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져온 괴담] 한 여름밤의 이야기 - 3 -2010.06.20 PM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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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에 들어가는 걸 주저했다.

[중년 여자]

[시체가 된 터치와 해피]

[무수하게 박힌 대못]

머리속에서 그 날밤의 사건이 꿈틀거리며 되살아난다.

나는 진쪽을 쳐다봤다. 진은 아무 말없이 산을 올려다 보았다.

진도 분명 부서울 테지.

역시 들어가는 건 무섭다...나는 그가 이런 말을 해주길 기대했다.

진은 바지주머니에서 1회용 카메라를 꺼내 들더니,

진 [좋아.]

그렇게 말한 뒤, 산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뒷모습에 끌려가듯 따라 달렸다.

진은 되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나는 필사적으로 진을 쫓았다.

혼자 남는 것은 무서웠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진도 무서워한 것 같다.

무서우니까 더욱 더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달린 것이리라.

점점 그 장소가 가까워졌다.

생각해내고 싶지 않았지만 저절로 그 때 광경이 되새겨졌다.

마음속 가득 공포가 몸을 폈다.

두려움에 다리를 놀리기 힘들어졌을 쯤 그 장소에 도착했다.


[중년 여자가 나무에 못을 박던 곳]

[중년 여자가 터치와 해피를 죽은 곳]

[중년 여자가 나를 땅바닥에 내팽겨 쳤던 곳]

[중년 여자와 만나버린 곳]

나는 누군가가 보고 있단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 누군가가 아닌 [중년 여자]가 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산속의 정적과 내 마음속 공포가 만나 싱크로했다.

멈춰 선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진은 그 나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다 진은 뭔가를 찾아낸 듯 바닥에 주저 앉았다.

진 [해피....]

그 말에 나는 몸의 떨림도 잊고 진 옆으로 다가갔다.

해피는 이미 흙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썩어서 드러난 두개골 중심에는 조금 녹슨 못이 여전히 박혀 있었다.

보고 있기 불쌍해 못을 뽑아 주려 했지만, 진이 나를 제지하곤 사진을 한장 찍었다.

나는 냉정한 진의 태도에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못을 뽑으려 했다.

두개골에 꽂혀있는 못을 잡은 순간, 두개골 안에서 엄청나게 많은 벌레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물처럼 솟아오르는 작은 벌레들이 무서워, 더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속이 메쓰꺼워진 나는 그 자리에서 토해버렸다.

진은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두드려줬다.

나는 그 날밤 해피와 터치를 죽게 내버려둔 주제에, 또 다시 해피를 방치해버렸다.

나는 너무나 약하고 최악인 인간이다.

진은 카메라를 들고 그 나무를 찍으려 했다.

진 [응? 어이~ 잠깐만 와봐.]

뭔가를 발견하곤 나를 부르는 진. 나는 조심스레 진 근처로 갔다.

진 [이거....전에는 없었지?]

그가 가리킨 곳은 무수한 사진들이 박혀 있는 근처.

이건 전에도 있었....

아니....

사진이 달랐다.

이전에 봤던 4~5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애 사진 옆에 사진이 또 붙어있었다.

사진 상태로 봐서 며칠 정도 전에 박아 놓은 듯 했다.

예전에 봤던 사진은 이미 비바람에 닳아 간신히 사람 사진인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새로운 사진 역시 4~5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애였다.

이 떄 진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새 사진이 나라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에 가슴을 졸였다.

진은 사진이 박힌 나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진 [이제 남은 건 비밀 기지에 있는 그 글자들인가.]

그러면서 또 다시 달렸다.

나는 근처에 중년 여자가 있을 것만 같았기에, 당황하면서도 바로 진을 쫓았다.

비밀 기지에 가까이 갔을 쯤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나 [진!! 잠깐만!]

평상시라면 비밀 기지의 지붕이 보이는 위치에 왔으나 지붕이 안보인다.

진도 그걸 깨달은 듯 했다.

머리속으로 [중년 여자]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가슴의 고동이 격렬해졌다.

진 [뒷길로 가자.]

나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뒷길은 평상시 다니던 길과는 다른 뒤쪽 수풀로 진입하는 길이었다.

이 길은 비밀 기지에 적이 습격해왔을 때를 위해 만들어둔 길.

만들 때는 놀이로 만들었지만, 설마 이런 형태로 도움이 될 줄은...

이 길이라면 비밀 기지에 [중년 여자]가 있다 해도 발견될 확률이 낮다.

나와 진은 바닥을 기어서 비밀기지 뒤쪽 수풀 속 터널을 통과했다.

그리고 비밀 기지 근처에 도착했을 쯤, 이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비밀 기지는 산산조각나있었다.

한동안 제자리에서 주위 상황을 살폈지만 중년 여자는 근처에 없는 듯 했다.

우리는 수풀 속에서 빠져나와 비밀 기지가 있었던 장소로 다가갔다.

산산조각난 비밀 기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고 싶어졌다.

비밀 기지는 나와 진, 쥰 그리고 해피와 터치의 집이었으니까.

산산조각난 잔해 옆에 큰 돌이 떨어져 있었다.

아마 누군가가 이걸 비밀 기지로 던진 것 같았다.

누군가? 아니....분명 [중년 여자] 일테지...

진은 아무 말 없이 사진을 찍었다.

잔해를 파헤쳐 발견한 나무에 새져진 글자들도 찍었다.

그러던 중 잔해 틈새에서 터치의 시체를 발견했다.

해피와 터치.

우리는 그 날 무엇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두마리의 친구를 잃었다.

진 [좋아. 이 카메라, 빨리 현상해서 경찰한테 가자.]

그리고 우리는 산을 내려와 근처 파출소를 향해 달렸다.

카메라에 찍힌 사진만 보여주면 그 여자는 체포될 거고 우리는 살 수 있다.

이 생각만 하며 달렸다.

가는 도중 사진관에 들려 사진을 현상했다.

완성은 30분 뒤라고 했기에 가게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 동안 진과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사진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30분 뒤.

기다리던 사진이 나왔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재빨리 움직였다.

가게 점원은 조금 이상하단 표정을 하면서,사진이 들어간 봉투를 내밀었다.

개 시체나 못에 박힌 여자애 사진이 내용물이니까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하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서 봉투안의 사진을 전부 확인한 뒤 대금을 지불하고 나왔다.

그리고 바로 파출소로 발을 옮겼다.

이걸로 모두 끝이야.

우리는 파출소 안으로 뛰어들었다.

경관 [응? 무슨 일이지?]

안에 있던 젊은 경관은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우리 [[도와주세요!!]

우리는 그 날 밤 있었던 이야기를 경관에게 들려주었다.

증명사진도 한 장 한 장 꺼내보이면서.

그리고, 지금도 [중년 여자]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대충 이야기가 끝나자 경관은 온화한 표정으로 부모님에겐 이야기 했냐고 물었다.

아직 말하지 못했다고 말하니,

경관 [그러면 집 전화 번호 가르쳐줄래?]

진 [어째서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는 거에요. 그 여자가 노리는 건 우리라구요!]

그러면서 절박하게 외쳤다.

덧붙여 진네 부모님은 의사랑 간호사.

고등학생인 형은 근처 유명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 세사람 중 가장 유복한 집이었만 동시에 가장 엄격하기도 했다.

그 날밤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놀러갔다가 이런 일에 말려든 게 밝혀지면

나랑 쥰도 문제지만 신이 가장 크게 벌을 받을 건 분명했다.

진 [제발 도와줘요! 경찰이잖아요!]

그 말에 경관은 조금 쓴 웃음을 지으며,

경관 [너희들, 초등학생이지? 이런 일은 부모님과 상의해야만 해.]

그렇게 당분간 실랑이를 벌이던 중 경관이 말했다.

경관 [그럼 너희들 담임 선생님 성함은 뭐야?]

우리에게 있어서 부모님 못지 않은 위협이었다.

경관은 우리들의 부모님이나 책임자에게 이야기를 들어야 된단 입장이었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부모님이나 담인은 벌을 주는 존재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리 마음속에 눈앞에 있는 경관에 대한 불신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으면 결국 부모님에게 들킨다...라는.

이 경관은 우리 이야기를 믿지 않은 거 같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구하고 있는 부모님이니 담임이니 하며 말만 돌리고.

[중년 여자] 에 대한 증거로 사진까지 가져왔건만...

나는 경관에게 한번 더 사진을 꺼내보이며 말했다.

나 [개를 이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여자라구요!]

그러자 경관은 잠시 침묵하더니 뜻밖의 한마디를 꺼냈다.

경관 [뭐? 이게 개라구?]

우리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냐 싶어서.

경관은 계속해서,

경관 [아니, 너희를 못믿는 게 아니야. 좀 더 자세히 알려줘. 여기가 머리?]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몰랐던 것 같다.

나는 해피의 사진을 가리키면서

나 [그러니까....]

설명을 하려 했지만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이 사진은 객관적으로 보자면 개 시체로는 안보일지도...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갈색으로 변색된 뼈와 듬성 듬성 남아 있는 털.

우리는 해피가 죽은 다음 날 모습을 봤기 때문에, 부패가 진행되었어도

원래 모습을 알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너덜거리는 걸레 정도로 보일 것이다.

나는 다른 사진도 냉정하게 살펴봤다.

나뭇판에 새겨진 저주의 글자, 여자애 사진에 박힌 못.

어떤 것도 [중년 여자]와 연결시키긴 어려웠다.

혹시 경관은 어린애 장난으로 생각해서 부모님이나 담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가?

나는 이대로 여기 있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나 [분명히 부모님한테 연락할 거야.]

나는 진에게 작게 속삭였다.

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턱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진은 갑자기 바깥을 향해 달려나갔다.

나 역시 그를 따라 파출소를 빠져나갔다.

뒤에서 경관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렸다.

경관은 결국 뒤쫓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장난을 치러온 꼬마애들이 거짓말을 들통날 것 같아서 도망친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 같다.

우리는 경관이 뒤쫓아 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 골목길에 앉아 향후에 대한 일을 논의했다.

나 [지금부터 어떻게 하지?]

진 [...그게....]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지막 비장의 카드였던 경찰의 도움은 소득도 없이 사라졌다.

이걸로 전부 해결된다.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충격도 컸다.

나 [이대로 가면 그 여자한테 집주소도 들킬 거야...]

나는 무서웠다.

진 [....당분간은 그 여자랑 마주치지 않게 주의해야 해...]

나 [이제 무리야! 쥰의 학년이랑 반까지 알고 있으니까 우리도 들키는 건 시간문제라구!]

진 [하지만 그 여자,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 생각이 진짜 있을까?]

나 [뭐?]

진 [일전에 우리들 그 여자랑 만났잖아. 만약 뭔가 할 생각이라면 그 때 했을 거야.]

나 [......]

진 [거기다...산에는 우리들을 저주하는 건 안 보였잖아?]

나 [......]

분명 산에 갔을 때 우리들에 대한 저주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비밀 기지는 부셔버렸지만.

여자애에 대한 사진이 늘어나긴 했지만...

우리들...특히 이름까지 들통난 쥰에 대한 저주도 안보였다.

나는 내심 반론하고 싶었지만,

그와 동시에 진의 말처럼 [중년 여자]는 분명 우리에 대해 잊어버린 게 아닐까.

...제발 그래줬으면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진 [우리를 진짜 원망하고 있다면 뭔가 반응이 있어야 되잖아.]

그렇게 말하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진 [학교 근처에 돌아다니는 것도 우리가 아닌 사진의 여자애를 찾는 걸수도 있어.]

나 [...그럴까...]

나는 진의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렇다고 할까, 진의 말을 토대로 나 자신을 납득시키려 했다.

그것은 현실 도피에 가까웠다.

진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중년 여자]에게서 도망칠 방법은 없다고.

하지만 우리들은...

[그래! 분명 우리들을 잊어 버렸을 거야!]

[잊었어. 분명 잊었어.]

[아, 제길. 쫄아서 손해봤다!!]

[진짜 그 여자 짜증나네.]

그렇게 서로 강한 척 했다.

어떤 의미 자포 자기 상태였다.

한동안 그 자리에서 [중년 여자]에 대한 험담을 나눴다.

그러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쯤,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진과 헤어지기 전,

진 [내일은 쥰네 집에 가보자구.]

나 [응! 그럼 내일 봐!]

서로 밝은 표정에 손까지 흔들며 헤어졌다.

내 마음은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나 [그래...분명 그 여자는 우리들에 대한 건 까맣게 잊었을 거야. 분명...]

자기 암시라도 걸듯이 나는 그 말만을 반복하며 집으로 향했다.

위를 올려다 보니 구름도 없고 별들이 반짝이는 매우 맑은 밤하늘이 보였다.

그걸 보고있자니 지금까지 [중년 여자]에 대한 고민에 가슴 졸이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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