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3. 뿌리깊은 나무 (16)2015.01.24 PM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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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군요.”



“항상 고기만 먹던 사람을 딱딱한 빵을 먹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네.”



칼의 말에 후치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전 간첩이 아니니까요. 경솔했네요.”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 잘못을 바로 인정하는 태도에 칼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후치는 긁적이던 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왜 이런 곳에 간첩이 온 걸까요?”



자이펀과의 전쟁이 활발한 분쟁지역은 남부다. 이곳 웨스트 그레이드는 현재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 정도로 동떨어진 곳인데 느닷없이 간첩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비단 후치만의 의문이 아니었다.



칼은 사람들의 신경이 자신의 입에 모임을 느끼며 허허 웃어버렸다.



“이곳은 특별히 군사적이나 경제적으로 요충지가 아닐세. 그저 평범한 영지일 뿐이지. 나로서는 짐작하기 힘들군. 아애 사람의 인적이 뜸한 헬턴트 같은 곳이라면 모를까, 굳이 왜 이런 곳……”



말을 하던 칼은 순간적으로 엄청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세계가 멸망하는데 그게 내일이란 사실을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닐세.”



후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표정을 보고도 질문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주변에서 분위기를 못 읽는다며 지탄 받을게 틀림없다.



순간 후치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재빨리 리타를 바라보았다.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시선을 느끼고 반응하는 리타에게 후치는 멋쩍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전혀 칼에게 질문할 의사가 없어보였다.



칼이 입을 다물자 일행은 조용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리타가 코다슈를 추적했던 길을 외우고 있어 헤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일행은 금방 계곡이 보이는 곳까지 도착했다.



펠레일이 손을 들어 일행을 제지했다.



“잠깐…… 멈추십시오.”



펠레일은 주의 깊은 눈으로 계곡과 그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 바라본다면 지금부터 우리가 보일 겁니다. 나무들이 적어지니 시야가 트이지요? 코다슈씨의 말처럼 우리가 올 것을 대비하고 있다면 아마도 저쯤에서 감시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앞의 벼랑 위를 가리켰다. 드러난 계곡은 상당히 드넓었고 숲의 끝을 알리듯 나무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일행의 앞에 떡하니 자리 잡은 벼랑은 500큐빗은 될 정도로 커다랬다.



터커가 핼버드로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진짜 그놈들이 대비하고 있을까?”



“코다슈씨가 거짓말을 하진 않았겠죠. 거짓말을 하려했다면 저희가 알아듣기 쉽게 바이서스어로 말했겠지요.”



“흐음, 그게 사실이라 치더라도, 우리가 제놈들의 본거지를 알아내서 들이닥칠 거라 생각진 않을 거 같은데.”



“아마 동료가 예정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기로 약속해 둔 모양입니다. 타지에서 간첩 활동을 하려는 자들이니 그런 대비책은 세워 두었겠죠.”



터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머리를 거칠게 벅벅 긁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그놈을 족쳐서라도 몇 놈이나 있는지 물어보고 왔었어야 했는데.”



“그는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리타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터커는 아쉬움에 그냥 해본 소리였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옆의 나무에 기대며 아득한 높이의 벼랑을 올려다보았다.



“아마도 수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겁니다.”



펠레일이 동의했다.



“맞습니다. 자이펀에서 얼마나 간첩을 파견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의 일은 소수로 진행할만한 성질의 것입니다. 열 명을 넘지 않을 것 같군요.”



“그러면 다행이지만…… 자, 그럼 이제 어쩌지? 이 근처에 있는 동굴이 본거지라 하지 않았나? 설마 벼랑 위에 있는 건 아니겠지.”



그때 크라일이 말했다.



“위가 아냐, 저기다.”



그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벼랑을 오른쪽으로 길게 따라간 부분에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터커가 그곳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저기인 거 같지? 어떻게, 칼, 바로 들어갑니까?”



“글쎄요. 퍼시발 군,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갑작스래 칼의 지목을 받았음에도 샌슨은 당황하지 않고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턱을 괴며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만약 저 곳에 본거지를 두고 누가 오는지 감시한다고 한다면, 이미 우리는 그들에게 발각되었을 겁니다. 그러함에도 숲에서 습격을 하지 않은 것은 인원의 부족이 있거나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죠.”



“다른 이유?”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다든지 매복을 하고 있다든지.”



샌슨의 대답에 일행은 섬뜩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샌슨은 덤덤하게 말했다.



“일종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단순히 발견을 못했을 수도 있지요. 어쨌든 저는 동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함정이 있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안 들어갈 수는 없지. 동굴의 입구가 한 곳 밖에 없다는 건 마을 어르신께 들었잖아? 우리에게 시간이 많다면 이곳에서 진을 치고 상대방이 나오길 기다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고 저쪽엔 아이들이라는 인질이 있지. 시간을 지체할 틈이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조심하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 밖이야.”



“으으. 함정인 걸 알면서 들어가는 수밖에 없나?”



“너무 걱정 마. 리타나 펠레일의 추측처럼 사람이 적기 때문에 그들도 함부로 덤비진 않을 거야. 함정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터트리지 않을 수도 있지. 설마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같이 죽자고 할 리도 없을 테니”



샌슨의 구체적인 말에 일행은 놀랐다. 보기와는 달리 그는 여러 정보를 기반으로 상황을 정확히 분석했다. 앞서 탐색에 나섰을 때는 펠레일과 지형 전술에 관해 토론하기도 했었다.



일행의 시선에 샌슨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칼, 들어갈까요?”



칼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했네. 퍼시발 군. 자네 말대로 우리는 시간이 없지. 어서 들어가세.”



일행은 동굴 입구로 다가갔다. 동굴 입구는 벼랑에 걸맞게 매우 컸다. 높이는 30큐빗 정도이며 폭도 10큐빗은 되어 보였다. 펠레인은 벼랑의 크기를 보고 동굴이 깊을 수도 있겠다고 짐작했다. 앞장서서 가던 터커는 동굴 입구에서 무엇을 발견하더니 주워 올렸다.



“확실하군.”



그가 주운 것은 조그만 신발이었다. 아주 어린 꼬마나 신을 법한 신발. 코다슈가 거짓으로 알려주진 않은 모양이다. 확실히 이 동굴은 그들의 본거지였다.



일행은 동굴로 들어섰다. 전위에는 터커와 크라일, 샌슨이 섰다. 가장 먼저 적과 함정을 맞닥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중위에는 사만다와 펠레일, 칼, 이루릴이 위치하고 후위에는 후치와 리타, 카피가 섰다.



동굴은 꽤 깊은지 일행이 조금 들어가고 나자 조금의 빛도 없는 완전한 암흑이 되었다. 일행이 불편해하자 이루릴은 빛의 정령인 윌로위스프를 불렀다. 터커 일행은 그것을 꽤 경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터커는 모험 경력이 꽤 되는 모양이었다. 그는 핼버드로 땅을 쿡쿡 찔러본다든지 앞을 조심스럽게 휘둘러보며 전진했다. 전위에 있는 그의 속도에 맞춰 일행은 천천히 뒤따랐다. 그랬기에 그가 갑자기 멈춰 섰을때 따라 멈출 수 있었다.



터커는 핼버드를 조심스레 움직이며 손을 천천히 뻗었다. 그의 손은 마치 허공을 만지는 것처럼 섬세하게 움직였다.



“실이 있어.”



일행은 몸을 긴장시켰다. 터커는 조심스레 그 주위를 더 살피더니 몸을 숙여 앞으로 지나갔다. 그리고는 핼버드를 가로로 세워들어 보였다.



“이 정도 높이. 아래로 지나와요.”



먼저 이루릴이 몸을 숙여 지나갔다. 그리고 펠레일과 칼이 뒤따라 지나갔다. 샌슨과 크라일은 자신들의 덩치를 생각해 거의 기다시피해서 지나갔다. 후치는 보이지 않는 실 때문에 겁이 나는지 그 자신도 기어갈까 고민했다. 그러던 찰나에 리타가 느릿하게 허공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을 보았다.



“이 실은 함정이 발동되는 건 아닌 거 같군요.”



터커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런 거 같습니다. 애초에 이런 작은 실로 어두운 동굴에 함정을 설치한다는 건 힘든 일이지요. 이런 건 아는 사람들이라도 놓치기 쉬우니까요.”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니 더욱 그렇겠죠. 그렇다면 이건 알람용인 셈이군요.”



“그럴 겁니다.”



리타는 윌로위스프의 빛만이 비치는 곳에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의아해하는 다른 사람들과 옆에서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는 후치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서슴없이 줄을 잠아 당겼다.



“무슨……”



“쉿!”



터커가 놀람의 고함을 지르기 전에 재빨리 리타가 조용하라는 표시를 했다. 터커는 입을 닫았고 주위는 고요해졌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행은 긴장에 몸을 굳혔다가 슬 이완시키며 어리둥절했다. 그때 이루릴이 큰 귀를 쫑긋하면서 말했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리는군요. 아주 작은 소리입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만 들을 수 있겠군요.”



“하아…… 도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한숨과 함께 터커가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물었다. 그의 표정은 꽤나 험악했다. 리타는 전혀 위축하지 않고 당당히 말했다.



“전략의 핵심은 허를 찌르는 것에 있죠.”



“예?”



“아마도 상대방은 우리를 알아차렸을 겁니다. 코다슈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정황상 그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면 다른 동료들은 그가 문제가 생겼을 거라 판단하고 있겠죠.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안다는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터커의 기세는 그다지 누그러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살피며 간신히 파악한 함정을 단숨에 작동시켜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크라일과 샌슨 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모험가로서 잔뼈가 굵은지라 꽤 단단한 체구에 날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의 기세에 겁을 집어먹을 것이다.



리타는 검은 눈을 깜박거리며 평온하게 이야기했다.



“우리가 걸리지 않고 간다면 상대방은 경계하겠지요. 조심스러운 놈들이구나. 혹시 자기들이 노린다는 것을 알지 않을까? 등의 생각을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줄에 걸린다면 달라지겠죠. 이 줄은 걸려도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약합니다.”



“……”



터커는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들은 이제 우리가 자신들의 존재를 모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서 경계를 강화시키는 것 보다는 경계의 정도가 약해지겠죠.”



“일부러 모르는 척 속이는 거란 거요?”



“네.”



터커는 눈을 감은채로 팔뚝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내 눈을 떴다. 그리고 펠레일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지, 펠레일?”



펠레일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조용하게 대답했다.



“이 분의 말씀이 맞다고 봅니다. 오히려 우리가 알람을 건드림으로써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으음…… 그렇게 말한다면, 뭐 그렇다고 해두지.”



하지만 그는 완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는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행동하기 전에 미리 일러주시오. 얼마나 당황했는지, 원.”



“알겠습니다.”



리타는 짧게 대답했고, 터커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눈을 돌렸다. 일행은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속도는 조금 빨라졌다.



다시 걷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터커는 다시 멈추어 섰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낮게 말했다.



“불빛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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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 ch3도 클라이막스를 앞두고 있군요.

하지만 아쉬워하실진 모르는 소식 하나...

다음주는 공모전에 전념하기 위해서 연중할 생각입니다.

음... 뭐 일주일만 참아주시어요.

그럼, 좋은 밤 되시길.




댓글 : 2 개
으윽.. 연중
창작은 언제나 힘든일이니까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ㅎㅎ
공모전 결과도 좋길 바랄게요
공모전 마감엔 겨우 턱걸이 해서 출품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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