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져온 괴담] 껌 ~ 8 ~2010.06.22 PM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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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일어나. 늦겠어. 6시 10분이야, 10분. 어서 준비해야지!”


6시 10분이라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킨다.


“알람이 왜 안 울렸지? 아... 어제 배터리를 빼 놨지 참.”


침대 옆, 탁상 위에 핸드폰과 배터리가 분리되어 다소곳이 놓여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것들을 조립하고 핸드폰을 켰다.

로딩화면이 지나자 은비의 사진으로 꾸민 대기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캐치콜이 38건 있습니다.]


캐치콜.

통화중이거나, 핸드폰을 꺼놨을 때 걸려왔던 전화를 문자로 보내주는 서비스였다.

4시에 오주임의 전화를 받고 핸드폰을 껐으니,

약 2시간 만에 38건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뭐 해 자기야. 아침 차렸으니까 어서 씻고 나와!”


방 밖에서 아내의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나는 잠시 침대 맡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 38건의 부재중 전화가 모두 오주임에게서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할 뿐이었다.


......


......


“은비야 아빠 나가시는데 인사해야지.”


“하암...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아우 졸립다.”


“자기 오늘 나 동창회 있는 거 알지? 저녁 차려놓고 나갈게.”


“엄마, 나는?”


“은비는 엄마랑 같이 가야지. 엄마랑 맛있는 거 먹고 오자.”


“정말! 와 신난다!! 아빠 나 엄마랑 맛있는 거 먹고 올게!”


......


......


“하아암.”


대체 몇 번이나 하품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턱이 안 빠지는 게 용 할 정도로.


“김대리는 하루 종일 하품만 하는구만. 어제 그렇게 피곤했나?”


두툼한 서류뭉치를 책상에 탁탁 두드리던 박과장이 내게 말했다.

40대 초반으로, 안경을 쓰고 앞머리가 조금 벗겨졌다.

지극히 셀러리맨답게 생겼다고 해야 할까?


“아, 예. 조금요. 가뜩이나 힘든데 새벽에 오주임이 술 먹고 전화까지 했거든요.”


내 말을 들은 박과장이 잠시 손을 멈춘다.


“응? 오주임이? 그래서 오늘 아침에 전화를 안 받은 거구만.”


“아, 예. 뭐... 다른 사람들도 안 받던가요?”


“내가 건 사람들은 다 안 받았어. 이주임이랑, 양주임이랑, 양대리까지.”


단체로 전화를 안 받는다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저, 오부장님은요? 오부장님께는 해 보셨어요?”


박과장이 고개를 젓는다.


“상사한테는 안 했어. 뭐 중요한 전화는 아니었으니까 상관없지만. 기획서 오늘 오후까지 내는 거 알지?”


“예, 지금 쓰고 있어요. 아 그런데 너무 가혹한 거 아닙니까. 당일 출장 바로 다음날에 기획서라니.”


내가 말하자, 박과장이 눈을 부릅뜬다.

나는 그 모습에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미리 미리 해 놓으면 좋잖아. 질질 끈 게 누군데 그래. 김상무님 결제니까 깔끔하게 해야 된다.”


“예, 예.”


골치가 아파온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김상무한테 급조한 기획서가 통할 리가 만무했다.

갑자기 어제 씹었던 껌 생각이 났다.

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왠지 그 껌을 씹고 있으면 일이 잘 될 것만 같다.

주머니를 뒤져 껌 하나를 빼 입에 넣었다.


-아그작


황홀한 단 맛이 마치 전기가 흐르듯 온 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왠지 껌의 개수가 줄어든 느낌이었다.

주머니에서 껌 들을 빼내어 개수를 세어보았다.


“셋, 넷, 다섯... 여섯.”


여섯 개?

내가 둘, 오주임이 하나, 그리고 어제 택시기사가 하나.

그런데 왜 여섯 개가 남은 거지?

열두 개를 받았으니 여덟 개가 남아야 되는 거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껌 두 개의 행방을 추측할 수가 없었다.

결국 택시에서 흘릴 때 두 개를 더 흘린 모양이지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


기획서를 마무리 하고 나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때 쯤 되면 늘 즐거운 기분이 들었는데,

오늘 져넉은 혼자 먹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정리한 서류들을 파일에 끼워 보기 좋게 꾸며 놓는다.

기획서와 함께 김상무에게 보여줘야 할 중요한 서류들이었다.

그런데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박과장이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요란스럽게 문을 열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김대리, 김대리. 아직도 전화 안 받는데, 이거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출장 간 사람들 얘기인 것 같았다.

아까와는 달리 이번엔 급한 용무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아직도 안 받아요?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는데, 오부장님도 안 받던가요?”


“응, 다 안 받아. 그런데 자네 오늘 시공계획서를 나한테 줬던가?”


“예? 아니요. 그건 강원도에서 팩스로 직접 보내기로 했잖아요.”


박과장이 잠시 숨을 골랐다.


“김상무님이 지금 확인 좀 하자고 난리신데 큰일이네. 이것들이 뒤통수를 칠 줄이야.”


박과장이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실권을 쥐다 시피 한 김상무에게 밑 보여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오주임한테 또 연락 오면 알려드릴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박과장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리고 기획서 완성 됐으면 상무님께 가보라고. 안 그래도 찾으시던데.”


올 것이 왔다.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준비한 파일을 옆구리에 꼈다.
댓글 : 1 개
빨리 다음편 올려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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