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4. 가장 빨리 죽는 새 (9)2015.03.15 PM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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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책상에 손을 탁 올리며 말했다.



“뒤쪽이야 할슈타일 가문이란 걸 알겠다만, 앞의 사람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과 성이군. 어떤 연관이라도 있나?”



“있다면 나오겠죠.”



“으흠. 그렇군. 알겠네.”



남자는 다시 몸을 돌렸다.



“금방 가져오지. 혹시라도 저놈들이 수작 걸거든 무시하고. 잠시만 기다리게.”



그 말만 남기고 남자는 문 안으로 사라졌다. 리타는 그가 들어간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디론가 숨고 싶을 정도로 많은 시선들이 노골적으로 그녀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리타는 조금의 당황도 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였다.



지하에 있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지금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만 해도 십여 명이다. 주로 남자들이고 더러 여자도 보인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행색인 사람도 있다. 남녀노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공통적으로 그녀를 본다는 일이 하나 추가되었다.



리타는 별다른 불편함 없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간 남자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익숙하고 그것이 지겨움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타인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쳐다본다는 타인의 행위에 내포된 의미가 무엇이든 그것은 그녀와 단절되어있다.



사람들은 리타가 가만히 있자 먼저 다가가진 않았다. 눈에 띄는 외모에 차가운 눈매는 날카로운 인상을 가져다준다. 거기다 조금만 살펴보면 허리춤에 매고 있는 롱소드가 꽤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사리 동요하지 않는 만큼 틈이 없어 보인다.



묘한 대치상황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문으로 들어간 남자의 경고 따위는 애초부터 들을 생각이 없었다. 물론 의뢰를 하러 온 의뢰주를 길드내에서 어찌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개인적으로 접근해서 무엇이든 캐내는 쪽에 있다. 하지만 저토록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긴다면 말 한마디 걸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 나서서 그 분위기를 깨길 바라지만, 모두 생각하는 게 같은지라 결국 그대로 상황이 유지되었다.



쾅!



남자가 들어간 이후로 움직임이 없던 리타의 고개가 움직였다. 안쪽에서 들려온 소리다. 그것은 남자가 들어간 쪽이 아니라 네리아가 들어간 쪽이다. 조금 전에도 들렸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리타를 보던 사람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눈빛은 리타와 같지 않았다. 그것은 의아함보다는 조롱이나 음험함에 가까운 것을 품고 있었다.



리타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소리죠?”



어떻게 접근하나 기회만 엿보던 이들은 리타가 먼저 말을 걸어오니 이때다 싶어서 달려들었다. 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두목의 별난 취미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낄낄낄.”



“한동안 잠잠하더니…… 역시 제 버릇 개 못주는군.”



그 외의 것들은 욕설이거나 음담패설에 가까웠다. 리타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저 곳이 길드 마스터가 있는 곳입니까?”



사람들 중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리타를 보던 남자가 대답했다.



“어, 맞아. 그놈 방이지.”



네리아가 들어간 곳은 길드마스터의 방이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나는 소리가 그녀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은 추측할 수 있다.



리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기 들어가려고 하면 막으실 건가요?”



사람들의 눈이 변했다.



“아까 영감이 말하지 않았어? 여기 들어와서 맘 편히 있게 놔두는 건 댁이 의뢰주기 때문이야. 하지만 마스터의 방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신분은 의뢰주에서 침입자로 바뀌어 버리지. 그럼 어떻게 될 거 같아?”



“막겠다는 의미군요.”



“그 전에 목숨부터 걱정하는 게 올바른 순서 같은데?”



남자는 그리 말하며 손에 든 대거를 허공에 던졌다 받았다. 서늘한 은광이 램프의 불빛을 받아 번쩍인다. 그는 보지도 않고 대거의 날 부분을 잡고 던져서 날 부분을 받아냈다. 상당히 능숙해 보이는 동작이었고 그 행위엔 위협의 의미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리타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행동거지에는 허점이 많다. 일부러 드러내고 있나 착각이 들 정도로 엉성한 자세다. 설령 함정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될 건 없을 정도로 어수룩하다. 다만 대거를 다루는 동작만 깔끔할 뿐이다.



하지만 도둑이 무서운 건 그들의 무력 때문이 아니다. 거기다 도발하듯 그녀를 향하는 시선들의 수는 꽤 많다.



리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남자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 아가씨. 괜히 남 일에 나서봐야 좋은 꼴 못 보거든.”



그의 웃음을 필두로 다른 사람들도 리타에게 말을 걸어왔다.



“맞아맞아. 그리고 저 놈 말 들어서 좋을 것도 없지.”



“뭐라고? 이놈아. 지난번에 내가 너한테 알려준 정보로 한 탕 거하게 쳤잖아?”



“어이쿠, 그거야 다 내 솜씨가 좋아서 그런 거지. 네놈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그런 일 해낼 수 있으려면 나 정도가 아니면 안 돼지.”



“시끄러운 놈들. 저리 꺼져. 그런데 누나는 네리아랑 무슨 관계라도 있나? 낮에 보기론 네리아가 돈 훔친 사람들 일행 같더만.”



비교적 젊어 보이는 남자가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웃는 눈매가 고양이가 생각날 만큼 가늘고 길게 이어진다. 리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보신 그대로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정말로 어떻게 네리아가 데려온 거야?”



“제가 부탁했으니까요.”



“응? 부탁? 아니, 그러면 누나가 부탁했다고 들어준 거란 말이야?”



“그럴만한 상황이었거든요.”



젊은 남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눈 사이를 좁혔다. 그는 어느새 리타의 바로 곁에 다가와 벽에 기대어 섰다.



“흠. 길드원이 제 발로 외부인을 길드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일은 어지간하면 없는 일이란 말이지. 큰 의뢰거나 길드와 종종 보는 얼굴들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위쪽에서 끝나지.”



그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리타는 평범한 술집이었던 위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하인 이곳에 본거지가 있는 마당에 바로 위에서 의뢰를 받는다고 해서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어차피 바로 연결되어 있는데 말이다.



리타의 의문을 모르는 남자는 자신의 의문만을 계속 풀어냈다.



“길드가 길드원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알려진다는 건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야. 네리아도 바보는 아닐 테니 그 정도는 알 테지. 그런데도 돈을 훔쳐간 일행의 여자에게 부탁을 받았다고 데려와 줬다라……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의 손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눈 깜짝할 새에 아무것도 없던 그의 손에는 대거가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리타의 목에 서슬 퍼런 날을 들이밀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놀라서 웅성거렸다. 그러나 뭔가 일반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무엇인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라거나, 직접 칼을 들이밀지 못해서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리타는 꼼작도 하지 않았다. 몸이 긴장해서 굳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목에 대어진 칼에 시선도 주지 않으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이건 어떤 의미죠?”



“멍청한 거야? 아니면 놀리는 거야?”



“꼭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멍청하다고 해야겠군요.”



“그래? 그럼 알려줘야지. 협박하는 게 당연하잖아?”



“순순히 대답을 듣기 위해?”



“아니면 뭐겠어?”



젊은 남자는 눈을 빛나며 칼날을 살갗에 갖다 대었다.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리타의 목을 타고 전해진다. 리타는 그러든 말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리아를 잡았는데 돈이 없다고 해서 그냥 풀아 줬습니다. 길드하고 척을 지고 싶지도 않았고, 우린 돈만 돌려받고 끝낼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그냥 풀어줘야지요. 다만 저는 그 대가로 길드에 의뢰를 부탁했을 뿐입니다.”



평온하고 침착한 목소리에 젊은 남자가 오히려 당황했다. 순순히 말해준 내용도 그랬지만 리타가 보이는 행동은 어지간히 담이 큰 사람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것이다. 애송이는 검이 목에 겨누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긴장할 것이고, 경험 많은 이는 그 상황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긴장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동요가 없는 건 경험을 떠나서 본능의 문제다.



“이만 치워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순순히 답을 해줬으니 너의 행동도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는 태도다. 남자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렸다.



“어, 으, 응.”



칼날은 가볍게 닿아 있었기에 목에는 어떤 상처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겨누어졌다면 목이라도 만져야 정상인데, 리타는 목에 손도 대지 않고 길드마스터의 방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젊은 남자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태라면 더 말을 걸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다.



리타는 착 가라앉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네리아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던 이상한 감정을 상기했다. 그것은 미련과 후회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잡았으면, 막았으면 하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왜 원치 않았을까? 이대로 사라지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고 자신은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을까?



그녀는 눈을 슬쩍 돌려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대거를 들이밀었음에도 별 일 없이 끝나자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뭔가 확실히 이상하다. 의뢰자를 경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어째서 이렇게 트러블이 발생하기를 고대하는 것일까? 이 분위기는 뭔가 어긋나 있다.



그때였다.



쾅! 우당탕!



세 번째로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누구라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길드마스터의 방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였고, 무엇인가 그 문으로 튀어나와 바닥을 구르며 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바닥을 구른 것을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초였다. 후치가 만드는 바로 그 초. 새하얀 몸체에 불꽃처럼 붉은 머리가 마치 불이 붙은 초를 연상시킨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네리아다.



“휘익~”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린다. 갑자기 남자들 한가운데 던져진 여자를 그들은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팔로 몸을 최대한 가리며 바닥에 웅크렸다. 치욕스러워 붉게 물든 얼굴이 머리와 조화를 이뤘다. 증오와 원망, 실망이 뒤섞여 흔들리는 눈을 치켜떠서 문이 열린 방 안을 노려보았다.



열린 문 사이로 덩치가 산만한 남자가 쿵쿵거리며 걸어 나왔다.



“워워. 그렇게 눈을 부라리지 말라고. 너무 무섭잖아.”



우악스럽게 생긴 얼굴에는 날카로운 상처가 군데군데 나있고 덥수룩한 수염은 거칠게 뻗어있다. 커다란 덩치에 살이 아닌 근육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몸이 압도적인 위용을 보였다. 하의만 입은 상태였기에 상체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의 능글맞은 말에 네리아가 울컥해서 외쳤다.



“닥쳐! 처음과 말이 다르잖아!”



“처음? 내가 뭐라고 했던가?”



네리아는 실내의 어두운 조명을 받아 뽀얗게 빛났다.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을 텐데도 그녀의 피부는 새하얗고 매끈했다. 적당히 건강미가 느껴지는 탄력적인 몸매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말 그대로 알몸이니 가릴 것 없이 드러났다. 다만 가리는 게 있다면 그녀의 팔과 다리였다.



느닷없이 남자들 한 가운데에 알몸으로 던져졌다. 하지만 그것보단 마스터란 남자가 더 신경 쓰이는지 네리아는 주변에는 개의치 않고 그만 노려보았다.



“이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이런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네리아는 폭발할 것처럼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모른 척 하지 마! 네가 말한 대로 그냥 자주는 걸로 끝내기로 했잖아! 그런데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흥분해서 남자를 사납게 쏘아붙였다. 도둑이란 직업과 능청스런 모습 때문에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을 것 같은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분노를 확실히 보였다. 그만큼 마스터는 네리아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을 저질렀다.



그는 여전히 능글맞은 태도로 네리아를 상대했다.



“이것도 자는 과정 중에 일환이지. 나에겐 전희에 해당한다랄까?”



“미친 새끼! 그걸 말이라고 해? 세상에 이딴 애무가 어딨어? 너랑 자는 여자들은 다 그런 걸 즐겼냐? 네 더러운 얼굴 보고 같이 자주는 여자면 제대로 정신이 박혔는지부터 의심해 봐야겠지만, 그래도 그딴 걸 받아줄 여자는 없어. 미친 새끼야. 미치려면 혼자 곱게 미쳐!”



앙칼진 네리아의 말에 마스터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그는 능글거리는 얼굴을 치우고 대신 흉악하고 사나운 얼굴을 가져왔다.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로 그는 네리아에게 다가갔다. 네리아는 움찔하였지만 몸을 피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지만, 그게 오히려 마스터를 자극했다.



“누가 네년 같은 거랑 하룻밤 자는데 그렇게 큰 돈을 주겠냐? 보나마나 어디서 놈팽이들이랑 실컷 놀아난 몸통아리 가지고서. 거기다 봐줄만한 건덕지도 별로 없는 몸매인데. 뭐가 예쁘다고 얼씨구나 하면서 큰 돈을 지불하겠어?”



“뭐, 뭐얏?”



화내는 네리아에게 다가간 남자는 그녀의 새빨간 머리를 사납게 휘어잡았다.



“꺅!”



그는 네리아의 머리를 잡아당겨 단단히 고정한 다음 몸을 굽혀 바로 앞에 얼굴을 가져갔다. 서로의 숨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는 차가운 눈으로 네리아를 보았다.



“똑똑히 들어. 네년이 뭘 생각해서 다시 돈을 돌려달라는 건진 모르겠지만, 잘난 것 하나 없고 봐줄 것 없는 네년이 그냥 몸을 대주는 걸로 그 돈을 모두 받겠다고? 네가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넌 그냥 한낱 닳고 닳은 도둑년일 뿐이야. 그런 네 부탁을 들어준다면 어떤 짓을 하든 얌전히 즐겨야지. 어디서 앙탈이야?”



“그래서 먼저 의뢰를 물어 봤잖아! 일해서 갚을 테니 착수금이나 가불금으로 달라고. 그걸 거절한 건 당신이잖아!”



“물론. 어디 제대로 써먹을 데도 없는 년에게 줄 임무는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지?”



“아냐아냐. 그럴 리가 있나. 아쉽다면 네가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될 건데 말이야. 나는 네가 간곡히 부탁해서 어떻게든 해주고 싶은 마음에 이러는 거라고. 하지만 도둑이 아무 것도 받지 않고 돈을 내줄 순 없잖아?”



“슬로드!”



남자의 눈에 순간적으로 흉흉한 살기가 어렸다. 그는 머리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네리아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찌푸렸다.



“함부로 그 이름 부르지 마. 지금 네년이 어떤 처지인지 감이 안 잡혀? 날 더 자극해봐야 더 좋을 게 없다는 걸 알 텐데?”



“……”



“돈을 받고 싶다며? 그러면 그냥 닥치고 가만히 있어.”



“…… 알았어.”



남자는 유순해진 네리아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붙잡았던 손을 놔줬다. 네리아의 고개가 땅으로 떨어질 듯 푹 꺼졌다. 남자는 네리아의 목과 등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래그래. 착하지. 너 같은 것도 이렇게 얌전히 있으면 쓸데가 있다고.”



네리아의 눈은 남자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흔들렸다. 활기찬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던 정렬 넘치는 눈빛이 탁하게 바뀌었다. 마스터의 말은 그녀의 가슴을 거침없이 파고들어 깊숙한 곳에 숨기고 있던 상처를 파헤쳤다.



마스터는 말도 못하고 시선을 피하는 네리아를 보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는 포기한 듯 몸을 가리고 있던 손도 내려버린 네리아를 마구 음미했다. 부드러운 살결을 따라 뱀처럼 손이 기어 다닌다. 그는 네리아의 뒤로 돌아 안으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좋아. 이대로……”



네리아는 손으로 그의 입을 막으며 표독스럽게 말했다.



“뒤에서 말하지 마.”



“큭큭. 싫다좋다 할 처지가 아니지 않나?”



그는 그대로 입을 막은 네리아의 손을 핥았다. 네리아는 더러운 것에라도 닿은 것 마냥 손을 황급히 뺐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눈을 꼬옥 감았다. 이 모든 게 환상이길, 지금만 참고 넘기면 내일 눈뜰 수 있는 꿈이길 바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알몸을 지켜보고 있다. 추악하고 더러운 것을 신기한 구경거리 마냥 지켜본다. 그리고 짐승만도 못한 남자는 그 시선을 즐기듯 보란 듯이 그녀를 능욕한다.



거부할 수는 없다. 그녀에게 마음의 빚을 지워버린, 그 빛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보잘 것 없고 하찮은 몸 같은 건 어찌 되도 상관없다. 눈을 꾹 감고 시간이 지나가기 만을 참고 기다리면 된다. 이런 것, 술 한 잔 털어 넘기면 잊을 수 있다. 아니, 한 잔으로는 무리겠지. 아주 독한 걸로 한 병은 마셔야 할 것 같다.



그 순간 따스한 무엇인가가 네리아의 얼굴에 닿았다. 거칠고 우악스런 남자의 손이 아니다.



네리아는 눈을 떴다. 어느새 고여 있던 눈물이 또르륵 볼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그 눈물은 그녀의 얼굴에 뻗은 손에 의해 멈춰 섰다. 네리아가 멍하니 올려다보는 곳에는 안심하라는 것처럼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흘러내린 눈물을 마저 닦아주며 말했다.



“여자의 눈물에 움직이는 건 남자의 고유전유물이 아니지요.”



마스터가 좋았던 분위기를 흐리며 나타난 리타를 향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넌 뭐야?”



리타는 경멸조차 담기지 않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들에게 의뢰를 하러 왔으며, 지금은. 음, 그렇군요. 네리아를 사려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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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안의 부족분은 네리아로... 라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신사보듯 보지 마세요. 흠흠.

타자는 원작을 읽을 때, 초반과 후반부의 네리아에게서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설정상의 문제라기 보단 네리아가 일부러 초반에 억센척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고,

그래서 스스로를 놔버리는 돈을 찾아주는 장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을 하다보니... 이런 흐뭇.. 아니, 아닙니다.

낮이지만 밤인사를 미리 드리지요.

그럼, 좋은 밤 되시길.


댓글 : 1 개
리타의 반응과 네리아의 상황이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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