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르타트] 아무르타트 - ch5. 복수의 검은 손길 (7)2015.06.03 PM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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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치와 샌슨이 튕겨나듯이 벌떡 일어났다. 닐시언을 자세히 보니 확실히 길시언과 닮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길시언을 몇 년 동안 도서관에서 묵혀둔다면 닐시언처럼 될 것 같았다. 그러다 그들은 아직 한 명이 안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의 형언할 수 없는 곁눈질이 리타를 향했다. 하지만 리타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소파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닐시언은 벌떡 일어난 일행과 앉아있는 시녀 복장의 여자를 보며 의아해하다가 말했다.



“앉아요. 앉아요들.”



“저, 전하, 에, 그러니까……”



칼은 불쌍할 지경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후치와 샌슨도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앞에 있는 테이블을 치워버릴 수는 없으니 소파 뒤로 돌아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런 일행의 혼란을 닐시언은 한 마디로 정리했다.



“앉아요. 어명이오.”



“옙!”



지엄하신 어명이 내렸는데 어찌 국민이 어길 수 있겠는가. 일행은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착석했다. 닐시언은 콧잔등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난 국왕 닐시언 바이서스입니다. 그쪽은?”



맙소사. 국왕이 먼저 자기를 소개했어. 라는 경악을 내비치는 샌슨과 후치를 내버려두고 칼이 재빨리 인사했다.



“칼 헬턴트, 헬턴트 영주 대리이자 전권 대리인입니다.”



“샌슨 퍼시발, 헬턴트 경비 대장입니다.”



“리타 스마인타그, 헬턴트 숲지기 보조입니다.”



“후치 네드발, 헬턴트 초장이 후보입니다.”



“예?”



“아, 아니, 헬턴트 시민입니다.”



“아, 예. 그렇군요.”



후치는 만약 왕성에도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 임대절차를 밟고 정식으로 주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비슷하게 대답해놓고선 뻔뻔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타가 존경스러워졌다. 어떻게 저 여자는 국왕 앞에서도 태연할 수가 있는 걸까?



닐시언은 개성이 넘치는 자기소개에 감명을 받았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일행의 유일한 여성인 리타를 보고 있었다.



“레이디까지 오셨군요. 처음엔 시녀라고 착각했습니다.”



“저도 임펠리아의 시녀들이 저와 패션취향이 같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예?”



그리고 리타는 뻔뻔하게도 국왕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닐시언은 눈을 몇 번 깜박거리다 웃음을 지었다.



“유머러스한 레이디시군요. 동생이 좋아하겠습니다.”



“네.”



리타는 짤막한 대답으로 닐시언의 말을 받았다. 졸지에 뻘쭘해진 닐시언은 헛기침을 한 후에 두 손을 모아 손가락을 부딪쳤다. 그는 일행에게 말했다.



“흠. 캇셀프라임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오셨다고요?”



칼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곳이 마치 문무백관이 모두 모인 공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진중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예. 지극, 지존, 지고, 지인, 지애로우신 우리왕 닐시언 바이서스 전하께서 그 어린 백성이자 나날이 우리의 국왕 닐시언 바이서스 전하를 흠모하는 정을 되새기는 헬턴트 영지의 주민들이 극악, 간교, 포악, 잔혹, 무도한 창조의 실패물 블랙 드래곤 아무르타트의 부적합하며 몰가치적이며 무목적이며 야수적이며 비탄스러운 폭력에 의해 그 지극, 지존, 지고, 지인, 지애로우신 우리의 국왕 닐시언 바이서스 전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사……”



그 지…… 로 시작하는 모든 단어의 집합체에 가까운 닐시언 바이서스 국왕 전하는 입을 크게 벌리셨다. 하품이다.



“오늘 중엔 끝납니까?”



“예?”



“아, 혹시 내일까지 계속된다면 내일 일정을 좀 조절해야겠군요.”



닐시언은 두 손을 깍지 껴 뒷머리를 받치며 소파에 기댔다. 그는 허둥대는 칼에게 짤막하게 말했다.



“간단히 말해 주십시오. 그것도 어명으로 할까요?”



그런 어명까지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칼은 재빨리 대답했다.



“예. 캇셀프라임은 아무르타트에게 패했고, 휴리첼 백작은 아무르타트에게 포로로 잡혔습니다.”



닐시언의 표정이 굳었다.



“…… 차라리 긴 게 나을 뻔했군. 젠장.”



국왕의 입에서 감히 ‘젠장’이라는 단어를 말하게 한 국민은 어떻게 되는 것일지 후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닐시언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골치 아프군. 캇셀프라임을 써먹을 곳이 있었는데.”



일행은 긴장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국왕이 이제 화를 낼 차례인가? 하지만 닐시언은 금방 굳은 표정을 풀었다. 그는 그저 귀찮은 일의 한 부분을 처리하는 것처럼 물었다.



“흠, 용건은 그게 답니까?”



“예?”



“내가 불같이 진노했고, 당신은 용서를 빌었고, 그래서 은혜로운 내가 용서했다고 기록해 두면 되겠죠?”



“예, 예?”



“없다면, 이만.”



그 말을 끝으로 닐시언은 소파 귀퉁이에서 일어나 책상 귀퉁이로 옮겼다.



아직 소파에 앉아 있던 일행의 표정은 암석처럼 굳어버렸다. 점잖은 칼 마저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리타는 그저 무표정했지만 그녀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으로 봐선 심사가 불편한 모양이다.



물론 국왕이란 위치에 있는 이상 국민을 어떻게 대하든 그것은 그의 자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을 이런 식으로 대해선 안 됐다. 자기 필요한 말만 듣고 알아서 처리하란 식의 태도를 보이면 안 되는 거였다. 고작 그런 취급을 받기 위해서 수많은 역경을 극복해가며 새 옷까지 빼입고 궁성에 온 게 아니다.



그래도 국왕이기에, 일행은 이를 꾹 악물며 참았다. 칼이 심기일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 그 외에도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뭡니까?”



그다지 관심이 안 간다는 태도다. 여전히 귀찮은 것을 빨리 해치우자는 식의 태도.



“저, 저희들은 이 성스러운 성도로의 복된 여행 도중 모처에서 벌어진 어떤 불민한 사태에 봉착하여 그 사건의 배후를 조사하던 중, 국왕 전하께 크게……”



“짧게 하시오. 어명이오.”



“간첩을 잡았습니다.”



순간 닐시언의 눈빛이 변했다.



“그건 좀 길게 말해 봐요. 하지만 궁정 사집관들이나 좋아하는 그런 수식어는 빼고.”



마침내 칼의 얼굴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후치와 샌슨의 표정은 이루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만약 지금 이 자리가 국왕과 대면하는 자리가 아니었다면 당장에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거창한 환영식 같은 것을 기대하진 않았다. 병사가 온 게 아니라 사절이 왔다는 것은 패전이라는 의미일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랑 이렇게 서재로 불러서 짧은 말만 듣고 끝내겠다니. 기록에만 공식적으로 해두겠다는 말은 기만이다. 그건 정말 더없는 국민에 대한 기만이었다.



리타의 손가락이 좀더 빠르게 무릎을 두들겼다.



국왕이라는 위치에 있다 보면 상당한 허례허식에 찌들어 있을 터였다. 그로서는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말을 쓸모없는 단어들을 덧붙여 길게 늘리는 데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허례허식이 왜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을까?



그것은 관습이나 예의, 매너나 기품, 위세 등을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나라의 일을 고하고 의논하러 온 사람은 응당 그런 것을 추구해야 한다. 공식적인 석상이 아니라는 것부터 이 일은 단순히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증거다. 그래도 그건 바쁜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일행은 급사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식적으로 말하려는 칼을 제지하고서 알맹이만 듣겠다는 건, 그냥 자기 아랫사람에게 정보만 듣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왕과 왕으로부터 영지 관리를 위임받은 사람들끼리 취할 대화방식은 아닌 것이다.



리타로서야 애초에 관습이나 남들의 시선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니, 닐시언이 본론만 이야기하자 하는 것에는 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완전히 아랫사람을 자기 멋대로 대하는 태도는 아무래도 거슬렸다.



그 기분은 아마도 자신이 일행에게 동화되어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과거라면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대답을 해주지도 않았겠지만.



리타가 닐시언을 보는 사이에 칼은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는 되도록 자신의 감정을 감춘 채로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나열했다. 그것은…… 별로 듣기 좋진 않았다.



칼의 말을 듣는 닐시언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화했다. 그는 처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제대로 된 흥미를 보였다. 칼이 칼라일 영지에서 얻은 보고서를 건네주자 닐시언은 재빠르게 그것을 읽었다.



“굉장하군요! 그런데 혹시 실험 개요서나 설명서는 없습니까?”



후치와 샌슨의 몸이 꿈틀거렸다. 칼은 정말로 굉장히 혐오스럽다는 표정이었다.



“…… 아쉽게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칼을 비롯한 일행의 반응에 닐시언은 살짝 굳었다가 곧장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 혹시 내가 그 세이크럴라이제이션을 흉내 내어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진 마십시오. 증거가 뚜렷해야 자이펀을 공박하기 쉽지 않겠습니까? 증거가 불확실하면 허튼 소리다, 흑색선전이라는 말을……”



“…… 자이펀을 공박하기에 앞서 칼라일 영지의 주민들의 비극에 대해 먼저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칼은 거의 살기를 띌 정도로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닐시언은 칼의 말고 눈빛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리타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왕성에 따라 오길 잘 한 것 같았다. 헬턴트에 있는 늙은 마법사가 일행을 따라 가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악의에 대해서는 여행을 통해 많이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맹목적인 악의보다 더 어두운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나라라는 명분을 짊어지고서 타인에게 내보이는 무지의 악의를 보았다.



문득 운차이가 떠올랐다. 그날 밤의 대화가 생각난다. 그 대화를 좀 더 나눴으면 했다.



닐시언은 칼의 말에 밀려서 헛기침을 한 후에 칼라일 재건에 도움을 주겠다 말했다.



칼은 온화한 어투로 말했지만 그 태도는 상대방이 아무리 개 같더라도 자신은 인간다움을 견지하겠다는 것과 비슷했다. 칼은 계속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는 길시언과의 만남에까지 접어들었다. 닐시언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길시언? 그 모험가는……”



“전하의 형님이라고 주장하더군요.”



“…… 다 아는 모양이군. 계속하세요.”



칼은 계속 무감각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후치는 왠지 그 모습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표정도 없고 아무 감정도 섞지 않은 객관적인 말투.



길시언이 어떤 자들에게 습격당했다는 것을 이야기 할 때, 칼은 그것을 암살자들이 아니라 그냥 산적들 정도에게 습격당한 정도로 말했다. 하지만 닐시언은 바로 알아차렸다.



“암살자군요.”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국왕전하 만세.’라고 했다면서요?”



“한 개인이 죽을 때, 무슨 말을 할지는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어쩌면 그자는 평소에 만인을 두루 살피시는 전하의 덕을 남몰래 흠모해 왔기 때문에, 그 죽음의 순간에 전하의 만세를 기원한 것일 수도 있지요.”



칼의 말은 카피가 빙결 브레스를 쓴 것처럼 차가웠다. 닐시언은 이야기를 하던 칼의 어투에서 무엇인가를 느꼈는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입술을 비틀었다. 참으로 싸늘한 표정이었다.



“내가 당신들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저는 전하의 성은에 힘입어 술 빚고, 빵 사며, 책을 읽는 독서가입니다. 전 그것을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엄격히 정의한다면 그것은 이 나라 바이서스에 대한 사랑이겠죠. 그러나 전하께옵서는 바이서스라는 이 국가를 개인으로서 대신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터놓고 이야기합시다. 당신, 말하는 투로 보아하니 촌구석에서 올라와 자기 고장의 일로 한 국가의 장인 날 귀찮게 만들 정도의 위인은 아니군요. 당신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길시언 형님은 전란으로 혼란스러운 이 나라에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많은 분입니다. 쿠데타를 일으킬 만한 세력의 앞잡이가 되기에는 가장 훌륭한 대외 명분감입니다.”



“전하. 제가 알기로, 국왕은 어느 변두리 시골의 촌로가 키우는 수탉이 여우에게 잡혀가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되는 분인 것 같습니다.”



칼의 말은 엄격했고, 그만큼 냉정했다. 그는 닐시언의 흔들리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촌구석에서 올라와 자기 고장의 일로 한 국가의 장인 전하를 귀찮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런 귀찮은 일이 싫어서 우리를 이런 장소로 불러들여 간단히 끝내기로 마음먹으신 겁니까? 저희들이 전하께 찾아온 목적은 캇셀프라임의 패퇴 소식과 이에 따라 저희 영지에 대해 끼쳐질 해악에 대해 상의 드리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그것은 도외시하시고 길시언 폐태자에 대한 일을 말씀하시는군요.”



닐시어는 허둥대며 대답했다.



“아, 그건, 아무르타트가 10만 셀을 원한다고요? 알겠습니다. 내가 마련하죠. 그건 그렇고……”



“감사하신 말씀입니다. 전하의 확언으로, 어리석은 촌부인 전 커다란 안심을 느낍니다. 그럼 성총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전하의 귀중한 시간을 더 이상 방해하지 않도록 물러남을 허락해 주십시오.”



칼의 정중함은 절대로 정중하지 않았다. 마침내 닐시언은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소리쳤다.



“젠장, 이보십시오! 내가 어쩌란 말입니까! 지금 자이펀과의 전쟁만 해도 숨가쁘단 말입니다! 내 머릿속에는 그 전쟁에 대한 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전쟁과 상관없는 일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들의 일에 시간을 뺏길 수는 없단 말입니다! 난 지금도 어전 회의를 잠시 중단시켜 놓고 시간을 낸 겁니다!”



닐시언은 한 번 폭발하자 그 기세를 계속 이어갔다. 그러나 칼의 시선은 여전히 냉정하기만 했다.



“끊임없는 어전 회의가 매일 계속됩니다. 당신 영지에 대해서는 미안하지만, 지금 웨스트 그레이드의 어느 외딴 영지에 대해서까지 신경 쓸 수는 업승ㄹ 만큼 시급한 현안들이 쌓여 있습니다. 내 형님인 길시언의 일도 그중 하나입니다만, 그 밖에도 산적한 문제가 끝도 없습니다. 이 지역의 병탄은 전략적으로 어떤 이점을 주는가, 저 장군의 아들을 강등시키는 일은 그 장군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내 여동생은 과연 예쁜가!”



“예에?”



마지막 말은 꽤나 이상한 것이었다. 리타만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을 뿐, 다른 사람들은 멍하게 닐시언을 바라보았다.



닐시언은 일장 연설을 펼치느라 가빠진 숨을 고르고서 말했다.



“우습습니까? 내 여동생, 이 임펠리아에 꽃을 피어나게 할 정도로 재주 좋고 상냥한 내 여동생을 과연 헤게모니아 국왕의 빈으로 보내는 것으로써, 헤게모니아가 장악한 북부 대로에서 우리 상인들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게 하여 원활한 상거래로 소금 값의 안정을 가져와, 전쟁 이전의 비율로 물가 성장률을 억제시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긴 물음을 간단히 줄인 겁니다.”



후치와 샌슨은 머리에서 김이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눈만 껌벅거리며 닐시언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생각했지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바이서스어라는 사실 뿐이다.



그러나 칼은 아는 모양이다. 그리고 리타도.



“안 됩니다.”



“더 나빠집니다.”



둘의 입에서 동시에 부정적인 대답이 나왔다. 닐시언은 둘 중 누구를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시선을 헤맸다.



“예?”



칼과 리타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리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소금 값을 낮춰서 물가를 안정시킬 순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리타는 까딱이던 손가락을 곧게 펴서 무릎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리타는 닐시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소금은 필수재입니다. 필수재의 특성상 그것은 수요가 일정량 이상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급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요. 세율 감소로 인해 공급량을 늘려서 수요와 균형을 이루는 가격 점을 낮추시겠단 말씀 같은데, 헤게모니아의 수출 세율 감소가 바이서스의 가격 감소까지 이어지진 않습니다. 세율 감소라는 것은 상인에게는 이득을 추구할 수 있는 길입니다만, 그 상인의 대상이 한정된다는 것은 가격 책정권을 상인 측에서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반드시 필요한 상품의 가격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없을 경우에 경기의 기반이 흐트러집니다.”



“……”



후치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샌슨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서 리타의 말을 이해하는 건 칼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닐시언조차도 눈을 크게 뜨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칼은 리타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북부대로는 험악한 곳이므로 소금을 운반하는 상인들은 대규모로 상단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시이기 때문에 인력이 부족하고, 결국 그렇게 할 수 있는 상단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스마인타그 양이 말씀하신 건 이 부분입니다. 몇 개 되지 않는 상단만이 소금을 유통하게 될 경우 가격 담합이 일어나서 물가를 쥐고 흔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거기다 군대로 보급해야 하는 소금은 규제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나라에서 법으로 소금 값을 규제하려고 하면, 오히려 공급량의 조절로 품귀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암시장이 형성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게 군부와 연결되어 있다면 더더욱 패착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통행권을 원활하게 하고 세금을 낮추는 것은 소수 상인의 주머니만 불려 주는 결과를 낳게 되고, 실제적으로 경기에 도움이 되는 요소는 없는 셈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더 나빠질 수도 있겠지요. 초반에 싼 가격으로 납품하는 소금 때문에 국내 영세 소금 채취 업자들이 설 자리를 잃고 도산하는 길을 걷게 된다면, 그만큼 나중에는 전적으로 소금을 수입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필수적으로 필요한 소금을 타국에 의존하는 사태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 헤게모니아는 바이서스와 달리 소금은 산에서 채취합니다. 질 좋은 소금을 산에서 손쉽게 채취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서스와 같이 염전이라는 방식을 취하지 않아도 되어 공급 단가가 매우 낮습니다. 수입하는 가격을 생각해도 원가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국내 소금 채취 업자들의 경쟁력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매점매석이 벌어지게 된다면 국가가 통제하려고 해도 이미 가격은 요동치기 시작할 겁니다. 한번 흔들리기 시작한 가격은 전체적인 물가에도 영향을 주며 쉽게 안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태를 일으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반드시 나쁜 결과만 낳진 않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지요.”



후치는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감히 국왕의 앞에서 하품을 했다는 휘황찬란한 죄목을 목에 달 것 같았다. 샌슨은 이미 눈이 스르륵 감겨오는 모양이다.



닐시언은 리타와 칼의 말에 완전히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되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물가가 치솟는 대로 내버려둘까요?”



칼과 리타는 다시 서로 시선을 부딪쳤다. 리타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전과 달리 눈을 감으며 몸을 뒤로 젖혔다. 전적으로 칼에게 일임한다는 의사였다.



칼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리고 손을 깍지 껴 무릎에 얹으며 소파에 편안히 몸을 기댔다.



“어전 회의에서 상의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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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갓 헬턴트.

원작에서 가장 통쾌하게 여겼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솔직히 당시는 뭔 소리를 하는지도 몰랐지만 건방진 국왕을 벙 찌게 만들었다는 게 좋았죠.

그럼, 좋은 밤 되시길.
댓글 : 4 개
크 칼의 명대사중 하나죠ㅋㅋ
어전 회의에서 상의해 보시죠ㅋ
진짜 칼의 매력이 제대로 드러나죠
제가 dr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지요 ㅋㅋ
언제나 칼 같은 사람이 지금 정부에도 있으면 하고 생각하지요.
정치적인 발언이었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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