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져온 괴담] 역사속의 괴담 ~ 15 ~2010.06.28 PM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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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종의 아내였던 제헌왕후(폐비윤씨)가 질투심이 심하고 악했다는 기록은 상당히 많습니다..


작자 미상의 야사집인 기문총화에 나오는 얘기에는 성종의 정비 였던 공예왕후가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은 제헌왕후가 부린 귀신 때문이라고 나오는데 제언황후는

자신의 몸종이였던 소녀를 이용 원귀를 키웠다는 겁니다..


제헌왕후는 나지라는 아이를 데리고 성에 들어 왔는데 나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고

성격이 요사 스러 웠다고 언급 됩니다..


나지는 상당히 음한 성격에 아무리 사소한 말다툼에도 앙심을 품는 성격 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모시는 제헌왕후와도 그리 궁합이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제헌왕후는 성종이 만나고 다니는 여자들에게 투기를 부렸고 치륵이라는 무당을 만나고 다니며

저주를 담은 부적을 가지고 있다가 발각되는데 나지가 범인으로 몰려 교살되서 죽습니다..


이때 제헌왕후는 몰래 치륵을 찾아 갔는데 나지의 생전이 입던 옷과 머리카락을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치륵은 이를 재료로 인형을 만드는데 여기에 나지의 원혼이 담겨 있으므로 저주의 매개체로 쓰라고 했고

제헌왕후는 이 인형을 가지고 공예왕후를 죽이기 위한 저주를 걸었다고 합니다..


이후 공예왕후는 시름 시름 앓게 되는데 점차 밤마다 귀신이 보인다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공예왕후가 죽기전에는 그녀의 몸에 심한 손톱 자국 비슷한 흉터가 나고

몸의 관절 부분이 붉게 변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때문에 저주설이 나오기도 했죠,,


공예왕후는 점점 약해졌으며 결국 19세의 어린 나이에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후 뒷처리를 못했는지 나지의 원귀는 자신의 원한을 저주를 건 매개체로 돌렸다고 합니다..


공예왕후가 죽은후 제헌왕후는 아들 '신'을 낳았는데 이 아이는 체 1년도 안되서 죽습니다..


이때 제헌왕후는 꿈에서 나지가 자신의 아들을 목을 졸라 죽이는 장면을 보았다고 합니다..


나지의 원한 때문인지 아들을 잃은 제헌왕후는 치륵을 찾아가 대책을 강구 했고

몇달간 치성을 지내서 나지의 원혼을 떨쳐 냈다고 합니다만,, 완전히 몰아 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 제헌왕후는 둘째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들에게는 별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지의 귀신이 자꾸 나타나 아기를 괴롭 혔다고 하는데

그것도 제헌왕후가 아기를 보러 올때 마다 였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궁에서는 제헌왕후가 자신들의 아이를 죽이려고 한다며

첫째 아기도 그녀가 죽인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제언황후도 나지 귀신에게 시달려서 심리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더욱더 포악하게 굴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성종에게도 화를 낼 정도 였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 되자 제헌왕후는 궁에서 쫒겨 나는데 이때 제헌왕후는

셋째 아들을 낳았습니다만 이 아들은 일주일도 못가서 죽습니다..


둘째와 생이별 하고 막내 아들의 죽음을 겪은 제헌왕후는 절망 했으며

궁에서 나간 이후에도 나지의 원귀에게 계속 시달렸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제헌왕후의 어머니가 치륵을 불러서 귀신을 몰아내 달라고 했는데

치륵은 굿을 하던 도중 그래도 발광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나지의 원풀이는 계속 됬고 헌왕후는 몸과 마음이 다 병들었고 점점 광증이 짙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광기에 미친 제언황후가 사약을 먹고 죽을때 제언황후의 어머니는

꿈에서 요사하게 웃는 나지의 모습을 보았다는 애기도 있습니다..


또한 이외에 공예왕후의 죽음에는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원귀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한명회의 딸들인 예종비 장순왕후와 성종비 공혜왕후가 일찍 죽었기 때문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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