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2. 딸의 아버지 (21)2014.12.20 PM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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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도시락은 뭐야?”



“아, 이거?”



“큭큭, 들어봐 리타. 저 도시락은 말야. 고독한 방랑자 후치 네드발에게 연심을 빼앗긴……”



“미풍에 스치는 처녀, 코에 익은 향기.”



“아악! 후치 형님!”



저 둘은 역시 손발이 잘 맞는다. 서로 피하다가 다시 달려드는 태세의 둘을 정겨운 눈으로 리타는 바라보았다. 며칠 안 봤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반가웠다.



리타의 옆에선 이루릴이 모포 속에 누운 채 엎드려서 빵을 먹고 있었다. 샌슨이 뭐라고 한마디 했지만 이루릴의 대답에 바로 꼬리를 말았다. 거기다 리타가 바로 그 자세를 따라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리타는 적당히 잠이 깬 듯 하여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한창 티격태격하는 둘을 내버려두고 맥주냄새가 나는 곳을 둘러보았다. 후치가 마시다가 내려두고 있는 병이 눈에 보였다. 그녀는 바로 병에 입을 대고 맥주를 들이켰다.



“아읏. 시원해.”



“남이 마시던 거 함부로 먹지 마요, 리타.”



“조금밖에 안 마셨어.”



“으으, 그런 게 아니라.”



“아, 간접 키스?”



“…… 내가 말을 말아야지.”



후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샌슨도 후치를 뒤따라 자리에 앉으면서 지리서를 꺼내들었다. 리타는 왠지 다셔지는 입맛에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처음엔 애매했는데 확실히 익숙한 맛이다.



“이거 12인의 여관 흑맥주네?”



“어? 리타도 거기 알아요?”



“쉐린이랑 친구야. 유스네는 어릴 때 놀아준 동생 같은 아이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렀을 때 봤는데 제미니 또래로 보이더라. 수줍음 많고 귀여운 아이기에 며칠 머무르는 동안 꽤 친해졌지.”



“유스네가요?”



그 계집애가 그럴 리가 없다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얼굴의 후치였다. 리타는 순간 샌슨이 후치를 놀리던 말이 떠올랐다.



“너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게 유스네구나?”



“우아악! 리타마저 그런 소리 하지 마요. 나도 당황스러우니까요.”



“뭘, 남자가 적당히 인기가 있어야 여자들이 좋아해.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는 별로 가치가 없는걸.”



후치가 혹한다는 표정이 되어 리타를 바라보는 건 어쩔 수 없는 소년의 본능이었다.



“그래요?”



“응, 너 예전에 타이번이 환상 마법으로 만든 몬스터랑 대련할 때, 마을 여자애들이 막 쫒아 다녔지? 제미니가 왜 너한테 접근하는 여자애들을 막았겠어?”



후치는 머리를 탁 치며, 아이고 이놈의 계집애라고 말할 뻔 했다. 그는 간신히 동작만으로 멈추며 제미니를 회상했다. 고 앙큼한 계집애는 자기 남자임을 확실히 보이고 싶었던 거다.



누워있던 이루릴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손을 탁탁 털더니 머릿결을 다듬었다. 리타보다 긴 검은 머리다보니 자는 동안 엉망이 되었다. 그런데 이루릴은 마치 물에 빠진 개가 몸을 터는 것처럼 머리를 앞뒤좌우로 사납게 흔들었다. 후치는 깜짝 놀랐고 샌슨은 입을 딱 벌렸다. 리타도 몸을 움찔하면서 살짝 물러날 정도였다.



이루릴은 정신 사납게 머리를 휘두르더니 마지막으로 머리를 뒤로 크게 젖혀 머리가 모이도록 하고는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리고 옆에 벗어둔 자켓을 들어 뒤적거리더니 빗을 꺼내어 머리카락을 빗어 내리기 시작했다.



리타가 부러운 눈으로 빗질하는 이루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면 머리손질이 다 되는 건가요?”



“네, 리타는 어떻게 머리를 손질 하나요?”



리타는 자신의 삐친 머리를 손가락으로 잡아 보였다.



“저 같이 머리가 억센 경우에는 머리를 감고 말릴 때부터 신경 써서 말려야 해요. 그리고 빗질을 하는데 제대로 정돈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보통 다른 여자들은 그러고 땋거나 틀어 올린다고 하는데, 그건 너무 번거롭더군요.”



“그렇군요. 저희는 머리카락이 엉키지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 정리가 가능한 것이죠. 대신 틀어 올리거나 땋는 게 불가능해요.”



이루릴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한번 둘러 감았다. 그러자 머리카락은 가볍게 풀려 흩어졌다. 리타는 진심으로 부러운 표정이 되어 그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후치는 의외라는 듯이 리타에게 말했다.



“리타는 머리스타일에 별로 신경을 안 쓸 줄 알았는데요?”



“세상에 자기 머리에 신경 쓰지 않는 여자는 아무도 없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나도 머리를 자주 묶고 다니잖아?”



후치는 마을에서 보았던 리타의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보통 뒤로 늘어트려 중간에 한번 묶는 모양새를 많이 했었다. 가끔 제미니의 손길을 거친 날이면 포니테일이나 틀어 올린 머리가 되기도 했다. 후치는 그게 리타가 제미니의 장단에 억지로 맞춰준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 음…… 그러네요. 확실히 리타가 머리를 예쁘게 한 날이면 마을이 난리였죠.”



“응?”



“아, 아니에요. 어쨌든 이루릴의 머리 정리는 신기하군요. 편하겠네요?”



“글쎄요, 편하다? 땋기는 어렵지요. 머리카락들이 전부 가늘고 건조해서, 그래서 저처럼 전부 머리를 산발하고 있지요. 보기 이상하죠?”



“아, 아뇨.”



이루릴은 약간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머리를 땋거나 틀어 올리거나 해봤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 머리카락으로는…… 만져보시겠어요?”



이루릴은 앉은 채로 후치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한 줌 내밀었다. 후치는 그것을 살짝 쓰다듬어 보았다. 리타도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손으로 만졌다. 누에게 뽑는다는 실크 같다.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간다.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두 명에게 이루릴이 물었다.



“가늘죠?”



“가늘어요.”



리타는 그에 대한 대답 대신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이루릴, 이 머리 정도면 도시에 가서 땋거나 틀어 올릴 수 있겠어요.”



리타는 가는 머리를 꼬아보면서 이야기했다. 이루릴이 반색하며 그녀에게로 몸을 돌렸다.



“정말인가요?”



“네, 우리가 있었던 레너스 시는 잘 모르겠지만, 수도인 바이서스 임펠에 가면 머리를 전문적으로 만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머리를 고정하는 약품도 있어서, 자기 전에 잘 감기만 한다면 머리를 여러 형태로 하는 게 가능해요.”



“인간 세상은 놀랍네요.”



“저도 수도에 가서 처음 알았던 사실이에요. 제 머리로도 이루릴 같은 머리가 가능하단 게 신기했었죠.”



후치는 어쩐지 엄마들의 대화에 끼어있는 아이가 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두 여성을 보면서 어떻게 대화에 끼어 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닿았던 이루릴의 머리에 시선이 갔다.



“이루릴의 머리는 숱이 참 많네요.”



“예, 머리카락의 숱이 많아서 그걸 뽑아 활을 만들어도 충분하지요. 제 활의 활줄은 제 머리카락을 뽑아 만들었어요. 엘프들은 모두 활줄 길이가 될 만큼 머리가 길면 그렇게 활줄을 만들어 자신의 활을 갖지요.”



그녀의 말에 보던 지리서를 덮고 샌슨이 다가왔다.



“저, 활을 좀 보아도 되겠습니까?”



이루릴은 배낭에 꽂힌 콤포짓 보우를 뽑아들고 샌슨에게 건네었다. 후치도 궁금했는지 같이 활을 구경했다. 샌슨은 활을 들고 시위를 몇 번 튕겨보더니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제 체구에는 맞지 않지만, 꽤 좋군요.”



“체구? 아, 팔 길이. 저와 팔 길이 대어보실까요?”



이루릴은 팔을 쫙 펼치더니 가슴을 내밀었다. 샌슨은 뒤로 후다닥 물러나다가 머리를 나무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는 뒤통수를 움켜쥐고 신음 소리를 내었고 이루릴은 놀랐다.



“어머, 왜 그러지죠?”



“자주 저래요. 습관적인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괜찮아요. 샌슨 대신 저랑 팔 길이 대어보실래요?”



리타는 그녀도 팔을 쫙 펼치며 가슴을 내밀었다. 고통스러워하던 샌슨은 아애 시선을 돌렸고 후치는 그들이 서로 다가서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앞으로 하면 둘 다 가슴이 부딪치잖아요. 등을 맞대세요.”



리타나 이루릴이나 상당히 볼륨 있는 몸매의 소유자들이다. 이루릴은 제미니를 비롯해 다른 인간 여자들보다 훨씬 길쭉한 신장이다. 그리고 마치 잘 짜여진 조각처럼 완벽한 비율의 몸매를 가지고 있다. 리타는 그런 이루릴보다 더 크다. 후치나 칼 보다 크고, 보통 남성들보다도 크다. 몸매는 몹시 아름답지만 이루릴과 달리 힘이 넘치는 모양새다. 커야할 곳은 확 크고, 작아야 할 곳은 확 작다. 말로 비유하자면 오밀조밀하게 잘 짜여진 이루릴은 제미니, 리타는 활력이 넘치고 강해보이는 슈팅스타 같다.



후치는 여성을 말로 비유하다니 그것도 안 맞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런 두 여성은 세상 많은 여성들의 부러움을 자아낼 가슴을 가지고 서로 맞붙이치려고 하는 것이었다. 될 리가 있나.



후치의 말에 이리저리 밀착해보려던 두 여성은 문제점을 깨달았다.



“아!”



“그렇군요. 고마워요, 후치.”



둘은 등을 대며 팔 길이를 재어보았고, 리타의 팔이 신체에 맞게 조금 더 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들은 다른 신체 길이는 어떤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던 찰나에 정신을 차린 샌슨이 말했다.



“아, 그, 저, 그것보다, 이 활줄이 이루릴의 머리카락이라고요?”



이루릴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선선히 대답했다.



“여러 번 꼬았죠. 검은 색이죠? 다른 엘프들도 모두 자기 머리색깔과 같은 활을 가지고 다니죠. 그래서 자기 머리카락 색깔과 같지 않은 활을 가진 엘프가 있다면 그 활에는 뭔가 사연이 있거나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 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예? ……예.”



리타는 그런 샌슨을 보고 한숨을 쉬더니 콤포짓 보우를 뺏었다. 그리고 활시위를 몇 번 당겨보았다.



“활에는 조예가 없지만, 머리카락으로 이런 탄력을 낼 수 있단 사실이 놀랍네요.”



“하나의 힘은 약하지만 가늘다 보니 그 정도 두께라도 상당히 많은 머리카락을 꼬게 돼요.”



“그렇군요.”



얼빠져 있던 샌슨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고, 이루릴은 대화가 끝나자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리타도 그녀의 옆에 앉으며 후치의 맥주가 담긴 바구니를 힐끔거렸다. 후치는 그녀의 눈이 향하는 것을 알아채고 바구니 앞에 가리듯 앉으며 말했다.



“리타, 어제 말해주기로 했던 거 이제 말해주는 게 어때요?”



“저도 그건 궁금하군요.”



“어, 칼? 아직 안 잤어요?”



칼은 모포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스마인타그양이 불침번을 교대해 주었네. 그러다보니 크게 피곤하지는 않다네.”



후치는 방금 자기가 일어났을 때 졸고 있지 않았냐는 시선을 던졌고 칼은 모른척했다.



리타는 시선이 자기에게 모인 것을 깨닫고 목을 가다듬었다. 긴 이야기가 될 테니까 충분히 풀어야지.



“흠흠, 변변찮은 솜씨지만 해보지요.”



리타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미니에게 들려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감정과 생각은 최대한 첨가되지 않은 객관적인 이야기였다. 타이번과 했던 대화의 내용의 일부만 숨기고 다른 것은 거의 그대로 이야기했다. 카피와 조우한 순간부터 실리키안 남작의 저택에 침입하기까지의 긴 이야기였다.



카피는 원래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의 폴리모프를 사용한 여파인지, 계속 잠들어 있었다. 그 탓에 좋아하는 자기소개는 다음시간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칼은 리타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스마인타그양은 저희와 여정을 같이 하시는 겁니까?”



“네. 돌아오는 길까지 같이 하진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같이 갈 생각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달리 기한이 정해진 게 아니니까요.”



“그렇군요. 저희로서도 스마인타그양의 경험은 많은 도움이 될 테니 환영합니다.”



리타는 샌슨을 흘겨보며 대답했다.



“그런데 이루릴은 샌슨이 동행을 제의했다고 했죠?”



“그래요. 아무 약속 없이 하루에 세 번 만난다면 목숨을 맡겨도 된다는 인간의 말이 있지요. 이 분들과의 동행이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 같았어요.”



“루트에리노 대왕의 말이군요. 동행은 이루릴의 결정이니 존중하겠어요. 하지만 저한테는 남자 셋이라서 여자가 끼면 곤란하다고 한 주제에 미인을 꼬드기다니…… 샌슨도 여간내기가 아니네요.”



“쿨럭!”



샌슨은 헛기침을 하며 리타의 시선을 피했다. 이루릴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인지 눈만 동그랗게 떴다. 리타는 물레방앗간 처녀의 이야기를 꺼내볼까 싶었지만 후치가 끼어들었다. 후치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는 턱을 괸 채로 말했다.



“실리키안 남작이 그런 사람일 줄은 몰랐네요.”



“사람은 하나지만 모습은 여러 가지지.”



“무슨 말이에요, 칼?”



칼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후치를 보았다.



“네드발군은 핸드레이크의 그 말을 알고 있지 않은가?”



후치는 양 손을 들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은지 고개도 기울였다. 온 몸으로 표현하는 모르겠다는 의미였다.



칼은 허허 웃었고, 리타가 대신 말했다.



“인간의 복수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죠.”



“맞습니다, 스마인타그양.”



“아아, 그거 말이군요. 나는 단수가 아니다.”



“네드발군은 그래도 최소한의 교양은 갖추고 있군.”



“칼한테 최소한은 나한테 최대한에 가깝다는 걸 잊지 말아줘요.”



후치의 볼멘소리에 그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다 웃었다. 당연히 모두가 다 웃은 샘이다. 후치는 툴툴거리면서도 리타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남작이 가족을 아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거예요? 난 솔직히 리타가 말해준 정보들을 들어도 모르겠던데.”



리타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그 위에 턱을 괴며 누구도 쳐다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예전에 이런 제목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 ‘악인에게도 양심은 있다.’ 내용은 악인에게 나쁜 짓을 당한 주인공이 악인의 연인에게 나쁜 짓을 하는 내용이지.”



“무슨 내용이 그래요?”



“후후, 보통은 그렇게 생각할거야. 칼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좌중의 시선이 칼에게 모였다. 칼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 턱을 한번 쓰다듬더니 대답했다.



“흠, 인간의 도덕성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비난받아 마땅해야할 행위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면을 건드린다는 측면에서는 참신한 것이군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본 건 복수의 정도에요.”



“정도?”



리타는 손가락으로 바닥에 선을 그렸다. 그리고 그 옆에 손가락을 대며 선과 대칭을 이루어 새로운 선을 그렸다.



“만약 이만큼 당했는데, 법이나 다른 심판이 내려서 상대편이 이정도 고통을 겪었다고 해요. 그런데 상대방에게 그 고통은 별로 큰 게 아니에요. 그러면 더 고통을 주어야겠는데 당사자에게는 방법이 없어요. 이때는 내면에 고통을 주는 방법이 남아있지요. 그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당하면 같이 고통을 느끼는 것. 그 것으로 정도의 간극을 채울 수 있어요.”



이루릴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샌슨은 머리에 김이 나는 것 같았고 후치와 칼은 각기 다른 생각에 빠졌다. 칼은 턱의 까슬까슬한 수염을 만지며 낮은 목소리를 냈다.



“그건 악인이 완전히 자기만 생각하는 경우에는 불가능한 이야기군요. 그리고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효율성만 놓고 본다면 꽤 괜찮은 일이지요. 공략하기 어려운 상대를 직접적으로 노리는 것 보다 그 주변의 것을 찾아낸다. 쉽게 말해 인질이지요. 종종 쓰이는 방법이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후치가 불쑥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처음 질문이에요. 어떻게 안 거죠?”



“남색가란 소문, 그건 여자를 멀리해서 난 거야. 내가 직접 찾아가서 유혹해 보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사업의 대상으로서만 날 보았어. 절대 이성으로 보지 않았지. 정말 남자를 좋아하나 싶을 정도의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성적인 노출에 대해서 반응을 하는 것을 보며 그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더욱이 시청과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던 아내에 대한 사랑이야기는 생각을 확신하게 해주었지. 그는 아직도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서 재혼도 하지 않고 다른 여자도 만들지 않았어.”



“어…… 그게 그렇게 되나?”



“남자니까 실제로는 안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드러난 것만으로도 그가 가족을 끔찍이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어. 그런 사람이 하나 남은 딸을 팽개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초점을 딸에 맞췄더니 남작의 비밀을 밝히게 된 거지.”



후치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손뼉을 짝 마주쳤다.



“아하. 리타, 이대로 탐정 같은걸 해보는 게 어때요?”



“그거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긴 하니?”



“어, 그러네? 소설에서만 봤어. 어때요, 칼?”



“글쎄, 탐정을 법적으로 막지는 않지만 실제적으로 운영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물론 스마인타그양이 한다면 미모를 보기 위해서라도 손님은 끊이지 않을 것 같긴 하네만.”



“어머니가 반대하실 겁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요.”



금방이라도 등짝을 때릴 것 같은 모습이 떠올라 리타는 미소를 지었다. 후치는 그녀가 문득 전보다 많이 웃는다고 느꼈다. 뭔가 헬턴트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자연스러움이 많이 묻어난다.



샌슨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나름대로 리타의 말을 정리 중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풀리지 않는 것인지 인상을 쓰며 눈을 뜨고 말았다.



“저기, 리타. 남작은 딸과 사이가 나쁘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그랬지.”



“그런데 어떻게 남작이 딸을 사랑하는 거야? 사랑한다면 어떻게든 아껴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딸도 도망가고 말았잖아.”



칼은 묵묵히 웃었지만 후치는 한숨을 내쉬었다. 리타는 둘의 중간쯤인 반응을 보였다.



“아까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고 한 이야기 들었지?”



“어? 으, 응.”



어색한 대답이었지만 못 본 척 넘어갔다.



“딸에게 있어 아버지는 사람들의 욕을 먹는 존재야. 나쁜 일을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거기다 본인의 사랑도 인정해주지 않았어. 딸에게 좋은 아버지는 아닌 거야.”



“그래, 그건 알겠어.”



“반면 아버지에게 딸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야.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지. 만약 너를 향해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상황이야. 그런데 네 옆에는 어린 딸이 있어. 그 상황에서 너는 딸을 어떻게 하겠니?”



“어떻게든 지키겠지?”



“돌은 너에게 던져지는 건데 같이 있다는 이유로 딸에게까지 돌을 던진다면?”



“어, 음, 그…… 이해했어. 소중하니까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떨어트린 거란 말이네.”



“그래, 이제부터 오거라고 놀리는 건 조금 고려해 봐야겠는 걸?”



“이 녀석이.”



샌슨은 장난스레 주먹을 휘두르다가 칼에게 눈초리 공격을 받고 시무룩해졌다. 친구끼리라지만 여자에게 주먹을 휘두른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둥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리타는 그 모습을 편안하게 바라보면서 후치와 이루릴에게 말했다.



“그런 거였어. 모든 걸 다해도 바꿀 수 없는 존재, 세상 모두에게 욕을 먹더라도 단 한 명만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사람. 누구에게는 악인이고, 누구에게는 물주고, 누구는 악연이고, 누구는 또 어떻고. 그 다양한 군상들 사이에서 홀로 빛나고 고귀한 것. 단 한 명에게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사람. 그는 딸의 아버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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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즉에 써뒀지만 마음에 들지않아 이것저것 손보다 보니 올리는 게 늦어졌습니다.

이걸로 ch2는 끝났네요.

ch3는 아직 구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오네와 운차이의 등장에다 중요한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짜는게 힘드네요.

조만간 ch3들고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댓글 : 3 개
  • grgr
  • 2014/12/21 AM 12:32
드래곤라자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기분
감사합니다.
제가 주고자 하는 느낌 그대로를 받으셨네요.
2챕터도 역시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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