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1. 그림자 경주 (10)2014.10.14 AM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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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염. 화염. 화염.



온통 둘러봐도 화염뿐이다.



살려줘.



외침은 목으로 나오지 않고 안에서 맴돈다.



주변은 아무 것도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다. 검은 것이 하나 있다. 검고 거대한 수레바퀴 같은 무엇인가가 있다.



크롸롸롸



울부짖었다. 거대한 것은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가슴이 아프다. 먹먹해진다.



뭐지. 그것을 때린다. 무엇인가가 터져나간다. 거대한 쇳덩어리가 날아온다. 그것이었다. 폭파한다.



소년이 있었다.



갈색머리의 소년이 있다.



기억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소년이 웃는다.



물어뜯어 버리고 싶다. 연약한 살을 비틀고 뼈를 조각내 씹어버리고 싶다. 사지를 찢는 것도 좋다. 녹여버려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고 싶다.



소년이 웃는다.



다시 철 덩어리.



그리고 더 거대한 쇳덩어리.



빛의 줄기.



크롸롸롸



철 덩어리, 쇳덩어리, 빛 무리. 철 덩어리, 쇳덩어리, 빛 무리, 철, 쇠, 빛, 철, 쇠, 빛, 철, 쇠, 빛, 철, 쇠, 빛, 철, 쇠, 빛, 철, 쇠, 빛.



그리고 소년.



다시 웃는다.








*








흔히 세상에서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취했을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 기억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 침대에서 검은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퀭한 눈을 뜨는 여성은 후자에 속한다.



“……”



리타는 무릎을 끌어올려 그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잘 기억나지 않는 꿈보다 꿈이라고 치부하고 싶은 현실이 더 악몽 같았다. 리타는 파묻은 얼굴을 마구 흔들었다.



“으아아……”



“일어났어? 엄마! 언니 일어났어.”



제미니의 큰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리타는 흔드느라 어지러워진 상태에서 목소리까지 머리를 울리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수습하지 못했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제미니를 바라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집이야?”



“엄마! 언니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



리타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제미니는 방문을 열며 소리쳤다. 이내 스마인타그 여사가 방으로 왕림하시게 된 것은 지극한 일이었다. 그녀는 걸치고 있는 앞치마 앞으로 팔짱을 꼈다.



“놀랄 일이다. 자매가 연속으로 아버지를 닮아 가니 엄마는 기뻐 죽겠구나.”



“아, 어머니……”



“제미니랑 역할 바꾸기 놀이라도 한거니?”



“엄마!”



“인석아! 귀 안 먹었다! 조용히 말해! 다 큰 게 소리나 빽빽지르고 말이야. 너도 좀 교양이라는 걸 몸에 걸칠 때가 안됐니? 엄마가 말했지. 여자란 자고로……”



“아 엄마아아!”



제미니는 스마인타그 여사에게 달라붙어 그녀의 말을 방해했다. 이대로 계속 놔두면 끝없는 잔소리의 협곡이 그녀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제미니는 계속 애교와 투정을 섞어 스마인타그 부인에게 매달렸다.



“떨어져, 이것아. 내가 말을 말아야지. 너희들 때문에 제명에 못 죽겠다. 큰 딸년은 사윗감 좀 주워오라니까 자기가 칼씨한테 업혀 오질 않나, 작은 것은 철도 못 들고 천방지축 뛰어 다니지. 그나마 사윗감 하나는 잡고 있으니 다행이다.”



“아잉, 엄마는 차암.”



부끄러워하든지 반대를 하든지 선택했으면 좋겠다. 제미니는 몸을 비비꼬며 작게 불만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부정하는 태도는 아닌 것 같다.



리타는 제미니를 감탄의 시선으로 보며 말했다.



“후치는 복 받았네요.”



“제미니가 복 받은 거지. 그리고 너도 복 좀 받아 와라.”



“할 말이 없습니다.”



“여기서 말한다면 사람이 아니지.”



리타는 공격 대상을 제미니로 돌려보려고 했으나 어머니는 예리했다. 어머니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리타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어지러운 머리 때문에 비틀거리며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스마인타그 여사의 한심하다는 시선이 리타의 뒤통수에 꽂혔다.



“재롱을 다 부리고 예뻐 죽겠구나. 어서 나와서 속이나 달래라.”



“예……”



어머니의 임무를 마친 스마인타그 여사는 문 밖으로 나갔다. 열린 문 사이로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어머니가 먹을 걸 해 놓은 모양이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은 해가 뜬지 꽤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잔소리를 하면서도 딸의 건강을 걱정해 요리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참고로 그 생각은 침대를 잡고 일어서려다 다리가 풀려 다시 한번 쓰러지는 동안에 이루어졌다.



제미니는 리타를 부축해주며 신기해하였다. 그녀가 태어난 이후로 언니가 이렇게 술에 취한 건 처음 보았다.



“어쩌다가 그렇게 많이 마신거야? 언니 원래 술 마실 때 딱 귀여워질 때 까지만 먹고 안 마시잖아.”



이번엔 리타가 신기해 할 차례다. 그녀의 퀭한 눈이 잠시나마 빛을 내며 동그랗게 떠졌다.



“내가 술 마시면 귀여워?”



“엄마 말대로 귀여워 미칠 정도로.”



그렇게 대답하며 제미니는 리타를 침대에 내팽겨쳤다. 사실 그녀의 힘으로 리타 같은 거구를 부축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기에, 단순히 힘이 모자라 벌어진 일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리타는 침대에 털썩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짚으로 만든 익숙한 침대의 감촉이 그녀를 반겼다.



“윽. 살살해줘. 귀여운 언니잖아.”



리타는 가냘픈 포즈를 취하며 제미니를 올려다보았다. 제미니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 귀여움을 마을 남자들한테 보이면 진짜 내일 아침 집 앞에 열댓 명은 꽃다발 들고 와서 무릎 꿇고 있을걸.”



“우리 마을에 그렇게 취향 독특한 남자가 많을 줄 상상도 못했네.”



제미니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리타는 평소에 냉정하고 인간미 없고(남자들은 쿨하고 시크하다고 하더라.) 완벽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 앞에서는 많이 풀어지는 편이고, 특히 술을 마시거나 실수를 하는 날엔 빈틈투성이가 된다.



정말로 지금 이런 모습을 본다면 안 그래도 한 인기하는 언니의 추종자가 더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뭐, 마을남자들이 어떻든 후치 하나만 그녀를 바라봐 주면된다.



제미니의 얼굴이 갑자기 빨갛게 변했다. ‘맙소사. 내가 미쳤나봐. 이런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생각이 싫진 않다.



“어쨌든 엄마가 치즈스튜 해놨으니까 나와서 그거 먹어.”



“알았어. 그런데 얼굴은 왜 그렇게 빨게?”



“아,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은 할 일 없어?”



“후치 생각이라도 했겠지. 오늘은 일단 칼한테 사과하러 가야겠네. 어제 못 봤으니 숲도 돌아봐야하겠고.”



“언니이.”



어떻게 리타는 그렇게 제미니의 마음을 잘 아는 것일까. 제미니는 항상 그게 궁금했고, 리타는 항상 웃음으로만 답해줄 뿐이었다. 사람 놀리려는 짓궂은 웃음으로 말이다.



제미니는 토라져서 나가버렸고 리타는 그 모습을 보고 미소지었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몸을 추슬러 일어난 리타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양념삼아 스튜를 먹었다. 그리고 몸을 씻으며 취한 와중에도 어떻게 파자마를 입고 잤는지에 대한 소소한 의문을 가졌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걸렸다. 리타는 무장을 챙기며 집을 나설 채비를 했다. 어제는 성에 가느라 검과 갑옷을 떼어놓았지만 역시 무장을 하는 편이 마음 편하다. 즐겨 입는 검은 셔츠와 바지위로 라이트 레더를 걸치고 허리에 조이스제 롱소드를 차고 있을 때, 어느새 다가온 어머니가 말했다.



“칼씨에겐 확실히 사과드려라.”



“네. 안 그래도 가려던 참이었어요.”



“무거운 거 업고 오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어디 탈은 안 나셨을지 걱정되네. 다음에 보면 우리집 양반이 몰래 담아놓은 술이라도 드려야겠어.”



“아버지가 서운해 하시겠네요.”



스마인타그 여사는 농담도 잘한다는 표정으로 받아쳤다.



“그 양반은 자기 닮아서 술 좋아하는 두 딸이 있으니 흔쾌히 넘어갈걸.”



“큰 딸은 빼주셔도 괜찮아요.”



“그래도 제미니는 남자에게 업혀 오진 않았다.”



“음, 칼을 사윗감 후보로 올리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리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어머니는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스마인타그 여사는 리타의 등짝을 시원하게 후려쳤다.



“누구 인생 망치려고 그러니.”



“아야!”



“실없는 소리 말고 어서 나가기나 해. 몸조심 하고.”



“으으,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리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려고 했지만 술의 저주는 그녀를 꽉 붙들고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마 어제 마셨던 술이 고급이었는지 숙취가 심하지 않아 다행이다.



리타는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끼고 평소 다니던 지름길 대신 큰 길로 걸었다. 지름길은 그녀에게나 길이라고 불리지,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땐 그냥 숲이다. 그런 곳을 지금 상태로 빠르게 지날 자신이 없었기에 돌아가더라도 큰 길을 택했다.



길을 걸으며 리타는 주변에 설치한 트랩과 알람 등을 살폈다. 숲길은 사람도 많이 이용하지만 마을을 습격하는 몬스터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마침 칼에게 가는 길이니 나중에 살펴볼 수고를 덜 수 있다.



어제 성에 보고하면서 느꼈지만, 최근 몬스터의 동향은 이상하다. 추수철인 지금은 몬스터들이 마을을 많이 노리는 시기다. 하지만 최근 몬스터와 조우한 것은 사바인 계곡에서 샌슨들이 라이칸슬로프와 싸웠을 때뿐이고, 그것도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분명 어떤 움직임이 걸려야 할 텐데, 너무 잠잠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지금은 몬스터의 동향보다도 칼을 마주하고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가 걱정이다. 깔끔하게 사과하기엔 그녀의 추태가 너무 컸다. 술을 뺏으려고 육탄전을 벌인 것부터 시작해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며 날뛴데다가 집까지 업혀오는 동안에도 그를 괴롭혔다. 성희롱 비슷한 말도 날렸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런 죄를 짓고도 평소처럼 뻔뻔하게 마주할 수 있는 대상에 칼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는 샌슨이나 터너같이 막 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는 아니었으니까. 리타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사과해야지. 어쩌겠어.”



상념은 이정도만 하기로 하자. 부끄러움은 충분히 느꼈으니까. 정 안되면 무릎이라도 꿇으면 되겠지. 어차피 볼 사람은 없는……



“아차.”



리타는 머리를 탁 쳤다. 습관이었지만 숙취로 인해 골이 울려서 충격이 크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은 멍청한 게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한 가지 문제를 떠올렸다.



칼의 집에는 현재 타이번이 있다. 어제 듣기론 칼의 집에서 지내기로 한 모양이니 아마 칼에게 가면 타이번도 있을 것이다.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는 껄끄러운 장님 마법사다.



“아……”



머리를 다시 한대 치려다 멈추는데 성공했다. 휴, 다행이야. 어쨌든 타이번은 장님이니 말소리만 들을 테고 무릎 꿇는 건 못 보겠지? 원래 이 마을 사람도 아니니까 소문나진 않을 거다.



그녀는 돌연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퍽 우습게 느껴졌다. 냉정하고 냉철한 건 어디다 팔아먹고 푼수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릴 땐 어떻게 해도 이질감 외에는 느낄 수 없었는데 지금은 이런 소소한 일로 희로애락을 느끼는지.



리타는 꼬리를 무는 생각을 거듭하며 길을 걸었다. 비록 머리로 여러 생각을 하는 중이었지만 트랩을 대충 살피진 않았다. 그녀는 세세하게 설치된 것들을 체크하였다.



리타는 갑자기 나무 한 그루 앞에서 멈춰 섰다. 낚싯줄과 연결된 나무 가지가 부러져 있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그녀는 바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간단한 알람 장치는 동물이라도 부러트릴 수 있다. 하지만 흔적은 다르다.



“트롤. 열 마리 이상.”



리타의 표정이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워졌다. 달궈진 그녀의 기분은 가라앉았고 방금 전까지 상념을 반복하던 머리는 거짓말처럼 한 가지 문제에만 집중했다.



트롤이 대규모로 움직인 흔적이 남아있다. 길이 아닌 숲을 이용해 움직였다. 숲으로 들어서니 많은 흔적들과 함께 트랩이 부서진 게 보였다.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이 정도라면 지금쯤 마을에 닿았거나 닿기 직전이리라.



리타는 숲에서 나와 길에 섰다. 이 길을 따라가면 마을로 이어지고 마을대로가 나온다. 트롤은 사람을 헤치는 몬스터류에 속하지만 이유도 없이 마을에 쳐들어 갈 정도로 호전적이진 않다. 그렇다면 지금 트롤들이 노리는 것은 처음 예상했던 대로 가을 추수가 끝난 식량이다. 하지만 식량창고는 대로와 방향이 다르다. 마을 대로로 향한 것 같은데 목적은 분명히 식량창고일테고,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판단해야 한다. 경비대에겐 가는 동안에 알리고, 그녀가 바로 전투에 뛰어들어야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쪽으로……



비명.



생각을 정리할 세도 없이 마을에서 비명이 들린다. 여성의 높은 목소리다. 리타는 이를 악물며 땅을 박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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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수요일부터 여행을 갑니다. 커플 여행 따위는 아니니까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지금 연재를 올리는 곳이 루리웹 연재소설란과 마이피, 그리고 네이버 웹소설 팬픽란 입니다.

보통 연재소설란이 자동 엔터가 되어서 가장 먼저 올리고, 그 다음에 마이피나 네이버에 올립니다.

연재소설란에는 월화수 동안 2편식 올리고, 남은 두곳은 여행동안 연재소설에 올린 것을 복사해서 일일연재를 이어가려고 생각중입니다.

사실 네이버 팬픽란은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수준이.. 그래서 별로 호응도 없는지라 딱히 어쩌든 상관없지만,

루리웹은 아직 영도옹을 추억해주시는 분들이 계신지라 간혹 댓글을 보고 힘을 얻습니다.

아... 뭐 말이 정리가 안되는데 소설도 정리하기 힘드니 정리하지 않겠습니다.

여튼 여행간동안은 못 올릴수도 있으니, 답답하신 분은 연재소설란을 가시면 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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