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 | 역사] '국가 에너지 정책은 정치 아닌 과학으로 접근해야'2022.04.03 PM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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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전 국무총리-김창섭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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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왼쪽) 전 국무총리와 김창섭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이 지난 20일 제주 행원풍력발전단지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전환 정책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 전 총리는 “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려야 한다”면서 “원전은 현재 수준을 유지하고 가스는 점차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정부는 올해를 2050년 탄소중립과 2030년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이행의 원년으로 선언했다.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고 석탄발전을 줄이는 에너지전환 정책은 기후변화 대응 해법의 열쇠를 쥐고 있다. 한덕수(73) 전 국무총리와 김창섭(61)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은 “지구가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인식 속에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한다면 한국이 주요 7개국(G7)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 전 총리는 노무현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고 보수와 진보 정권에서 차관급 이상 10개 고위직을 맡았을 정도로 행정능력을 인정받았다. 2015년부터 2년간 제3대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을 맡아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섰다. 지난 20일 제주 행원풍력발전단지에서 만난 한 전 총리와 김 이사장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정책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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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전 총리=1997년 교토의정서를 채택할 때의 일이다. 당시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과 아시아에서 온실가스를 주로 배출하는데 한국 중국 인도 등이 협약에서 빠지고 기후변화 대응이 가능하겠느냐며 압박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온실가스를 1% 감축할 경우 경제성장률도 1% 내려간다고 판단해 경제 발전을 우선순위로 봤다. 이후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감축하지 않고 절차적인 규정을 자발적으로 준수하겠다고 했더니 한 선진국 대표단 관계자가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친 기억도 있다. 결국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한국을 비롯한 190여개 국가가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한 것인데 긴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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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섭 이사장=에너지공단은 1998년 기후변화협약대책반 조직을 처음 꾸렸다. 당시 기후 업무는 감축·적응·협약이 3대 축이었다. 하지만 2050 탄소중립 선언과 함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협상은 이미 마무리됐다. 목표가 정해졌으므로 에너지 체계를 확고히 전환할 때가 된 것이다.


△한 전 총리=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정파적 논쟁에서 벗어나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에는 정치가 끼어들 수 없다. 정치가 개입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여야 편향성을 없애고 과학에 기초해 끝장토론으로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 정책을 볼모로 표 계산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자만심을 갖거나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정책을 자주 바꾸는 것도 위험하다. 한 부처가 정책의 전권을 쥐어서도 안 된다.


△김 이사장=한국의 전원개발(電源開發)은 지난 60년 동안 수요를 예측하고 발전소를 짓는 데만 너무 집중했다. 이제는 총체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은 어떤 연료를 중심으로 에너지 체계를 정립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예민한 분야이기도 하다.


△한 전 총리=에너지전환 목표는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에너지원을 늘려 지구의 파멸을 막는 것이다. 그러려면 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고 과학자들이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한다고 말하는 석탄을 줄여야 한다. 원전은 현재 수준에서 유지하고 가스는 중간 역할을 하면서 차츰 없애야 한다. 원전의 위험성을 재평가할 필요도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도 해외에 나가 “한국은 수십년간 원전을 운영했지만 큰 사고가 없었다”고 말했다. 원전 기술이나 관리 능력은 세계도 인정한다. 안전한 원전을 만드는 노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김 이사장=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선 관련 산업에 보조금 투입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혜택을 얻는 업종과 손해 보는 업종이 함께 발생한다. 재생에너지 보급과 관련해 보조금 없는 시장으로 가는 것이 맞는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의 산업 정책은 어떤 형태로 가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다.


△한 전 총리=단기적으로는 재정적·규제적 인센티브(이익)와 디스인센티브(불이익)가 필요하다. 2가지 원칙이 전제다. 정부가 인센티브와 디스인센티브를 활용할 땐 시장에 미리 공지해야 한다. 그리고 5년이나 10년 뒤에는 시장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도 해야 한다. 정책은 일종의 공권력이다. 정해진 시간을 최대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약속한 기간을 연기하면 효력도 약해진다. 시장 플레이어가 정부를 믿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 이사장=덴마크는 에너지전환 성공사례이자 풍력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을 배출한 국가다. 한 번은 덴마크 에너지청 관계자에게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여야가 30년에 걸쳐 합의를 이뤘고 전기요금을 올려 정상화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해주더라. 이는 덴마크 그린뉴딜 성공에도 한몫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의견이 첨예한 부분이기도 하다.


△한 전 총리=기후변화 대응은 한국이 G7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덴마크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파리기후협약 참가국이 190여개국이지만 실질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산업을 키우는 국가는 20개국 정도다. 한국은 탄소중립 성공 가능성이 큰 국가다. G7으로 뻗는 과정에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하나님은 항상 용서하시고 인간은 가끔 용서하지만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공공부문은 탄소중립, 그린뉴딜, 에너지전환, 온실가스 감축의 시각에서 볼 때 분명한 기회다.


△김 이사장=에너지공단은 아시아개발은행·세계은행 등과 협업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많이 도울 수 있었고 국외 온실가스 감축에도 중요 역할을 했다. 최근 전력 안정을 위해 수소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그린수소·그레이수소·블루수소·핑크수소 등에 대한 논쟁을 피해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수소경제를 선도하기 위한 해법이 필요하다.


△한 전 총리=수소는 기술·비용 측면에서 아직 정립이 덜 된 분야다. 한국이 노력한다면 세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분야다. 연료로서의 수소 역할은 확대될 것이다. 목표가 그린수소라고해서 그레이수소·블루수소·핑크수소 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문제다. 관련 기술이 불분명하므로 다양성을 갖고 테스트를 해야 한다. 수소경제로 나아가려면 다양한 수소 활용법이 개발돼야 한다.


△김 이사장=최근 ‘한국형 순환경제 이행계획’이 수립됐다. 순환경제를 위해서는 자원순환의 시스템적 관리가 필요하다. 한때는 순환경제가 굉장히 중요한 이슈처럼 논의됐지만 요즘은 다소 시들해진 거 같다.


△한 전 총리=순환경제가 사회의 집중을 덜 받는 이유는 온실가스 감축보다 중요도나 비중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 역시 개인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인식하는 것이 순환경제의 기초다. 탄소발자국도 마찬가지다. 재생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산업·과학계 역할이 크지만 홍보도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참여를 유도하는 힘은 문화에 있다. 문화를 통해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알고 대응 방식을 깨우칠 수도 있다. 에너지공단에서 창작 뮤지컬을 선보인 것은 의미가 크다.


△김 이사장=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측면에서 주민 수용성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다. 갈등 관리에 직면한 적도 많았을 텐데 어떤 식으로 대처했는지 듣고 싶다.


△한 전 총리=주민들과 진정성 있는 쌍방향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프로젝트 진행 성과에 따라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은 공유해야 하지만 과하게 집중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환경·에너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도 필요하다.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어도 체계적으로 정리된 정보를 찾을 곳이 마땅치 않다. NGO 등 해당 업무를 주관하는 곳이 생겼으면 한다. 끝으로 김 이사장은 3년간 에너지공단을 이끌어 왔고 곧 임기 만료를 앞둔 것으로 아는데 소회를 듣고 싶다.


△김 이사장=공직자로서 책임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에너지전환이나 탄소중립을 이행하는 일선 부대의 장으로서 거대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책임감도 컸다. 후배들과는 정말 즐겁게 일했던 거 같다. 공단 이사장으로 처음 왔을 때 에너지청처럼 운영해보려 했다. 에너지 전문 행정기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투자하더라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현재는 기업에 도움이 되는 기관으로 성장했다는 자부심이 크다. 앞으로도 공단은 탄소중립 이행의 최일선 기관으로서 막중한 업무를 수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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