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3. 뿌리깊은 나무 (7)2015.01.04 AM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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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치는 꿈을 꾸었다.



17세의 커다란 덩치임에도 그는 어머니에게 안겨 있었다. 아무르타트에게 깔린 아버지가 보였지만 아무르타트가 너무 시끄러웠다. 제미니의 얼굴을 달고 있는 아무르타트는 가죽바지가 멋졌다. 가죽바지가 멋진 이루릴에게 안겼다. 그는 자장가를 들으며 이루릴의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한 손에 다 들어오지 않는 큰 가슴이 그의 볼을 기분 좋게 눌렀다. 따뜻하고 젤리 같은 부드러움과 탄력이 있다.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비비며 파고들었다. 이렇게 따뜻한 품속이라니 그대로 잠들고 싶다. 그런데 이루릴이 이렇게 가슴이 컸던가? 꿈이라지만 너무도 생생한 감촉이 진짜 같다.



진짜?



세상이 변했다. 어머니에게 안겨있던 후치는 더 이상 존재치 않았다. 아무르타트와 아버지도 없었다. 그저 새까만 어둠만이 있다. 감은 눈을 뜨면 현실이 확실히 보일 것이다.



후치는 잠에서 깼다.



일단 상황을 파악해보자. 살짝 움직이는 오른손에는 분명 보드랍고 탄력 넘치는 무엇인가의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볼에서도 사람의 체온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살갗은 아니지만 얇은 옷 한 겹 너머로 있는 것은 분명 사람의 체온이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은 아직 느껴보지 못했지만, 그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면 그의 머리가 있는 곳은 당연히도 그것을 가진 사람의 신체란 소리다.



식은땀이 흐른다. 이대로 눈을 뜨면 어떤 사태를 겪을지 상상이 된다. 자신은 그대로 사회에서 매장될 게 분명하다.



이대로 계속 자는 척을 해야 할까? 손을 정상적으로 돌리고 좀 있다가 일어난 척을 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하지만 일단 본인의 행위 자체가 없던 걸로 취급은 안 될 거다. 스스로도 사태의 심각함을 느끼고, 일종의 책임감도 가진다.



“후치, 눈 굴리는 거 보여.”



리타의 목소리. 생각하느라 이리저리 움직인 눈동자가 눈꺼풀 위로 보였다. 안구에서 눈동자 부분은 약간 튀어나와 있기에 눈꺼풀 위로도 움직임은 확실히 보인다.



후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으, 음…… 그, 잘 잤니?”



아주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간 얼굴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가 길게 늘어져 그의 피부를 간진다. 그 사이로는 분명 머리카락과 대조를 이루어 한층 더 하얀 피부의 얼굴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존재하는 얼굴은 아주 아름다운 미녀. 그에게 친 누나나 다름없으면서도 마을에서는 여신으로 떠받드는 여자. 어떤 경우에도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표정을 바꾸지도 않는 냉정한 여성.



그런 사람이 꼭 다문 입술과 건들면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이 되어, 몹시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뭐라고 말해야 한결 덜 어색하려나? 이런 고민들이 뇌를 마구 흔드는 사이에 입으로는 아무 말이나 튀어 나온다.



“좋은 아침이에요.”



“으, 응……”



후치는 요동치는 심장이 도저히 자기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귀가 밝은 이루릴이라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수줍게 대답하는 리타를 올려다보며, 후치는 그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거대한 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그 거대한 것에는 그의 손이 가 있음도 알 수 있었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기에 모른 척 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그, 후치야…… 우선 손 좀 치워주겠니?”



“아, 네! 다, 당연히, 치, 치워야죠.”



후치는 후다닥 손을 내렸다. 세게 쥐고 있었는지 그가 손을 놓는 것만으로도 흔들리며 그의 얼굴을 가슴이 가격했다.



잠깐 그 상태로 몸이 굳었다. 한층 더 민망해진 후치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리타가 조심스럽게 팔로 가슴을 가리며 그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 눈은 이제까지 후치가 알고 있는 누나의 눈이 아니었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바스타드로 당장이라도 이 오른손을 잘라버리고 싶어진다. 물론 그가 아주 어릴 적 이후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는 한다. 하지만 어째서 저 여자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온다고 장담할 수 있는 저 누나가, 외간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 수치심에 물든 정숙한 여자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태를 경험하게 했다는 사실만큼은, 자르고 갈아버려도 용납할 수가 없다.



일어선 자세 그대로 굳어있는 후치를 보면서 리타는 표정을 무너트렸다. 그녀는 몸을 웅크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후훗. 내가 그렇게 엄마 같았어?”



후치는 확신했다. ‘꿈이 아니다. 이건 틀림없는 현실이다.’



그는 날듯이 그대로 땅에 무릎을 꿇으면서 양 손을 모았다.



“으아악! 미, 미안해요, 리타!”



리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뭐가? 뭐가 미안한데?”



“……”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이 없어진다. 가슴을 만져서 미안하다고 직설적으로 대답하기에 후치는 어렸다. 하지만 그가 우물쭈물한다고 해서 피해지지 않는다. 이건 현실이다.



“가, 그게 그러니까…… 내,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그, 가스…… 아니, 실례를 했잖아요.”



“쿡쿡, 그래. 뭐, 하지만 네가 어릴 땐 내 품에 자주 안겼는데. 가슴을 주무르기도 했었고, 품에 얼굴을 비비기도 했었지. 오랜만이지만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니까.”



리타는 평범하게 말했다. 그가 처음 눈을 뜨고 봤을 때처럼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모습은 그를 놀리기 위함이었나 보다.



후치는 혼란 속에서 리타에게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를 놀리건, 과거에 그가 무슨 짓을 저질렀건, 확실한 건 다 큰 여성의 가슴을 그가 마구 주물러 댔다는 사실이니까. 덤으로 무릎 배게도 하고 품에 얼굴을 비비기도 했다. 빼도박도못하는 성희롱이다.



하지만 리타는 그를 추궁할 생각이 없는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네가 목숨을 걸고 나를 지켜준 대가라고 생각할게. 저기, 저 자취 보여?”



리타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비탈이 엉망이 된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이로 길게 쭉 그어져 있는 두 줄기의 선이 보인다. 마치 쟁기로 갈아엎은 듯이 풀이 마구 헤쳐지고 땅이 파여 있다. 후치는 그것이 라이트닝 볼트를 막으면서 그가 남긴 자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네가 벼락을 막아준 덕분에 살았어. 네가 아니라면 난 꼼짝 없이 죽었을 거야. 라이트닝 볼트는 아무런 대책 없는 사람이 막을만한 수준이 아닌데 그걸 버티다니, 넌 정말 대단한 일을 했어. 고통이 엄청났을 텐데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낸 거야?”



“내가 쓰러지면 연약한 리타가 맞는데, 어떻게 쓰러질 수 있겠어요?”



리타는 후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 꿀밤을 날렸다.



“요 녀석.”



“아얏!”



후치는 따끔한 고통에 이마를 잡았다. 그리고 리타는 그런 후치를 안았다. 후치보다도 큰 리타의 키 때문에 후치는 영락없이 그녀에게 폭 안겼다.



후치는 그녀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를 안고 있는 팔의 떨림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리타의 목소리가 진지함을 머금고 잔잔하게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너의 행동은 나를 구했고, 너의 용기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나는 네가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자신이 없어.”



“헤, 내가 죽을 것 같을 때 리타는 날 구해주지 않을 건가요?”



리타는 품에서 그를 떨어트렸다. 후치의 당돌한 표정이 그녀의 눈에 잡힌다. 그녀는 짓궂게 대답했다.



“내가 안 죽을 경우에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그러니까 너도 날 위해서 목숨을 던지지 마. 네 목숨은 오롯이 널 위해서만 던져.”



“노력해보죠.”



물론 후치는 다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다시 몸을 던질 것이다. 리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리타는 꿀밤에 빨갛게 변한 후치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고마워. 이건 용사에게 주는 포상.”



“아으…… 그만 놀려요.”



부드러운 감촉이 이마에 느껴진 후, 후치는 이마를 금방 문질렀다. 리타는 가볍게 웃어주며 몸을 돌려 에델린에게로 갔다. 후치는 그제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칼은 쓰러진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무언가를 마시고 있었다. 점잖게 시선을 피하는 꼴을 보니 그도 확실하게 목격한 것 같다. 샌슨은 그 옆에서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롱소드를 닦고 있었는데, 전혀 숨길 생각 없이 웃음을 참고 있는 표정을 보였다. 그럴 거면 그냥 시원하게 웃는 게 낫지. 이루릴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메모라이즈를 하고 있었다. 후치는 꿈이 생각나서 금방 얼굴을 돌렸다. 그러다 이내 오른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몇 번 쥐었다 폈다 하였다.



샌슨이 잔뜩 놀릴 거리를 품고 있다는 얼굴로 물었다.



“뭐 하냐?”



“아, 음, 그냥. 그런데 나 어떻게 된 거지? 벼락을 맞고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목적이 있었다지만, 어쨌든 몸은 아주 멀쩡했다. 움직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타버렸던 팔도 원상 복구 되어 있고, 형편없이 찢어진 옷만이 어제의 참사를 증명해준다.



대답은 칼이 해주었다.



“에델린 양이 자넬 치료했네.”



성직자의 신성 치료. 리타를 치료할 때 봤었지만, 신성력으로 사람을 이렇게 말끔하게 치료한다는 게 몹시 대단한 것 같다. 거의 죽어가던 자신을 완전히 되살려 놨으니 에델린은 엄청난 성직자임이 틀림없다.



후치는 에델린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에델린.”



그러나 후치에게 들린 것은 에델린의 겸양어린 말 대신, 품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웃음이었다.



“푸헥헤헤헥헤헤!”



후치는 미쳤냐는 시선을 그에게 던졌지만, 웃음은 그칠 줄은 몰랐다. 한마디 해줄법한 칼도 그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그의 옆얼굴에는 광대뼈가 올라가 있었다. 틀림없이 웃고 있는 거다.



후치는 그 나이 또래에 비해서는 제법 머리를 가진 소년이다. 그는 순간의 상황에서 추리할 수 있었다. 그는 에델린에게도 무슨 일을 저질렀나 보다.



후치는 이를 악물고 질문했다.



“저, 에델린. 혹시 내가 기절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에델린은 빙긋 웃었다. 후치는 그 웃음에서 불안함을 느꼈다.



“큰일은 없었어요.”



그럼 작은 일이 있었단 말이다. 그건 에델린한테나 작은 일인 게 분명하고. 그렇지 않으면 저 칼의 웃음과 샌슨의 폭소가 설명되지 않는다.



두렵지만, 그래도 확실히 알아야겠지.



“제가 무슨 실례라도 했나요?”



“리타에게처럼 품에 안겼을 뿐이에요.”



후치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가 몸을 숨기기 적당한 구멍이 없나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색이 된 후치를 보면서 에델린은 평온하게 말했다.



“제 가슴은 만지지 않으셨으니 걱정 하실 필요 없습니다. 단순히 잠결에 안은 정도에요. 저는 어디까지나 신께 순결을 맹세한 몸이지만, 당신은 다른 종족이니까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단 가슴을 만지지 않았다는 사실에선 안도했다. 하지만 성직자의 품에 안겨 얼굴을 비비다니! 그것도 트롤 프리스티스가 아닌가? 에델린의 품에 안겨서 얼굴을 뭉그적대는 자신의 모습에 후치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에델린은 그야말로 푸짐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녀는 말처럼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후치는 아니다. 샌슨과 칼의 반응이 말해 주듯이,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드넓은 비탈에 제 몸 하나 숨길 구멍을 찾아 헤매던 후치는, 곧 정신을 차리고 칼에게 꿈 해몽을 부탁했다. 꿈에 등장한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꽤나 상세하게 설명했다.



뭔가 앓는 소리를 내는 후치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리타는 카피를 품에 안았다. 카피가 고개를 들어 빼꼼히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리타?”



리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카피를 안고 있었지만 시선은 사그라드는 모닥불에서 반짝거리는 붉은 불똥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카피가 다시 한 번 그녀를 불렀다.



“리타리타?”



“아, 왜, 왜 그러나요. 카피?”



“무슨 생각 한다 에요?”



“……”



리타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뭔가 말하려고 벌린 입을 한동안 유지하다가 짧게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앞으로의 일을 좀 생각했어요.”



카피는 뭔가 둘러댄다는 인상을 받았다. 리타는 대답을 회피한 채 짐에서 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집에서 출발할 때 가져왔던 여행 관련 서적이었다. 리타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책에 빠져들었다. 카피는 책을 보는 리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리타, 책 거꾸로 들었다 해요.”



“…… 어? 그러네요.”



리타는 얼굴이 금방 새빨게졌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에델린과 이루릴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칼과 샌슨은 애원하는 후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즉, 그녀의 주변엔 아무도 없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책에 얼굴을 파묻었다. 너무 얼굴이 뜨거워서 김이 날것만 같았다. 뒤집혀진 책이 가을 공기에 노출 되어 서늘해서 기분이 좋다. 하지만 이내 체온에 뜨겁게 변한다.



“아으……”



그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애써 후치의 앞에선 덤덤한 척 했지만 심장은 아직도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동생이 잠결에 취한 단순한 행동이었을 뿐인데도, 그녀의 몸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번개에 맞서 그녀에게 보여진 작은 소년의 등은 몹시도 컸다. 언젠가 보길 바라고 꿈꿔왔던 그런 등. 가슴과 품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들.



귀까지 빨개진 리타는 한동안 그대로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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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캐! 모에캐를 만들자!

라는 생각으로 그려봤습니다만, 역시 모에캐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군요.

오늘은 토토가의 여운이 길게 남아서 글을 대부분 적었음에도 마무리하는데 오래걸렸네요.

덕분에 자정이 지난 다음에야 올립니다. 으으, 아직도 머릿속에 트위스트킹이 울리고 잇어요.

후치 할렘 전설의 일부인 성직자의 가슴 주물럭 사건을 그대로 가져가야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만,

제목이 아무르타트인만큼 리타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후치에서 서비스를 해주었습니다.

부럽... 흠흠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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