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1. 그림자 경주 (8)2014.10.12 PM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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캇셀프라임은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리타는 이제까지 캇셀프라임의 질문에 답만 하였을 뿐 먼저 물어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라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드래곤이기에 인간의 질문에 관대하지 못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리타에게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말해보게.”



캇셀프라임의 허락이 떨어졌으나 리타는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답지 않게 말하기를 망설이며 뜸을 들였다. 캇셀프라임은 가만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리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캇셀프라임이 안은 디트리히를 보았다. 이윽고 그녀가 질문했다.



“디트리히를 꽤 아끼시는 군요.”



드래곤 라자를 할슈타일공이라고 부르는 대신 이름을 불렀다.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불경죄를 외치기 충분한 행위였다. 국왕의 기사인 귀족의 이름을 평민이 함부로 부르는 것은 엄연한 범죄다. 하지만 캇셀프라임에게 있어 인간의 호칭은 신경 쓸만한 게 아니다. 그녀는 색색 고른 숨소리를 내는 디트리히를 향해 애정이 담긴 눈길을 보냈다.



“싱거운 질문이로군. 그렇지. 나는 나의 라자를 아낀다네.”



“어떻게 그러시는 것인가요?”



“어떤 말인가?”



캇셀프라임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엇이 캇셀프라임에게 있어서 디트리히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것입니까?”



경어도 생략하고 드래곤의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리타도 캇셀프라임도 그 점은 중요치 않았다.



“그대가 묻는 이유를 모르겠군.”



“드래곤 라자는 드래곤과 감정을 공유한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은 디트리히의 감정을 느끼기에 그를 애정으로 대하는 것일 뿐입니까?”



“그런 점도 있겠지.”



캇셀프라임이 대답했음에도 리타는 반문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캇셀프라임은 곤히 잠든 디트리히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 아이는 어린 나이에 힘든 일을 많이 겪었네. 그 감정은 라자의 맹약을 맺는 순간부터 나에게 흘러들어왔지. 마음을 줄 곳 없이 불안에 떠는 그는 한마디로 불쌍했다. 물론 처음부터 지금 같진 않았어. 하지만 계속 지내는 동안 보듬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



“다른 드래곤 라자들은 모두 드래곤과 그렇게 친밀합니까?”



“그건 아니야. 드래곤 라자의 재능에 따른 차이도 있고, 라자의 감정에 모든 드래곤이 동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화이트 드래곤이라 유피넬에 가까워서 그런 아이에게 동한 것이지.”



“드래곤에게 있어 인간의 시간은 하찮지 않습니까? 아이든 노인이든 인간으로만 인식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요?”



“만약 네가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동물을 본다면, 그 동물들을 똑같이 인식하겠지만 새끼와 어미라는 것도 인식하겠지.”



“하지만 새끼라고 해서 잡아먹을 때 더 생각하는 것은 없습니다.”



리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캇셀프라임은 리타의 질문이 핵심을 감싸고도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리타의 말에 대한 반박보다 본질로 한걸음을 내딛었다.



“네 질문은 내가 이 아이에게 동화되었느냐는 것에 있었군.”



“그렇습니다.”



캇셀프라임은 디트리히에게서 시선을 때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화려한 샹들리에에 달린 초가 타오르고 있었다. 화르륵 화르륵. 불꽃은 작지만 격렬하게 타오른다. 마치 가만히 멈춰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연소하여 불을 피워 올리는 것이다.



“맞네. 드래곤은 인간의 아이가 불쌍하다고 해서 그를 동정하는 일이 없지. 내가 디트리히에게 친절한 것은 이상한 일이네. 드래곤을 이렇게 대하는 라자는 없어. 친구처럼 지냈다는 휴리첼가문의 라자와 이그누스 드래곤(전 크림슨 드래곤) 조차도 라자는 드래곤에게 경어를 썼지. 디트리히가 나에게 경어를 쓰긴 하지만 그건 단순히 나이 많은 사람을 대할 때 쓰는 것일 뿐이야. 그 안에 드래곤에게 쓴다는 인식은 없어.”



호르륵



식어버린 차가 쓰다. 입맛은 그전부터 썼지만.



“그가 당신을 변화시킨 건가요?”



“변화라…… 그렇군. 이 아이의 스스럼없는 행동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군.”



시선을 돌리며 캇셀프라임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노인의 그것과는 다른 새하얀 백발이 사르륵 손가락을 스친다.



“나는 드래곤이지. 인간이 아니야. 그럼에도 인간처럼 대해져서 인간처럼 대하게 되었군.”



리타는 자세를 풀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전신의 힘이 빠져나간다. 마치 노인이 과거의 실수를 떠올리는 듯한 말이다. 제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했던 생각은 거의 확실해 졌다.



리타는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죽을 겁니다.”



말을 한 리타는 당황했다. 아무리 생각이 깊은 와중이었다지만 드래곤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사람이라도 흘려듣기 힘든 말이거늘, 사람보다 높은 존재인 드래곤은 오죽할까.



하지만 캇셀프라임은 놀라기만 했을 뿐이다. 그녀는 화난 기색 없이 단지 의아함만을 표했다.



“어떤 식으로 말인가?”



리타는 손가락으로 볼을 긁었다. 살았다는 안심은 들었지만 반대로 이토록 평온한 캇셀프라임이 이상했다. 처음 만나본 드래곤이지만 이야기로 들은 것과 너무 다르다. 그렇기에 대답도 망설여진다.



“드래곤으로서……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대화의 흐름이 이어졌을 뿐이지, 결코 당신을 무시하진 않았습니다.”



“알고 있네.”



“인간처럼 변한다는 것은 고작 몇 년 입니다. 이 변화가 회귀가 될 수 있거니와, 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한 드래곤은 드래곤이라는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캇셀프라임은 갑자기 입 꼬리를 올리며 성대를 울렸다. 보통 그것을 웃는다고 일컫는다.



“하하, 디트리히가 잠들어서 크게 웃을 수가 없군. 너는 꽤 멍청하구나.”



“가끔 듣는 소리입니다.”



제미니라거나 후치라거나 샌슨이라거나 어머니라거나……



살짝 미소 짓는 리타를 보며 캇셀프라임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주전자가 천천히 떠올라 움직였다. 주전자는 리타의 찻잔에 가까이 가더니 차를 따랐다. 분명히 식었을 터인 차인데 주전자에서 나오는 액체는 수증기를 동반하고 있었다.



리타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고 캇셀프라임을 계속 웃음기가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드래곤은 완성된 존재라고 하지. 그러면 완성이라는 게 무엇을 말하는 걸까. 아, 질문한 것은 아니네. 완성은 그 자체로 끝난 것이지. 변화하는 것이 아니야.”



“……”



“그런데 완성이 변화했네. 드래곤이란 완성품이 인간이란 도구에 의해서 변화한걸세. 자, 그러면 여기서 묻겠네. 완성이 변화해서 또 다른 완성이 된다면 그것은 완성으로 부를 수 있다고 보는가?”



캇셀프라임은 티스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허공에 대고 몇 번 흔들자 티스푼은 꾸물거리며 형태를 일그러트리기 시작했다. 둥근 머리는 몇 갈래로 갈라지고 아랫부분은 좁아졌다.



그녀가 손놀림을 멈추었을 때,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포크였다. 티스푼은 포크로 변해 있었다.



리타는 엄지손가락으로 턱을 받쳤다. 팔짱을 끼고 턱에 손을 댄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고민한다고 대답할 수 있는 자세다.



“그것도 완성이겠군요. 하지만 변화하는 과정은 완성이 아닙니다. 애초에 완성해 있는 상태도……”



“그렇지. 신인가? 드래곤인가? 아니면 불꽃과도 같은 너희 인간인가? 우리를 완성했다고 부른 것은.”



“……”



리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래서 꿀을 녹이기 위해 차를 마셨다. 이번 차는 꽤 달다.



캇셀프라임은 손에 들고 있던 포크로 쿠키를 찍었다. 쿠키는 바삭했지만 포크가 날카로웠는지 부서지지 않고 포크에 박혔다. 그녀는 쿠키를 한입 베어 물었다.



“차를 마실 땐 쓸모없지만 쿠키를 집을 땐 포크도 꽤 쓸만하지?”



“그렇군요.”



리타는 자신도 쿠키를 집어서 한입 먹었다. 차와 어울리는 달달하고 맛있는 쿠키다. 두 미녀는 가벼운 미소를 지은 채 차와 쿠키를 즐겼다. 변화와 완성이라는 시시한 주제는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



포크에 찍힌 쿠키를 다 해치운 캇셀프라임은 다음 대상을 바라보았다. 검은 대상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생각해보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조금 껄끄럽군.”



“무엇이 말인가요?”



“이 아이가 날 부르는 호칭 말일세. 카피가 뭔가, 카피가.”



캇셀프라임은 불만스럽다는 듯 새하얀 볼을 조금 붉히고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시피 동화에 나오는 공주 같은 외모였기에 그 모습은 꽤 어울렸다. 그러나 리타의 얼굴은 더 새하얗게 변했다.



세상에 어머니. 어머니의 딸은 지금 부끄러워하는 드래곤을 직접 목격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처럼 변해간다지만 드래곤이 호칭에 부끄러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꽤 귀여운 호칭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아주게. 너는 디트리히의 친구라는 명목으로 나와 마주하고 있지만, 그 선을 넘는 무례는 어떤 식으로 응징할지 모르네.”



“알겠습니다.”



캇셀프라임은 계속 볼을 붉힌 채 말했고 리타는 기분이 편안해 지는 것을 느꼈다. 어제부터 그녀의 머리를 괴롭혀 왔던 문제를 치워버릴 수 있게 되었다. 무시할 만큼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당장 죽어버릴 만큼 무거운 것도 아니었다.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어 다리를 꼬고 차를 마시는 리타를 캇셀프라임이 불렀다.



“그것보다 리타.”



“말씀하시지요.”



“방금 전 내가 죽을 거라던 말은 아무르타트에게 죽을 거란 말인가?”



리타는 단번에 차를 삼켰다. 조금씩 음미하던 뜨거운 차였기에 한번에 삼키니 속이 불을 삼킨 듯 뜨거워졌다. 하지만 그 고통은 그녀를 전혀 괴롭히지 못했다.



그녀는 살짝 굳은 얼굴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이유를 말해보게.”



캇셀프라임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화내지 않았다. 자신이 죽는다는데 차근하게 이유를 물어보는 모습을 보며, 리타는 그녀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덕분에 편하게 입이 떨어진다.



“아무르타트는 블랙 드래곤입니다.”



“그녀가 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군.”



“…… 블랙 드래곤을 화이트 드래곤이 이기긴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녀라고 하셨습니까?”



“아무르타트는 여성형일세. 그리고 단순히 힘의 차이로는 승패를 결정할 수 없지. 너도 그것을 모르진 않을 것 같은데.”



“사람과 몬스터는 동률이라고 치겠습니다. 그렇다면 순수하게 캇셀프라임과 아무르타트의 싸움입니다. 아무르타트의 별명은 석양의 감시자죠. 외람되지만 캇셀프라임께서는 지골레이드보다 힘이 약하다고 들었습니다.”



리타는 살짝 긴장했지만 캇셀프라임은 깔끔하게 인정했다.



“사실이지.”



“그리고 블루 드래곤 지골레이드는 자이펀에겐 악몽이지만, 어떤 별명이 붙은 드래곤은 아닙니다.”



캇셀프라임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너는 별명의 유무가 이 싸움을 가른다고 말하는 것인가?”



“꼭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계속 말해보게.”



“석양의 감시자는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을 이릅니다. 필멸을 뜻하죠. 아이러니 하게도 그 별명을 가진 자는 불멸의 드래곤입니다. 필멸과 불멸을 동시에 가진 존재지요. 그는, 아니, 그녀는 자신은 불멸이면서 남에겐 필멸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는 필멸이란 말인가.”



리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멸의 드래곤이 필멸이 되진 않겠죠. 다만 불멸과 필멸이 부딪치는 변수가 생깁니다. 헬카네스와 유피넬이 같이 보는 인간은 둘 모두의 관심을 받지만, 둘 모두의 관심을 못 받기도 합니다. 변수로 작용하는 불멸과 필멸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결국 드래곤 뿐이겠죠. 거기선 힘과 힘의 대결입니다.”



“그렇군.”



리타는 찻잔을 기울이다 차를 다 마셨음을 깨달았다. 목이 타는 듯 갈증이 느껴진다. 덤덤하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녀는 추측했을 뿐이고, 드래곤에게 ‘넌 진다.’라는 뜻의 말을 한 것이다. 남들에게서 들었던 드래곤에 대한 공포 같은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생각보다 편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압도하는 존재감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사람 대하듯 할 순 없다.



그때 캇셀프라임은 디트리히를 안은 채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앉아 있던 리타도 덩달아 일어났다. 캇셀프라임은 테이블 위로 손을 한번 휘둘러 다기세트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리타에게 물었다.



“나는 죽는 건가?”



“확실…… 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그런가. 확률이 높을 뿐인가.”



“……”



죽음을 마주한 드래곤은 평온했다. 리타는 정말 그녀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캇셀프라임은 이해를 앞세워 그녀의 말을 들었을 뿐이다. 받아들이는 건 자신의 일이다. 다만 디트리히를 바라보는 캇셀프라임의 애잔한 눈은 리타에게 더 이상의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캇셀프라임의 커다란 눈망울이 별을 머금은 듯 빛내며 리타를 향했다.



“서로의 길이 갈리겠군. 혹시 정벌군에 따라가진 않겠지?”



리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병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벌군에 참여할 의무도 없거니와 아무르타트에게 분노를 느끼는 부류도 아니었다.



캇셀프라임은 즐거운 듯 미소를 한가득 지었다.



“이만 가겠네. 퍽 즐거운 다과회였어.”



드래곤 라자를 받아들인 드래곤은 가냘픈 뒷모습으로 걸어간다. 리타는 그저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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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1은 언제쯤 끝날까요. 멀군요.

연재분도 좀 쌓여야 보는 사람이 많아질텐데... 댓글도 없고

다음주에 여행가기 전까지 ch1은 달려놔야 겠습니다.
댓글 : 2 개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아무래도 과수원 집 영도 옹보다는 편하게 읽히지만 본편에 대한 향수 또한 느껴지네요!
대단하십니다!
제가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쓰다보니까 아무래도 남해의 타자님 보다는 쉽게 쓰겠죠. 그래도 드래곤라자가 가장 가벼워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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