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1. 그림자 경주 (18)2014.10.23 PM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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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타트가 준비해 둔 운명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존재한다. 그 사실을 리타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리는 샌슨을 보며 입을 열었다.



“무리야.”



“역시 그렇지?”



샌슨은 부정적인 대답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기에 리타의 대답을 듣고 오히려 초조함을 덜어냈다. 그의 이성적인 판단이 지금의 행동을 초래했지만 본능은 지금의 행동을 거부했었다.



리타는 거절에 대해 안심하는 샌슨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안가서 다행이야?”



“다행은 아니지만, 걱정은 덜 되니까.”



“그런 거면 애초에 왜 물어본 거야?



샌슨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 마을에서 여행 경험이 제일 많은 사람을 생각하다보니, 네가 제일 먼저 떠오르더라고. 하지만 남자 셋이 가는데다 목숨이 어찌될지도 모르는 여행에 여자인 널 끼워 넣기는 탐탁치 않았어.”



“나는 별로 개의치 않는데.”



“우리가 신경 쓰여. 더군다나 넌 일도 있고, 타이번님도 도와드려야 하니까.”



“타이번은 내가 아니라도 도울 사람 많을걸. 그것보다 계속 서있지 말고 어디 앉자.”



리타는 문에 기대어 있던 자세를 바꾸었다. 늦은 시각에 찾아온 샌슨을 계속 세워놓은 채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들어오라고 권유할까 생각했지만, 마침 제미니가 자리를 비운 집 안에선 어머니와 아버지가 드물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기에 그녀가 밖으로 나오는 길을 택했다.



샌슨과 리타는 마당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가 끌고 온 슈팅스타가 푸르릉거리며 투레질을 친다.



“그러면 후치랑 칼과 같이 수도까지 가는 거겠네. 언제 출발하는 거야?”



“내일 아침.”



샌슨의 말에 리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샌슨이 복귀한 게 어제의 일이다. 그런데 몸을 추스를 시간도 가지지 않고 이렇게 빨리 출발한단 말인가. 아무리 아무르타트가 시간의 제한을 두었다고 해도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았다.



“너무 급한 거 같은데. 너 몸은 제대로 회복했어?”



“아무르타트가 10만셀을 요구한 기한이 올해까지니까 조금이라도 서둘러야지. 아무르타트가 사람들을 배려해줘서 바이서스력으로 4월부터 새해가 시작된다고 해주진 않았을 테니까. 12월 말일까지라고 생각하면 시간이 촉박해.”



“수도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지만…… 역시 10만셀을 구하는 게 일이겠구나.”



“아무래도 그렇지.”



샌슨은 씁쓸하게 대답했다. 수도에 가면 국왕이 마련해 준다고 칼이 말하긴 했지만, 드래곤을 잃은 것도 모자라 돈까지 내놓아야 한다면 열 번 죽어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휴리첼 백작가에서 돈을 구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곳도 말처럼 쉽게 되진 않을 거다. 칼은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형편이 형편인지라 걱정이 태산이다.



샌슨은 한숨을 땅이 꺼지라 내쉬었다. 리타는 그의 말이 계속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가 대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먹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몸은 제대로 쉬었냐니까?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쳤을 게 분명한데 하루가지고 되겠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데 내 몸만 챙길 수는 없지. 그리고 원래 큰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너야말로 몸 괜찮아?”



“아직 아파. 엉덩이에 멍든 거 같아.”



“굳이 엉덩이를 이쪽으로 안 들이밀어도 충분히 반성하는 중이다.”



몸을 일으키던 리타는 샌슨의 말을 듣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샌슨은 리타가 어떤 행동을 할지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유추할 수 있었기에 미리 낯뜨거운 사태를 예방했다. 리타는 앉아서 샌슨을 바라보았다. 서글한 전사의 눈이 힘없이 쳐져있다.



“마음은?”



“……”



“다친 마음은 어때?”



샌슨은 조금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아직 아프네……”



말에서 그의 감정이 진하게 느껴졌기에 리타는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녀는 벤치에 등을 기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은 사라져가고 하나의 달이 먼저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녀의 입이 조심스럽게 떨어졌다.



“음, 말재주가 없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다만 옛 말을 빌어서 한마디 하자면, 모두를 구하려는 사람은 결국 아무도 구할 수 없다고 해.”



“……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



“비슷해. 한명도 버리지 않고 모두를 구해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사람들은 그래서 다수결이라는 수의 폭력을 구사하지. 하지만 도덕적인 관념을 빼고 효율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다수를 구하기 위해 소를 희생하는 건 마땅한 일이야.”



“군대에서는 많이 접하고 그만큼 배우는 항목이지. 하지만……”



“네가 그러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너도 알고 그렇게 했을 거야. 그리고 그 덕에 다른 사람들이 살았어. 너는 살인자이면서도 많은 사람의 구원자인거야. 살인자라는 입장에서만 얽매여 있지마.”



샌슨은 리타의 말을 듣고 말없이 서글프게 웃었다. 리타는 그의 웃음을 보고 그녀의 위로가 하등 소용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당사자인 그가 합리화를 시도해보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샌슨은 어쩔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싫어한다. 이번처럼 어쩔 수없이 사람을 죽여서 사람을 살린 것을 그저 넘겨버릴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검을 잡은 놈이 언제까지고 연연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가슴에 안고 갈 생각이다. 그 고통을 거부하지 않고 침식되지도 않으며 그냥 받아들인다.



샌슨은 무거운 기운을 떨쳐버리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말주변이 없다고 해도 괴로워하는 사람한테 살인자라고 말하다니, 실망인데.”



그의 말에 리타는 우물쭈물하는 기색이 완연해 졌다. 그녀는 위로가 실패한데 이어서 샌슨의 상처까지 자극하게 된 거 같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졌다.



“어…… 그, 저…… 미, 미안해.”



결국 볼을 붉히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샌슨은 농담을 못 알아듣는 친구를 보고 웃었다.



“하하. 농담이야, 리타. 고마워.”



리타는 샌슨의 웃음에 볼을 계속 붉힌 채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저녁의 풀벌레 소리가 귀를 간질고 주인을 닮아 커다란 말이 날벌레와 춤추며 눈을 즐겁게 해준다.



리타는 샌슨이 도착한 날 성에서 하인들을 도와 부상자들을 돌보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허드렛일 정도 밖에 없었지만, 속속들이 도착하는 패잔병들 때문에 일손은 하나라도 모자란 상태가 되었다. 그날 그녀는 밤새도록 환자들을 간호하였고 오늘 오후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동안 그녀는 몇 가지 장면을 목격했다.



후치는 환자들 사이에서 자다가 갑자기 미친사람처럼 일어나더니 벽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그리고 벽과 진하게 조우하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술에 취해 아버지의 꿈이라도 꾼 모양이었는데, 오늘 도착한 병사들 중 한명이 그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자 세상이 날아갈 듯 기뻐했다.



하지만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살아난 사람이 있으면 죽은 사람도 있다. 후치의 아버지를 비롯한 포로들과 도망쳐온 패잔병들은 살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오늘 샌슨은 말끔한 경비대 정복으로 갈아입고 사망소식을 전했다. 그 과정을 함께했던 후치는 아버지의 생존소식에 기뻐한 자신이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사망소식을 들은 남자들은 간신히 고맙다고 말했지만 여성들은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지친 샌슨을 달래주기 위해서 후치는 그를 수레에 태워 성까지 달려왔고, 샌슨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지 성에 도착하자마자 떨어지듯 수레에서 뛰어내려 성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성 밖으로 나가던 리타를 전력으로 들이받아 버리는 바람에, 리타의 귀가는 좀 더 지체되었다.



리타는 아직도 엉덩이가 시큰거리는 거 같은 느낌을 받으며 말했다.



“그런데 후치는 어째서 일행에 포함되는 거야?”



“어? 칼부터 안 물어봐?”



“칼이 도련님이라는 건 알고 있어. 영주님의 이복동생이니까 그렇게 아무것도 안하는 주제에 숲에서 책이나 읽으며 살 수 있지.”



헬턴트의 서점이 계속 존속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인 칼의 정체는 영주의 동생이었다. 칼과 친한 몇 사람과 영주의 측근을 제외하고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샌슨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유유자적한 삶을 원했고 풍파를 몰고 오는 것도 원하지 않았기에, 성에 들어가지 않고 숲에서 정체를 밝히지 않고 살았다.



샌슨은 후치도 칼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리타마저 알고 있자 어딘지 소외된 기분이 되었다.



“하, 나만 몰랐는걸.”



“샌슨이 알면 왠지 모르게 마을 사람들이 다 알 거 같은 느낌이 있지. 너한테 정체를 알리지 않은 걸 보면 역시 칼은 현명해.”



“이 녀석이.”



샌슨은 리타와 가볍게 투닥거렸다. 남자와 여자의 투닥거림이라기 보다는 몬스터와 사람의 생존을 위한 싸움과 같은 모습이었다. 리타는 샌슨의 두터운 명치에 손가락을 사정없이 박아 넣으며 그의 항복을 받아냈다. 샌슨은 콜록거리며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아이고, 쿨럭, 죽겠다. 네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분명 장군이 되었을 거야.”



리타는 가볍게 웃었다.



“칭찬 고마워.”



“평소라면 여자에게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받아칠 녀석이. 어디 아프냐?”



가볍게 건네는 샌슨의 말에 리타는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



“뭐 어제 성에서 봤을 때부터 이상했는걸. 그 마, 마법에 걸리는 시기인가 했는데, 넌 평소에도 별다를 거 없으니 그건 아닌 거 같았고.”



샌슨은 얼굴을 붉혔다. 아무리 오랜 친구라고 해도 여성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낯 뜨겁다. 리타는 어서 이 순진한 친구가 물레방앗간 아가씨와 결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가슴이 아파.”



“가슴? 아, 만지지마. 만질 필요 없어. 안 만져도 되니까 그냥 말만해.”



“어? 응.”



리타는 조금 들어올렸던 손을 내리며 대답했고 샌슨은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다. 리타는 말을 이었다.



“나도 너처럼 마음이 다친 거 같아. 너처럼 이라고 말하면 너에게 기분 나쁠지도 모르지만…… 여기가 돌이 걸린 것 마냥 답답해. 어떤 일을 해도 신경 쓰이고 답답해서 집중할 수가 없어.”



“뭐가 그렇게 신경 쓰여서?”



“지금의 너에게 할 말은 아닌 거 같아.”



“그러냐.”



샌슨은 리타를 추궁하지 않았다. 그는 리타가 그를 싫어해서 말하지 않은 것이란 사실쯤은 당연히 알고 있다. 그녀는 대단히 객관적으로 말하는 편이며 객관적인 상황 판단을 한다. 그렇다면 리타가 샌슨의 상황이 그녀의 말을 들을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그게 맞을 거다. 그녀의 말대로 다친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들을 이야기는 아닌 게 확실하다.



“뭐 힘내라. 너는 나랑 다르게 똑똑하니까 생각이 많은 거야. 가끔 단순하게 생각하면 의외로 걱정거리는 사라지니까.”



“멍청하다는 게 장점이 될 줄은 몰랐어.”



“단점도 장점으로 만드는 사람이 더 큰 사람이 되는 거지.”



샌슨은 우람한 가슴을 당당하게 펴며 말했다. 리타는 그의 말처럼 상념은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앞에서나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대신 그녀는 다른 사항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것보다 후치는 왜 가는 거야?”



샌슨은 리타는 절대 잊어먹는 법이 없다는 걸 떠올렸다. 또 다른 이야기를 계속 펼치는 자신을 기다려준 리타에게 멋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대답했다.



“후치 아버지가 아무르타트에게 포로로 계시잖아. 거기다 나이도 자경단에 안 걸릴 수준이고, OPG도 있으니까. 칼과 친하다는 점도 있고.”



“이제 공짜 양초는 당분간 구경할 수 없겠네.”



“그렇겠지. 이제 더 궁금한 거 없어?”



“바빠?”



“내일 여행준비 해야 하잖아. 필요한 건 후치랑 사긴 했지만 가는 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조사해 놔야지.”



“그리고 물레방앗간 아가씨도 봐야하고?”



“그건 내일 아침…… 리타!”



샌슨은 벤치가 들썩거릴 정도로 몸을 움찔거렸다. 그는 저녁에도 확실하게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얼굴을 밝히고 있었다. 리타는 전날보다 자연스럽게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누구야? 내가 그 아가씨 한눈 안 팔게 감시해 줄 테니까, 나한테만 살짝 말해줘.”



“안돼!”



샌슨은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로 입을 굳게 다물고 코로 숨을 크게 뿜어냈다. 흔히 말하는 콧방귀를 늠름하게 뀌어대는 그에게 리타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린다.



“왜? 나 보면서 큰 너라면 어지간한 미인이 아니고서는 성에 차지도 않을 거잖아. 그런 여자가 지키는 사람도 없으면 어느 남자가 안 노릴 거 같아?”



“그, 그럴까? 아니, 안돼! 무조건 안돼!”



샌슨은 리타의 말에 귀가 솔깃했으나 곧 자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샌슨은 아쉬워하는 리타를 보며, 잘못했다간 온 마을이 자기의 이야기로 시끄러워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리타는 샌슨에게서 물레방앗간 그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몇 번 더 대답을 유도해 보았지만, 그는 작심한 듯 귀를 막고 입을 닫았다. 리타는 더 이상 그에게서 정보를 캐낼 수 없음을 깨닫고 포기했다. 그리고 샌슨이 궁금해 할만한 사항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일 출발한다고 했지? 일정 짜는 거 도와줄게. 나도 여행갈 때, 영주님 수행원 자격으로 수도까지 간 거였으니까 가는 길이 비슷할 거야.”



리타는 스무살 때 헬턴트 자작이 수도에 인사하러 올라가는 사절단에 끼어서 여행을 출발했다. 그리고 수도에서 헤어져 그녀 홀로 세상을 주유하였다. 일반적인 수행원이라면 복귀할 때도 같이 돌아오는 것이지만, 리타는 여행 소식을 들은 헬턴트 자작이 사절단에 넣은 것이다. 여자 혼자서 처음 여행하면 위험하니까 사절단에 끼어서 감을 익힌 다음에 가라는 의도였다.



샌슨도 리타가 어떻게 여행을 출발했는지 알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샌슨은 가지고 온 짐에서 지도를 꺼냈다. 리타는 그의 팔에 달라붙어서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것저것 말했고, 샌슨은 머리에 주입하기 급급했다. 샌슨이 어려워하는 것 같자 리타는 그에게 펜을 빌려서 지도에 중요한 것 몇 가지를 표시했다. 샌슨과 리타는 지도를 두고 한동안 계속 이야기했다.







*








리타는 어릴 적에 친부모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몹시 인사성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었으며, 누가 멀리가거나 오래 못 보게 되는 경우는 꼭 가서 인사를 건넸다. 심지어 그는 죽기 전날에도 마을 사람들과 살갑게 인사하였다고 했다. 현재의 부모님은 그가 펍과 근처의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성에 있는 사람들까지 인사하려고 하였다면 좋았을 걸 하면서 추억했다.



평소에 친부모에 대해 거의 듣지 못했기 때문에, 리타는 그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양부모에게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친부모에 대해서 거의 유일하게 아는 인사라는 것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먼 길을 떠나는 헬턴트의 세 남자가 있다.



앳된 얼굴과 달리 거의 성인과 비슷한 덩치에 가끔 진지한 생각도 하는 소년. 아버지를 블랙드래곤의 마수에서 구하기 위해 태양을 향해 말을 달린다.



경비병이라기보다는 용병에 더 가까운 용모를 가진 거대한 체구의 청년. 고향에 아리따운 연인을 놔두고 본인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태양을 향해 말을 달린다.



지적으로 보이나 사실은 속에 뱀을 품고 있는, 롱보우를 어색하게 메고 있는 장년. 헬턴트의 영주 대리인이라는 명함을 달고 포로들의 생명을 짊어진 채 태양을 향해 말을 달린다.



세 마리의 말은 태양을 향해 달린다.



리타는 그들이 눈에서 사라질 때 까지 응시했다. 부서지는 태양이 뜨겁다. 새벽녘의 바람이 차갑다. 뜨겁고 차가운 가운데 그녀는 오롯이 서서 멀어지는 점을 바라본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 머리를 기대었다. 리타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차가운 바람에 식은 옷이 시원하다.



“가버렸네.”



“그러게.”



자매는 짧은 대화를 끝내고 이제 점으로도 보이지 않는 곳을 응시했다. 그들의 잔영이나마 보일까 하지만 보이는 곳은 먼 곳의 풍경뿐이다. 날이 서늘해서인지 리타에게 안겨있던 제미니가 몸을 한 차례 떨었다. 리타가 그녀의 어깨에 두른 숄을 바로 여며주며 물었다.



“들어갈까?”



“응.”



태양과 밤을 각각 머리에 녹여낸 자매는 멀어진 이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녀들은 남자들이 떠나는 길에 나서서 인사하지 않았다.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을 뿐이다.



리타는 인사를 중요시 한다. 다만 그것은 그녀 자신이 상대방에게 건네는 인사에 한한다. 그녀는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배웅했다. 물론 밤에 인사를 건네고 아침에 또 나가면 괜히 부담된다는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들인 측면도 있었다. 지난밤에 샌슨을 보내며 인사했고, 칼을 찾아가 바이서스 정계를 휘어잡으라는 진담 섞인 농담과 함께 인사했다. 후치는 그가 제미니를 데려다주고 돌아갈 때 인사했다. 말 위에서 습격한 다음에 여동생의 정조를 지키겠다고 칼을 들이밀었던 게 인사의 범주에 들어갈 때의 이야기지만.



“후치는 돌아보지도 않았어. 흥, 내가 걱정되지도 않는 건가?”



제미니가 심통난 목소리로 볼을 부풀렸다. 그녀의 어깨를 두른 숄이 가볍게 펄럭거린다. 깍지 낀 손을 뒤로 뻗으며 그녀는 동의를 구하듯 언니를 바라보았다.



“그건 아닐 거야.”



“왜?”



제미니는 동의해주지 않는 언니에 대해서 배신감과, 후치가 그럴리 없다는 것에 대한 안심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런 제미니에게 리타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널 걱정하지 않았으면, 지난밤에 너에게 키스……”



“언니!”



제미니는 급하게 튀어 올라서 리타의 입을 양손으로 막았다. 그녀는 흥분해서 붉어진 볼과 눈물이 맺힐 것 같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리타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보, 본거야?”



리타는 입이 막혔기에 고개만 끄덕거렸다. 제미니는 세상에 더 없이 빨개질 수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빨개졌다. 리타는 입을 막고 있는 동생의 손을 잡아 내리며 흐뭇하게 말했다.



“괜찮아. 떠나는 연인에게 이별의 키스를 하는 건 보통 연인이라면 다 하는 일이니까.”



후치가 리타의 말을 들었다면 거세게 항의 했을 것이다. 그 당연한 행위를 봤으면 못 본 척 해줄 것이지, 혀를 다시는 못 놀리게 해주겠다며 입에 검을 쑤셔 넣으려고 했냐면서 말이다.



그 일을 알 리 없는 제미니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도리질했다.



“우우…… 부끄러워.”



“괜찮아.”



리타는 제미니를 달래며 집으로 향했다. 새벽녘의 찬란한 태양이 그들을 지켜보며 잠든 이를 깨우는 미풍이 그들의 등을 떠밀어준다. 떠나는 자가 있으면 남아서 지켜보는 자도 있다. 남은 자들은 그렇게 떠나는 자들을 마음속에서만 들여다보는 나날을 보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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헠헠. 드디어 떠났다 후치놈.
댓글 : 2 개
샌슨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지 성에 도착하자마자 떨어지듯 수레에서 뛰어내려 성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성 밖으로 나가던 리타를 전력으로 들이받아 버리는 바람에, 리타의 귀가는 좀 더 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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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건 후치 아닌가요?? 수레에서 내린건 샌슨이 맞긴한데...
일종의 반어법이에요. 사실은 무서워서 그런거지만요.
원작보면 후치의 시점에서 반대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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