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3. 뿌리깊은 나무 (5)2014.12.31 PM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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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에델린의 말은 진짜 저녁 초대였다. 초대라고해서 거창한 어떤 것은 아니었고, 그저 여행자들끼리 서로 가진 것을 나눠먹는 정도였다. 에델린이 내놓은 것은 내용물엔 문제가 없었다. 문제라면 그 크기뿐이다.



샌슨은 허벅지만한 빵과 팔뚝만한 소시지를 보고 천국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후치는 무슨 몬스터가 도식하는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질린 표정이 되었다.



일행이 내놓은 것은 별 특별할 것 없는 음식들이었지만, 거기에 카피가 따온 벌집에서 채취한 꿀이 곁들여졌다. 일행이 칼라일에서 물러날 때, 카피는 급하게 날아오느라 채취해놓은 벌집을 근처에 떨어트려놓아서 그것을 주워오겠다고 다시 날아갔었다.



카피가 에델린을 보고 적의를 드러내지 않을까 걱정했던 후치였지만, 이루릴을 소개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저 다른 종족 하나를 본다는 감상정도만 하였던 카피였다.



모닥불이 불티를 피우며 탁탁 타올랐다.



일행은 칼라일 영지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있는 비탈에서는 아래의 평지에 위치한 칼라일 영지가 훤하게 보였다. 은은한 달빛을 받은 도시는 낮과는 달리 크게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먹구름 아래에서도 어두웠지만 달만이 비추는 밤의 어둠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어두웠기에 오히려 그림자가 없고 색이 같다는 사실이 확 와닿지 않았다. 다만 불빛이 하나도 없기에 버려진 도시처럼 보인다는 것만이 이상했다.



리타는 일행에게 별다른 말없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며 에델린의 바로 곁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후치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리타를 불렀다.



“리타, 몸은 좀 괜찮아요?”



“아까 전 보다는 훨씬 괜찮아. 아직 몸에 힘이 안 들어가지만, 두통은 많이 가라앉았어.”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러면 어…… 어떻게 에델린이랑 만났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응.”



“단답은 예상했어요. 제 말은 가능하다면 설명을 해달라는 뜻이에요.”



리타는 살짝 웃으면서 에델린을 올려다보았다.



“이야기의 원활한 이해를 위해 우선 린의 이야기부터 듣는 게 좋지 않을까?”



칼라일 영지를 수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이루릴이 고개를 돌렸다. 칼도 시선을 향했고, 오직 샌슨만이 음식과 철전지 원수라도 되는 것 마냥 우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없습니다만……”



에델린은 약간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퍽 길었다. 보통의 어린 트롤이었던 그녀는 인간 병사들에게 잡혔다가 마법사에게 팔렸다. 마법사가 그녀에게 무엇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나쁜 기억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마법을 걸고는 에델브로이의 신전에 맡겼다.



에델린은 그 마법사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아마 트롤로서는 최상급에 속할 애정이 담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신전에 맡겨진 그녀는 꽤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했으나, 차츰 마음을 여튼 프리스트들에 의해 가까워져 갔다. ‘에델린’이라는 이름도 ‘에델브로이의 딸’이란 뜻으로 신전에서 지어준 것이다.



그녀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뚜렷한 자아를 가지게 되었고, 주변과 자신의 차이점을 깨달아갔다. 이에는 하이 프리스트의 엄격한 교육도 한 몫 했다. 하이 프리스트는 단호했으나, 그녀가 최대한 상처입지 않도록 트롤이라는 종족과 인간의 차이점에 대해 가르쳤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수련사가 되었고, 에델브로이의 프리스티스가 되고자 하였다. 하이프리스트의 독단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 때문에 1세기만에 교단의 모든 장로와 원로가 모이는 프라임미팅이 1세기만에 개최되었다. 그 결과 에델린은 정식으로 프리스티스가 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교단의 일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멀리하고 도움을 거절했다. 하이프리스트는 괴로워하는 에델린을 보고 그녀를 세상으로 내쫓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순례자로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녀가 있던 에델브로이의 신전은 수도에 위치해 있었기에, 수도의 사람들은 그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도를 벗어난 곳에서는 그녀는 수많은 오해를 샀다. 그녀의 진심을 알아주는 경우도 있었으나, 목숨을 걸고 도망쳐야 할 때도 많았다.



그녀는 세상을 알고자 했으며, 교단의 포교를 위한 목적도 있었고, 아버지를 찾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여행을 하였다.



리타는 모닥불을 보면서 과거를 추억했다.



“어비스의 미궁으로 가는 도중에 린을 만났어. 그땐 사우스 그레이드만 가보지 못한 상황이었거든.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실력 있는 성직자가 있었으면 했어. 그러다 마침 ‘치료하는 손’ 에딜린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간 거야.”



“첫 만남은 다소 황당했어요.”



“그땐 저도 철이 없을 때였으니까요.”



흔치 않게 얼굴을 붉히는 리타를 보며 후치는 간지러움을 느꼈다.



“첫 만남이 어땠는데요?”



리타는 볼을 긁으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에델린은 큼지막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후훗. 어떻게 알았는지 제가 있는 마을에 와서는 다짜고짜 동료가 되어 달라고 했어요. 제 모습을 보고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마구잡이로 이끄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엉겁결에 따라나섰죠.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냐고 생각했어요.”



“남자?”



“아, 그땐 남장을 하고 있었거든요. 이름도 가명을 썼었죠?”



리타는 그녀답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거 가명 아니에요. 지금의 부모님께 입양되기 전에 이름이었어요. 그러니 따지고 보면 가명은 아닌 셈이죠.”



샌슨이 알겠다는 듯이 입에 소시지를 가득 넣은 채로 말했다.



“아아, 맞아. 어릴 땐 다른 이름을 썼었지. 페이였던가?”



“응. 난 기억나지 않지만 입양 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곧잘 리타보다는 페이로 불렸으니까. 그보다 좀 먹고 말해.”



샌슨은 다시 소시지와 사투를 벌였고 후치가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런데 남장은 왜 한 거에요?”



“여자 혼자서 여행하다보니 귀찮은 일이 많더라고. 특히 자이펀인들이랑 같이 다녔을 때는 남장이 필수였거든. 그 나라 남자들은 가족을 제외하고는 여자랑 말을 섞지 않아. 그렇게 남장을 하고 있다보니 익숙해져서 린을 만날 때도 그러고 있었지.”



“행동거지도 완전히 남자였어요. 거기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가슴을 가리니, 큰 키까지 더해서 영락없이 호리호리한 남자인 줄 알았지요.”



확실히 후치의 기억에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던 리타의 머리는 꽤 짧은 상태였다. 제미니가 언니가 세련된 도시의 헤어스타일을 했다고 믿고 따라 자르려던 걸 말리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문득 제미니는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떠나오기 전에 빼앗았던 입술도 저 모닥불처럼 새빨간 색이었지.



후치는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머리를 격하게 흔들었다. 이루릴과 에델린은 다소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리타는 속을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후치는 헛기침을 한 다음 다시 모범적인 청자의 자세로 돌아갔다.



“흠. 첫 만남은 알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일은 없었어. 린은 종족이 다르다보니 내가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어 자연스럽게 여자인 것도 알게 되었고. 평범하게 여행하다가 어비스의 미궁을 간 다음 헤어진 정도일까?”



에델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별 일이 없었나요. 저 때문에 사람들 마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노숙을 계속하기도 했고, 여자인 걸 알았을 때도 느닷없이 계곡에서 같이 씻자고 했잖아요. 특이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남자는 정말 미친 게 아닐까 싶었어요. 혼자서 종족과 인간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다 벗은 리타를 보고 착각을 깨달았죠.”



“왠지 모습이 그려지네요.”



후치의 동의에 리타는 다시 모닥불로 시선을 돌렸다. 얼굴이 붉어진 것을 모닥불 탓으로 돌리기 위함이다.



에델린은 가볍게 웃은 다음, 마저 이야기했다.



“그래도 리타는 전혀 저를 몬스터로 인식하지 않았어요. 그냥 엘프나 드워프를 대하는 것처럼, 다른 종족이라는 정도로 대우해 줬어요. 교단의 사람들 말고는 그렇게 저를 스스럼없이 대한 사람은 처음이었는지라 리타랑 같이 있는 게 좋았어요. 이유를 안다고 하지만 계속 사람들에게 상처 받아왔었던 것이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렇게 두 달 정도를 여행했어요.”



“어비스의 미궁에 가는 것 치고는 오래 여행했네요?”



“리타가 술이 맛있는 마을이나 영지가 있다면 꼭 들리려고 했거든요. 그리고 술을 마시면 아시겠지만……”



“크흠.”



칼은 낮게 헛기침을 했다. 그의 매너가 여성의 치부를 밝히는 것을 거부했지만, 그러함에도 겪은 이로써 암묵적인 동의를 표한 것이다. 후치는 칼을 의아하게 쳐다봤지만 이내 이야기에 집중했다.



“어비스의 미궁은 어땠어요?”



에델린은 아득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겠지만, 거긴 정말 괴물들 천지에요. 리타가 강하고 저도 나름 전투에서는 자신이 있었기에 심층부에 다다르긴 했지만요. 거기선 또 리타가…… 어휴……”



에델린의 깊은 한숨이 리타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리타는 최대한 평온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역시 자신의 과거를 남의 입에서 듣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후치는 마침 타이번이 발러를 소환했을 때를 기억해냈다.



“몸을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같이 대화해달라고 했었다던가요?”



“네. 그때는 정말……”



“…… 반성하고 있어.”



트롤 하나와 인간 둘, 엘프 하나, 드래곤 분신 하나의 시선에 리타는 고개를 숙였다. 에델린은 리타의 그런 모습이 재밌는지 계속 이야기했다.



“아무리 제가 회복시켜 준다고 했지만, 그렇게 몸을 막 던질 줄은 몰랐어요. 정말로 발러가 리타를 산 채로 씹을 때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리타를 회복시키는 건 또 어땠는지.”



“아! 그러면 그때 발러가 괴상한 프리스티스라고 말한 동료가 에델린이었군요.”



“그래. 그럼 이제 내 이야기는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미궁에서 나온 다음에 바로 헤어졌거든.”



“그건 왜요?”



“헬턴트로 돌아가는 길에 프리스티스가 필요할 정도의 위험은 없으니까.”



“같이 생사고락을 겪었는데 필요에 의해서 그랬단 말이에요?”



리타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애초에 의도했던 목적은 이루었잖아. 에델린에겐 원래의 순례여행 목적이 있었고, 나에겐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으니까. 서로의 목적을 위해 헤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아?”



“목적의 타협점을 찾는다던가, 미루는 것으로 같이 계속 다닐 수도 있잖아요?”



“왜?”



“그게 사…… 아니에요. 이성적으로 보면 리타가 했던 게 맞아요.”



후치는 하마터면 그게 사람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법이라고 말할 뻔 했다. 자신과 남의 접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인간이다. 희생한 부분은 남에게 있어 그의 부분이 된다. 정말로 인간을 모르는 이에게 말하는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같은 인간인 리타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녀가 겪었고 지금도 안고 있는 자아의 고민은 쉽게 건드릴 문제가 아니다.



대화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오가는 말이 끊기자 일행은 각자의 상념에 빠져 모닥불을 주시했다. 다만 이루릴은 수심 어린 표정으로 칼라일 영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계속 구름을 부르고 계셨나요?”



에델린은 조금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에? 네, 사흘째입니다. 사흘 전 이곳을 지나다가 저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지요. 아니, 눈으로 보기 전에 벌써 게덴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어, 그 세력이 강해지지 않도록 매일 구름을 불러 햇빛이 비치지 못하도록 하는 정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흐음……”



“왜 그러시나요, 리타?”



이루릴은 장작을 모닥불에 던져 넣으며 리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카피를 품에 안은 채 미심쩍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낮아 본 그 여자. 그녀는 아무래도 세이크리드 랜드를 일으킨 주범 같은데, 어째서 사흘이나 방해하는 린을 내버려 둔 걸까요?”



“그 여자라면…… 늑대와 까마귀를 부르는 여자 말이군요. 아마도 뱀파이어가 아닐까 하는데요.”



“린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 기운은 어비스의 미궁에서 조우했던 뱀파이어들과 비슷했으니까요. 이상한 점들이 있긴 했지만 확실히 뱀파이어 같습니다.”



“제 생각도 그래요.”



후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 여자가 뱀파이어라면 성직자인 에델린을 무서워해서 안 오는 것 아닌가요?”



“그건 아닙니다. 처음엔 저도 영지에 들어가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그녀와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게덴의 세이크리드 랜드이기 때문인지 제 신성력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더군요. 그녀에게 터닝을 시도해 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더 그렇죠. 이곳은 세이크리드 랜드가 아니니까요. 뱀파이어니 헬카네스의 기운이 있는 곳에서 더 강해졌을 테고, 에델린은 반대로 약해졌는데도 에델린을 단숨에 제압하진 못한 거 아닌가요? 그 정도라면 역량차이를 가늠할 수 있으니 섣불리 에델린을 치러 오지 않았을 테고요.”



칼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프리스티스를 무서워하지 않는 뱀파이어라니. 그것도 사흘이나 구름을 부를 수 있는 강력한 디바인 파워를 가진 프리스티스인데. 그런 게 존재할 수야 없지.”



후치와 샌슨은 그런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치는 양 팔로 몸을 감싸며 말했다.



“뱀파이어라…… 그것도 게덴 때문일까요?”



“뱀파이어는 전염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뱀파이어에게 물린 자는 뱀파이어가 되고…… 라이칸슬로프와 더불어 질병 중의 질병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리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뱀파이어를 질병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상하군요. 애초에 종족으로 치부하기에도 애매한 부류긴 하지만, 옮긴다는 특징만으로 질병이라 할 수는 없지요. 그런 식이라면 그녀는 원래 인간이었다가 세이크리드 랜드에 의해서 뱀파이어로 변했다고 봐야하는데, 그러면 우리를 적대할 이유가 없어져요. 세이크리드 랜드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세이크리드 랜드를 지키려고 한다?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추측입니다.”



이루릴이 크고 아름다운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면 리타는 뱀파이어가 원래부터 세이크리드 랜드를 노리고 왔다고 생각하나요?”



“상황을 전반적으로 고려해볼 때, 가장 타당한 추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이루릴은 턱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치는 그녀가 신기한 듯 바라보며 물었다.



“저, 그런데 이루릴은 어떻게 처음부터 아무런 불안 없이 에델린에게 다가갈 수 있었죠?”



“불안? 아, 네. 누군가 신성 마법을 쓰고 있었고, 이 분 밖에 없었으니, 당연히 이분은 프리스티스일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프리스티스라면, 그 신께 대적하지 않는 이상 두려워할 이유가 없고요.”



리타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엘프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군요.”



“인간은 다른가요?”



“우리는…… 아니, 저는 아니군요. 대개의 인간은 외모에 따른 판단을 많이 해요. 아무리 이성적으로 이루릴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겉모습이 트롤이기 때문에 그 결론을 무시하고 경계심을 가지게 돼요. 이 분들이 린을 보고 자기소개도 못할 만큼 놀랐던 것은 그 괴리감 때문이지요.”



“그렇군요. 외모라……”



후치는 리타의 이야기를 부정할 수 없었다. 그도 만약 이루릴이 예쁜 엘프가 아니었다면, 과연 지금처럼 대했을까 자신할 수 없다.



후치는 머리를 흔들고는 에델린에게 물었다.



“그런데 에델린은 먹구름을 부를 정도면 대단한 디바인 파워를 가지고 있나 봐요?”



에델린은 노란 눈을 지긋 감으며 대답했다.



“에델브로이의 은총이겠지요. 어릴 때부터 그랜드스톰의 선학들께서 저를 지도해 주셨기 때문에 간신히 신의 지팡이 흉내를 낼 정도는 됩니다.



“음, 대단해요. 에델린에게 그런 큰 힘을 내린 것을 보면 에델브로이께서는 안목이 높으신 게 분명해요.”



역시 신이라 우리 인간 같은 놈들이랑은 다르군요! 라는 뒷말은 생각으로만 삼켰다.



에델린은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말하고 다가오는 후치를 향해 편안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 소년은 처음의 무례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지 일부러 다가오고자 노력한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 생각에 몰두해있던 칼이 조심스럽게 입을 때었다.



“저 영지에 대한 일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떻게든 수단을 강구해 봐야겠지요. 여러분, 저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이제껏 그 여자에 막혀서 들어가지 못했지만, 여러분이 도와주신다면 제 디바인 파워로 여러분을 세이크리드 랜드에서 움직이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이크리드 랜드로 만든 원흉을 찾아낼 수 있겠지요.”



“좋은 생각입니다. 저희도 저 안에 들어가는 문제로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에델린 양처럼 신실한 믿음을 가지신 분과 함께한다면 큰 힘이 될 겁니다.”



칼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의 말처럼 에델린이 지켜준다면 세이크리드 랜드에서 활동할 수 있을 것이고, 뱀파이어와도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리타는 계속 언급되는 뱀파이어가 마음에 걸렸다.



“그녀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세이크리드 랜드를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만들 필요가 무엇일까요?”



칼은 입을 다물었다. 리타는 그를 힐끗 보더니 말을 이었다.



“프리스티스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뱀파이어가 인간 세상에서 신의 영역을 펼쳐놓고서.”



그때, 갑자기 이루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어도 호의로 그런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우리 예상이 틀렸어요. 세이크리드 랜드라서가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두려워하지 않는군요.”



그녀는 허리에 매인 에스터크를 풀어서 배낭에 매달았다. 그리고 허벅지에서 망고슈를 꺼내 들었다. 일행은 이루릴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말했다.



“여러분은 잘 보이지 않겠지요. 불붙은 장작개비를 하나씩 주워 드세요. 초음파 때문에 귀가 먹을 지경이군요.”



“초음파?”



“박쥐입니다. 하지만 곤충을 잡아먹는 보통 박쥐는 아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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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린의 이야기는 원작에서 꽤 길게 설명되어 있는지라 간략하게 줄였습니다.

읽으시는 대부분이 이미 원작을 잘 알고 계실테니까요.

에델린이 수련사가 되어 여행을 떠난건 2년전이라고 원작에서 설정되어있는데, 조금 더 전으로 잡았습니다.

초반에 리타의 여행을 설정할때 기간을 생각안하고 사람과의 관계만 짜다보니 어긋나버렸네요.

글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다사다난하고 나라로 보면 마가 낀 것 같은 한 해가 끝나갑니다.

다들 마무리 잘 하시고 계신지요.

새해에는 좀 더 희망적이고 밝은 일들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댓글 : 2 개
새해에는 더 멋진 세상을 그리실수 있으실거에요 화이팅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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