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2. 딸의 아버지 (8)2014.11.10 PM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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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겠군요. 투기장에서 도망친 트롤들이 시장을 습격했고, 마침 그곳에 있던 모험가들이 트롤을 처치했다. 투기장 주인인 실리키안 남작은 사병을 보내 트롤에 대한 보상금을 모험가들에게 요구했으나 모험가들은 그의 사병을 폭행했다. 그리고 실리키안 남작 저택에 쳐들어가 난동을 피우고 시의 경비대에 잡혀갔다. 현재 행방은 알려져 있지 않다. 훗.”



리타는 터져 나오는 비웃음을 참지 않았다. 톨러스와 그의 어머니는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녀가 단순히 요약한 이야기 속에는 도시에 대한 비난이 담겨 있었다.



리타는 늘씬하게 쭉 뻗은 긴 다리를 꼬았다.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있었는데, 그 자세는 건방져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앉아 있는 누구도 신경 쓸 수 없었다.



“그, 시장에서 들은 바로는 실리키안 남작도 같이 연행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시청이라면 돈을 받고 바로 풀어줬겠죠.”



“……”



리타의 말이 사실이었는지라 톨러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의 경비대장은 남작과 모험가들을 모두 연행하였다. 하지만 남작은 곧장 풀려났고 모험가들은 추방되었다는 소문만 돌 뿐, 실재로 행방은 묘연하다. 남작의 저택이나 시청에 감금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있었다.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들이 제 동료인가 하는 점입니다만, 소문을 종합해보면 아닐 가능성을 찾을 수 없군요. 어쩌다가 엘프까지 일행이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몬스터 앞에서 사람을 위해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이곳에는 흔하지 않겠죠.”



리타는 덤덤히 사실을 말한 것뿐이지만, 그 내용은 비난에 가까운 것인지라 톨러스는 다시 무안해졌다. 헬턴트는 몬스터가 습격하는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포에 무뎌져 있다. 그렇기에 더욱 스스로의 인간성을 잘 지키고 있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레너스는 그렇지 않다. 투기장이라는 시설이 존재하는 것만 봐도 명확히 알 수 있다.



“남작의 사병이나 경비병들이 다 잡아줄 거라고 믿으니까요. 목숨이 걸린 일에는 나서지 않게 됩니다.”



“시골 소년과 청년에게 실컷 얻어터진 병사들 말이군요.”



“으음, 그건 좀 과장된 게 아닐까요?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사병 여덟을 다 때려눕히다니, 원래 소문이라는 게 부풀려지기 쉽지 않습니까? 한스덱의 말처럼 여관 사람들이 다 같이 공격했을 수도 있고……”



왜 자신이 그 병사들에 대한 변호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 톨러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결코 남작의 사병을 좋게 보진 않는 사람이었지만, 타지의 사람에게 고향의 흉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리타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펴서 볼에 대었다. 볼이 눌리며 어딘지 불만스러운 인상이 되었다.



“소문은 사실일 겁니다. 만약 남작의 사병이 예전에 제가 봤던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청년 혼자서도 그들을 다 제압했을 걸요. 그 녀석은 라이칸슬로프나 오거와도 혼자 상대할 수 있습니다.”



“뭐 기사라도 되는 겁니까?”



톨러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리타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헬턴트의 경비 대장일뿐입니다. 순수 실력만 보자면 기사단장 자리쯤은 쉽게 거머쥘 수 있겠지만요. 타고나길 오거니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요.”



“오거요?”



“아아, 농담입니다. 오거 같이 생긴 녀석이라 그래요. 뭐 그 녀석이 아니라 소년이라고 해도 충분히 오거를 상대할 수 있긴 하겠군요. 어쨌든 그 사람들에겐 남작의 사병이 열댓 명 달려든다고 해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요.”



톨러스는 리타의 말에 강한 불신을 가졌지만 티내지 않았다. 리타도 톨러스의 믿음 여부는 중요치 않게 여겼다. 그녀는 고향 친구들의 무용담보다 지금 사태를 파악하는 데 더 신경을 썼다.



“시의 경비대에는 순순히 잡혀 갔을 겁니다. 순진한 사람들이라서 사람을 쉽게 믿으니까, 아마도 간단한 조사만 받고 끝날 거라고 생각했겠죠. 묶고 있는 여관이 12인의 여관이라고 했었나요? 그곳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겠군요. 문제도 크게 키우지 않고 원만하게 잘 해결하려고 했을 테고.”



“아, 예. 모험가들이 시에 연행될 때는 별다른 저항 없이 따라갔다고 들었습니다.”



톨러스는 상단과 시장에 간 동안 어제 일어났던 트롤사건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단순히 괜찮은 이야기 거리가 생겼다고 여기며 귀가했다. 그런 그를 맞이한 것은 그가 잊기 힘든 분위기를 풀풀 풍겨대는 검은 머리의 키 큰 여성이었다. 그녀는 거실의 소파를 딱 점거하고 앉아서 가족들의 눈치를 한눈에 사며 그를 기다렸었다.



톨러스는 가족들에게 아무래도 그 모험가가 동료들인 것 같다는 정보를 듣고 사색이 되었다. 뭔가 일이라도 벌일 것 같은 리타를 보니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그리고 지금 리타의 옆에 꼼짝없이 앉아서 그녀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중이다. 리타는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실리키안 남작이 중요한 인물이군요. 시작은 그가 투기장의 몬스터를 잘못 관리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트롤에 대한 보상금 요구와 저택에서의 난동, 시에 뇌물 수수. 모든 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군요. 시에 대한 실리키안 남작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 인지 아십니까?”



“시의 자원이 투기장의 수입에 따른 세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실리키안 남작이 굳이 뇌물을 바치지 않았더라도 그와의 공생 관계 때문에 시청은 그를 처벌하지 못했을 겁니다. 시청으로서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죠.”



“그러면 시청과 실리키안 남작의 권력관계는 남작이 우위를 점했다고 봐야겠군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재로 이곳의 주민 대부분은 시청보다 실리키안 남작이 더 파워가 쌜 거라고 공공연히 이야기 합니다.”



리타는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얼굴을 받치지 않은 나머지 손으로 소파를 톡톡 두들겼다. 머릿속에서 시와 실리키안 남작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였다. 과거에 그녀가 레너스를 방문했을 때의 정보도 같이 버무렸다.



“과거에 제가 레너스를 들렀을 때, 실리키안 남작은 남작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작위를 사칭하는 겁니까?”



톨러스는 팔짱을 끼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사칭이라면 사칭이지만, 완전히 사칭이라고 하긴 애매합니다.”



“들려주시겠습니까?”



그는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을 회상하듯 아련한 눈이 되었다. 오래된 기억이기에 말이 듬성듬성 나온다.



“아주 예전에 들은 겁니다. 제가 어릴 때라…… 그, 확실하다고 말씀드리긴 힘듭니다.”



리타는 말없이 그를 바라다보았다. 계속 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톨러스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인데, 원래 실리키안 남작은 귀족의 자제였다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몰락가문의 자제지요. 실리키안 남작의 더 윗대에서 몰락한지라 사실상 평민과 다름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작위를 수여받지 못했다면 인정할 수 없는 게 원칙입니다. 그런 과거가 있더라도 법상으로는 사칭이군요.”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렇습니다만……”



“몰락 귀족가문에 평민처럼 살았다고 한다면, 마음 한켠에 열등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것이 지금 남작 사칭으로 이어진다고 봐야겠네요. 몰락해버린 가문에 대한 비뚤어진 애정인가.”



“실재로 그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긴 하니까요. 귀족을 제외하고는 법적으로 사병을 가질 수 없는데, 사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한 몫 합니다.”



“명목상으로 귀족의 가문이기 때문에 작위가 없어도 귀족으로서 인정은 받는다는 것이군요. 그런 것은 혈통을 증명해야 가능할 텐데, 몰락 가문에서 그런 게 가능했을까요?”



“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리타는 우선 획득한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 비해 월등히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기에 듣는 것으로 충분했다. 일부러 종이에 적어가며 정리하는 것보다는 머릿속에서 관계도를 그리는 게 편하다.



“실리키안 남작이란 인물에 대해서 아는 게 있다면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가 귀족 사칭, 아니, 작위를 사칭 한다는 사실은 알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입증한다고 해서 심판을 바랄 수는 없다. 시청은 법을 집행할 정도의 힘이 없고, 국가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시일이 오래 걸린다. 리타의 목적은 일행의 구출에 있으니 그쪽은 해결방법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실리키안 남작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 필요가 있다.



톨러스는 팔짱을 낀 몸을 뒤로 젖혔다. 안락한 소파에 기대어서 조금 위로 시선을 향했다. 멀리 쳐다보는 것은 머릿속의 생각을 끄집어내기 위한 행위의 일종이다. 그는 기억나는 것을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제가 철들었을 때부터 실리키안 남작은 지금과 비슷했기 때문에 명확하게 말씀드릴 만한 게 없군요. 과거에 대해서는 남작이 젊은 시절이 가난했고 시청에서 일했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아, 또 부인이랑은 사별했고 슬하에 외동딸이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출가했습니다.”



“새로 부인을 들이진 않았습니까?”



“아뇨. 그러고 보니 골목에서 도는 소문 중에 해괴한 게 있긴 했습니다.”



“무엇이죠?”



톨러스는 리타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그리고 어머니를 보았다가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괜히 팔짱을 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게…… 저, 남작이 나, 남색을 밝힌다고 합니다.”



리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귀족에게 남색의 취미가 있다는 건 그렇게까지 희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귀족들은 대체로 쉽게 원하는 걸 얻는 그들의 상황 때문에, 일반적이지 않은 것에 집착하기도 한다. 남색이 바이서스의 일반적인 윤리에 반하는 것이긴 해도, 다른 괴이한 취미에 비해서는 낫다고 볼 수 있다.



톨러스는 낯 뜨거운 이야기에도 리타의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안심했다. 반대로 어머니가 망측하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원, 그 양반도 부인이 죽은 지 오래 되더니 이상하게 되었구나.”



“어머니께서는 실리키안 남작의 부인에 대해서 아시나요?”



리타의 질문에 중년 부인은 ‘어머, 저는 당신의 어머니가 아닙니다.’같은 대사를 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주부들 사이에 유행하는 애정소설에 자주 나오는 대사였고 언젠가 한번쯤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말이었다. 하지만 농담도 대상을 가려야 재미가 있는 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남모를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아는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젊은 시절에는 그 사람의 평판이 꽤 좋았어요. 가난하게 살지만 열심히 일하는 바른 청년이었죠. 아내도 좋은 사람이었어요. 두 사람 다 집안이 가난했기에 편한 생활은 못했지만 행복해 보였죠. 그 사람은 내세울 정도는 아니라도 가족에게 충실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했어요.”



“실리키안 남작이 그랬다고요?”



톨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지금의 실리키안 남작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상도 할 수 없다.



반면 어머니는 아득한 옛 일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에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양 손을 모아 쥐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말했다.



“시청에서 일할 때만 하더라도 지금 같이 그 사람이 변할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을걸.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그가 변하는 모습을 처음에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단다.”



“남작이 많이 변했나 보군요.”



“아무렴, 정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버린 거 같다니까요. 아내랑 죽고 못 사는 사이였는데, 정말 아내가 죽어버려서 그렇게 된 거 같기도 해요.”



“그 부인은 어땠나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있나 싶었죠. 실리키안 남작이 결혼 전에는 일할 때 너무 빡빡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결혼 후로 많이 느슨하게 바뀌었다고 했어요. 결혼하더니 사람이 좋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죠. 아내 본인도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어요. 자기도 어려운 처지에 가능한 한 남을 도우려고 했지요. 그 때만 해도 이곳의 분위기가 이렇게 삭막하진 않았는데……”



그녀는 추억에 잠기며 과거를 그리워했다. 연륜이 가져다주는 특권인 추억의 미화를 마음껏 누린다. 그 시절, 그 때를 회상하며 행복한 감정에 젖을 수 있다.



리타는 실리키안 남작의 아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핵심 인물의 주변인물은 언제나 결정적인 단서를 가지고 있다. 헬카네스는 문제 옆에 열쇠를 숨긴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부인과 사별했다고 하셨지요. 질병에 의한 것이었나요?”



톨러스의 어머니는 돌연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다. 주름진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가득 진다. 내면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는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억지로 목을 비집고 튀어나온다.



“후…… 그이도 참 불쌍하지. 원래부터 지병이야 있었지만, 그렇게 허망하게 갈 줄은 몰랐어.”



아련한 눈가에 물기가 어린다.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 손으로 얼굴을 한 번 훔쳤다. 그녀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사람의 아내는 타고나길 허약하게 타고났어요. 원래부터 안 좋던 몸이었지요. 딸을 낳을 때도 의사는 만류했지만 끝끝내 낳고 말았어요. 그게 몸을 약하게 만들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병에 걸려버렸지요. 당시로서는 상당히 비싼 약이 필요한 병이었고, 실리키안 남작의 집에는 그런 돈을 지불할 여유가 없었죠.”



“그러면 그 병 때문에?”



톨러스는 어머니의 말이 끊기자 끼어들었다. 그를 향해 리타를 비롯한 카피와 멀찍이서 듣고 있던 여동생들의 비난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자고로 남 이야기할 때 끼어들어서 좋은 꼴 못 본다는 것을 상기하며 톨러스는 어깨를 늘어트렸다.



중년 부인은 힘없는 동작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야기를 하는 것뿐인데도 지쳐 보인다.



“그녀가 죽은 건 병 때문이 아니야. 아니, 완전히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하구나. 병으로 고생하긴 했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 약을 구했고 아내는 회복했지. 하지만…… 허, 하늘도 무심하시지.”



부인은 탄식을 내뱉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닦아냈던 눈가가 다시 촉촉하게 젖어든다. 세월이 지났고 그렇게 가까운 사람도 아니었지만,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 속에서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마음이 요동친다. 나이를 먹어 그런 것일까, 이런 과거의 안 좋은 이야기에도 심력이 소모되고 만다.



“당시 마을에서는 투기장의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지요. 그리고 어느 날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났고 말았어요. 건물의 한 측이 무너지면서 근처의 길과 집을 덮쳤지요. 다행히 집은 비어 있었고 인부들도 쉬는 중이어서 인명 피해는 없는 줄 알았죠. 하지만 그때 하필이면 그 길을 가던 모녀가……”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막았다. 울컥하는 심정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계속 올라오려는 것을 억누르느라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생략되었지만 그녀의 뒷말이 어떤 것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톨러스는 떨리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따스하게 말했다.



“어머니.”



“그만 충분합니다. 더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리타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고도 물어볼 순 없었다. 실리키안 남작의 아내에 대한 정보는 그런대로 얻었지만 아직 딸에 대해서 듣지 못했다.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라는 존재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터이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중년 부인은 마음을 가라 앉혔는지 실례했다고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리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과연 타인의 죽음에 이렇게 슬퍼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녀가 단순히 오지랖이 넓고 정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혹은 이야기속의 대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다.



톨러스는 어머니를 방으로 모셨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리타는 생각에 잠긴 채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가 다가오자 쳐다보았다. 리타의 강렬한 눈매를 마주하게 되자 톨러스는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움찔했다.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네?”



“몸을 움츠리시게요.”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리타는 진땀을 흘리는 톨러스를 향해 의아한 시선을 보냈지만 톨러스는 뭐라고 대답할 마음이 없었다. 눈매를 보고 훈계 듣던 게 떠올랐다고 하기엔 남자의 자존심이 용납지 않는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리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본래 계획대로 오늘 떠나기는 여의치 않을 것 같습니다만?”



“신세를 지겠냐는 말인가요?”



톨러스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말의 목적만 보면 맞습니다만,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



리타는 그의 모습에 살짝 웃었다. 그녀의 화법은 아무래도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는 능력이 있나보다.



“알고 있습니다. 농담이었어요. 그런데 이 집에 남는 방이 있나요? 괜히 저 때문에 가족들이 잠자리를 옮겨야 한다면 사양하겠습니다. 부담을 끼치면서까지 호의를 받고 싶진 않네요.”



“걱정 마십시오. 방은 남는 게 있으니까요. 저랑 어머니 방이 1층에 있고, 2층은 동생들 방과 손님용이 있습니다. 2층은 남자가 접근할 수 없으니까 안심하고 쓰시면 됩니다.”



“톨러스씨를 보면 접근할 수 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있지만요. 그럼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리타의 말이 과연 자신의 남성적인 면을 부정하는 것인지, 양심을 믿는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톨러스는 애매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타는 그의 고뇌하는 얼굴을 보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 저는 나름대로 마을을 돌아다녀 봐야겠군요. 저녁은 밖에서 먹고 오겠습니다. 너무 늦진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저 같이 다니시는 게……”



카피와 리타의 시선이 그를 향한다. 톨러스는 지금 어떤 말을 꺼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괜히 어설프게 이야기 했다가는 껄떡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남작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제가 같이 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있으면 길안내도 해드릴 수 있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타지인 보다는 현지 사람에게 정보를 쉽게 줄 테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톨러스씨는 아는 분들을 위주로 정보를 모아주세요.”



“예. 예?”



리타는 얼떨떨한 톨러스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길은 지난번에 왔을 때 잘 익혀둬서 아직 안 잊어버리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거기다 모처럼 왔으니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여관을 하니까 원래 거기서 자려고 했는데, 덕분에 저녁만 얻어먹겠네요.”



“아, 그, 그렇군요.”



그러면 저도 같이 그 친구를 보러 가도 되냐는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이성으로의 호감보다는 미녀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이다. 만약 끈질기게 요구한다면 그건 전자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적당히 물러날 줄 알아야 매너 있는 남자다. 여유가 없는 남자는 인기도 없다.



책에서 본 말들을 떠올리며 톨러스는 어설프게 웃었다. 리타는 그의 표정을 따라 마주 웃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마, 맡겨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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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리타의 눈이 번뜩였다. 추리를 하는 눈이다. 저 눈을 하면 범인을 밝혀내지. 그렇다면 범인은!



피곤해서 드립도 안되는, 사람이 제일 중2병되기 쉬운 열시.



이만 들어갑니다. 좋은밤되세요
댓글 : 4 개
열시남 이군요 ㅎ
되도록 같은 시간에 올리려고요 ㅋㅋ 마감같은거라고 생각하니까 잘 써지네요.
드디어 다 따라잡았네요
다음화 빨리빨.. ㅋㅋㅋ
재밌게만 해주세요
최대한 재밌게 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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