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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1. 그림자 경주 (12)2014.10.16 PM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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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의 습격은 대충 정리되었다. 샌슨이 유인해 간 트롤들은 타이번이 다 쓰러트렸다. 그는 중력마법을 이용해 트롤들을 공중으로 띄운 다음 낙하시켜버렸다. 식량창고를 습격한 트롤들은 리타가 다 해치웠기 때문에 마을은 큰 피해가 없었다. 다만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망자는 총 세 명이다. 리타가 발견한 남자들 외에도 도망친 여성이 상처가 심해서 죽었다. 트롤의 공격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리타가 치료했던 남성만이 살았다. 그는 타이번의 마법으로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먹거나 움직이는 건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리타는 소피아란 여성에게 계속해서 감사인사를 받았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그녀가 구한 남자의 이름은 로니이고, 소피아와 신혼이 된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한다. 소피아는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로 리타의 손을 꼭 잡고 계속해서 고맙다고 말했다.
리타는 그녀에게 묵묵히 웃어주기만 하였다. 죽어버린 다른 사람들의 가족은 오열했다. 도망친 여성과 로니가 눈 감겨준 남성은 부부관계라고 들었다. 또 한명의 남성은 홀어머니와 사는데 그의 친구가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기로 약속하고 있었다고 한다.
헬턴트 주민에게 있어 죽음은 그리 먼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지고, 목숨을 던질 때 미련이 남지 않도록 말을 남긴다. 이번엔 후치가 남자들의 말을 다 듣고 전하게 된 모양이다.
리타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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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는 상처를 치료받은 후 의사에게 타이번을 찾아가란 말을 들었다. 그녀처럼 뼈가 부러진 경우는 의사의 손을 빌리는 것 보다 마법사에게 치료받는 게 흉이 덜 진다고 하였다. 그녀는 아직 마을에 있어 낯선 사람인 타이번에게 손을 빌리는 것이 탐탁치 않았지만 의사의 조언을 듣기로 하고 ‘산트렐라의 노래’로 향했다.
예상대로 부러진 늑골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엄습해왔다. 싸울 때는 애써 무시한 탓인지 이러지 않았는데 긴장이 풀리니 꽤 아프다. 의사가 치료를 해주긴 했으나 이 고통까진 어쩌지 못했다. 거기다 그녀는 약이 잘 안 듣는 몸이어서 진통제도 소용이 없었다.
산트렐라의 노래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펍은 흥겨운 분위기였다. 제미니는 술이라도 마신건지 얼굴이 달아오른 채로 미쳐 날뛰고 있다. 하긴 술이라도 마시지 않고서야 저렇게 망나니처럼 날뛰진 않겠지. 주변에 앉은 마을 사람들은 제미니의 모습에 테이블을 손으로 치며 폭소를 터트리고 있다. 제미니의 바로 옆에서 후치가 불만과 걱정이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샌슨과 타이번은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리타가 펍 안으로 들어서자 단숨에 시선이 집중 되었다. 그리고 남자라는 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은 환호성을 보냈다.
“휘유!”
“화끈한데!”
“오늘 잠 다 잤어.”
“눈아 고마워.”
타이번에게 말을 걸려던 리타는 어리둥절하며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후치를 비롯한 사람들은 모두 언제 술을 마신건지 얼굴이 빨개져 있다. 그리고 제미니가 리타를 보더니 손으로 얼굴을 짚으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몸을 가리켰다.
“언니, 옷.”
“왜?”
그녀는 아까 싸울 때 입고 있던 복장 그대로였다. 옷을 갈아입을 여건이 안 되었기에 물을 통째로 뒤집어써서 피만 씻어냈다. 왼쪽 가슴 아래에 난 상처도 의사의 치료로 거즈가 붙어서 상처가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리타의 복장은 하의는 쫙 달라붙는 레깅스팬츠에 상의는 절반쯤 찢어진 라이트 레더만 입은 상태다. 라이트 레더는 왼쪽 가슴부터 복부까지 찢어져 버려서 그녀의 복부와 가슴 아래 부분이 훤히 드러났다. 즉, 상당히 노출이 심한 복장이다.
하지만 리타는 문제를 깨닫고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몸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격렬한 전투가 있었으니 옷이 이런 건 당연하다는 식으로 시선들을 받았다. 본질적인 문제는 전혀 생각지 못한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에 어깨를 으슥한 후 타이번에게 다가갔다. 그때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샌슨이 그녀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평소의 풀어진 표정과 달리 몹시 경직된 얼굴이었다.
“샌슨?”
따악!
“흐앗?!”
리타는 정수리를 강타하는 통증에 머리를 감싸며 의미모를 비명을 내뱉었다. 샌슨이 리타보다 훨씬 더 크고 굵은 주먹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쥐어박은 것이다. 리타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맺혔다.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샌슨이 리타를 폭행(오거 같은 남자가 큰 편이라지만 여성을 주먹으로 때리는 것은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하자 다들 벙 쪄서 사태를 관망했다.
“아프잖아! 왜 때리는 거야?”
리타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에 힘을 주며 샌슨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고통과 흥분으로 빨개진 볼과 눈물로 촉촉하게 젖은 큰 눈은 뭇 남성들의 심장을 녹이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평소에 얼음처럼 빈틈없이 철저한 모습만 보이는 그녀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다. 펍 안의 마을 청년들 대부분은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샌슨은 변함없이 굳은 표정으로 리타를 내려다보았다.
“이 멍청아. 트롤이 식량창고에 있는 걸 알았으면 경비대를 기다렸어야 할 거 아냐. 어느 미친놈이 트롤 세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데 혼자 뛰어 들어가!”
“너희는 유인해간 놈들 상대해야 했잖아! 그놈들 잡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언제 오길 기다려. 타이번이 있었으니까 금방 잡은 거지. 평소라면 더 오래 걸리잖아. 그리고 충분히 이길 자신 있었다고. 결국 나 혼자 다 잡았잖아.”
“이 바보가!”
샌슨은 그녀의 정수리를 다시 한번 쥐어박으려고 했지만 리타는 고개를 살짝 꺾으며 주먹을 피했다. 처음은 전혀 생각도 못한 상황이었기에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샌슨은 주먹이 헛나갔지만 다시 휘두르거나 하지 않았다. 순간 흥분해서 쥐어박으려고 했던 것뿐이지, 그도 친구를 험하게 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리타는 그를 말없이 쏘아보았다. 샌슨은 주먹 대신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걱정했잖아. 아무리 이길 것 같아도 다칠 것 같으면 나서지마. 이번엔 무사했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무모하다면 어떻게 될지 몰라. 평소엔 냉정하면서 왜 흥분하면 앞뒤 생각을 안 하고 달려드는 거야? 너희 부모님도 생각해야지. 저기 제미니도.”
리타는 진지하게 말하는 샌슨을 향해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진한 걱정이 베어 나온다. 말에서 온기를 느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단번에 이해 할 수 있다. 리타는 놀라서 멍해진 표정 그대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 그…… 미, 미안해.”
리타의 사과에 샌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복부의 거즈를 보며 물었다.
“상처는 괜찮아?”
“그게 말이지, 아까 전에 네가 때렸을 때부터 엄청 아파. 지금 잡고 있는 어깨도 근육이 다쳐서 아프고.”
“뭐? 진즉에 말했어야지.”
“샌슨이 다짜고짜 때렸잖아. 타이번에게 치료받으러 온 환자를 너무 험하게 대하는 거 아냐?”
리타는 눈을 흘겼고 주변에선 샌슨을 매도했다. ‘샌슨이 잘못했네.’, ‘죽어라, 샌슨.’, ‘어디 감히 여신에게 손찌검을 하느냐.’ 등등의 거센 비난이 샌슨을 마구 때렸다.
졸지에 천하의 나쁜 놈이 된 샌슨은 민망한 얼굴을 하며 리타를 타이번에게로 이끌었다. 머리를 때렸던 미안함 때문인지 그 짧은 거리 동안 최선을 다해 리타를 부축했다. 후치는 샌슨을 보고 비웃으며 약올렸지만 샌슨은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리타의 부축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타이번의 앞에 리타를 앉혀둔 그는 펍의 주인인 해너에게 리타가 걸칠게 있으면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타이번은 리타가 앉자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마나가 느껴지는 걸 보니, 어제 칼에게 시집가겠다던 아가씨로군.”
주변사람들은 흠칫거리며 재빨리 귀를 타이번에게 향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영감님?’
“그게 무슨 소리에요, 타이번?”
헬턴트 소년 후치는 용감했다. 펍 안의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후치를 칭찬했다.
“별 거 아냐. 어제 칼이랑 했던 농담이지. 그리고 칼은 이 아가씨가 주사를 부리는 걸 보고는 거절해야겠다고 질린 듯이 말하더군.”
리타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게졌다. 흔치 않은 장면을 연이어서 구경하게 된 마을 사람들은 흥미진진하게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다만 술에 취한 제미니만이 테이블에 엎어져 있을 뿐이다. 후치도 ‘어제 무슨 짓을 한거죠, 칼.’이라는 질문을 마음속으로 던졌다.
“칼이 고생을 많이 했나 보네요.”
“말도 말게. 아가씨를 곤경에 빠트리는 취미는 없으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더 말하지는 않겠네만, 아가씨는 칼을 보거든 꼭 사과는 하시게.”
“네……”
“그래서 어딜 다친 거지?”
리타는 늑골이 부러진 것 같다고 말하며 타이번의 손을 잡고 그녀의 상처부위에 스스럼없이 가져갔다. 가슴 바로 아래에 상처가 나 있었기에 타이번은 그녀의 도담한 가슴에 손이 닿았다. 펍 안의 사람들은 모두 숨을 헛삼켰다. 하지만 정작 리타와 타이번은 아무런 동요 없이 상처 부위를 가리키고 만졌다.
그리고 곧 타이번의 손에서 뻗어 나온 빛이 리타의 상처를 감쌌다. 빛은 그녀의 가슴아래서 잠시 머물다 사라졌고, 거즈를 때내자 흉터 한점 없이 깨끗한 피부가 드러났다.
“감사합니다.”
“큰 힘 드는 거 아니니 잊어버려. 그것보다 아가씨는 참 나를 놀라게 하는군. 아가씨뿐만이 아니야. 이 마을은 영주부터 시작해서 성의 경비대장, 그리고 눈 뜬 장님 청년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날 당황하게 한단 말이야. 퍽 재미있어.”
샌슨은 해너에게서 건네받은 셔츠를 리타에게 둘러씌워주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리타는 라이트 레더를 벗고 셔츠를 입을까 생각하다가 잔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단 사실에 참기로 했다. 셔츠가 남성용인지 꽤 커서 그냥 라이트 레더 위로 몸에 걸쳤다.
샌슨은 타이번이 허허 웃는 이유가 궁금했다.
“저, 무슨 말이신지?”
“자네들은 비극을 꽤 빨리 잊는구만? 지금 이 펍의 분위기도 그렇고.”
“익숙하니까요.”
“잊지 않으면 먹혀 버립니다.”
샌슨은 간단하게 대답했고 리타가 이어서 말을 덧붙였다. 어젯밤에도 이야기 했지만 이 마을은 아무르타트가 주는 공포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에 많이 당하고, 그만큼 빨리 잊어야 한다. 잊지 않으면 절망에 먹혀버린다. 마을은 농담을 좋아하고, 쾌활하다. 하지만 진심으로 즐겁지는 않다.
샌슨의 짧은 대답은 헬턴트 마을의 모든 상황을 요약한 무거운 것이었다.
“그런가. 흠.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이 마을에 대단한 흥미를 느낀단 말이야.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가?”
“자주 일어납니다.”
후치와 리타가 동시에 샌슨을 바라보았다. 샌슨은 왜? 라는 시선을 보냈지만 후치는 한심하다고 응대했고 리타는 입을 열었다.
“월간 행사 입니다. 지금 같은 추수철에는 주간 행사가 될 때도 있습니다. 매년 십수번의 전투가 벌어집니다.”
리타의 대답에 타이번이 질문한 요지를 깨닫고 샌슨이 덧붙였다.
“성의 사집관에게 물어보면 정확한 기록이 있을 겁니다. 오늘 전투 보고할 때 물어보면 알 수는 있겠지만…… 대략 리타의 말이 맞을 겁니다. 우습지만, 저는 전투를 거치면서 횟수를 세는 게 왠지 다음번에 죽을 확률을 높이는 거 같아서, 되도록 세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확실히 대답해드리긴 어렵습니다.”
샌슨은 머리를 벅벅 긁었고 타이번은 납득했다는 표정이 되었다.
“음, 이해하겠어. 바쁜 사람 붙잡아둬서 미안하군. 어서 가봐.”
“예, 그런데 마법사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난 칼의 집에 있어.”
“그러고 보니 어제도 칼의 집에 계셨지. 칼과 아는 사이 신가요?”
샌슨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리타도 어제 일을 기억해내며 의아해했다. 타이번은 느긋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 친구가 혼자 산다며 머물 데가 정해질 때까지 있어도 좋다고 하더군.”
타이번의 말이 끝나고 샌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타이번에게 인사했다. 타이번이 눈이 보이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고개를 꾸벅해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리타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옷깃을 여미었다. 열린 문이 닫히며 들어오는 바람이 꽤 쌀쌀하다.
“매년 십수번이란 말이지……”
타이번이 갑자기 중얼거리자 리타와 후치가 돌아보았다.
“아, 아냐. 미안하군. 장님의 버릇이야. 평소에 말할 때 듣는 사람을 못 보니 혼잣말 같거든? 그래서 혼잣말을 아무 때나 하게 된다고.”
후치는 곤란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피곤한 버릇이군요. 속마음을 그냥 말해버릴 수 있다는 뜻인가요?”
“뭐, 자네 정도의 나이에 이런 버릇이 있다면 모르지만 이 나이엔 속마음과 겉마음의 차이가 없어. 피곤할 일은 없지.”
“후치, 네가 그렇다면 지금쯤 제미니와 신방을 차리고도 남았을 텐데.”
“아우, 리타. 제발!”
“허허허, 속마음만 못한 겉마음이로군.”
후치는 씩씩거리며 앞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있는 제미니를 쳐다보았다. 취해버린 저 계집애 때문에 마음 성할 날이 없구나. 이렇게 된 거 어서 빨리 결혼을 해버리면 아무 문제 없…… 맙소사.
후치는 핼쑥해진 얼굴로 테이블위에 쓰러졌다. 리타는 그런 그의 등위에 팔을 괴며 몸을 기댔다. 후치의 체온이 차가워진 그녀의 몸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그런데 아가씨는 마나의 흐름이 이상하군.”
“저 말인가요?”
리타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으니 타이번이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네도 저 친구와 동류인가?”
“장님이냐는 말씀이시군요. 여긴 제미니와 저 밖에 아가씨가 없는데 제미니는 술 취한지 오래니, 저 밖에 대상이 없네요.”
“나 아아아안 취했어! 우히히키힛!”
“우왓! 깜작이야!”
엎드려 있던 제미니가 갑자기 고개를 팍 들며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후치는 몸을 움찔할 정도로 놀라며 제미니에게 욕을 쏟아냈다. 제미니는 콧방귀를 뀌며 시끄럽다는 듯이 귀를 막고 다시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후치는 씩씩거렸으나, 그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에서 굴러 떨어진 리타를 보고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리타는 다시 의자에 앉으며 후치를 테이블에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전과 같이 그의 등 위에 자세를 취했다. 후치는 받침대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웠지만 환자를 쓰러트린 죗값은 치르자는 마음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타이번, 제 마나가 이상한가요?”
“일반적으로 우리 마법사들이 다루는 방식이라기엔 많이 혼잡하네. 마법사들이 구축한 마나의 흐름을 비유하자면 수로와 같지. 물길을 정비해서 정해진 대로 흘러가네. 하지만 자네는 그냥 하천 같구먼. 전혀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래서는 효과적인 흐름을 가져오지 못하지.”
“정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니까요.”
“자네, 스승은 그런 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뭐했단 말인가?”
피곤함에 후치에게 그대로 몸을 맡기고 있던 리타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대답했다.
“제 스승은 그런 걸 할 줄 모릅니다.”
“하! 아무리 하급 마법사라도 마나의 흐름을 제자에게 전수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거늘! 그것도 할 줄 모른다니. 도대체 어떤 놈인지 얼굴 한 번 보고 싶구만.”
“있어도 얼굴을 보실 수 있으신가요?”
“아 참! 난 장님이지.”
“그리고 정말로 눈 뜬 장님이죠. 제 스승은 바로 앞에 앉아 있거든요.”
타이번은 입을 닫았다. 리타에게 깔려있는 후치가 혹시 스승이냐고 되물어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겪은 기나긴 경험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지금 자기 앞에서 어떤 정신 나간 말을 하는 여자와 같은 말을 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이런 정신 나간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후치는 리타에게 갈린 채로 타이번을 향해 신기한 시선을 보냈다. 후치가 보았던 타이번은 결코 지금 같은 표정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익혔다는 말인가?”
“네.”
후치는 준비했다. 저 표정이 된 사람들은 대게 어떤 반응을 보인다. 타이번이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시작하겠군.
“그게 말이 되는가! 마나라는 것은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스승이 개발시켜 주지 않는다면 아무 맥락도 잡아내지 못하는 것이란 말일세! 설령 흐름을 느낀다고 해도 운용방법을 알지 못해서 그대로 아무것도 못한단 말이야. 몸에 마나를 흘릴 수 있으려면 스승을 통한 마나의 개척과 운용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로 하다고! 하물며 마나가 마법으로 발현될 때 가지는 어마어마한 역학들을 정리 없이 쓸 수 없어! 아니, 마나의 흐름을 방치한다고 해도 마나를 마법이 발현하도록 운용하기 까지 그 과정 자체만 해도 이르기까지 얼마나 힘이 드는데. 마나가 가지는 알파계수와 자연에너지와의 상관관계를 계산하는 것조차 스승이 기초를 닦아 놓지 않으면 불가능해! 마나의 운용동안 제어하는 건 또 어떻고. 마나가 폭주하지 않도록 제어하면서 운용하는 건 그 누구도 스스로 하지 못해!”
타이번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일장 연설을 했다. 펍 안의 사람들은 갑자기 타이번이 큰 소리를 내자 놀라서 바라보았다. 리타는 가볍게 박수를 치려다 타이번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그만두었다. 대신 그녀는 타이번이 어림짐작한 것을 바로잡기로 했다.
“그래서 저는 마법을 쓰지 못합니다.”
“뭣?”
“타이번은 보지 못하지만 마나를 느낄 순 있겠죠? 제가 마나를 다루는 건 고작해야 이정도 입니다.”
리타는 오른손을 들어올리고 마나 볼을 만들어 냈다. 트롤과 싸울 때 만들었던 것 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만들어낸 그것은 빛을 뿜으며 리타의 손위에 떠 있었다. 사람들은 환성을 내며 그 신기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윌로위스프가 저런 느낌이려나. 빛을 뿜어내던 마나 볼은 리타가 손을 움켜쥐자 그대로 팟하고 사라졌다.
“마나를 억지로 압축했다가 팽창할 때 생기는 힘을 폭발력으로 바꾸는 방식입니다. 당연히 공격력은 얼마 되지 않죠.”
타이번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은 나이만큼이나 엄청난 시간의 회환이 한 번에 몰려들어 몹시 피곤해 보인다.
리타는 그녀가 말한 것이 얼마나 타이번에게 충격을 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법에 무지한 펍 안의 사람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리타가 한 말이 얼마나 마법체계를 무시하는 것인지, 타이번이 어떤 충격을 받은 것인지 알 턱이 없었다.
타이번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그런 행동을 보였다. 그리고 멍하니 있다가 뮤러카인 사보네를 한 잔 마셨다. 술이 들어가면서 간신히 숨통이 트인 느낌을 받는다.
“솔직히 말하지. 아가씨의 그 터무니없는 마법은 빛의 탑의 마스터들 모두가 탐내기에 충분한 것일세. 아가씨를 제자로 삼고 싶어서 말이야.”
그때 궁금한 건 바로 질문하는 게 모두에게 이롭다는 지론의 신봉자인 후치 네드발이 끼어들었다.
“빛의 탑이 뭐죠, 타이번?”
“후치, 네가 미소가 매력적인 애인을 사랑하는 마음의 1할만 세상에 투자한다면, 훨씬 세상이 넓어 보일 거야.”
“여러 가지를 지적하고 싶지만 넘어가고 한 가지만 물어보죠. 그래서 뭡니까?”
후치는 거듭해서 물었으나 어째서인지 타이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리타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마법사들의 탑이야. 마법 국가 바이서스의 근간을 이루는 마법사들의 총본산이라고 해야 할까. 핸드레이크와 솔로처의 진전을 잇는 마법사들이 즐비한 곳이지. 바이서스 임펠에 있어.”
“헤? 그런 곳의 마법사들이 리타를 제자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거죠? 마스터라고 했으니까 마법사들 중에서도 높은 사람들일 거 같은데, 그 사람들이 왜 그럴 거라는 거예요?”
리타는 후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기가 할 말을 대신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후치는 리타의 손을 치우며 리타와 마찬가지로 타이번의 대답을 기다렸다.
타이번은 한참 뜸을 들였다. 어떤 말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 것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이들이 지쳐갈 때쯤 그의 입은 열릴 수 있었다.
“아까 내가 놀라면서 외쳤던 말들 기억나나?”
“아, 그 바이서스어를 가장한 외국어 말이군요.”
“…… 그래. 이해하기 어렵겠지.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누가 너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상태에서 초를 만들라고 한다면 만들 수 있겠나?”
“못 만들겠죠.”
“맞아, 어떤 일을 할 때 선지자가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못하는 게 일반적일세. 그리고 그 분야는 어렵다는 점에서 볼 때 드래곤과 키스하기 다음으로 어렵다는 마법이야. 그런데 이 아가씨는 자기 혼자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단 말이지. 누가 자세한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오직 재능만으로 말이야.”
후치는 새삼 감탄한 표정으로 리타를 보았다. 목을 뒤로 돌려야 해서 상당히 힘들었지만. 주변 사람들도 다 리타를 향해 대단하다는 의미가 담긴 시선을 보냈다.
리타는 시선의 집중을 느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려운 일이었군요.”
“어렵다? 그렇게 표현할 일이 아니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거야.”
“이게 불가능한 일이었군요.”
“……”
“그래서 제 마나의 흐름이 이상하면 문제가 되나요?”
“아니, 지금 이대로 있다면 문제 될 것은 없지. 마법을 쓰는데 비효율적일 뿐이니까.”
“다행이네요.”
리타는 느긋하게 대답하며 후치에게 기대었던 몸을 일으켰다. 원래 목적이던 상처도 치료했고 다친 몸으로 술을 마실 수도 없으니 펍에서 볼 일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것은 술에 취해 뻗어버린 동생을 어머니 앞에 진상하는 일 뿐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타이번은 리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에게 시력이 남아 있었다면 상대방을 시선만으로 뚫어버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엄청난 갈등의 소용돌이가 그의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리타라는 아가씨는,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지켜왔던 스스로의 약속과 마법사로서의 도달하고픈 욕구가 쉴 틈 없이 충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1초에도 수백 번씩 왔다갔다하는 사고를 마침내 정리하여서 하나지 결론을 내렸다.
“아가씨. 아니, 리타.”
“왜 그러시죠, 타이번?”
안 부르던 이름까지 부르자 리타는 몸을 일으키다 말고 타이번을 바라보았다. 타이번이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여성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 매너로 통용되는 곳이기에 타이번이 이름으로 부른 것은 꽤 신기한 일이었다.
타이번은 리타를 불러놓고 손을 뻗었다. 리타는 의아해하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녀를 붙잡은 손은 노인이라고는 믿기 힘들게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타이번은 진중하게 말했다.
“내 제자가 되지 않겠나?”
그의 인생동안 제자로 삼은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더 이상 제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 생각은 아직까지도 지켜오는 것이었지만 이런 재능을 앞에 두고서는 무뎌질 수 밖에 없었다.
타이번의 하얀 눈이 타오르듯 리타를 바라보았다. 너무도 진지하여서 엄숙하기까지 한 분위기에 펍 안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이 아님에도 침을 삼키며 상황에 집중하였다.
후치는 직접 보았지만 타이번은 눈이 멀었어도 대단한 마법사였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쓰는 것을 본 경험은 적지만, 타이번처럼 트롤들을 한번에 상대하는 마법이 대단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타이번의 제자가 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후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 가운데서 리타는 당황하지 않고 ‘흠’하는 소리만 냈다. 그녀는 이내 미소를 띄었다.
“거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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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8장입니다. 분량이 폭발하는군요. 조회수랑 댓글도 슬 폭발했으면 하는데 아직 멀었나봅니다.
리타의 스펙은 헬턴트 경비대 최상급의 검술 + 살기 + 마나볼 입니다. 사기캐죠... 종족의 특성과 이루릴과의 파워밸런스를 생각해서 설정한 것이지만
역시 초반엔 너무 두드러지는군요. 주인공은 약한주제에 나대다가 굴러야 제맛인데 아쉽습니다.
댓글 : 1 개
- 탄핵]KUMA熊
- 2015/07/03 AM 08:29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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