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4. 가장 빨리 죽는 새 (30)2015.05.12 AM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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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가정법으로 생각해 보지요. 만약 칼이 국왕 전하를 보필하는 측근이라고 쳐요. 그런데 어느 날 자이펀에서 폐태자를 이용해 반란을 획책한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행동하겠어요?”



“그 예는 적절치 않군요. 이 경우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지레 겁을 집어 먹고서 나서는 상황일 겁니다.”



“그러면 그런 상황에서 일류급 병사를 자폭시키려고 바로 투입할까요? 국왕전하에게 직접 목이 잘리더라도 나라를 위해 위험을 미리 제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면서요.”



“방법이 과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고작 위협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국왕의 형에게 바로 병사를 보낼 만큼 멍청한 작자라면 그 자리에 앉을 수 없겠지요. 차라리 길시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그런다는 게 더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음모론을 주장하는 느낌이 듭니다만, 그 음모론이 오히려 가능성이 높게 보일 정도로, 단순한 광신도의 행위로 보는 건 안일한 생각입니다.”



칼은 길시언을 상대하던 신하의 자세를 치우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지식을 탐구하는 독서가. 독서가는 생각하고, 말했다.



“그렇게 보자면 전재부터 되살펴 봐야겠군요.”



길시언이 의아한 듯 칼에게 물었다.



“전재라니요? 제가 노림을 당한 것 말입니까?”



“아닙니다. 아, 아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예? 어떤 말이십니까?”



“전하를 노린 목적은 전하가 자이펀과 결탁할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자이펀과 결탁하기 위해서 전하를 노렸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리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군요. 왕이 되려는 대상이 길시언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이고, 그렇기 때문에 방해가 되는 바이서스 왕가의 핏줄을 제거하려고 든다.”



길시언이 눈이 무섭게 떠졌다. 이번에는 칼이 그를 회유하는 척 넌지시 물을 때와 달랐다. 운차이와 리타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진득하게 살의가 느껴졌다.



“감히 누가!”



칼이 손을 내저었다.



“고정하십시오. 어디까지나 촌부의 짧은 견해일 뿐입니다.”



“자기 의견에 괜한 겸양을 부리지 마세요, 칼. 물론 가능성은 낮은 이야기입니다. 이 나라의 국민은 아직 왕가에 충성심을 보이고 있어요. 자이펀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교육받으며 자라온 세대이기에, 자이펀의 힘을 빌려 나라를 차지한다고 해봐야 민심을 얻긴 매우 어려울 겁니다. 강력한 힘이 있더라도 반란은 당연히 발생할 테고, 민란은 끊이지 않겠죠. 하지만 민중을 아우를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한 자라면 극복할 수 있겠군요. 애초에 그런 현명한 자라면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겠지만요.”



“자이펀과의 연계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이라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적국에 대한 국민의 적개심은 잘 알려진 사실이니까요. 최대한 감추면서 은밀하게 일을 진행한다면 민심이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 정말로 바이서스의 전복만을 바라서, 자이펀에서 멍청한 이를 꼭두각시로 세워 조정할 가능성도 있군요.”



후치는 운차이를 힐끔 쳐다보았다. 과연 자이펀의 간첩은 이들의 대화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그는 며칠 보지 않았지만 금세 익숙해진 싸늘한 표정으로만 있을 뿐이었다.



리타와 칼, 길시언은 잠깐 대화를 멈추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한 것들을 상기해보는 듯 하였다. 그러다보니 적막해서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었고, 과연 한때는 왕태자였던 자답게 길시언은 그런 분위기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입을 열었다.



“꽤 복잡한 일일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어서 수도로 가야겠습니다. 수도라면 직접적으로 내 목숨을 노리진 못할 테니까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위험도 감수하지 못할 놈이었다면, 처음부터 왕성에 얌전히 박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헬카네스는 내게 옥좌에 앉아 버티지 못할 만큼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자유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내 이마에 역마살 하나 박아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칼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리타는 옅게 웃었다. 후치가 의아해하며 샌슨을 바라보니, 샌슨도 마침 그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묘한 친밀감을 느끼는 두 명을 내버려두고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적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죠.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못한다는 방심을 노릴 수도 있어요.”



“그거야 방심하지 않으면 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서 추측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고, 그 불확실한 위협에 미리 겁을 먹고 행동을 옮기지 않을 정도로 겁쟁이는 아닙니다.”



그러며 길시언은 다시금 프림 블레이드와 선더라이더를 가리켰다.



“그리고 수도가 아니라면 선더라이더의 저주를 풀 만한 성직자를 만나기 어렵지요. 사일런스 마법이 걸린 칼집을 찾기도 어렵고요.”



이번에는 고함에 지를 것에 대비하고 있었는지 길시언은 인상을 찌푸리는 것만으로 넘어갔다. 칼은 흔들림 없이 덤덤히 이야기하는 길시언을 보고서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를 보필하겠습니다.”



“전하가 아니라니까요. 제발. 그리고 여러분과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겠습니다.”



“예?”



칼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길시언은 고개를 저으면 말했다.



“저 때문에 여러분이 위험해 집니다. 곤란한 일이죠. 조금 전에도 암살자들에 의해 샌슨은 상처를 입었고, 만약 다레니안의 비호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 죽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일행의 조금 뒤로는 새로 생긴 호수와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숲이 펼쳐져있었다. 생각하기만 해도 아찔한 기억은 바로 조금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절대로 여러분과 함께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실력이 못미더워서가 아닙니다. 난 갈색 산맥의 다른 길에 대해서도 좀 압니다. 드워프들의 통행로를 이용한다면 혼자서도 무사히 갈 수 있겠지요. 여기서 헤어져야겠습니다.”



“예? 아, 아니. 안 됩……”



“더 말하지 마십시오. 칼.”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 칼에게 길시언은 단호히 손을 뻗어 제지했다. 칼은 입을 다물었고 길시언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어제 여러분들과 동행하기로 결심한 것은 정말 미안한 일입니다. 나를 마음껏 욕해도 좋습니다. 설마 이 험한 갈색 산맥 중간에까지 암살자들이 따라다닐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내 불찰입니다.”



“전하……”



“미안합니다. 6년 동안 야인이었으니, 이젠 야인인 길시언으로 봐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음 편히 모험가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솔직히 리타 양 같은 분들도 있었으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도 날 길시언 바이서스로 보는군요. 그건 내가 감수할 운명입니다만, 그 때문에 여러분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안녕히.”



길시언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선더라이더에 올라탔다. 리타는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어딘가 애잔한 느낌이 그녀의 눈에 서렸다.



“갈 건가요?”



“그렇습니다. 크흠.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사과드리겠습니다. 무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됐어요. 큰 가슴을 가린 게 죄죠.”



“…… 죄송합니다. 언제고 그 무례에 대한 죗값은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어디 허우대 멀쩡하고 성격 좋고 집안 좋은 신랑감 하나 소개해주면 봐드리죠.”



“예?”



“어머니가 하도 시집가라고 아우성이셔서. 이번에 가는 김에 신랑감이나 하나 찾아오라고 하시더군요.”



후치는 태연하게 농담을 해대는 리타를 보며 이제는 존경심까지 생겼다. 그녀가 개념이 부족해서 길시언을 그리 대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건 가장 개념이 없는 샌슨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니까.



샌슨을 힐끗 보고 나서 후치는 당황하며 헛웃음 짓는 폐태자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리타, 여전히 날 길시언으로 대해줘서 고맙습니다.”



“처음부터 그리 대했으니까요. 길시언이 왕족이라고만 했으면 뺨은 못 때렸을 걸요?”



샌슨은 고개를 저었다. 리타는 왕족이 아니라 왕이 그렇게 했더라도 뺨을 때렸을 게 분명하다. 그 사실 하나 만큼은 오랜 친구로서 장담할 수 있다.



길시언은 가볍게 미소 짓는 리타를 보며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반응은 흔히 말할까말까 망설일 때 나오는 것이다. 그때 프림 블레이드를 잡은 그의 손이 조금 떨렸고,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꽤나 변했군요. 하지만 지금이 보기 좋습니다. 미소가 퍽 아름답습니다, 레이디.”



그리고 길시언은 모두를 돌아보며 웃었다.



“만일, 이것이 마법의 가을이고, 이 만남이 이 가을의 마법에 의한 것이라면, 여러분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는 작별의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샤스의 가호가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후치는 메리안의 인사를 떠올렸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면, 작별의 말은 필요 없다는.



“하아!”



길시언은 선더라이더를 몰아 저편으로 사라졌다. 왕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 자유로운 영혼 때문에 왕좌를 물리쳤던 인물이 떠나간다. 저주에 걸린 황소를 타고, 수다스러운 마법검에 골머리를 썩히는 황야의 왕자.



리타는 입가를 매만지며 그의 뒤를 바라보았다.








*








“우하! 죽는 줄 알았네.”



“왜?”



“…… 당신 때문에요.”



후치는 천연덕스런 리타의 얼굴을 보며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이 없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도대체 리타는 어떻게 그렇게 태평하죠? 아무리 아는 사이라고 해도 명색에 이 나라 국왕의 형인데.”



뺨을 날리기도 했었지. 계속 짓궂은 농담도 했고.



그 생각을 떠올리니 또 뒷골이 서늘해진다. 후치는 몸을 한차례 떨며 리타를 째려보았다. 리타는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속 내용물이야 어쨌든 길시언은 모험가로 보이고 싶어 했으니까. 그가 계속 고민하는 것처럼 그의 태생은 버릴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함에도 그에겐 모험가로서의 길시언이라는 측면이 따라 다니잖아.”



“그거 말인가요?”



“응.”



“그래, 소는 아니었군요. 다행이네요.”



“…… 그게 놀리는 거라는 건 알겠어. 으흠, 설명이 부족했니? 그렇게 이상한 표정 짓지는 말고. 음…… 그래. 넌 인간을 규정하는 게 스스로라고 생각하니, 아니면 사회라고 생각하니?”



“어? 음, 둘 다겠지요. 나 혼자만 생각해선 이루어질 수 없고, 내가 없어서야 아무것도 될 수 없으니까요.”



“길시언은 스스로가 모험가이고 싶어 하지만 사회는 아직도 그를 폐태자로 기억하지. 하지만 폐태자인 것을 모르는 사회에서는 그는 모험가로 인식할 수 있어. 본인도 타인도 모두 하나로 생각해. 비록 나는 그의 정체를 안다고는 하지만, 그의 의지를 존중해서 모험가로서의 길시언을 대했어.”



“…… 그거 방금 생각한거죠?”



후치는 눈을 째릿하며 리타를 노려보았다. 리타는 표정을 살짝 굳히며 움찔했다. 그녀는 슬금슬금 눈을 옆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아닌데.”



“딱 들어봐도 그런 게 티 나요. 존중한다는 생각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들어봐도 리타는 행동에 대한 이유를 갖다 붙이기 위해 그런 말을 한다고 밖에 안 보이거든요?”



“이젠 무서워서 말도 못 하겠네. 이 누나는 동생을 이렇게 험악한 아이로 키우지 않았단다.”



언젠가 한번 들었던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후치는 말했다.



“뭐, 보나마나 리타라면 그냥 길시언을 처음 보았을 때 알았다 하더라도, 그냥 인간 길시언으로 대했겠죠. 모험가 길시언이니 폐태자 길시언이니 하는 것들에 상관하지 않고요.”



“……”



“옛날 리타라면 뻔하죠. 이번에 봤을 때는 그냥 예전하고 똑같이 대했을 뿐일 테고요.”



정곡을 찔린 리타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후치는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정말로 리타는 그런 모양이었다. 리타는 소심하게 시선을 회피하다가 네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네리아?”



“흐아아아앙!”



네리아는 이름이 불리자마자 크게 울음을 터트리며 리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리타는 얼떨떨해하며 일단 네리아를 다독였다. 네리아는 그녀의 품에서 계속 울어댔다.



“왜 그래요, 네리아?”



“히끅! 나 때문인 줄 알고…… 흑! 내가, 얼마나…… 끅! 걱정했는데……”



참고 있었던 감정이 터진 모양이다. 그녀는 습격을 받은 후부터 계속 침울한 상태였다. 도둑 길드가 그들을 노렸다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것을 애써 무시했었지만, 결국 가능성을 인정하고 말았다. 일행은 부정했지만 계속 머리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 때문에 불안했다.



그때 외쳤던 말처럼, 그녀는 차라리 이들과 함께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거기다 이제 목숨까지 위험하게 만든다면 더욱도 같이 있어선 안 된다. 보잘 것 없는 자기 하나 때문에 모두 다 죽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생각이 계속 머리를 지배했다.



그런데 난데없는 폐태자의 등장으로 도둑 길드가 범임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길시언이 있는 동안은 긴장으로 인해 풀어지지 않고 있다가, 그가 떠나고 나자 긴장이 풀리며 안심과 함께 참았던 불안함이 폭발했다.



“흐아앙! 나는, 진짜로, 큽! 엉엉! 내가…… 아닌데, 왜? 으앙!”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말을 흐느낌에 섞어 내뱉었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리타가 손수건을 꺼내 닦아주었다. 이루릴은 곁으로 다가와 따스하게 네리아를 안아주었다.



“울지 마요, 네리아. 당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그래요. 그리고 혹시라도 도둑 길드가 왔다고 하더라도 나나 샌슨 같은 애들을 노리고 왔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자기 혼자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흐윽! 아, 아냐…… 그, 그게, 끅, 내가 괜히……”



두 장신의 여성들에게 안긴 네리아는 계속 울먹거렸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운차이가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



“이건 그 망나니 왕태자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칼이 말하지 않았나? 우릴 쫓는 인원은 많이 없을 거라고. 그런데도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피해망상이군. 이라고 전해줘, 후치.”



“…… 그거 그만둔 거 아니었어요? 어쨌든 그러는 군요.”



후치는 말을 전해주다가 몸을 떨었다. 시선을 돌린 곳에서는 세 여자가 범상치 않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네리아는 그야말로 눈물 젖은 눈으로 너무하다는 눈빛을, 이루릴은 이해할 수 없어 슬프다는 눈빛을, 그리고 리타는 반드시 죽여야 할 적을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뭐라고요?”



후치는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녀들을 보고 있지 않던 운차이는 모르는 모양이다. 그는 계속 말했다.



“애초부터 고작 실력 없는 좀도둑 하나에 자폭씩이나 해대는 정예를 파견한다는 게 비효율적인 일이지. 자기를 그 정도로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는 건가? 라고 전해줘.”



“어, 저…… 운차이, 이제 그만하는 게……”



후치가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리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어 운차이에게로 다가갔다. 운차이는 큼직한 그림자가 그를 가리자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리타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뭐……!”



미처 운차이가 반응할 틈도 없었다. 운차이의 몸은 호송을 위해 포박당한 상태였기도 한데다 리타는 살기까지 써서 그를 압박했다. 그리고 그의 입이 벌린 틈에 손에 들린 것을 입에 쑤셔 박았다. 네리아의 눈물을 닦아주던 손수건이었다.



“좀 조용히 하고 있어 주시겠어요?”



“……”



운차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어차피 소용없는 일이니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비쳐졌다. 그는 매서운 눈으로 리타를 노려봤지만, 눈빛만으로 보자면 리타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봐준 다음 리타는 몸을 돌려서 네리아에게로 돌아갔다.



네리아는 눈을 크게 뜨고 운차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꼴좋다! 뭐? 피해망상? 야! 넌 그따위로 밖에 말 못하냐? 내가 어딜 봐서 그냥 좀도둑인데? 이렇게 몸매 좋고 아름다운 좀도둑 봤냐? 봤냐고! 못 봤으니까 아무 말도 못하지? 엉?”



이루릴과 리타는 멍한 눈으로 네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 흐느꼈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 운차이를 향해 표독스럽게 말을 내붓고 있었다. 당연히 운차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때다 싶어 네리아는 그에게 마구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내가 실력이 없긴 뭐가 없어! 너도 내가 처음 돈 빌릴 때, 좋다구나 하고 나랑 말싸움이나 벌였잖아? 그게 멍청하게 속은 게 아니면 뭔데? 아, 그럼 실력 없는 나한테 당했으니 넌 완전 허접인 거 아냐? 그렇게 되네. 꺄르르.”



후치는 왠지 제미니를 마음속으로 불렀다. ‘제미니, 너는 저렇지 않았어. 역시 너만이 나의 천사…… 우아아악!’



네리아는 본격적으로 운차이에게 쏘아주려는지 일어서서 운차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는 그에게 집요하게 들러붙었다. 리타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기운을 차렸네요.”



“운차이 나름대로 위로해 줬을지도 모르죠.”



“운차이가? 설마.”



“하긴, 그렇죠.”



후치와 리타는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루릴은 네리아에게서 시선을 돌려 황야의 왕자가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칼은 아직도 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루릴은 말했다.



“인간은 관계에 의해 발전할 수 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 왕자, 길시언 바이서스는 그 관계 때문에 오히려 괴로워하는군요.”



칼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괴로워한다라……”



“그렇게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려 들지만, 그러니까 모험을 즐기는 보통의 낭만가의 모습을 견지하려 들지만 그 자신의 관계가 그를 그렇게 내버려두지는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그런가요? 기쁘군요. 저, 타인에 대한 이해력이 길러지는 것 같아요.”



이루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칼은 빙긋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다고.



리타는 그들의 말을 듣다가 몸을 돌렸다. 선량한 마음만으로 남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강한 사람으로만 세상이 가득하다면 훨씬 아름다워 질 텐데. 그런 사람들로 세상이 이뤄지는 날을 얼마나 아득하게 남아있을까.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선량함만으로 남을 이해하는 세상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특이하게도 그 기간을 수치화시켰던 것 같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리타는 고개를 젓고서는 운차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네리아에게 거의 고문 수준의 괴롭힘을 당하는 중이었다. 숨결이 바로 느껴질 듯한 거리를 유지하는 네리아를 어떻게든 떨쳐내고 싶어 하는 계속 숨 막힌 소리를 냈다.



“읍! 읍읍!”



“헤에? 너도 좋다고? 짜식.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하지만 안돼. 나 같은 미녀를 독차지했다간 세상 모든 남자들이 실망하고 만다고. 아, 물론 내 취향도 아니고.”



싱글벙글거리는 네리아의 얼굴은 제법 즐거워보였다. 리타는 그녀가 하는 모습이 어쩐지 제미니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잡지 않고 그녀는 운차이에게 다가가 몸을 숙였다. 그리고 입에 박힌 손수건을 빼냈다.



“후우……”



마치 춤추는 것처럼 화려하게 움직이던 운차이는 힘이 다한 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남의 눈물 맛이 어떤가요?”



“짜.”



운차이는 단번에 대답했고, 다시 그의 입에는 손수건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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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것으로 4장도 끝났습니다.

마지막편 올릴거라고 열심히 적다보니 13장이 나오더군요.

비축분으로 놔둘까 하다가 끊기도 애매한 곳이라 그냥 2편 연속으로 올립니다.

하나에 다 올리려니 다른 곳 2만자 글자제한에 걸리네요.

4장에서는 이것저것 표현해 보고싶은게 많았습니다.

제 스스로의 실력이 나타나는 오리지널 파트라든가, 왕에 관한 이야기, 다른 작품들과의 연계등.

잘 썼는지는... 솔직히 자신 없네요. 아무쪼록 재밌게 읽으셨기만을 바랍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ps. 5장은 일주일내로 들고 오겠습니다. 그동안 조회수랑 추천수, 댓글수를 올려두세요. 정주행해!






댓글 : 8 개
  • Jiha
  • 2015/05/12 AM 03:17
어.. 궁금한게
DR은 후치 시점의 소설인데 3인칭으로 쓰시는 이유라도 있나요.
이 소설의 제목은 아무르타트입니다. 주인공은 리타고요.
내면을 보기엔 1인칭이 좋지만 변화를 관찰하기엔 3인칭이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 grgr
  • 2015/05/12 AM 06:56
예전에 보다가 잊고 있었는데 역시 재미있군요

종이 책으로 읽고 싶네요ㅎㅎ
저도 종이책 내고 싶습니다. 흑흑
츤-츤데레 운차이 플래그를 꽂는군요 ㅋㅋㅋ
플래그 마스터 운차이 발탄!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하루하루 올라오는 재미도 있지만 기다렸다가 보는 재미도 좋군요. 다음 장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일일 연재를 안해도 된다는 말씀이신...(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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