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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져온 괴담
] 껌 ~ 24 ~
2010.06.22 PM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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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 : //mypi.ruliweb.com/m/mypi.htm?nid=1084161&num=906
잠시 후 은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여전히 천진난만한 목소리였다.
“으, 응. 으, 은비야. 뭐, 뭐래?”
-응. 맞대. 음음
“......”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대리님? 대리님?”
필중의 소리가 마치 스테레오처럼 울려서 들린다.
이미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어긋난 모양이다.
-아빠! 아빠!
하지만 은비의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은비야. 은비야. 아빠 말 잘 들어. 은비야. 은비야.”
-알았어 아빠. 음음. 왜 똑같은 말 해. 음음.
“하아. 하아."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은비야. 후욱. 지금 씹고 있는 껌. 절대로 삼키면 안 돼. 알았지?”
-응? 왜에. 음음. 이 껌 너무 맛있어서 이제 삼키려구 했는데. 음음
절대 이 껌을 삼켜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떻게 삼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겨우 여덟살짜리한테 그런 인내심을 바랄 수 있을까?
“이건 아빠랑 게임하는 거야.”
-응? 무슨 게임~?
절대 삼키지 않게 해야 한다.
절대 삼키지 않게 해야 한다.
“아, 아빠가 올 때까지 은비가 껌을 계속 씹고 있으면. 아빠가, 아빠가 똑같은 껌을 또 줄게!”
일단 되는대로 말 해 버렸다.
-어? 정말? 세상에서 두 개 밖에 없는 거 아니었어?
은비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혀 우물쭈물 하며 말이 나왔다.
“아, 그, 아, 뭐. 아, 아냐. 은비야. 이건 그 껌보다 더 맛있는, 세상에서 하나 뿐인 껌이야~”
그래도 겨우 임기응변은 해냈다.
-흐음~
잠깐 뜸을 들을 들이더니,
-알았어 아빠. 나 안 삼킬게.
은비가 말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이 나와 버렸다.
“은비야. 꼭이야. 아빠랑 게임하는 거니까. 꼭 지켜야 해. 알았지? 약속~”
-응응 알았어.
“은비야. 그럼 이제 엄마 좀 바꿔줄래?”
은비보다 아내가 더 문제였다.
아까 전에 분명히.
분명히.
분명히, 삼켰다.
-여보세요?
“너, 너!! 아까 삼킨 거 뭐야. 뭐냐고!”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내 예상이 맞다면,
내 예상이 확실하다면.
“뭐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은비한테 안 들었어?
문에 몸을 비비고 있는 괴물의 모습이 보인다.
처참하게 찌그러진 몸뚱이에 세 사람의 얼굴이 붙어 있다.
팔과 다리는 아무렇게나 붙어서 너덜거리고 있고, 괴상한 소리를 연신 내뱉고 있다.
저 들도 이틀 전에는 사람이었다.
껌을 삼키기 전에는 말이다.
“야 너! 니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어!?”
-응?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껌 삼킨 것 땜에 그러는 거야?
그래 맞아.
그런데 그냥 껌이 아니지.
삼키면, 괴물이 되는 껌이지.
“내 주머니서 뺐어? 확실히 그 껌 맞아?”
정신없이 큰 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자꾸. 무섭게. 그 껌이 그렇게 중요한 껌이었어?
확신이 확실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거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되고 시작했다.
“야! 왜 남의 주머니에 손을 대! 너가 도둑이야?”
마음에도 없는 말이 막 나온다.
-대, 대체 왜 그래. 그 껌이 그렇게 아까워? 그 많은 것 중에 두 개가 그렇게 아까워?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가 따지기 시작했다.
미여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억지로 침을 한 번 삼킨 후 말을 꺼냈다.
“씨팔! 너 정말 삼켰니? 아 맞다. 토하면 되겠다. 자기야. 소금물 마셔. 어서 토하라고!”
-자기 정말 갑자기 왜 이래... 나 무서워. 무섭다고.
이미 껌을 삼킨 마당에 대체 무슨 말을 해 줘야 한단 말인가.
거기에 나 역시 괴물에게 습격당해 밀실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자기야.. 흑흑, 자기야.. 흐, 흐흑”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자, 기야... 나, 나 무서워. 왜 울고 그래...흐, 흐흑.
아내도 덩달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대리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
필중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흐음, 흐음. 아, 아무것도 아니야. 끅, 흐음. 금방 끊을게. 미안하다 필중아.”
“그것 때문이 아니잖아요! 무슨 일이에요? 집에 무슨 일 생긴 거예요?”
참으려 해도 이 흐느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후배직원 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들썩이는 어깨를 억지로,
억지로 멈추고 필중을 향해 말을 꺼냈다.
“흐읍. 필중아. 나 마누라한테 딱 이십 초만 얘기하고 끊을 테니까. 잠깐만 떨어져 줄래?”
필중이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뭔가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나는 필중이 충분히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다시 핸드폰 수화기에 입을 대었다.
“자기야.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하지? 학교 동아리에서 말이야. 흐읍. 그 때도 자기 좋다고 따라다니던 놈들 엄청 많았잖아. 흐읍."
-그 얘기를 갑자기 왜, 왜 하냐고! 으아아앙.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울었었는데 기억나? 뉴스 보고 울었잖아. 흐읍. 우리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어린 아이가 죽었다고 그렇게 울었었잖아. 흐읍. 나 그 때 자기 참 푼수라고 생각했었어. 하하. 흐읍.”
-으아아앙!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흑흑.
“자기야, 아니 은영아. 내 말 잘 들어.”
-흑흑. 흐흐흑.
“지금부터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만 믿고 견뎌야 해. 알았지?”
-흑흑, 흑흑흑
“어서 대답해! 알았지?”
-흑흑... 알았어.
“그래. 그래야 내 마누라지.”
-대체 무슨 일이냐고! 으아아앙!
나는 아무 말도 해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됐다.
이 말만 빼고는.
“사랑해.”
-자기야, 자기...
전화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슬라이더를 거칠게 닫은 후, 물기어린 눈가를 오른 팔로 쓰윽 닦아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필중이 다가왔다.
“통화 다 끝나셨어요?”
굳은 표정으로 필중을 바라보았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단호한 목소리로 필중에게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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