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져온 괴담] 껌 ~ 22 ~2010.06.22 PM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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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흠.”

표정을 풀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누가 뭐래? 단지 상사에게 예의 없게 군 것 때문에 그렇게 본 거야.”


필중이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증세는 다시 좋아졌다.


“그런데 그 말 무슨 말이야. 껌을 씹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


“아아. 봤으니까요. 대리님처럼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껌을 거부하다가 죽은 사람들을요.”


“죽어? 이 증상이 계속 심해지다가 결국 죽는다는 얘기야?”


슬슬 필중의 표정에서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니까요. 대부분은 여자들이었어요. 곧 죽어도 이것만은 못 먹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결국 죽어버리더군요.”


정리해보면,

껌을 씹다가 뱉은 것만으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인가?


“그럼 애당초 처음부터 안 씹었으면 됐잖아. 대체 그걸 왜 씹은 거야?”


갑자기 필중이 무서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기억에서, 참기 힘든 무언가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그래서 오주임이 개새끼인거에요.”


필중이 담배하나를 입에 물었다.

하나를 핀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대부분이 괴물들에게 당했지만, 3층에서 4층으로 도망간 사람들도 꽤 있었어요. 저를 포함해서 음, 아홉, 아니 열 명이었던 것 같네요.”


필중이 연기를 한 번 내 뱉고 말을 이었다.


“그 때는 이곳이 아니라 405호였어요. 다른 사무실보다 크고, 쾌적했죠. 물론 지금은 끔찍하게 변했지만.”


-콰앙!!


그 때 들리는 괴물의 소리.

하지만 이제 이 소리에도 심드렁했다.

여전히 저주스러운 모습이긴 했지만 말이다.


“모두가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오주임이 유유히 들어왔어요. 웃고 있었죠. 그리고 자신은 괴물에게 당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이유를 물었더니 그게 껌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껌들을 내밀었어요.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그대로였죠.”


이 들이 오주임에게 속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내가 껌을 씹고 있었는데도 괴물에게 끌려갈 뻔 했지 않는가.


“그 새끼가 또 거짓말을 한 거군.”


필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맞아요. 거짓말이었죠.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어요. 그리고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그 덩어리들을 입에 넣고 씹었죠. 그 때는 이것이 오부장의 몸인지 뭔지 알 턱이 없었어요. 그냥 이상하게 생긴 껌이구나 할 뿐이었죠.”


“어떻게 그것이 오부장의 몸이라는 걸 알아낸 거야?”


“예, 계속 들어보세요. 그렇게 우리는 껌을 씹었어요. 그리고 이제 괴물에게 당하지 않을 테니 나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죠. 그래서 아마 그 때 네 명 정도가 먼저 밖으로 나갔을 거예요. 하지만 결과는 뭐 대충 예상하실 거예요. 세 명은 괴물에 끌려가고, 한 명만이 겨우 겨우 도망쳐 돌아왔어요. 그 때 우리는 알게 된 거죠. 오주임에게 속았단 것을“


여기까지 말 하고 필중이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았다.

그리고 길게 연기를 내 뿜은 다음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 돌아온 한 명이 402호에서 오주임의 모습을 본 거에요. 오부장의 덩어리를 손으로 뜯고 있는 모습을요. 그리고 그 뜯은 덩어리는 우리가 입에 넣었던 것과 일치했고요.”


말을 듣다보니 필중이 얼마나 끔찍한 하루를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시시각각 죽음과 맞서서 겨우 살아남은 게 아닌가.


“껌이 오부장의 몸이라는 걸 안 순간 우리 모두가 껌을 뱉어버렸죠. 아까 대리님처럼요. 그리고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시달려야했습니다. 정말 영문도 모른 채 말이죠. 오주임은 그 이후에도 몇 번씩 찾아왔어요. 하지만 이제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껌을 씹으면 나아질 거라는 말조차도 말이죠.”


필중이 어느새 다 핀 담배를 바닥에 눌러 불을 끈다.


“뭐 별수 있나요. 도저히 참을 수준이 아닐 정도가 되었을 때, 딱 한 번만 더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자기 합리화였죠.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엔 진짜였어요. 껌을 씹으니 나아진 거예요. 저를 비롯해서 네 명 정도가 그렇게 살아났어요. 하지만 나머지는 그러지 못했죠. 끝까지 그 껌을 거부했기 때문이에요.”


“그래. 그러다 결국 죽었다는 말이군.”


대충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왠지 오주임이 “깨달았다”라고 말했던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오주임은 정말 개새끼에요! 이것만은 확실하죠.”


여전히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필중이 말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주임과 눈이 마주칠까봐 시선은 밑으로 내린 채로 말이다.


“그런데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어?”


아무리 오주임의 거짓말 때문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면 재차 신고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신고는 몇 번이고 했습니다. 제가 한 것만 여섯 번도 넘을 거예요.”


“그런데 왜 안 와?”


“그걸 모르겠어요. 안개 때문에 대원들이 길을 헤맨다니 어쩐다니 이상한 말만 해대고. 지금 사람이 몇 명이 죽었는지 아냐고 따지니까, 되려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안개가 꽤 자욱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길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에 경찰이라면 길을 찾을 수단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길을 잃었다는 말로는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대한민국 짭새들 수준이 낮은 것은 알지만, 이렇게 신고를 많이 했는데도 늑장 대응을 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다시 한 번 해보지 그래?”


필중이 뭔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말며 고개만 끄덕였다.

어쩌면 ‘대리님이 직접 하시죠’ 같은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필중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사무실 전화로 하지 뭐 하러 핸드폰으로 해?”


“해 보세요 한 번.”


필중이 핸드폰을 귀에 댄 상태로 말했다.

책상 쪽으로 다가가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 보았다.


-지지직,,지지직,,지지직


잡음이 너무 심해서 전화기가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 저 경찰서죠. 여기가 ...


필중에게 전화가 왜 이런 건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때마침 통화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직접 다른 책상들을 돌며 하나씩 전화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지지직, 지지직,


모두다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유선전화는 불통인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자 떨어뜨렸던 핸드폰이 자꾸만 생각난다.

아내와 은비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예 빨리 좀 와주세요 제발. 예 예~


필중의 통화가 끝난 모양이었다.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로 다가갔다.


“통화 끝났어? 뭐라든?”


필중이 통화가 영 불쾌했는지 좋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순찰차만 네 대를 보냈다고 하는데. 기다려보란 말 뿐이네요. 하아. 진짜 짜증나네.”


“그렇게까지 말 했으면 오겠지. 그나저나 나 핸드폰 한 통화만 쓰면 안 될까? 우리 딸내미한테 오늘 못 간다는 말을 해줘야 하는데.”


필중이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핸드폰을 건 냈다.


“핸드폰 없으세요?”


필중에게 핸드폰을 받자마자 슬라이드를 열어 아내의 번호를 눌렀다.


“아아. 여기 올라오다 떨어뜨렸어. 주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그 높이면 아마 망가졌을 테니까.”


필중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내일은 갈 수 있다고 말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은비에겐 치킨을 두 마리나 사 가겠다고 얘기 해야지.

교촌과 비비큐를 각각 한 마리씩 말이다.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찰칵,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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