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 | 역사] 美도 中도 늙어간다… 세계경제 덮치는 ‘은빛 쓰나미2022.09.17 PM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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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고령화 휘감긴 지구촌, ‘일본화’ 되어간다

 





전 세계를 덮친 인플레이션에서 맞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악전고투하고 있는 사이 또 하나의 거대한 해일이 인류에게 다가오고 있다. 고령화라는 이름의 은빛 쓰나미다. 유엔(UN)은 지난 7월 발표한 세계 인구 전망 보고서에서 “2020년 세계 인구 성장률이 1950년 이후 처음으로 1% 미만으로 떨어졌다”며 “노년층 비율이 2022년 10%에서 2050년 16%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경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도 고령화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은 만 65세 이상 인구가 지난해 5400만명(고령화율 16.5%)에서 2030년 7400만명으로 증가하고, 2040년에는 초고령사회(고령자 비율 20% 이상)에 진입할 전망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고령화 문제가 벽돌 더미처럼 미국을 강타할 것”이라고 했다. 세계의 생산공장 노릇을 해온 중국 역시 빠르게 늙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고령자 인구가 2억56만명을 돌파하며 사상 처음 고령 사회(고령자 비율 14% 이상)에 진입했다.


고령화로 인한 부작용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세계적인 경제 석학이자 인도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성공하면 우리는 아마 저(低)성장 세계로 돌아갈 것”이라며 “인구 고령화와 중국의 성장 둔화, 탈(脫)세계화같이 세계 경제에 부는 역풍을 무엇으로 상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는 “저출산에 따른 세계 인구 붕괴는 인류 문명에 지구 온난화보다 훨씬 큰 위험 요소”라고 주장했다.

 





◇‘일본化’되는 세계


이번 인플레 사태를 예견했던 미국 재무장관 출신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빠르게 일본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령화로 경제 활력이 사라지면서 일본과 같은 만성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작년 10월 기준 고령화율이 28.9%에 달하는 일본은 마지막 황금기였던 1980년대 이후 30여 년째 경제성장률이 0~2%대를 횡보 중이다. 돈을 풀어 인위적으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2016년 1월부터 지금까지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하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다. 지난달 26일 세계 중앙은행장들의 경제정책 심포지엄 ‘잭슨홀 미팅’에서도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임금과 물가가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상승할 때까지 우리는 통화 완화를 계속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말했다.






서머스 교수 같은 비관론자들이 전 세계가 일본화되고 있는 증거로 꼽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낮은 실업률이다. 고령화로 경제 활동 인구가 감소하면서 고용 호황 착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퓨리서치센터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55세 이상 미국 성인 중 50.3%가 은퇴했는데,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 은퇴율(48.1%)보다 높다.


경기가 안 좋은데도 실업률이 낮게 나오는 현상고령자 비율이 높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작년 기준 고령화율이 21.98%에 달하는 독일은 지난 2분기 성장률이 정체(0.0%)됐지만 실업률은 40년 만에 최저 수준(5%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고령화와 씨름하는 뉴질랜드 역시 1분기 경제가 역성장했지만, 실업률은 3.3%로 수십 년 새 최저 수준이다. 장기 침체의 대명사 일본도 지난달 기준 실업률이 2.6%에 불과하다.






고령화가 만성 저성장을 부르는 이유혁신을 막고 경제 체질 자체를 바꿔놓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경영대학원)의 기디언 본스타인 교수는 지난해 11월 내놓은 논문을 통해 “고령화가 새로운 산업 형성과 젊은 기업의 탄생은 막는 반면, 기존의 오래된 대기업 이익만 높인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나이든 소비자일수록 기존 브랜드에 충성하는 경향이 강하고, 유사한 제품을 더 저렴하게 제공하는 회사가 나타나더라도 구매를 꺼리는소비자 관성(consumer inertia)’ 때문이다.


가령 본스타인 교수가 미국의 16만 가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유제품 부문에서 20~34세 연령 그룹의 소비 바구니 구성 변경률은 37%에 달했지만, 65세 이상 고령 가구의 구성 변경률은 20%에 그쳤다. 나이가 들수록 위험 회피적이고 소비 패턴을 바꾸지 않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 기업 중 설립된 지 5년 이하의 신생 기업 비율은 지난 40년간 50%에서 30%로 떨어졌다. 본스타인 교수는 “예컨대, 탄산음료 카테고리는 소비자 관성이 매우 높아 소비자가 코카콜라나 펩시만 고집한다”며 “상대적으로 더 관성적인 소비자 기반을 가진 산업에서 신규 기업의 진입률은 더 낮다”고 했다.


발목 잡힌 발전과 혁신은 이미 초고령화 국가 일본에선 만연하다. 많은 일본인들이 여전히 이메일 대신 팩스를 쓰고, 전자결재 대신 수기 결재 문서에 도장을 찍으며, 주민등록등본 발급을 위해 휴가를 내고 동사무소를 찾는다. 이른바 ‘레거시(유산) 시스템’으로, 일본의 황금기를 이룩한 단카이 세대(1947~1949년 출생)가 구축했던 시스템이 노년에도 지속적으로 이용되며 신기술 전환과 수용을 막는 것이다.


일본의 더딘 전환은 자동차 시장에서도 포착된다. 지난 2020년 7월까지만 해도 시가총액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이었던 일본 대표 기업 도요타는 전기차 전환에 힘쓰기보다 하이브리드 모델 등 내연기관차와의 공존 전략만 추구하다가 끝내 테슬라에 1위 자리를 내줬다.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는 “일본화의 가장 큰 문제는 안일함이 만성화되며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령화는 자산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보수적인 투자 문화가 보편화하면서 주식 같은 위험자산 대신 예·적금이나 채권 같은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다. 부동산 시장도 쇠퇴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2021년 현재 가계의 금융자산 중 현금과 예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54.2%로 전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높고, 주식 비율은 10.4%로 가장 낮다. 반면 미국은 현금과 예금 비율이 13.2%, 주식 비율이 58%다. 투자 전문매체 인베스토피디아는 “미국 베이비 붐 세대 은퇴가 가까워지면 주식을 매각하거나 보다 보수적인 투자로 전환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노년층의 증가가 일종의 ‘자산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中 고령화가 부르는 高금리·高물가


일본 사례에서 보듯, 일반적으로 고령화는 경기 침체→기업 성장 둔화→임금 정체→소비 감소→저물가 혹은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중국같이 전 세계 국가에 노동력을 공급해오던 나라가 늙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이 때문에 중국의 고령화가 만성적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와 고물가가 동반하는 현상을 말한다.


한때 ‘세계 경제의 대통령’으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퇴임 후 쓴 자서전 ‘격동의 시대’에서 “중국의 노동 공급이 축소되고 임금이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닥치고 아마 세계는 두 자릿수의 금리를 경험해야 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지금까지 중국의 값싼 노동력 덕분에 전 세계 국가들의 물가가 오르지 않고 저금리가 유지된 만큼, 중국의 고령화는 전 세계 물가와 금리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얘기다.


세계적인 거시금융정책 석학 찰스 굿하트 역시 재작년에 출간한 저서 ‘인구 대역전(The Great Reversal)’에서 “미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와 중국의 산업화로 지난 27년간(1991~2018년) 세계 경제의 유효 노동 공급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며 “고령사회가 되면 세계는 고금리와 고물가를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 구루들의 예언처럼 중국의 노동력 공급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중국 인구는 전년 대비 48만명 늘어난 14억1260만명으로 인구 증가율이 0.03%에 그쳤는데, 유엔은 이르면 내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한다. 경제활동인구(15~64세)는 이미 지난 2014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중국 국가통계국은 앞으로 15년간(2021~2035년) 총 6900만명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저임금 노동력을 담당하던 농민공(농촌 출신 이주 노동자)은 지난 2020년 2억8500만명으로 전년 대비 517만명 감소했다. 농민공 숫자가 감소한 건 2008년 이후 처음으로, 2010년만 해도 전년 대비 1250만명이 늘어났었다. 레이몬드 융 호주뉴질랜드은행(ANZ) 중화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인 만큼 (중국의 고령화는)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미국 CNBC에 말했다. 한국은행 역시 지난 4월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다국적 기업에 대한 저임금 노동력 공급이 감소하면 중국이 기존의 디플레이션 수출국에서 인플레이션 수출국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했다.

 

 

◇기술이 고령화 해법 될까


고령화가 몰고 올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비관론이 가득하지만, 의학과 기술 발전으로 고령화의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론도 존재한다. ‘에이지 테크(Age Tech)’ 기술 등을 통해 노인들이 더 건강하게 오래 일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회적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에이지 테크는 주거·돌봄·금융·정보통신 등 다방면에서 노인에 적합하게 설계된 고령 친화 기술을 말한다. 이미 1970년대 고령사회에 진입한 영국은 지난 2013년부터 주식 발행으로 1조원 상당의 펀드 기금을 마련해 현재까지 50여개의 에이지 테크 개발 스타트업을 육성 중이다. 2017년 설립된 스타트업 버디(Birdie)는 이들 기업 중 하나로 질환을 앓는 노인들이 집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맞춤형 예방 치료를 제공하는 통합 관리 플랫폼을 개발했다. 스마트폰 앱과 집안의 각종 사물인터넷(IoT) 장치를 통해 노인의 건강과 영양 상태를 실시간 추적해 의료 분석을 하고 복약 관리 등을 해준다.


빅테크(거대 기술기업) 역시 에이지 테크를 미래 핵심산업으로 보고 디지털 헬스케어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일례로 아마존은 지난해 12월 노인용 AI(인공지능) 플랫폼인 ‘알렉사 투게더’를 공식 출시했다. 집에서 홀로 생활하는 노인들을 위해 센서 기반으로 넘어짐을 감지하고, 긴급 대응 비상 상담 전화를 지원한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18개월 동안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이 헬스케어 관련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파트너십 및 M&A(인수합병)에 투자한 금액은 68억달러(약 8조9000억원)에 달한다.


일각에선 에이지 테크처럼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고령화가 반드시 위기로만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대런 아세모글루 교수와 보스턴대의 파스쿠알 레스트레포 교수는 1990~2015년 기간을 실증 연구한 결과, 고령 인구 비중 증가가 1인당 국내총생산 성장률에 일반적으로 악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오히려 노인들이 떠난 빈자리를 로봇이 대체하면서 생산성이 더 높아졌다고 했다.


아세모글루 교수는 “고령화가 한 국가의 로봇 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며 “도입된 로봇 수 변화의 거의 40%를 설명한다”고 했다. 독일 괴팅겐 대학과 호엔하임 대학의 공동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노동자 1000명 당 로봇 수는 인구 성장률 하락 속도보다 두 배 빠르게 증가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사람이 로봇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지만, 젊은 노동자가 많은 국가에선 임금이 낮고 자동화 수익성이 떨어져 대체 노동력(로봇)이 필요하지 않다”며 “자동화에 대한 수요는 고령화에 따른 퇴직자 증가와 부족한 육체 노동력 대체 측면에서 나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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