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5. 복수의 검은 손길 (4)2015.05.26 PM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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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끝마친 여인들은 식당으로 향했다. 늦은 시각에 목욕까지 한 터라 식사는 아주 맛있었다. 배를 채우고 나서 남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단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식당도 그렇지만 펍도 밝기가 상당했다. 실내만 보자면 도저히 저녁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샹들리에와 벽에 달린 수많은 초를 보니 역시 수도는 수도라는 느낌이다.



그녀들이 펍으로 들어서자 실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후치와 샌슨은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의아해하다가 그녀들이 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놀라며 그녀들에게 시선을 못 박았다.



그녀들은 아직 물기가 남아 촉촉한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였다. 네리아는 아애 수건을 머리에다 감고 있었고, 이루릴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검은 머리가 불빛에 반짝였다. 리타와 타피는 머리를 위에서 한번 묶어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복장은 정말 파격적이다. 네리아는 남성용의 큰 셔츠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는데 거의 한쪽 어깨가 다 드러날 정도였다. 이루릴과 리타는 블라우스만 입은 상태였는데,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단추를 몇 개 풀어서 상당히 시원해 보였다. 흔하지 않은 엘프와 흔하지 않은 몸매의 소유자들답게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끌었다.



특히 아직 붉게 상기되어 복숭아 같은 얼굴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본인은 인정 안하지만 순진하기 그지없는 샌슨과 후치는 차마 더 눈을 두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여기들 계셨군요.”



“식사는 하셨소?”



“예. 식당에 갔다가 여러분이 이미 나가셨다고 해서 먹고 오는 길이에요.”



그녀들은 일행이 앉은 자리에 합석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시샘의 시선이 쏟아져서 후치는 뒤통수가 근질근질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여성들이 합석하자 재빨리 종업원이 달려왔다. 리타가 이루릴과 네리아에게 물었다.



“뭐 드시겠어요?”



“와인.”



“난 맥주!”



“그럼 저도 맥주로. 와인 한잔이랑 맥주 두잔 주세요.”



종업원은 주문을 받고 물러갔다. 칼이 리타의 주문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스마인타그 양은 와인을 더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리타는 칼에게 뭘 모른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칼. 원래 목욕 후에는 맥주라는 만고불변의 법칙이 있어요. 아무리 제가 와인이나 위스키를 좋아한다지만 법칙을 깰 정도는 아니죠.”



누가 그런 법칙을 정했는지 모를 칼은 그저 웃는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같은 말을 하는 리타의 앞으로 맥주가 금방 날라져 왔다. 리타는 네리아와 잔을 부딪친 다음 호쾌하게 맥주를 넘겼다.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던 주변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도 샌슨은 멍하니 이루릴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름대로 곁눈질로 보려는 것 같았지만 누가 봐도 대놓고 보는 수준이다. 샌슨은 이루릴이랑 눈이 마주치자 대번에 얼굴이 붉어졌다.



“저, 이루릴.”



“예?”



“사람들이 자꾸 쳐다봅니다.”



“왜지요? 아, 제가 엘프라서 그런가 보군요.”



“…… 그런가 봅니다.”



샌슨은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맥주잔을 들어올렸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샌슨의 반응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가볍게 갈증을 달래고 나자 본격적으로 일행은 다음 계획을 논의했다. 일행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칼에게 모아졌다.



“저희는 이곳에서 용무를 볼 예정입니다. 세레니얼 양은 내일 떠나신다고 하셨지요?”



“네. 아침에 델하파로 출발할 생각이에요.”



“그렇습니까. 혹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루릴이 잠깐 뜸을 들였다 대답했다.



“글쎄요. 여러분들은 여기 얼마나 머무실 계획이시죠?”



“못 돼도 2주는 걸릴 겁니다. 어쩌면 한 달 정도는 너끈히 있을 수도 있고.”



“그럼…… 제 용무는 그렇게 길지는 않을 겁니다. 2주쯤 후에 수도에 들를 테니, 절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돌아갈 때도 같이 돌아간다면 좋겠군요.”



샌슨의 간절한 시선이 칼에게 향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청년의 눈빛에 못 이겨 칼은 선선히 웃었다.



“좋겠지요.”



굳이 샌슨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루릴은 같이 여행하기 좋은 동료다. 검술과 마법에 정령술까지 쓸 줄 아는데다 지식도 해박하다. 눈이 즐겁다는 부가적인 요소도 한 몫 했다.



“그러면 래셔널 셀렉션을 여러분들이 좀 맡아주시겠습니까?”



“걸어가실 생각입니까?”



“전 엘프니까요. 숲을 통해 갈 땐 말보다 훨씬 빨리 갈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이어 칼은 리타를 바라보았다.



“스마인타그 양께서는 어쩌실 겁니까?”



“말씀드렸던 대로 내일 왕성에 같이 갔다가 일을 볼 생각입니다. 수도에서 알아봐야 할 일이 있으니, 그걸 확인한 다음에 떠나려고요.”



“그건 오래 걸리겠습니까?”



“어떻게 될 진 잘 모르겠네요. 잘 풀리면 하루 만에 끝날 테고, 안 된다면 칼보다 늦게 수도를 떠날 수도 있겠지요.”



“그렇군요.”



레브네인 호수에서 이미 말했던 대로였다. 이제 칼은 네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리아 양은?”



“음…… 여러분들에게 동행을 제의받긴 했지만, 원래대로라면……”



네리아는 리타를 힐끗 쳐다보았다. 리타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 그건 결국 무효처리 된 셈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네리아가 원해서 따라오기로 한 건 제가 아니라 일행이니까요. 네리아 마음 내키는 대로 하세요.”



리타는 도둑 길드에서 네리아를 고용하겠다고 했었다. 원하는 조건은 동행이라면서. 네리아는 아직 리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를 따라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스마인타그 양의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그 전까지 고민해 보십시오.”



“네.”



네리아는 머쓱하게 대답하며 애꿎은 맥주잔을 만지작거렸다. 후치는 다른 일행의 예정을 모두 다 듣고 나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칼에게 말했다.



“우리는 뭘 하죠?”



“우리들은 계속 이 여관에 머물면서 수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지. 주로 내가 돌아다니게 될 테니, 자네와 퍼시발 군은 좀 심심하겠지만.”



“따라다니면 안 돼요?”



“안될 건 없네만 자네들이 싫어할만한 일일세. 난 여러 관리와 귀족가에 들릴 생각인데, 사실 말해서 동냥질을 다니는 거지. 그런데 거기서는 별로 실질적인 도움도 안 되는 예의범절이 까다롭거든. 자네들이 그런 것을 익히려면 상당히 고생해야 할 걸세. 거기다가 구걸하는 사람 따라다니는 것도 자존심 상할 테고.”



후치의 표정이 미묘하게 경직됐다.



“구걸…… 이요?”



“몸값을 마련해야잖나.”



샌슨과 후치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칼의 말대로 그것이 그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여행은 단순히 바이서스 임펠에 도착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10만 셀이란 돈을 마련해서 아무르타트에게 바쳐야 무사히 끝나는 것이다.



“에라. 꼼짝없이 여관에 드러누워 천장만 바라봐야하나?”



투덜거리는 후치에게 칼이 점잖게 말했다.



“너무 실망말게. 자네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만나서 유익할 만한 분들께는 꼭 데리고 갈 테니”



그러자 네리아가 눈을 빛내며 칼에게 말했다.



“그럼, 칼 아저씨. 하루에 1셀씩 해서 애 봐주기. 어때요?”



“예?”



“내가 후치랑 샌슨이랑 돌봐줄 테니까 안심하고 돌아다녀요.”



“괜찮은 제안 같습니다만. 허허허.”



칼의 웃음에 네리아는 피식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농담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당분간은 저도 이곳에 있어야죠. 여기 도둑길드 녀석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네리아의 말에 갑자기 일행의 분위기가 무겁게 변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라무스 시의 도둑길드를 궤멸시킨 장본인들이다. 아직 습격을 당한 적은 없지만, 도시간 거리가 가까운 만큼 수도의 도둑 길드에서 틈을 노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으흠. 그게 또 변수가 될 수도 있겠군요. 이곳 도둑길드의 사정을 알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샌슨이 맥주잔을 빙글빙글 돌리다 말했다.



“저, 칼. 저희는 내일 궁궐에 가서 전하를 알현해야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때 도둑길드에 대해 말씀드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칼은 손을 테이블 위에 모아 올리며 생각에 빠졌다. 그는 말없이 테이블 위의 촛불을 바라보다가 샌슨이 기다림에 지쳐 맥주잔을 다시 돌리려고 할 때 입을 열었다.



“바로 요청하는 건 섣부른 일인 것 같네. 아직 우리는 실질적인 위협을 느끼지 못했잖은가? 그리고 우리를 만약 노리고 있다면, 내일 궁궐에 가는 것으로 국왕의 사절인 걸 알게 될 테니 더 신중을 기하게 되겠지.”



“도둑들이 그렇게 상식적으로 행동할까요?”



리타는 칼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투였다.



“네리아 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도둑길드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도둑길드는 위험을 회피하려고 노력하지만, 한번 정해진 것에 대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목표를 달성하죠. 아마 우리를 노리기로 했다면 사절단이란 명분은 크게 도움이 안 될 겁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생각보다 더 위험하단 것이군요. 흐음…… 퍼시발 군의 말대로 말씀드리는 걸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칼은 네리아를 바라보았다.



“네리아 양. 저희는 내일 전하를 알현하러 궁궐에 가는데 혼자 계셔서 괜찮겠습니까?”



네리아는 조금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궁궐이라면 두드러기가 나는데……”



그때 리타가 카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카피를 남겨두고 갈 겁니다. 궁궐이라면 카피의 정체를 알아 볼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겠군요. 카피 양이 같이 계시면 훨씬 좋겠지요.”



“그러면 그렇게 해요.”



네리아는 카피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카피는 앞에 놓인 쥬스가 맛있는지 홀짝거리며 베시시 웃었다. 붉은 머리칼을 가진 여성들끼리 안으니 마치 자매처럼 보인다.



“예. 그럼 퍼시발 군, 네드발 군. 자네들은 내일 오전 일찍 나랑 같이 옷을 사러 가세. 스마인타그 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복을 갖출 수야 없지만 궁궐에 들어갈 테니 옷은 제대로 갖춰야겠지. 그리고 운차이 씨의 신병을 넘기고 국왕 전하를 알현하세.”



“어, 어? 알현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알현할 수 있나요?”



“우리야 보통의 탄원자 같은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 말게. 우리의 임무는 국왕의 드래곤에 관한 것이니까.”



후치는 칼의 대답에 납득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갑자기 카피를 끌어안고 있던 네리아가 후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가 후치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



후치는 갑자기 허리를 더듬는 네리아의 손길에 화들짝 놀랐지만, 네리아의 손은 그의 허리춤에 있는 대거를 뽑는 것으로 그의 몸에서 떨어졌다.



후치가 의아하게 네리아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네리아! 오래간만이네?”



좀 떨어진 테이블의 남자 하나가 네리아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털이 수북한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인데 네리아를 만나 한없이 반갑다는 표정이었다.



네리아는 대거를 수건으로 감싸며 자리에 일어났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어머! 오랜만이야. 어머니는 잘 계시니? 저, 여러분. 저기 고향 친구가 있네요. 잠깐 갔다 올게요.”



그러더니 네리아는 남자들이 있는 테이블로 총총거리며 다가갔다. 정말로 고향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이지만 후치는 굳은 표정으로 지켜봤다. 세상에 대거를 숨기고 만나야 하는 고향 친구는 없으니까.



그는 바스타드를 무릎 위에 쓰러지게 만들어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남자들의 행색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언뜻 보아서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인상들이다. 하지만 스치듯 바라본 신발의 바닥에는 하플링의 발처럼 털가죽을 붙여놓았다. 저건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는 도둑의 도구다.



“후치, 왜 그래?”



리타가 갑자기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후치에게 물었다. 후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눈길로만 남자들을 주시하며 리타에게는 손을 뻗어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표시를 했다.



그의 행동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리타는 후치가 바라보는 쪽이 네리아와 남자들을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리아는 털보 사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옆에 있던 왼쪽 눈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네리아와 털보를 지나쳤다. 그 짤막한 순간에 털보는 네리아가 들고 있는 수건을 빼앗았다. 정확히는 수건에 감싸여있는 대거였다.



털보는 네리아의 허리를 쿡 찌르며 그녀를 일으켰다. 그리고 네리아의 어깨에 손을 걸치며 어깨동무를 했다. 흉터 남자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벽을 바라보고 서 있었고, 털보와 네리아는 일행에게로 걸어왔다.



“이봐요, 나, 고향 친구와 잠깐 어디 가서 이야기 좀 하고 올게요.”



칼은 어색함을 감추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렇소? 흠. 마침 네리아 양에게 말씀드릴 게 있었는데. 오래 걸릴 것 같소?”



“좀 늦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면 먼저 이야기를 끝낸 다음에 가는 게 어떻겠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요.”



“그럴까요?”



네리아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순간 털보 남자의 웃는 얼굴에 약간의 표정 변화가 찾아왔지만, 이대로 네리아를 억지로 끌고 가기에는 명분이 부족했다. 그는 별 수 없이 네리아를 잡은 손을 치웠다. 네리아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고, 털보 사내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좀 있다가 보자.”



“재촉 안 해도 도망 안 가.”



네리아는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털보 사내는 웃는 낯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돌리는 순간에 눈빛이 차가워지는 것을 후치는 놓치지 않았다.



네리아는 칼을 보며 빙긋 웃었다.



“고마워요.”



“별 말씀을. 저들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으니 최대한 평범하게 이야기 하는 척 합시다.”



“도대체 저 작자들 뭐죠?”



후치의 말에 네리아는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어깨는 과장되게 벌리며 뭔가를 말하는 척 했다.



“골치 아픈 애들이야. 도둑도 아닌 사기꾼이지. 길드에서도 쫓기는 최저인 놈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어째서 네리아 양을 찾는 거요?”



칼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물었다. 후치가 보기에 칼은 정말로 천부적인 연기재능을 타고 난 것 같다. 어떻게 저렇게 표정과 말이 다를 수 있지?



“날 쓰고 싶대요.”



“어디에 말이오?”



“그건 말 안 해줬어요.”



칼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턱수염을 매만졌다. 어떻게 봐도 네리아가 그의 부탁을 받아드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인자한 목소리를 냈다.



“불법적인 일일 것 같소?”



“저 치들이 하는 거면 아마도 확실할 거예요.”



“네리아 양은 어떻게 하고 싶소? 불법적인 일이라면 말리고 싶지만 말이에요.”



뒷모습만을 남자들에게 보여주는 네리아는 과한 몸동작과는 달리 진지하게 대답했다.



“싫어요. 보수를 많이 준다고 했지만 일 끝나면 날 죽일 거예요.”



순간 칼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그의 여유로운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샌슨은 험악해지는 얼굴을 감추려 일부러 고개를 숙였다. 후치도 그들에게 뒷모습만을 보인다는 사실에 다행으로 여겼다. 그의 인상도 샌슨과 별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굴을 보이는 위치에 앉아서 전혀 고생스럽지 않은 인물이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털보와 흉터, 둘 뿐인가요?”



“맞아요. 흉터도 알아 차렸어요?”



“지나가면서 가리는 걸 봤거든요. 같은 일당이 아니면 그렇게 교묘하게 하진 못하죠. 거기다 지금 뒤에서 우리를 아주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까요.”



“뭐, 그놈은 기본도 안 된 놈이니까요.”



네리아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리타는 계속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네리아를 보았다.



“저들이 도둑 길드에 쫓기는 처지라고 했나요?”



“그래요. 길드에서도 내놓을 정도로 아주 악질적인 놈들이에요.”



리타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맞은편에 있던 후치는 그녀의 아주 미묘한 표정 변화를 읽어냈다. 그녀는 분명히 웃었다.



“그러면 저 사람들을 잡아도 상관없겠군요. 거기다 길드에 쫓기는 처지라면 길드의 소식에 대해서도 잘 알 테니까요.”



리타의 말에 네리아도 웃음을 머금었다.



“그럴 거예요. 길드에 박아둔 정보원이 있는 거 같아요. 그렇지 않고선 길드의 추격을 미리 알아채고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거기다 수도에서 버젓이 돌아다닐 정도라면 어떤 암약을 맺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곧 웃음을 지우며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저 놈들은 무서운 놈들이에요. 지금은 단 둘 뿐이지만, 절대 쉽게 볼 만한 애들은 아니에요.”



“만약 저들을 제압한다면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나요?”



네리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뭔가를 참는 게 아니라 마음속으로 결심을 하는 것 같았다.



“가능해요. 우리끼리도 암묵적인 룰이 있으니까요.”



리타가 아주 가는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처럼 물어보죠. 도와줄까요?”



“…… 도와줘요.”



“좋아요.”



칼은 계속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했기에 이번에는 굳이 연기를 펼칠 필요가 없었다. 리타는 먼저 샌슨을 바라보았다.



“샌슨. 운차이는 잠시 칼에게 맡겨둬. 이루릴은 감시를 부탁해요.”



“네.”



“그리고 후치.”



“자, 난 뭘 하면 되죠?”



리타가 들키지 않게 키득거리더니 대답했다.



“잠시 내 동생이 돼줘.”



“네?”



“그리고 샌슨은 오빠가 되어주고.”



후치와 샌슨은 리타의 말에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리타는 테이블 위에 안주를 향해 손을 뻗다가 맥주잔을 건드려 넘어트렸다. 맥주잔에 담긴 맥주의 양이 상당했기에 순간적으로 허공이 황금빛으로 수 놓였다.



“꺄악!”



리타가 아가씨처럼 가냘픈 소리를 지르며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쏟아진 맥주가 그녀의 셔츠를 완전히 적셨다. 리타는 울상을 지으며 옷에 묻은 맥주를 털어냈지만 이미 상당량이 스며든 후였다.



“히잉.”



후치는 터지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재빨리 테이블을 치우는 척 했다.



“어엇. 어서 닦아요. 거기 안 흐르게 수건으로 가리고! 다행히 많이 튀진 않았네.”



“나한테 다 튀었잖아!”



앙칼진 리타의 목소리에 후치는 입술을 살풋 깨물며 말했다.



“그걸 왜 나한테 따져? 누나가 실수해서 그런 거면서. 다 누나 탓이지.”



정말로 자연스럽게 투덜거린 후치는 테이블을 열심히 닦았다. 이루릴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서 멀뚱거릴 뿐, 다른 사람들은 쏟아진 맥주를 닦는 척 했다. 카피도 알아차렸는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연기에 동참했다. 그리고 그 사이 샌슨이 운차이를 연결한 밧줄을 칼에게 은밀히 전달했다.



리타는 짜증난다는 듯이 손을 털면서 칭얼댔다.



“아, 찝찝해. 나 먼저 올라갈게.”



리타는 연신 투덜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러며 후치와 샌슨을 향해 윙크를 살짝 날렸다.



테이블에서 돌아선 리타의 모습은 꽤나 폭발력이 강했다. 원래부터 상당한 볼륨이었는데 셔츠가 젖어 완전히 달라붙자 가슴과 속옷이 비치게 되었다. 리타는 사람들이 자신을 다 쳐다보고 있자 의아해하다가 아래를 내려보더니 황급히 팔로 가슴을 가렸다.



“꺅! 뭘 봐욧!”



다른 남자들은 그녀의 반응에 허허 웃으며 겸연쩍게 시선을 돌렸다. 가리긴 했지만 그 동안에 볼 건 다 봤으니 나름대로 흐뭇한 것 같았다.



“아, 정말!”



리타는 성질을 부리며 가슴을 가린 채 재빨리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는 곳에 마침 털보와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리타는 부끄러운지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걸었다. 그 덕분에 앞에 있던 사람을 보고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부딪쳤다.



“앗!”



“아, 미안합니다.”



털보는 리타와 부딪치자 매너 있게 사과했다. 그다지 강하게 부딪친 것도 아니었고, 넘어지려는 것을 그가 손을 뻗어서 잡아줬다. 그 순간 리타가 거센 비명을 질렀다.



“꺄악! 어딜 만지는 거얏!”



털보에게 잡혔던 리타는 다급하게 가슴을 가렸다. 그리고 털보를 향해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이 남자! 내 가슴을 만졌어!”



“아, 아니야.”



털보는 당황하며 부정했다. 하지만 찢어지는 리타의 비명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에, 펍 안의 사람들은 확실한 상황인 것처럼 그들을 향해 도끼눈을 떴다.



샌슨과 후치는 순간적으로 리타가 원하는 상황을 이해했다. 그들은 우당탕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이 자식이 감히 우리 동생을 건드려?”



“어디다 손을 대는 거야! 아직 남자친구 한 번 안 사귄 누나인데!”



후치의 말에는 평소 당했던 것에 대한 다소의 복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매우 화난 것처럼 털보와 흉터에게 각각 다가갔다. 털보와 흉터는 아직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지 당황하며 그들을 말리려고 했다.



“진정하시오. 절대 난 그러지……”



“엎드려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변명을 해? 안 되겠군, 이놈.”



샌슨은 그의 무쇠 같은 주먹으로 흉터 남자의 턱을 올려쳤다. 바로 주먹을 날려 올 줄 몰랐던 흉터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후치는 놀라고 있는 털보의 어깨를 잡았다. 털보는 본능적으로 그 손길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후치의 악력은 그의 힘으로 도저히 떨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짐승 같은 놈들!”



“컥!”



털보의 배에 주먹을 박아 넣자 그는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후치의 전력을 다한 펀치는 아니었지만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오거가 후려치는 느낌이 들었을 테니 말이다.



그들은 각자 쓰러트린 남자를 붙잡았다. 그러자 리타가 재빨리 말했다.



“오빠! 후치! 너무 심하잖아! 내가 성질 좀 죽이라고 그랬지?”



“어?”



“아무리 잘못했다고 해도 다짜고짜 사람을 이렇게 때리면 어떡해?”



“아, 어…… 미안.”



“아니, 그렇다고 미안할 건 아니고. 으, 뭐…… 화내줘서 고마워.”



리타는 부끄러운 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펍 안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홀린 것처럼 빠져들었으나, 후치와 샌슨은 필사적으로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려고 애써야만 했다.



리타는 쓰러진 남자들을 보며 말했다.



“이 사람들 일단 데리고 가서 치료해주자. 그렇게 맞았으면 충분히 잘못한 거 알겠지.”



마음씨 착한 아가씨처럼 말하며 리타는 그들에게 손짓했다. 그러고 그녀는 계단을 올라갔고 후치와 샌슨은 머쓱하게 쓰러진 놈들을 들쳐 메고 따라갔다.



펍 안의 사람들은 재미난 해프닝이었다며 그걸 안주거리 삼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쓴웃음을 짓고 있던 칼과 다른 일행들도 서서히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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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연기자의 꿈을 가지고 시골 헬턴트에서 수도 바이서스임펠로 상경한 여자의 파란만장한 성공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 왜요?

그럼, 좋은 밤 되시길.
댓글 : 4 개
살기를 다뤄서 그런지 감정조절이 뛰어나네요 ㅋㅋ
사실 더 대단한 건 말한다고 바로 알아먹는 후치랑 샌슨
리타의 뱃속에는 구렁이가 한 100마리쯤 들어가 있는것 같군요 ㅋㅋ
그렇죠. 리타는 칼 욕할 처지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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