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2. 딸의 아버지 (19)2014.12.17 PM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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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 대한 소문 중에 괴리가 있는 게 몇 가지 있었습니다.”



실리키안은 계속 울면서 웃었다. 리타는 그가 듣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었다.



“그 중 하나가 당신이 딸을 부잣집에 돈 받고 팔았다는 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본 당신은 딸이 집을 나갔다고 했죠. 그리고 당신의 측근들이 하는 말도 비슷했습니다. 당신이 그녀의 애인을 인정해주지 않자 그들이 도망갔다고 말입니다.”



실리키안의 흐느낌이 잦아들었다.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원래 당신이라면 도망간 딸년이라고 발광을 하여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딸이 팔려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



“그리고 당신의 집무실 책상에 있던 인형. 제가 갔던 원래 목적은 당신을 유혹해서 정보를 빼내거나 상황을 봐서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함이었으나, 그 둘 모두 실패했지요. 당신은 여성에게 욕정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딸을 욕하면서도 그녀의 물건을 아꼈습니다.”



“…… 하고자 하는 말이 뭔가?”



“추리는 곧 끝납니다. 제가 생각한 것은 당신이 딸을 끔찍이 사랑한다는 사실. 딸이 사내와 야반도주했다고 소문이 나는 것을 우려해 일부러 당신이 팔았다는 소문을 흘렸고, 그녀에게 정이 없는 척 하면서 관심을 차단시킨 것 아닌가요? 사람들이 딸 대신 당신만 욕하도록 하면서요. 그리고 딸마저도 당신의 곁에서 떠나길 바랐고요.”



줄곧 이상했었다. 그의 태도는 일치되지 않는 점이 많았다. 그 괴리가 가져오는 간극 사이에 진실이 숨어 있었다.



실리키안은 그녀가 봤던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차분해져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칼을 겨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천장을 향한 시선을 그대로 두며 입을 열었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힘없이 흘러나온다.



“에이라는 행복하게 살길 원하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러니까 딸의 목숨으로 협박을 하겠군. 좋아. 네 년한테는 다 들통 난 것 같으니 뭐든 요구해봐. 원하는 대로 들어줄 수 밖에 없으니까.”



그는 퍽 여유로운 태도였다. 사람이 체념하면 저렇게 바뀌는 건가 싶었다. 리타는 분위기 자체가 바뀌어버린 남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응답했다.



“제 조건은 그들의 석방입니다. 덧붙이자면 추적을 하지 않는 것과 저와 관련된 이야기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정도군요.”



“알겠다. 그리고?”



리타는 양손을 들었다.



“없습니다.”



“뭐?”



“더 원하는 건 없습니다.”



실리키안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이 되었다.



“네가 만약 투기장에서 나오는 돈을 전부 달라고 해도 나는 줄 생각이야. 그런데도?”



“안전이 확보되면 다시 찾으려고 하는 돈이겠죠.”



“……”



사실이었기에 실리키안은 침묵했다. 감동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어도 그는 사업가 실리키안이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아, 다른 요구할만한 게 생각났습니다.”



“뭐지?”



그러면 그렇지라는 눈빛이 되었다. 하지만 리타는 그의 예상을 충족시켜줄 생각이 없었다.



“실리키안 이라는 퍼즐을 맞춰 보았습니다만, 아직 확실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듣고 싶군요.”



“재물이 아니라?”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는데요?”



“…… 그랬지. 그래서 뭐가 궁금하나?”



“당신이 쓰레기가 되기까지의 심리입니다.”



리타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그녀의 말은 단어만 보자면 비난이었지만 그 뉘앙스에 그를 욕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실리키안은 그래서인지 화가 나지 않는 자신을 느꼈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구속당하는 바람에 전혀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그는 불편한 듯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지만 리타는 전혀 풀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결국 그대로 입을 열었다.



“우선 네 년이 맞췄다는 퍼즐부터 말해봐.”



실리키안은 계속해서 그녀를 막 불렀으나 리타는 호칭에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손을 깍지 끼며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몰락한 남작가문의 자재였던 당신은 시청의 공무원이었습니다. 그 당시를 명확하게 추측하는 것은 힘들지만 아마도 지금처럼 부정부패가 있었을 걸로 예상합니다.”



실리키안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리타는 그를 한번 흘겨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의 업무 능력은 출중했으나 너무 깨끗한 탓에 묘한 벽에 가려있었죠. 그러나 아내의 병세는 깊어가고 자식은 태어나려고 하니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말단 공무원의 봉급으로는 어림도 없지요. 그런데 마침 깨끗한 당신을 쳐내기보다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있었을 겁니다. 시청과 투기장의 은밀한 거래를 담당하는 자리에 당신이 추천된 것이겠죠.”



“큭큭.”



실리키안은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리타는 잠깐 그를 주시했을 뿐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 자리는 명목상으로는 단순히 시청과 투기장의 거래를 관리하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두 집단의 어두운 돈을 세탁하거나 융통시키는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버터핑거에게 부탁했던 과거의 정보다. 그는 스스로를 당당하게 자랑하기에 충분한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알아온 거래의 진실이라거나 붕괴 사건의 이상한 점은 생각 이상으로 훌륭했다.



그녀에게 도움을 준 이상한 하플링을 떠올리느라 잠시 말을 멈췄던 리타는 살짝 웃었다가 바로 표정을 지웠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당신은 뇌물을 받기 쉬워졌겠죠. 아마 당신을 끌어들인 사람은 그렇게 물들이려고 했을 테고, 당신은 돈을 벌기가 쉬워졌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내의 지병이 생각보다 심해진 겁니다. 그런 찰나에 짜놓기라도 한 것처럼 치료법이 개발되었죠. 이리저리 알아보니 돈만 있다면 아내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상황에서 횡령이라는 수단을 택했죠.”



리타는 호흡을 한번 가다듬었다.



“당신 혼자서 계획한 횡령은 아닐 겁니다. 예상 가는 것은 투기장 측에서 모종의 제안을 했겠죠. 횡령을 해서 그 돈을 나누자. 그러면 시에서 쫓겨나더라도 우리가 받아주겠다. 그러니 당신은 횡령을 통해 아내를 치료할 수 있었고, 시청에서 쫓겨난 이후에 투기장에서 일할 수 있었을 겁니다. 맞습니까?”



“제법 머리를 썼군. 이제까지 큰 맥락은 그런대로 맞아.”



“그렇군요. 그러면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추리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투기장에서 일하게 된 당신은 전과 같은 총기를 잃은 상태였죠. 이제까지의 자신을 거부하는 행위를 하였으니까요. 더욱이 아내가 건강해져서 동기부여도 크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던 찰나에 불미스러운 일이 하나 생겼죠.”



“…… 에즈.”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을 겨우 참아내며 노인은 힘겹게 이름을 말했다. 리타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으나 가슴 속에 고이 품었다.



“그분…… 당신의 아내 되는 분은 투기장 확장 공사 현장의 붕괴사건에 휘말려 운명하셨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당신은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정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냉정하고 자비 없이 처리했죠. 그 결과 승진을 거듭하며 높은 직책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자리는 최정상, 소유주의 자리지요. 그리고 그 소유주는 투기장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사망하게 됩니다.”



“크크큭. 그랬지.”



“당신입니까?”



리타의 날카로운 시선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 아는 눈으로 질문하지 마. 그래, 그 망할 자식을 죽인 건 내가 한 일이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같은 사망 방식은 아무래도 이상했으니까요.”



실리키안은 말라가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긴장감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희열 때문인지 계속 입이 마른다.



“내 아내를 죽인 방식 그대로 죽게 만들었다. 그 흙과 돌더미에 파묻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그 무섭고 갑갑한 곳에서! 제대로 호흡도 할 수 없고 사정없이 짓누르는 무게에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그렇게 죽어가는 심정을 느껴보라고…… 그래서 그랬지.”



흥분해 몰아치듯 쏟아내는 그의 말에 리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로프에 묶인 실리키안의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지나간 세월도 그의 감정을 앗아가지 못했다.



“내가 왜 쓰레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나?”



“모르겠습니다.”



“큭큭. 멍청하군! 그걸 왜 몰라?”



리타는 다른 이들이 멍청하단 말을 할 때와 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릎 위에 손을 올려둔 자세 그대로 그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실리키안은 킬킬거리며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었다. 그의 눈이 흉흉하게 빛난다.



“처음엔 몰랐어. 일하다가 우연히 실마리를 잡으면서 알게 되었지. 그 개자식이 왜 내 아내를 죽인지 아나?”



“그것 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 내도 죽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도달해지 못했던 거야. 아내가 단순히 사고사라고 생각했기 때문도 있지만…… 따로 범인이 있더라도 그 새끼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 아내의 지병이 심해졌을 때,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었다고 말했지?”



“그렇습니다.”



“그게 그 자식이 흘렸던 소문이야.”



“……”



리타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제야 그의 과거가 완벽하게 짜맞추어졌다. 설마 하였던 인간의 욕망은 그런 방향으로 나타나 버렸다.



부릅떠진 눈으로 리타는 실리키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통쾌하면서도 씁쓸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짜여진 각본에 놀아났어. 나라는 인재를 욕심냈을 수도 있고, 횡령하는 돈 자체를 욕심냈을 수도 있지. 그래서 소문을 흘리고 나를 꼬드겨서 결국 둘 다 가져갔어. 치료법? 그 병은 아직도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어. 그냥 진통제만 주구장창 먹인 거야. 몸은 망가지는 데도 겉으로 느끼지 못하게. 그런데 아내가 계속 살아서 다시 몸이 나빠진다면 내가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하잖아?”



“단순히 그것 때문에……”



“고작 동전 하나에도 사람을 죽이는 게 사람이야. 큭큭큭. 사고로 꾸며서 아내를 처리하고, 실망한 나를 교묘하게 꼬드겨 딸을 위해서 살게 한다. 사람이 어떻게 그런 걸 생각해내겠어?”



리타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속이 미슥거린다.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다.



“당신은…… 당신은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맞아. 인간 같지 않은 놈을 상대하려면 나도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니까. 사람은 말이야, 어떤 목적이 생기면 원래 자기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잊어. 대신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만 생각하지. 같은 괴물이 되어야만 괴물을 물어 죽일 수 있어.”



“그렇다면 복수가 끝난 후는 어떻게 된 건가요?”



실리키안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잔뜩 겁먹고 시선을 피했던 남자는 더 이상 없었다. 기묘한 압박감이 그녀를 오히려 짓누른다. 스스로 쓰레기가 되고자 했던 남자는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복수는 아무 것도 없어. 충족감만 있을 뿐이지. 남은 게 없어. 오래 못가는 충족감마저 사라지면 공허해지지. 그럴 때 사람을 지배하는 게 뭔지 아나? 습관이야. 평소처럼 일하는 거지. 평소처럼 쓰레기같이, 평소처럼 쓰레기가 되려고.”



“이해하기 힘들군요.”



“타인은 몰라. 겪어 본 사람만 아는 것이지. 그냥 습관대로 살았어. 그러다 보니 딸이 보이더군. 유일하게 남은 나의 소중한 것. 그 애에게만은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어. 남들에게 욕먹어도 날 편들어주고 위로해주던 착한 딸을 나 같은 거의 곁에 둘 수가 없었어.”



“그래서 딸을 일부러 매몰차게 대하고 도망가게 만들었던 거군요.”



“크흐흐…… 그웬이라던가? 가진 건 뭣도 없는 놈인데 배신할 간도 없는 놈이었어. 그런 놈이라면 자기 아내는 끔찍이 생각해 줄 거야. 흐흐흐…… 흐흑.”



낮은 웃음을 흘리던 실리키안은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도대체 지금 어떤 심정일까? 리타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가 타락한 이유는 알 수 있다. 납득할 순 없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수가 끝난 후에도 쓰레기 같았어야 하는 그 심정은 도저히 공감할 수 없다. 감정에 낯선 그녀로서는 범접하기도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멀찍이 떨어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노인의 흐느낌 소리가 방을 채운다. 사람이 되려는 여자는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나 이성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에 혼란스러워 했다. 과거를 회상하고 가렸던 모든 것을 치워버린 노인에게서 몰려드는 것들은 감당하기에 너무도 벅찬 것이다.



서로의 감정에 빠져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나 감정이 가라앉을 즘이었다.



“남작님, 일어나 계십니까?”



침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리타와 실리키안의 시선이 같이 돌아갔다. 리타는 지금 이 시간에 그에게 올 하인이 없다는 것을 알아 둔 터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예정에도 없는 방문이 일어났다. 그럼 어떻게 한다?



실리키안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리타는 재빨리 움직였다. 그녀는 몸을 날려 실리키안의 위에 올라탔다.



“아프…… 읍!”



무엇인가 외치려는 남작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바로 대거를 가져다 댔다. 시퍼런 칼날이 눈앞에 번뜩이자 남작은 이제까지 일은 잊은 것처럼 다시 공포가 떠올랐다.



리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남작은 풀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딸의 목숨이 달려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이대로 물러난다? 물러나면 딸의 안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석방이후 추격이 없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원래 추구하던 결과다.



다만 지금 밖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실리키안이 부르려고 했다. 그러면 하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목소리만 듣고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 사병이거나 그와 비슷한 사람들. 혹, 여러 명이라면 도망차기 곤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리키안이 여기서 응답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대로 자는척하십시오. 저를 찾으려고도 하시지 마시고 저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풀어주십시오. 약속을 지킨다면 저도 따님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요.”



“읍!읍!”



실리키안은 리타에게 제압된 상태에서 간신히 목과 눈을 움직여 긍정의 의사를 표시했다. 리타는 문 밖의 기척이 사라지면 천천히 계획대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누군가 그랬던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만큼 재밌는 게 인생이라고.



“자, OPG를 되찾은 기념이다!”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문짝이 통째로 날아들었다. 리타와 실리키안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눈을 깜박이며 문이 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자, 샌슨! 남작을 데리고 나와! 하인들은 내…… 어라?”



“왜 그래, 후치이잇?”



“커흠. 흠.”



보이는 사람은 다섯. 아주 예쁘게 생긴 엘프 한 명과 괴상한 잠옷 차림의 마른 남자 한 명. 그리고 새집과 이웃사촌 관계를 맺고 있는 머리를 가진 소년 한 명과 오거와 이웃사촌 관계를 맺고 있는 청년 한 명, 마지막으로 박식하면서도 의뭉스러워 보이는 중년 한 명. 다섯 중에 셋은 아주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표정은 가지각색이다.



엘프는 무표정하게 보고 있었으며, 마른 남자와 샌슨은 부끄러운 반응을, 칼은 점잖게 시선을 돌렸고 후치는 부끄러운 가운데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던진다.



남성을 유혹하는 백가지 방법이란 책에서 십대 중후반의 남성이 가장 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글귀를 기억해내며 리타는 그들을 마주했다.



그녀는 잠입을 위해 몸에 쫙 달라붙는 옷만 입은 상태였다. 그대로 몸매의 굴곡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남작의 방에 불은 모조리 꺼진 상태였기에 달빛만 비치는 침대위에서는 어렴풋이 실루엣만 보인다. 그런 여자가 남작이라는 나쁜 사람의 위에 올라타 있다. 거기다가 남작은 온 몸이 구속되어 있는 상황.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이런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가 없다. 한창 즐거운 때를 방해했다는 생각에 남자들은 당황하고 말았다.



“안녕. 오랜만이야.”



리타는 천연덕스럽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리타는 그녀가 지금 연출한 상황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어?”



익숙한 목소리에 다섯 중 셋이 고개를 돌렸다. 붉은 얼굴 가운데서도 놀란 눈동자 세 쌍이 그녀를 향한다.



“다들 왜 그렇게 서 있어요?”



리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후치와 샌슨은 어둠을 꿰뚫고 그들의 앞에 놓인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 위해 집중했다. 그리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임마, 후치야.”



“왜?”



“네가 보는 게 내가 보는 거랑 같은 거냐?”



“내가 보는 게 네가 보는 거랑 같은 거면.”



“임마, 똑바로 대답해. 저게 리타냐고.”



“다행이야. 샌슨이랑 나랑 보는 게 같은 거였어.”



“스마인타그양?”



즐거운 헬턴트 청년의 만담 가운데 정신을 차린 칼이 더듬거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안녕하세요, 신랑 후보감님.”



“하하…… 맞군요.”



곤란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는 칼을 보며 리타는 싱긋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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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쾌등장! 후치 네드발!



아, 참고로 딸의 이름은 영도님의 단편 '오버 더 네뷸러'에 나오는 션 그웬과 에이라 에존하우어에서 따왔습니다.



팬픽에서라도 맺어줘야죠 ㅠㅠ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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