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1. 그림자 경주 (15)2014.10.20 PM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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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와아악!”



“타이버어어언! 당신, 주우욱일 거야아아아!”



세로로 6큐빗, 가로로 3큐빗은 될만한 엄청난 체구를 가진 몬스터는 코페시를 휘둘렀다. 오거가 휘두른 코페시는 가득 힘을 담고 있어서인지 천천히 떨어져 내렸고, 후치는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다. 온 몸이 부서질 것만 같다. 후치는 이를 악물었고 오거는 재차 공격을 시도했다.



그 일은 연병장 가운데서 벌어지는 일이었고, 연병장 한켠에서는 병사들이 나란히 앉아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병사들 옆으로 히죽거리는 타이번과 리타도 있었다.



“저 마법사님, 괜찮을까요?”



병사들 중 하나가 걱정스레 물어봤으나 타이번은 씨익 웃기만 하였다. 질문을 한 병사는 오거가 일루젼 마법으로 만든 환상이란 걸 알았지만 너무 실감나는 모습에 걱정이 된 것이다. 옆의 동료들이 그에게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으며, 그의 걱정스런 얼굴은 곧 사라졌다.



“당신들 모두 첫날밤에 불능에나 걸려버려어어어어!”



후치가 악에 받쳐 외친 말이다.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배를 잡고 뒤집어졌으며, 리타도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후치는 타이번에게 대가로 힘을 세게 해달라고 말했다. 타이번은 무슨 이런 단순무식한 부탁이 다 있냐고 핀잔을 주면서 장갑을 한 짝 건넸다. OPG(오거 파워 건틀릿)라는 물건으로 장갑을 낀 사람은 오거와 같은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후치는 시험 삼아 장작을 이쑤시개로 만드는 경험을 하며 몹시 만족했다.



그리고 헬턴트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OPG를 얻은 후치는 힘을 자랑하고 싶어 난리도 아니었고, 사람들의 일을 도와준단 명목으로 엄청난 파괴 행위를 자행함으로써, 한동안 헬턴트 마을 주당들의 이야깃거리를 많이 제공해 주었다. 특히 아이를 돌봐준다며 아이를 100큐빗 가까이 던졌다 받은 것은 길이길이 전설로 남을 정도의 이야기였다. 그 모든 일을 겪어 들은 타이번은 포복절도하며 힘을 제어할 수 있는 훈련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였고, 현재 이런 상황까지 초래한 것이다.



코페시로 후치를 어떻게 분해 시킬까 고민하는 오거는 타이번의 환상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후치는 모르는 것이며, 그렇기에 지금처럼 지켜보는 경비대원들에게 바락바락 저주를 퍼부으며 필사적으로 살기에 급급한 모습을 자아냈다. 특히 OPG는 오거에게 정체성 혼란을 주어서 무조건적인 살의를 발동시키는 물건이니, 오거의 기세는 한층 더 흉흉하다.



“후치, 힘은 같아! 맞받아쳐!”



“니가 오거 보다 나은 건 머리뿐이니까 머리를 써라!”



병사들은 여유롭게 농담 섞인 응원을 보냈다. 후치는 가까스로 코페시를 피해내는 와중임에도 농담을 받아쳤다.



“얼굴도 낫거든! 으앗!”



으르렁거리는 사이에 코페시가 그를 쪼갤 듯 날아들었고 후치는 피하는 대신 검을 휘둘러 코페시를 쳐냈다. 팔에 전해지는 통증은 컸지만 그는 자신이 오거와 같은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의 이가 바드득 갈린다.



“이 자식아! 너와 난 똑같은 힘이다! 그렇다면…… 죽어보자!”



“쿠앗!”



후치가 휘두른 검은 엄청난 기세로 오거의 가슴팍을 갈랐다. 오거는 주춤거리며 물러났고, 후치는 자기가 하고도 놀란 것인지 얼떨떨한 얼굴로 서 있었다.



“후치, 이 자식아! 지금 달려들어야지!”



후치는 병사들의 목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으나 오거도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바로하고 있었다. 후치는 입맛을 다시며 오거와 대치 상태로 들어갔고, 둘의 대결은 계속되었다.



힘이 동등하고 후치가 점점 전투에 익숙해짐에 따라 생각 외로 대결은 오래 지속되었다. 병사들은 때때로 놀리다가도 필요한 곳에서 조언을 던졌고, 후치는 목숨이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농담을 그냥 넘기지 못했다. 정말 대단하긴 대단한 입이라면서 터너가 감탄할 정도였다.



이윽고 상황은 종결에 가까워졌다. 오거가 공중에 떠오른 기세로 코페시를 내려찍으려고 하자 후치가 검을 들어 오거의 복부를 관통시켜 버린 것이다.



“쿠우욱!”



오거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신음을 냈다. 후치는 이겼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삽시간에 공포로 물든 표정으로 바뀌었다. 오거가 바스타드소드에 찔린 상태로 코페시를 위로 치켜든 것이다. 병사들은 여전히 희희낙락한 모습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도와줘야지!’라는 외침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채 떨어져 내리는 코페시가 눈에 들어온다.



“제미니이!”



후치는 그의 17년 인생을 가지고 논 여성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였다. 그런 그의 귓가로 낄낄거리는 병사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후치는 바스타드를 하늘로 찌른 모습 그대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병사들이 데굴데굴 구르면서 폭소를 터트리고 있다. 타이번은 여전히 웃고 있고 리타는 감탄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헥, 우헥, 요 녀석아. 가짜다”



“일루젼!”



후치는 멍하게 있다가 소리쳤고, 병사들은 본격적으로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미니의 이름을 부른 후치를 가지고 마구 놀렸고, 후치는 눈을 번뜩이면서 그들에게 오거의 힘을 각인시켜 주겠다고 다짐했다. 하여 연병장에서는 때아닌 구보의 현장이 펼쳐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다 리타는 타이번에게 질문했다.



“타이번, 혹시 일루젼 마법을 한 번 더 사용하실 수 있나요?”



“왜 자네도 오거랑 붙어보고 싶나?”



리타는 손을 들어 후치를 가리키려다가 타이번이 눈이 안 보임을 상기하고 입만 열었다.



“후치에게 OPG사용법을 가르쳐야 할 거 같아서요. 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져서 이젠 힘에 휘둘리네요. 사람구실하려면 힘에도 안 휘둘리는 방법을 알아야겠죠. 그게 실전이면 좋지만 시범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좋을테니까요.”



“자네는 OPG를 다뤄본 적이 있는가?”



“OPG는 아니지만 거인의 팔찌를 사용해본 적이 있습니다.”



“뭐? 그건 OPG보다도 더 귀한 물건이지 않은가?”



“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잠깐 빌려 쓴 적이 있습니다.”



타이번은 새삼스레 감탄한 표정이 되었다. 리타라는 아가씨는 듣기로 이십대 중반정도인데, 그녀가 겪은 일들은 평생을 모험에 바친 사람들도 경험하기 힘든 것들이다.



“그걸 빌리고 바로 돌려주었나?”



그 팔찌는 오거의 힘이 아닌, 거인의 힘을 가져오는 물건이다. 물리력 만으로는 드래곤에 필적할 수준의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런 물건을 가지면 욕심이 생기는 게 사람의 심리다. 어지간한 상대라 하여도 힘으로 제압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리타는 그의 질문에 짧게 즉답했다.



“네.”



“왜지?”



“네?”



“어째서 그 물건을 돌려준 건가?”



“빌린 물건이니까요.”



무슨 말이냐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는 리타의 대답에 타이번은 입을 닫았다. 리타는 욕심이 있고 없고의 측면을 떠나서 빌렸으니 돌려준다는 당연한 논리를 따른 것이다. 그녀가 너무 당연한 듯이 말하는 바람에 타이번은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다. 리타와 이야기 할 때는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과 이야기 하는 것 같다는 점을 말이다.



“내가 자네에게 실례를 범했군. 용서하시게. 이 나이가 되다보니 사람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게 되는구만.”



“아닙니다.”



“그럼, 오거를 불러주면 되겠는가?”



“후치가 상대해 본 몬스터는 오거뿐일 테니까 오거가 제일 낫겠죠. 혹시 다수가 가능하다면 세 마리 정도로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후치! 장난 그만하고 이리와!”



타이번은 경비병과 숨바꼭질을 벌이는 중인 후치를 불렀다. 후치는 매일 구보로 단련된 경비병을 따라잡는 게 얼마나 중노동인지 깨닫고 있었기에 헥헥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왜요? 타이번.”



“OPG를 벗어라.”



후치는 의혹의 눈빛을 타이번에게 보냈다. 설마 이 마법사가 준 걸 다시 뺏는 건 아니겠지? 스스로가 생각해도 잘 사용하지 못했다지만, 맹세까지 하면서 준 물건인데.



“이놈아. 빨리 벗어서 리타한테 줘라.”



“리타요?”



“그래, 이놈아. 리타가 OPG를 다루는 시범을 보여주겠단다.”



후치가 리타를 보자 그녀는 살풋 웃었다. 리타는 라이트 레더를 못쓰게 되자 새로 맞춘 하드레더를 입고 있었다. 또한 애검인 롱소드도 허리에 자리하고 있다. 그녀의 완전무장이라고 할 수 있는 복장이다.



후치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리타니까 안심하고 준다는 듯이 OPG를 벗어 건넸다. 리타는 OPG를 받아 끼고는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하였다.



“이 정도인가. 몇 번 휘둘러보면 익숙해지겠네.”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요.”



후치는 그가 저지른 일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리타가 그보다 더 큰 힘을 다뤄보았단 사실을 알리 없는 그였기에 그 생각은 타당했다. 리타는 장갑을 다 끼고 후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간 후치가 머리가 이대로 박살나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으리라.



“너는 병사들에 비해 힘이 좋은 편도 아니고, 사실 나보다도 근력이 약할지도 몰라. 그 시선은 뭐니? 어쨌든 나도 근력이 강한 편이 아니니까 신체조건만 따지자면 저 사람들 보다는 내가 너하고 제일 비슷하겠지. 아마 터너나 샌슨이 OPG를 끼고 시범을 보여준다고 해도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적을 거야.”



“리타는 그 상태로 싸우는 데 익숙해지지 않았나요? OPG를 껴도 내가 참고하기엔 무리가 있을 거 같은데.”



“타이번에게 오거 세 마리를 부탁했어. 하나하나씩 보여줄게. 내가 힘을 다루는 법, 네가 연습해야 할 것, 네가 지향해야 할 모습. 아, 바스타드 소드도 빌려줘.”



후치는 완전히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리타가 농담은 해도 허튼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리타는 후치에게 빌린 바스타드를 왼손에 들었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어이, 후치. 뭐 하는 거야?”



“리타가 오거 상대한데.”



“뭐? 정말?”



“이거이거 눈 제대로 씻어내겠는데.”



“쌍수검?”



병사들은 터너가 명령하지 않아도 후치를 볼 때와 같이 연병장에 앉았다. 그들로서도 리타가 싸우는 모습을 본다는 건 꽤 흥미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쌍수검은 본 역사가 없었다. 순식간에 전과 같은 모습이 형성되었고, 바뀐 것은 리타와 후치의 위치뿐이었다.



“준비 되었는가?”



“예.”



리타는 바스타드와 롱소드를 허공에 몇 번 휘두르며 대답했다. 공기가 갈린다는 걸 알아 챌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소리가 난다. 타이번은 리타의 대답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캐스팅했다. 후치 때와 달리 그의 손에 새겨진 문신에서 빛이 뿜어 나왔다. 타이번이 캐스팅을 끝내고 스태프를 바닥에 내려찍자 이윽고 리타의 앞에는 오거 세 마리가 나타났다.



“크르르.”



아무리 환상이라는 것을 알아도 오거가 세 마리나 나타나자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넓은 연병장도 세 마리의 오거에겐 집 앞뜰 수준으로 느껴진다. 오거들은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리타를 살기등등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지축을 울리며 달려든다. 그 앞에서도 리타는 느슨한 자세로 서서 오거에게 시선을 둔 채 말했다.



“처음은 그냥 내가 하는 거니까 제대로 안 봐도 돼. 두 번째랑 세 번째를 잘 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일 앞선 오거의 코페시가 그녀를 향해 내려 찍힌다. 미소로 인해 부드러웠던 리타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리타는 한 발 내딛으며 오른손에 든 롱소드를 왼쪽으로 휘둘렀다. 팔힘만이 아닌 전신의 힘을 실은 강력한 기세였다. 롱소드는 그대로 코페시와 충돌한다.



챙!



코페시는 롱소드에 의해 방향이 틀어졌다. 전력을 다해 내려찍은 코페시가 옆으로 틀어지자 오거도 덩달아 몸의 균형을 잃었다.



리타는 오른손으로 가한 일격의 기세를 그대로 이어 몸을 돌리며 왼손에 든 바스타드로 오거를 내려찍는다. 쇄에엑! 바람을 가르는 정도가 아닌 찢어발기는 소리가 울린다.



“크아아아!”



오거의 몸은 목에서부터 옆구리까지 사선으로 분리되었다. 오른손으로 공격을 쳐내고 몸을 돌리며 왼손으로 바로 벤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 일이였기에 병사들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뭐야 저건?”



터너는 경악해서 자기도 모르게 내뱉었다. 그만큼 리타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들은 오거가 일격에 죽는 모습을 살면서 본 적이 없었다. 큰 키에 잘 짜여진 몸을 가졌다고 해도 남성에 비하자면 가녀리기 그지없는 몸이다. 아무리 OPG를 가졌다고 해도 지금 같은 모습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죽은 오거는 환상이기에 베이는 순간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오거들이 달려든다. 리타는 양손의 검을 휘둘러 공격을 쳐내기만 하며 몸을 뒤로 뺐다.



“OPG도 엄청나네. 이런 공격이 가능할 줄이야.”



리타는 재미있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는 부족한 힘을 보충하기 위해 회전력을 많이 사용한다. 방금처럼 몸을 돌리는 일이 많은데, OPG는 휘두르는 힘만으로도 그녀의 검술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리타는 오른손에 든 롱소드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바스타드를 양손으로 잡았다. 이제부터가 후치에게 보여줄 모습이다.



오거들은 멀어진 거리를 좁히며 달려들었다.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기에 리타는 하나씩 공격하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그녀는 공격을 쳐내며 왼손을 들어 오거의 다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던져버렸다.



“잠시만 기다려.”



“크엑?”



오거는 인간에 의해 집어던져지는 기상천외한 경험을 맛보았다. 멀리 날아가진 않았으나 다리의 균형을 잃으면서 10큐빗 가량 내동댕이쳐졌다. 리타는 우선 한 마리와 거리를 두게 되자 남은 오거에게 달려들었다. 당황한 오거가 코페시를 휘두른다.



깡!



코페시와 정면으로 바스타드를 부딪쳤기에 오거와 리타의 무기는 서로 튕겨나갔다. 완전히 같은 힘이 충돌하자 반발력이 엄청났던 것이다. 오거는 코페시를 든 손이 위로 들리며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반면 리타는 충돌의 충격을 재료 삼아 몸을 돌리며 바스타드를 크게 베어 올렸다.



“크아아”



바스타드는 오거의 가슴팍을 베며 지나갔으나 깊은 상처를 남기지 못했다. 튕겨나간 거리가 있었기에 제대로 베지 못한 것이다. 리타는 베어올린 검의 기세대로 몸을 다시 한번 회전시켰다.



그리고 오거를 향해 발을 제대로 내딛으며 몸을 기울였다. 두 번의 회전이 그대로 담겨있는 바스타드가 마치 철퇴마냥 어마어마한 기세로 돌았다. 리타는 투포환이라도 하듯 몸을 기울여 원심력을 만들어 냈고 그에 따라 바스타드가 도는 각도도 종에서 횡으로 변했다.



바스타드가 오거의 허리를 그대로 베어 들어간다. 리타와 떨어져서 구경하던 병사들은 풍압을 느끼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세대로 휘두른 바스타드는 그대로 오거를 양분했다.



리타는 두 번째 회전이 끝나자 몸을 바로하며 남은 오거 한 마리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환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죽어 사라지는 동족은 개의치 않고 달려들었다. 리타가 한 마리를 처리하는 사이에 쓰러졌던 몸을 일으킨 것이다. 무섭도록 정확한 타이밍이다.



리타는 검을 뒤로 빼며 자세를 낮췄다. 이번에 보여줄 것은 후치의 검이 지향해야 할 목표점이다. 지금보다 더 집중해서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 오거의 힘이 있다면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한 강력한 일격이 어울린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런 힘을 살릴만한 기술이 있다.



리타가 익힌 검술은 헬턴트 경비대 검식과 여행도중 만난 자이펀 인에게 배운 검식이 융합된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괴상한 검술은, 가진 사람은 별 것 없었지만 검술 자체만은 대단했다. 그녀는 조용히 검식을 읊조렸다. ‘사이록의 수평선’



전신을 가라앉히고 집중한다.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나와 저 수평선뿐이다. 가로막는 것은 베어버린다. 그 검은 수평선까지 닿아 수평선마저 넘어선다.



“합!”



짧은 기합 소리. 리타의 발이 한걸음 내딛는다. 그녀의 발에 맞춰 따라 나오는 바스타드. 오거의 코페시가 그녀를 향한다. 바스타드는 빛을 내뿜었다.



“……”



터너는 입을 쩍 벌렸다. 경비병들은 저마다 자신의 입 크기를 자랑한다. 후치도 지지 않기 위해 따라 입을 벌린다.



무기끼리 부딪치는 소리도 없었다. 리타가 든 바스타드는 코페시를 베어버렸다. 코페시는 베인다는 말에 걸맞게 두개로 깨져버렸다. 그리고 주인인 오거. 부서진 코페시의 자루를 거머쥔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어서 팔이 베인 자국을 따라 몸에 실선이 생긴다. 오거의 눈은 부릅떠진 채였고 근육은 경직되어 있다. 그렇게 오거는 사라졌다.



단 일격. 정말로 한번의 공격으로 오거를 무기째로 잘라버렸다. 리타는 내딛은 발을 회수하며 바로섰다. 그녀의 발이 있었던 곳은 발자국이 선명하게 생겨 있었다.



리타는 버릇처럼 바스타드를 휘둘러 피를 털어내려다 환상이어서 묻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바스타드를 돌려주기 위해 후치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랬기에 입 크기 콘테스트를 벌이는 남자들을 볼 수 있었다.



“왜 그래?”



고개를 갸웃하는 리타에게 남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리타는 땅에 떨어진 롱소드를 검집에 넣고서 바스타드를 후치에게 내밀었다. 후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스타드를 받아들며 말했다.



“이걸 따라 하라고요?”



“응.”



“말도 안 되는 소리.”



후치의 표정은 더 이상의 어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언해도 될 만한 것이었다. 리타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왜?”



“들어봐요, 리타. 사람에겐 넘을 수 없는 한계라는 게 엄연히 존재해요. 그건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종족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건 종족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괜찮아. OPG로 연습하면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리타는 후치가 실력차를 느끼고 의기소침해진 것이라는 생각에 그를 격려했다. 후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말했다.



“두 번째에 빙글빙글 도는 건 그렇다 쳐요. 마지막은 도대체 뭐예요?”



“음, 말로 설명이 필요하겠네.”



“말로 설명도 안 해줄 생각은 아니었겠죠?”



“맞는데? 그냥 보면 감이 오잖아.”



“…… 세상에는 모두 당신 같은 괴물만 있는 게 아냐. 조금쯤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죠?”



“괴물 아닌데……”



후치는 한숨을 내쉬었다. 리타는 볼을 긁적이며 살짝 얼굴을 붉히고 있다.



“됐으니까 설명이나 해주세요.”



순간 리타의 눈이 빛났다.



“간단한거야. 첫 번째는 내가 싸우는 방식인데, 회전 공격이라는 걸 잘 살린 거지. 이건 두 번째랑 이어져. OPG는 자체로 엄청난 힘을 낼 수 있으니 무겁고 긴 바스타드의 장점을 살린 공격을 할 수 있어. OPG면 바스타드가 아니라 클레이모어나 쯔바이헨더같은 무기를 더 잘 살릴 수 있겠지만, 그건 초심자가 다룰 물건이 아니니까 논외로 치자. OPG가 내는 힘은 절제하는 것보다 흐름으로 이용하는 게 처음엔 더 쉬워. 그러니 처음엔 회전력을 이용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해. 끊어치기나 검식은 검에 조금 익숙해질 쯤 익히는 게 좋아.”



“그렇게 빙글빙글 돌라는 말이죠?”



하나도 안 간단하다.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일단 설명을 다 듣자는 심정에서 후치는 말을 삼켰다.



“응. 그게 지금 너한텐 제일 실력상승에 도움이 될 거야.”



“알았어요. 그러면 다시 묻죠. 마지막은요?”



리타는 팔짱을 끼며 ‘음’하는 소리를 냈다. 그녀도 처음 써 본 검식이었으니 설명하려면 정리가 필요했다. 힘이 부족한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기에 이제껏 써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후치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인지 확신은 서지 않았지만, 더 이상 정리하기 힘들었기에 리타는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배운 검술의 검식이야. 너에게 가르쳐주긴 아직 무리인거 같아. 다만 네가 그 힘에 익숙해지고, 검을 다루는 데 한 몸이 될 정도까지 간다면 최종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OPG는 거력을 동반하는 것이니까 그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연격보다는 일격 하나에 중점을 두는 게 좋거든. 힘의 절제가 이루어지면 공격 하나에 모든 힘을 다 실을 수 있어. 그렇게 되면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공격이 돼. 병기의 이해부터 몸의 중심이동과 축에 힘을 배분하고 검을 절제할 수 있어야 가능한 공격이지.”



“그거 몇 개는 알아들을 수 있는 걸 보니까 바이서스어는 맞나 보네요.”



“역시 못 알아들었구나. 예상은 했지만.”



리타의 어깨가 쳐졌다. 평소라면 미녀를 실망시킨 죗값을 치루라며 병사들이 달려들겠지만, 그들은 리타의 기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중이었기에 그러지 못했다. 후치는 양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사실 그렇게 높은 수준까진 바라지도 않는걸요. 리타 말대로라면 내가 검의 고수가 되어야 가능하단 소리 아니에요?”



“맞아. 네가 자질이 뛰어난 편은 아니니까, 한 이십년 정도 연습한다면 가능해질 거야.”



‘말 안 해도 내 재능은 내가 알아.’라는 표정의 후치는 머릿속으로 리타가 보였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보였던 모습은 어릴 적 장난감 검을 들고 뛰어놀던 꼬맹이들이 누구나 다 꿈꿀법한 영웅의 모습이었다. 멋지고 압도적인 모습으로 나쁜 몬스터를 물리치는 영웅. 검을 휘두르는 리타는 정말 멋있었다. 그것은 영웅을 동경하며 그가 꿈에 그리며 되고자 하던 모습이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이십년이나 제가 검을 꾸준히 할 거 같진 않네요. 그래도 고마워요. 리타.”



후치는 리타를 마주보며 말했다. 그의 미소에 화답하듯 미소 짓던 리타는 한창 열띠게 대화 중이던 병사들에게 소환 당했다. 그녀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병사들의 질문에 단답했고, 병사들은 열성이 되어 계속 질문했다.



후치는 포기한 꿈인 용사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많은 남자들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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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피에 올리는 것이긴 하지만, 역시 댓글이 몇편이 넘도록 없으니 의욕이 줄어듭니다.
댓글 : 1 개
일자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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