다.
이런 결과적 특성(현상)으로 인해 극과 극은 통하게 된다.
여기도 재미있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극좌의 전체주의에서, 상위계급(권력)으로 올라가는 건 극우가 되기 쉽다는 점이다.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는 습성 때문에, 자연스레 우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전체주의 국가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보수화 되는 경향이 강하다.
대표적 예로 러시아의 푸틴을 들 수 있다. 푸틴은 대통령을 한 후 다시 총리로 권력을 잡았다.
만약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전체주의는 아니지만 '우파적 습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도 비슷한 일이 있다.
호남의 경우, 민주화의 성지이지만 3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정치인이나 단체장에 새누리와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호남 내에서 더 높이 올라가려면, 민주당으로 출마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반대성향의 당을 활용하는 것이다.
사실 그들 입장에서는, 그런 환경을 이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현재 이들 중 일부는 공천을 받지 못할 것 같자,
국민의당으로 옮겨가 권력을 유지하려고 시도 중이고,
반대로 민중에선 이들을 갈아치우려는 움직임이 있다. (2016.1월 기준)
그나마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돌아와서,
극좌와 극우의 안쪽은 사회주의와 파시즘인데 이걸 간단히 정리할 경우,
▶사회주의: 사회 전체를 위해 네가(개인이) 좀 희생해라.
이건 이렇게 통제하고, 저건 저렇게 통제할거야.
▶공산주의: 그런 거 필요 없다. 닥치고 평등이야. 뭐? 개인의 욕구? 죽을래?
(모두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려면 지도자가 필요하고, 일당독재가 등장한다. = 공산당 독재)
▶ 파시즘: 불안해 죽겠어요. 저 좀 구해주세요. / 그래 그럼 우리끼리 뭉쳐 불안을 해소하자.
(불안의 원인을 지목하고 제거(공격)한다.)
▶ 독재: 다 내 밑에 꿇어. 내 말이 곧 법이다. 반대하면 처단한다.
이중 가장 어렵고 재미있는(?) 개념은 파시즘이다.
파시즘을 이해하면 현 대한민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왜 툭하면 북한을 들먹이고, 또 그게 잘 통하는지,
기득권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든데, 왜 더 지지하고 표를 찍어주는지 알 수 있다.
그럼 파시즘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자.
■ 불안: 우파 파시즘의 근원
미리 언급하는데, 여기서 다루는 건 후기 파시즘. 즉, 우파 파시즘이다.
앞서 우파의 특성 중 하나가 ‘계급을 추구하는 개인주의’라고 했다.
계급이 성립하려면 집단이 구성되어야 한다.
우파가 집단화 하는 이유를, 불안 때문이라 했는데 이제 그 불안을 살펴보자.
인지거리가 짧으면,
인지거리 안쪽에서 생존자원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인지거리 바깥에서도 벌어 와야 한다.
이때 인지거리 바깥의 수익활동에 대해서는, 그 쪽의 피해사항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즉, 인지거리 바깥에서는 침략, 약탈, 착취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지거리가 짧으면 이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이걸 뒤집어 이해하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당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쪽도 나를 아무 거리낌 없이 밟아 뭉갤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우파는 ‘힘’에 집착한다.
(이 개념이 우파가 원자력, 군대, 강한 법(경찰)등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
우파의 관점에서는 더 강한 힘을 가져야 더 높이 올라가고,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우파의 자유주의)
악착같이 기득권에 올라서고 유지하려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다.
자 여기서,
‘언제든 공격당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 인식은 ‘불안’을 야기한다.
무의식 저 밑바닥에 항상 불안을 담고 있다는 의미다.
즉, 늘 불안하기 때문에 집단에 들어가고 싶어 하고, 강한 힘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이는 생물학적 반응으로도 나타난다.
생물학적 세계관은 생물학적 특성(반응)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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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진보와 보수의 DNA
최근 과학자들은 호주인 1만 3000명의 DNA를 분석한 끝에,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차이를 보이는 몇 가지 유전자를 발견해낼 수 있었다.
이 유전자 대부분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 그중에서도 특히
글루타메이트 및 세로토닌과 큰 연관이 있었고,
이 두 물질은 모두 뇌의 위협 및 두려움 반응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그간 학계에 나온 수많은 연구와 잘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간 연구에 따르면,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에 비해
위험신호에 더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러한 위험 신호에는
세균과 오염의 위협은 물론 백색소음의 급작스러운 방출 등 낮은 수준의 위협까지 포함되었다.
(중략).
즉, 유전자의(집단적) 작용으로 어떤 사람들은 위협에 더(혹은 덜) 반응하는 뇌를 갖게 되고,
그런 뇌를 가진 사람들은 참신성, 변화, 새로운 경험에 노출되었을 때 즐거움을 덜(혹은 더) 느낀다.
이는 진보와 보수를 구별할 때 일관되게 발견되는 주된 성격적 요소에 해당한다.
정치심리학자 존 조스트(John Jost)가 펴낸 주요 총론을 보면,
진보와 보수를 구별해주는 특징이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개념상으로 보면 그것들은 거의 모두 위협에 대한 민감성
(이를테면 보수주의자들은 죽음을 상기시키는 것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를테면 진보주의자들은 질서, 구조, 폐쇄의 필요성을
덜 느끼는 경향이 있다.)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바른 마음] - 조너선 하이트. 웅진지식하우스 p. 494~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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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물학적 특성으로 나오는 불안은, 본인 스스로 자각 하지 못한다.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 작용하는 만큼, 당연한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니 힘을 추구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힘 있는 자에게 굽히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된다.
이런 불안이, 외적요인과 만나 극대화 될 경우, (무의식 깊이 내제된 불안이, 외부 자극에 의해 뻥튀기 될 경우)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일어난다.
■ 자유로부터의 도피
혹시,
하는 일이 안되어, 답답하고 막막할 때,
힘들어도 의지할만한 곳이 없어, 혼자 내버려진 느낌을 받을 때,
어떤 이유로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감에 빠졌을 때,
무언가로부터 강한 위로를 받아 본 경험이 있는가?
이때 위로의 매개체가 무엇인가는 중요치 않다.
따뜻한 커피한잔이 될 수도 있고,
지나가다 들은 노래 한 곡이 될 수도 있다.
친구의 따뜻한 말 한마디, TV에 나오는 연예인,
영화 한편, 책 한권 일 수도 있고,
아이의 활짝 웃는 미소 일수도 있다.
내 마음이 불안할 때, 내면 깊숙이 꽂혀 들어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얻어 본 경험...
이런 경험을 느껴본 사람은, 나를 위로해 준 ‘그 무언가’를 새로운 의미로 인식하게 된다.
커피일 경우 → 커피 마니아가 되거나, 애호가가 되기도 한다.
노래 한곡이면 →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팬이 되거나, 혹은 비슷한 노래를 즐겨 듣는다.
친구의 말 한마디라면 → 그 친구가 진정한 친구로 느껴진다.
연예인이라면 → 호감을 가지고 팬이 되거나, 혹은 누군가 그 연예인을 비난하면 비호해준다.
활짝 웃는 아이의 미소라면 →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혹은 이 미소를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힘내야지...라는 생각이 들거나, 가족에 대한 애착이 더 깊어진다.
마음 속 깊이 뭔가가 훅~하고 파고 들어와 안정감을 느끼면,
그것이 무의식에 하나의 틀로 자리 잡는 것이다. (일종의 긍정 트라우마)
<이미지 출처: 구글>
자 그럼 이런 경험의 강도를 극한까지 올려보자.
오랫동안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무의식에 늘 불안을 내제하고 있는 상태에서,
전쟁이나 기아 등으로 불안과 두려움이 극대화 되었다.
이 때, 어떤 대상을 만나 극대화된 불안이 가라앉고, 마음의 안정을 느끼며,
안락하고 평온한 상태를 맞거나, 혹은 그걸 넘어선 안도의 희열을 느낀다면 어떨까?
그 대상은 단순한 호감이나 애착을 넘어, 신(神)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불안의 강도가 크고 깊을수록, 구세주(절대자)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럼 이후부터 그 구세주를 떠받들게 되고, 그에 종속된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도 느껴진다.
심지어 그를 떠받들어 모실수록,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이게 중세 종교개혁 당시, 사람들의 심리상태다.
불안에서 탈출(극복)하고자 절대자를 영접한 것이다.
아래는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일부이다.
중세가 무너지면서 생긴 자유와 불안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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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15세기와 16세기에 사회·경제적 변화가 개인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우리의 논의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 이른다.
이미 검토한 바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자유의 다의성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은 경제적·정치적 관계의 속박에서 해방된다. (봉건사회에서의 해방)
또한 개인은 새로운 체제에서 맡아야 할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역할을 통해
적극적인 자유를 더 많이 얻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개인은 그에게 안전감과 소속감을 주었던 관계에서도 해방된다.
그는 이제 인간이 중심이었던 폐쇄된 세계에서 살지 않는다.
세계는 무한해진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폐쇄된 세계에서 그가 차지했던 고정된 자리를 잃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도 잃어버린다.
그 결과 자기 자신과 삶의 목적에 대한 의심에 사로잡힌다.
강력하고 초인적인 자본과 시장이 그를 위협한다.
이제 모든 사람이 잠재적 경쟁자이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는 적대적이고 소원해졌다.
그는 자유롭다. 즉 그는 혼자이고 고립되어 있고 사방에서 위협받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자본가가 갖고 있던 부나 권력도 없고, 타인이나 우주와의 일체감도 상실하고,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과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낙원은 영원히 사라졌고, 개인은 혼자서 세계와 맞선다.
그는 무한하고 위협적인 세계 속에 내던져진 이방인이다.
새로운 자유는 강한 불안감과 무력감, 의심과 고독과 동요를 낳을 수밖에 없다.
개인이 성공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이런 감정들을 억눌러야 한다.
종교개혁의 시대
이 같은 발달 단계에서 루터주의와 칼뱅주의가 나타났다.
이 새로운 종교는 상류층의 종교가 아니라 도시 중산층과 빈민층 농민들의 종교였다.
루터주의와 칼뱅주의가 이들 집단에 호소력을 가진 이유는, 자유와 독립이라는 새로운 감정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무력감과 불안감까지도 표현했기 때문이다.
새 종교의 교리는 경제 질서의 변화가 불러일으킨 감정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감정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개인이 참을 수 없는 불안에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해결책까지 제시했다. (불안을 극복할 수 있도록)
출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리히 프롬. 휴머니스트.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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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붕괴(외적 자극 요소)로 인한, 근대 개인의 출현은 본능적 불안을 더욱 자극했다.
무의식 저 아래에서 나오는 불안을 증폭 시켰기에, 원인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무의식에서 자극된 불안인 만큼, 웬만한 조치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태어날 때부터 가진 ‘원죄’라는 느낌을 받고, 절대자(구세주)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
이것이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다.
이처럼 불안이 극대화 되면, 강자(절대자)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 보호받고 싶어 한다.
실질적 도움이 안 된다 해도,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울타리가 필요하기에
계속 그 아래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불안이 심하면 계속 뭔가를 찾아 헤맨다.)
그 불안을 극복(탈출)하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구속(헌납)하고 희생하기도 한다.
이것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다.
과거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한국전쟁 이후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릴 때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로, 언제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했다. (독재자의 출현)
그는 안보와 경제성장을 빌미로 구세주로 등극했다.
국민들은 처음엔 지배를 받다가, 이후 자발적 복종을 통해 그에게 종속된 삶을 추구한다.
사람들은 자유로부터 도피했고, 그는 반인반신이 되었다. (2부에서 다시 다룰예정)
현재도 마찬가지다.
북한과의 대립을 자극하고 부추겨, 더 불안하게 만드는 건 우파기득권인데,
무의식적 불안이 증폭된 우파지지자들은 더욱 더 그 아래로 결집한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최저임금을 최소화하고,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건 우파기득권인데,
가난하고 삶이 불안한 사람일수록 더욱 더 그들을 지지한다.
무의식적 불안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집한 뒤 동기화된 추론은,
“그래도 있는 사람들이 더 잘한다.”
“없는 것들에게 권력을 주면 자기들끼리 해먹기만 한다.”
“없는 것들은 능력도 없다.” (능력이 없으니 돈이 없다는 논리)
라는 이유를 만들어 낸다.
우파기득권이 나라를 팔고, 정치권과 결탁해서 수없이 해먹었기에,
그 자리에 올라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설사 그런 생각을 한다 해도, 그것도 능력이라 포장한다.
이렇게 불안을 자극할수록, 우파의 지지율은 올라간다.
최근 프랑스도, 테러로 인해 우파의 지지율이 올라갔다. 불안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50%를 넘지는 않는 편이다.
그래도 강한 결집력 자체가 큰 힘을 발휘하기에, 선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제 선거만 되면 북풍몰이를 하는 이유와, 그 효과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북한에다 총을 쏴달라는 요청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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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풍 사건(銃風事件):
1997년 12월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 측에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이
베이징에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 박충(북한측 인사)을 만나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B4%9D%ED%92%8D_%EC%82%AC%EA%B1%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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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역으로 한번 이해해보자.
만약 국가가 국민의 불안을, 더 조장하지 않고 줄여 준다면 어떨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면, 악착같이 돈과 권력(힘)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돈과 권력이 만들어내는, 무의식적 계급의식도 줄어든다.
계급의식이 줄어들면, 강자(절대자)라는 개념도 약해지고,
그 아래로 들어가 보호 받으려는 반응도 줄어든다.
즉, 그들에게 종속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그러니 우파입장에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지지를 얻기 위해서) 복지를 늘려서는 안 된다.
우파기득권이 복지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는 것도,
자신들의 기득권유지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기득권과 지배력을 놓치는 순간, 그들의 불안도 더 증폭된다.
불안하기 때문에 더 많은 힘을 가지려 하고, 또 불안하게 만드는 대상을 힘으로 제압한다.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시위나, 반란은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억울하거나 짓밟혀도 ‘가만히 있으라.’ 하고, 법을 이용해 통제하고 구속한다.
(우파가 인식하는 법치가, 피지배계층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다.
자신들이 길 건너 인신매매를 하더라도, 피지배층은 무단횡단 조차 하지 말라고 한다.)
또 배신을 극도로 경계한다.
틈만 나면 위로 올라가려는 속성 때문에, 그들 자신이 반란이나 배신을 더 잘한다.
(쿠테타의 주역은 대부분 우파다. 좌파는 주로 혁명쪽)
그러니 충성을 강조하고, 충성에 대한 포상도 중요하게 여긴다. (ex. 정치검사들의 승진)
자신들의 속성을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은 모두 그렇다고 인식하고 있다. (자신들 입장에서는 당연함의 작용)
■ 파시즘 (우파 파시즘)
자 그렇게 자유로부터 도피해서 집단에 종속되었다.
그런데 강자의 우산아래에 들어가더라도(종속되어도),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공격적으로 변해간다.
지속적 불안은 사람을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게 만든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무의식중에 해소할 대상을 찾아 공격성을 드러낸다.
물론 그 대상은 대부분 약자다.
이때 누군가가(주로 지배자) ‘저들 때문이다.’라고, 불안의 원인으로 지정하면,
집단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유나 명분은 중요치 않다. 그냥 적당히 만들어 내면 된다.
과거 나치는 유태인을 지목했고, 일본은 조선인을 지목했다.
이렇게 공격할 적이 있으면, 내부결속은 더 튼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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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1: 홀로코스트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에 의해 학살되었는데,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 배타성, 광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20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08369&cid=40942&categoryId=31637
참고2: 관동대학살
1923년(일본 大正 12) 간토지방[關東地方]에 일어난 대지진과 이에 수반하여 발생한 학살사건.
일본 육군과 경찰은 이 지진을 이용, 날조된 유언(流言)을 퍼뜨려 무고한 한국인 수천 명을 학살하였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64326&cid=40942&categoryId=3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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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과거나 현재나 독재에 저항하는 세력을 공격대상으로 지목했다. (진보 진영)
전통적인 대상은 북한이지만, 구성원들이 직접적으로 공격할 방법은 없으므로,
진보진영을 북한과 엮어 빨갱이라는 타이틀을 붙었다.
(이게 종북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테러리스트로 바뀔 예정이다.)
그럼 자신들의 불안(삶의 고통)은 모두 진보진영 탓이라 여기고, 더욱더 적대시하며 공격한다.
기득권의 입장에서는 좌·우 갈등을 증폭시켜 싸우게 만들수록,
자신에게 올 불만(그들의 실정에 대한 반발)이 줄어들기에 계속 부채질하며 부추긴다.
이런 패턴이 파시즘 밑바탕이다.
여기에 몇 가지 살을 덧붙이면 파시즘이 완성된다.
책 제목으로 엮어본 파시즘의 진행 양상
불안 → 자유로부터의 도피 → 자발적 복종(자발적 지지) → 파시즘 →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나치 시대 독일인의 삶을 조명한 책)
로버트 팩스턴은 파시즘을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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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정치적 행동은 선택을 요구하고,
선택은-나의 의견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서둘러 지적하듯이-우리를 다시 근본적인 이념(이상)으로 데리고 간다.
출처: [파시즘]-로버트O, 팩스턴. 교양인 p.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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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은 불안과 집단화를 뜻한다.
자유를 포기하고 집단에 종속되지만, 계속되는 불안(스트레스)은 외부를 향한 폭력으로 해소한다.
외부를 향해 자유롭게 폭력을 가할 수 있기에 (자기네들끼리 용인되기에),
스스로는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건, 현재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시위가 있을 때 어버이 연합은 시위자를 쉽게 폭행하고 욕설을 퍼붓는다.
이때 경찰관은 제지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 입장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느낄 것이다.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시위자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나쁜 놈이니, 그래도 된다고 보고 침묵한다.
일베충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억눌린 분노를, 막장 짓으로 표출할 수 있는 곳이 일베이고,
그곳에서 만큼은 자유롭다고 느낀다. 또 함께 하는 이들에게 동질감도 느낀다. (일체화로 안정감을 확보)
그러니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면 줄수록 일베충(혹은 그에 준하는 인간형)도 늘어난다.
(학업, 경쟁, 압박, 잔소리 등등)
■ 우리 안의 파시즘 (반공주의)
메카시즘: 1950년대 미국의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
‘난 공산주의자를 알고 있다’고 한 뒤, ‘내게 동조하지 않으면 공산주의자’라는 식으로 활용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A7%A4%EC%B9%B4%EC%8B%9C%EC%A6%98
아래는 [우리 안의 파시즘]의 일부다.
별도로 언급하는 것보다, 원문의 내용이 더 좋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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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주의가 사라졌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노장은 죽지 않는 법이다.
반공주의는 이제 정치·안보·군사의 영역에서 확산되어,
우리의 일상적 사고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
그것은 단순히 북한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적 비이성적 정치 논리와 정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 반공주의는 단순한 북에 대한 적대적 감정과 비난이면서
동시에 그것과 교묘하게 결합된 고도의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목적 활동의 성격을 갖는다.
권력 이성은 그것에 순응하고 굴복하는 대중의 처세술적인 사리판단을
북에 대한 적대적 감정 및 정서와 결합시킨다.
그것은 오랜 세월 내면화 과정을 통해 사회 구성원의 정신과 가슴 속에
특정한 정치 사회적 사고와 행위를 자동적으로 유발시키는 기제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은 사상적 획일성과 단순성, 군사 동원주의적 심리, 배타적 감시자적 태도,
굴종적 순응적 태도, 반정치적 일원주의 질서 및 도덕주의에 대한 강한 동경과 요청을 유발한다.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주입되었던 이러한 동경과 요청의 기제가
사회 과학적 분석과 비판에 의해 내게서 사라진 줄 알았지만,
사실은 내 몸 속 깊은 곳에 철저히 정서의 일부로 내면화 되어
내 행위와 사고를 제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보안법의 현존과 반공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확보라는
여전한 분단 현실에 의해 뒷받침되고 지속되고 있는 권력이다.
p.54~55.
(중략)
우리 몸 안에 자리 잡은 이러한 반공주의 회로는 체제 순응성을 강제하는 정치 사회화 과정을 통해
불균형 발전과 사회 이익의 불균등 재분배로부터 오는
사회적 약자의 저항을 봉쇄하고 길들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반공주의는 이제 단순한 북한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거부가 아니고
한국 사회의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질서를 정당화하고, 보호하며
그것을 재생산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생체 권력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이미 안기부/교육부를 정점으로 한 국가 권력이 강제적으로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외부적 이데올로기의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반공주의는 이미 한국 사회구성원들의 정신과 가슴 속에 ‘한국적 정서’의 일부로 내면화되었으며
국가권력 못지않은 또 하나의 권력인 것이다.
그것을 국가나 극우 언론이 강요하거나 조작하는 외부적 이데올로기로만 보는 것은
반공주의의 뿌리와 비강제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고조나 한국 사회의 위기시에
일상적 의식의 저변으로부터 순식간에 부상하여
안보 최우선성을 앞두고 정당화하는 집단적 심리의 결집을 불러일으키며 실천적 힘으로 전화한다.
그 힘을 바탕으로 지배 집단은 지배층 내부의 파열을 봉합하고,
그것에 도전하는 세력의 힘과 정당성을 일시에 무력화 시킨다.
p.61~62
출처: [우리 안의 파시즘] 임지현, 권혁범, 김진호. 삼인 출판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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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을 붙이자면, 현재 50세 이상은 이러한 반공주의로 영향이 크고,
그 이하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건 사회학적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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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 추천하는 글 : 파시즘이 오고 있습니다. - 용혜인
https://www.facebook.com/yooiee/posts/994305933994798
참고 2: 파시즘 파트는 꽤 많은 분량을 적었다가, 다 걷어내고 주요맥락만 남겼다.
내용이 아쉬운 분에게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권한다.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이 일어난 양상을 조사하고 정리했다면,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그 원리를 설명하는 책이다.
원리를 알면, 매 맞고 살면서 이혼하지 않는 아내는 물론이고,
착취 당하면서 떠받드는 노인들의 '묻지마 지지'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증폭사회]는 현 사회분위기를 설명해준다.
이 책은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 가
불안을 증폭시키는 원인이라 설명하는데, 사실 불안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불안하니 더 이기적이 되고, 무력해지고, 의존성향이 생기고, 누군가를 억압하려 들고(가학),
자기혐오가 일어나고(피학), 쾌락을 찾아 현실도피를 꾀하고, 분노가 생기니 공격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증상들이 다시 타인을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을 더 자극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불안을 자극하는 근본은 교육(경쟁강요-자아상실)과 경제 문제다.
이게 다른 요인들을 계속 증폭시키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이 문제에 고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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