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4. 가장 빨리 죽는 새 (29)2015.05.12 AM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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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전하!”



칼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어쩔 줄 몰라 허둥거렸다. 그답지 않게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에 비하자면 훨씬 나았다. 미처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일행들은 리타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얼떨떨하게 있었다. 다만 지금 이대로 앉아 있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위라는 것은 알아차렸다. 칼을 따라 몸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칼이야 여러 행동들 중에서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라지만, 그들은 뭘 해야 할지 하나도 아는 게 없었다.



길시언은 칼에게 점잖게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앉으십시오, 칼.”



“그, 그러나 전하……”



“전하는 무슨. 궁성과 귀족원에서 내놓은 부랑자입니다.”



“전하.”



“전하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길시언이라고 부르십시오.”



“어떻게…… 제가 감히……”



후치는 문득 칼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가 칼의 입장이라면 불경이고 뭐고 간에 길시언이 한마디를 하였다면 냉큼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칼은 전하라고 부르는 것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길시언으로 하여금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허어! 그것도 불충이라는 것 모르십니까? 국왕이나 태자 이외의 자를 전하라고 부르는 것도 국왕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거 중범죄입니다?”



“중범죄라네요. 앉아요, 칼.”



이 상황에서도 여유 넘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리타를 향해 칼과 샌슨 등은 끔찍한 것을 보는 것 같은 눈을 하였다. 리타는 애초부터 일어나 있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굳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보인다.



길시언은 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는 이들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괜찮습니다. 앉으십시오. 리타 양처럼 차분히 계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대하는 게 오히려 더 불편합니다.”



“아, 저,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라니. 앉는 법 모르십니까? 다리를 구부리며 몸의 균형을 잘 잡은 다음, 먼저 손으로 땅을 짚으며 엉덩이를 부드럽게 땅에 가져다대면 되는 겁니다. 균형을 잃으면 미골에 충격이 가해져 척추가 아플 수도 있으니 각별히 유념하시오.”



아마도 이건 웃자고 하는 농담의 일종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누구도 웃지 못했다. 웃자고 하기엔 그 농담을 한 대상이 너무 높은 사람이다. 일어섰던 이들은 경직된 표정으로 간신히 자리에 앉았다. 길시언은 한결 보기 좋다는 표정으로 일행을 둘러보았다.



“좋습니다. 허, 이거 참 당황스럽군요. 이리도 쉽게 정체가 들통 날 줄이야. 지난 6년 동안 제 입으로 꺼낸 적이 없었는데. 헬카네스의 추는 또 얼마나 무거운지. 리타 양이 말했으니 제 정체는 아시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떠돌이 모험가 길시언이라고 생각해 주는 게 더 고맙겠습니다.”



후치는 아무리 그렇게 말을 들었다고 하지만 가능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사자가 양털을 뒤집어쓰고 양인 척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양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아무리 행색이 초라하고 모험가 생활을 한다고 해도 그 속 내용물은 왕족이다. 어떤 덜떨어진 놈이 그렇게 말한다고 곧이 곧대로 들을까?



“지당하진 말씀이시옵니다.”



샌슨이 대답하는 것을 보고 후치는 얼굴을 가렸다. 샌슨은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거다.



길시언은 가벼운 투로 이야기했다.



“뭐, 대수로울 건 없습니다. 내 동생은 왕이고 난 방랑자고, 내 동생은 임펠리아에 있고 난 황야를 돌아다닙니다. 성격이 그렇게 생겨먹어서. 귀족원의 원로들이 판단을 잘했죠. 내 목을 친 다음, 내 동생을 왕위 계승권자로서 추대했으니까. 그것뿐입니다.”



“맞는 말이죠.”



리타가 고개를 끄덕이자 길시언은 입을 조금 벌렸다. 후치는 만약 신에게 지금 소원 하나만 빌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리타의 입을 꿰매달라고 하고 싶었다.



네리아는 길시언의 정체를 듣고선 몹시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리타의 품에 안긴 상태로 눈을 크게 뜨고 길시언을 바라보았다. 잠깐의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으나 그보다는 놀람과 안도가 더 크게 서렸다.



길시언은 이 정도면 설명이 충분하다고 여기고서는 일행의 반응을 살폈다. 자기가 할 말은 다 끝났다는 식이다. 그리고 칼은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



“그러나 전하.”



“아니, 제발! 전하가 아니란 말입니다.”



“전하. 어찌하여 도성을 버리시고 야인으로 계시는지요.”



길시언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손을 흔들었다.



“전후가 바뀌었습니다. 도성을 버리고 야인으로 있기를 좋아하니까 태자 자리를 박탈당했습니다. 난 국왕 노릇을 할 재목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방랑 생활을 더 좋아하니, 천성이 게을러 국적을 보살필 능력이 안 됩니다. 그래서 귀족원 원로들이 목을 쳤죠.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하…… 전하께서는 100년에 한번 나오기 힘든 성군의 재목으로 추앙받으셨던 분이십니다.”



“그 말은 어디서 들었습니까? 그거야 아첨꾼, 모리배들이 왕태자에게 하는 상투적인 어휘입니다. 내가 왕태자 책봉되었던 것이 다섯 살 때였죠.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 성군의 재목이 어쩌니 할 때는 다섯 살 꼬마였던 나도 어이가 없더군요."



리타는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어쩐지 디트리히가 떠올랐다. 예닐곱 살 정도밖에 안 되는 아이가 드래곤라자라고 마을에 왔을 때 사람들이 어떤 환호를 보냈던가. 길시언은 왕태자였으니 그보다는 훨씬 고급스럽고, 또한 훨씬 속에 담긴 것이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다섯 살 때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면, 어릴 때는 똑똑했나 보군요.”



“하하, 그냥 듣기 싫은 말이어서 그랬던 겁니다.”



“그래도 별 다른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다섯 살에 왕태자로 책봉 될 정도면 어릴 적부터 남다른 뭔가를 보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아부라는 데는 이견이 없긴 합니다만.”



“어릴 때는 조금 조숙하기만 해도 신동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왕의 자식이었으니 일단 치켜세우고 보자는 식이었겠지요.



“그렇겠군요.”



리타는 길시언과 덤덤히 대화를 나누었다. 도대체 저 여자는 어떻게 된 정신을 가지고 있기에 일국의 전 왕태자와 저토록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가? 후치는 그와 장난을 치던 누나의 정신상태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은 다시 정신을 다잡으며 길시언에게 말했다.



“그럼, 혹 전하께서는 자이펀과의 전쟁 때문에 국왕전하를 보필하기 위해 바이서스 임펠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아니, 그건 걱정 안합니다. 내 동생, 어려서부터 책벌레여서 병서도 엄청나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신하들도 많습니다. 내가 가서 전쟁에 도움이 될만한 어떤 조언을 하겠습니까? 그런 것이라면 내 동생 주위에는 전문가들이 차고 넘칩니다.”



“그럼 왜 바이서스 임펠로?”



길시언은 프림 블레이드를 들어보였다. 그리고 이어 뒤편에 있는 선더라이더를 가리켰다.



“기억력이 좋지 못하십니다. 선더라이더에 걸린 저주를 해소하고 마법 칼집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갑자기 프림 블레이드가 웅웅거리며 울어대자 길시언이 인상을 썼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마법검이라 할지라도 저런 상태면 사양하고 싶다. 굳이 수도에 가려는 길시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망할. 내가 임펠리아를 빠져나올 때 이것 하나 훔쳐 나오고는 얼마나 좋아했는지 생각하면……”



“예?”



“임펠리아에서 쫓겨날 때 궁성 보물 창고에서 이것 하나 슬쩍했습니다. 그때는 여자 뒤꽁무니를 쫓아다닐…… 후우, 마법검이라고 도움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길,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검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악하지 않아서 다행이죠. 만든 이가 스승에 물들어간 순진한 마법사다 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아, 그러고 보니 리타 양은 프림 블레이드를 솔로처가 만들었다고 했지요. 이걸 아십니까?”



“네.”



리타는 대답하며 길시언에게 손을 내밀었다. 길시언은 그녀의 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몰라 멀뚱히 쳐다보았다. 리타가 손을 한 번 더 펼치며 말했다.



“잠깐 프림 블레이드좀 줘 보시겠어요.”



“그러…… 으악!”



길시언은 순순히 검을 넘겨주려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귀를 붙잡았다. 하지만 시끄러운 소리는 머리로 울린 것이라 전혀 소용없는 행동이었다. 길시언은 귀를 잡았던 손을 떼며 프림 블레이드를 노려보았다.



“야! 갑자기 소리 지르지 마!”



프림 블레이드가 싫다고 비명을 꽥꽥지르는 통에 길시언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시끄러운 사태를 해결하고자 길시언은 냅다 리타의 손에 프림 블레이드를 얹혀주었다.



손에 들자마자 머릿속으로 높은 목소리가 파고들어왔다.



[꺄아아아아! 이 짐승! 그렇게 주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못되게 굴 수 있어! 내가 얼마나 무섭다고 무섭다고 이야기했는데! 진짜 잡히면 한 동안 무서워서…… 아? 어? 뭐야뭐야? 이상한데.]



“뭐가 이상하죠?”



[몰라. 뭐지? 모르겠는데. 너 혹시 딴 사람이야? 이 느낌이 아니었잖아. 너 원래는 마음속이 시꺼멓고 엄청 깜깜하기만 했었는데. 이상하네……]



“지금은 어떤 느낌이 드나요?”



[아니…… 여전히 어두워서 무섭긴 한데, 전만큼 무섭진 않은 느낌? 이상하네. 사람이 이렇게 바뀌지는 않는데. 하긴 말이야. 원래부터 마음이 그렇게 깜깜한 사람도 없긴 하지. 무슨 괴물이라도 만난 줄 알았네. 헤. 어쨌든 이제 날 너한테 쥐어 준다고 나한테 겁박할 수 없을 거야. 이 정도는 이겨낼 수 있는 걸. 그동안 그걸로 날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데. 엉엉. 짐승 같은 놈!]



리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프림 블레이드를 바라보았다. 길시언은 그런 리타를 바라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길시언을 보고 있었다. 기묘한 시선의 교착상태를 깨트리며 리타는 길시언에게 프림 블레이드를 돌려주었다.



“죄송합니다. 효과가 없었네요.”



“네?”



리타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프림 블레이드는 솔로처가 궁정마법사로 있던 당시에 제작해서 왕에게 바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헐스루인 공주에게 바친 것이지만요. 마법사답게 괴팍한 성격을 가졌다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선량함을 갖추고 있었기에 지금의 프림 블레이드 같은 아이를 만들 수 있었겠지요. 본인 말로는 핸드레이크에게서 비사회적이고 비교육적인 면만을 물려받았다고 했지만, 실상은 낭만적이고 순수함을 좋아하며 사랑을 부담스러워하는 남자였습니다.”



“오, 그랬군요.”



길시언은 감탄을 터트리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후치가 돌아보니 칼도 처음 듣는 모양이었다. 길시언은 새삼 신기한 눈으로 프림 블레이드를 내려다보았다. 프림 블레이드가 리타의 말이 정확하다고 증언해주었다.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솔직히 궁성에 있는 저도 모르는 내용인데.”



“고향에 있는 마법사에게 들었습니다.”



“마법사요? 어느 고명하신 분인지……”



리타는 쓴 것을 입에 넣은 것처럼 표정을 묘하게 일그러트렸다.



“글쎄요. 타이번이라는 이름을 씁니다만, 유명한지는 모르겠군요.”



길시언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림 블레이드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다 리타에게 말했다.



“그런데 리타 양은 언제부터 제가 폐태자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요.”



그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도대체 어떻게?”



“기억력이 좋지 못하시군요. 프림 블레이드와 행동, 모험가로서 활동한 기간과 이름에서 유추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길시언은 그가 칼에게 말했던 그대로 돌려받자 벙 찐 표정이 되었다. 리타는 그야말로 길시언이 폐태자가 아닌 모험가 길시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평범하게 대했다. 샌슨과 후치는 불경죄로 지금 당장 참수되더라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였으니 정작 모험가로서 대해달라고 말했던 길시언조차도 얼떨떨했다.



리타는 운차이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운차이는 어떻게 알아차렸죠?”



운차이에게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그리고 후치는 말을 전달할 준비를 본능적으로 했다. 하지만 운차이는 바로 입을 열었다.



“6년간이라는 말, 암살자들이 따라다니는 중요 인물, 1 더하기 1은 2지.”



“그렇군요. 하긴 암살자들이 대놓고 길시언을 노렸지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 운차이는 일행에게 어떻게 자기 나라의 국왕의 형도 모를 수 있냐고 힐난하는 듯했다. 하지만 후치는 지금 당장 국왕이 앞에 있어도 못 알아볼 테니 어쩌겠냐는 식이었다. 운차이는 간첩이라 이것저것 배웠을 테지만, 그는 그야말로 시골에서 왕족과는 전혀 인연이 없어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보다 후치는 운차이가 타인을 거치지 않고 여자의 말에 직접 대답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빤히 바라보는 후치의 시선을 무시하고 운차이는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길시언은 불쾌함 없이 그 시선을 받아 넘기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것 참. 내가 마법의 가을에 들어섰나? 올 가을엔 이상한 일들만 일어나는군.”



“전하?”



길시언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누가 보낸 것인지 짐작이 안 갑니다. 요새 갑자기 나타나서 날 공격하는군요. 리타 양의 말처럼 누군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날 몰아가기 위해서일까요? 내 동생의 측근이 내가 왕권에 위협이 될까봐 제거하려 한다는 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그건 별로 가능성이 없군요. 제 생활 태도를 본다거나, 모험가 생활을 하는 동안 최대한 수도로 가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알 텐데요.”



“하지만 확실히 노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자폭을 불사할 정도로 강력한 의지를 가진 군인들로요.”



“네. 바로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칼은 처음에 비해서 많이 진정되었는지 차분하게 말했다.



“모험가는 비왕족으로서 왕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직종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퍽 옛이야기에나 나올법한 소재로군요. 하지만 그러려면 엄청난 모험을 겪고, 지방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세력을 육성해야 합니다.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나처럼 살면 이미 글렀지요.”



“그러나 지금 바이서스는 전쟁중입니다.”



길시언이 갑자기 무서운 눈초리로 변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리타는 한층 더 예리해진 눈매로 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칼은 침착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전쟁중에는 많은 일이 가능합니다. 계속된 전쟁으로 왕권에 대한 신망이 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정부를 전복시키고 적국과는 동맹을 맺는 식으로 일처리가 가능해집니다. 자이펀과 손을 잡아서 왕이 되는 것을 간단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당신 설마?”



“들어보십시오. 이런 식이겠지요. 자이펀의 도움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 ‘국왕이 자신의 야욕으로 불합리한 전쟁을 일으켜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는 것을 좌시할 수 없어 그를 멸한다. 그리고 그 대신 자이펀에게 사과하며 배상의 책임을 지겠다.’ 고 말하면 됩니다.그러면 자이펀에서는 ‘길시언 국왕의 등극을 인정하며 축하한다. 그는 현명하므로 전임자의 죄악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하죠. 그리고 백성들은 전쟁을 끝내준 반란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칼.”



음성의 주인은 리타였다. 놀라고 있는 건 후치와 샌슨이었고, 우울해 하는 것은 네리아였으며,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건 이루릴이었다. 그리고 화내고 있는 것은 길시언이었다. 그 모든 이들을 제치고 리타가 말했다.



“저는 칼을 좋아합니다. 칼이 가진 여러 가지 모습들을 좋아해요.”



“스마인타그 양.”



“하지만 한 가지, 싫어하는 게 있다면 이런 점입니다. 칼은 타이번과 비슷한 화법을 구사하시는군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남을 재는 것 말입니다. 길시언이 국왕의 형인 건 상관없습니다만, 스스로 전하라고 부르면서도 그런 식으로 대화를 몰아가는 건 어떤 의도인가요? 정말로 누구든 대상은 상관없이 중요한 건 칼이라는 건가요?”



칼은 여전히 침착했다. 그는 호전적인 시선을 조용히 받아내었다.



“저는 객관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스마인타그 양의 말씀대로 국왕 전하의 형이시기에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요.”



“함정에 걸려들면 어쩌실 요량이신가요?”



칼은 고개를 저었다.



“감히 전하를 상대로 그러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인물을 잘못 본 것이겠지요. 그 죄는 달게 치룰 겁니다.”



“자자, 그만하시지요.”



길시언이 리타와 칼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칼의 말은 잘 알겠습니다. 날 회유하려는 건 아니군요. 그러니 리타 양도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화 안 냈어요.”



리타는 새치름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반응에 길시언과 칼은 동시에 충격을 받은 얼굴로 변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대화를 마저 나누었다.



“전하, 저는 회유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놀라운 분이시군요. 예. 인정하겠습니다. 제가 우려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내게 암살자를 보내는 측도 아마 그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추측합니다. 내가 전쟁을 틈타 내 동생을 쫓아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죠. 아마도 내 동생은 아닐 겁니다. 그 녀석은 마음씨가 선량하니까요. 그 녀석의 측근 중에 자신의 야욕과 국왕에 대한 충성심을 혼동하는 돌대가리들일 겁니다.”



후치는 그 생각이 너무 안일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감히 국왕 전하의 형님 앞에서 칼이나 리타처럼 말하기엔 그의 간이 너무도 평범했다. 그리고 자기보다 더 배움에서 앞서는 사람들이,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대화할 때 끼어드는 것은 무지를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었고, 리타의 말을 듣고선 입을 쩌억 벌렸다.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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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타임
댓글 : 1 개
프림 블레이드를 한번정도는 쥐어보고 싶어지는 대사들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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