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져온 괴담] 껌 ~ 26 ~2010.06.22 PM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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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을 뱉으면 괴물의 관심을 잠시 돌릴 수가 있어요. 일반껌이 아니라,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오부장 껌? 이것으로 말이죠.”


굳이 오부장 껌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 내가 뱉은 껌은 오부장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으니까.

어쨌든 이건 긍정적인 정보였다.

필중이 우려했던 문 앞의 괴물을 돌파할 최적의 수단이 분명했다.


“그럼. 여기서 나갈 수 있겠네. 껌을 뱉으면 되잖아.”


필중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은 조금 달라요. 문에 찰싹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껌을 뱉기 위해 문을 여는 것 자체가 위험해요.”


“문을 열자마자 껌을 뱉으면 되잖아. 그게 뭐가 위험해?”


“잠금 쇠를 돌리면 저 괴물은 바로 들이닥칠 거예요. 행여 뱉기도 전에 얼굴을 붙잡히면 어떡할 거예요?”


“얼굴을 꼭 잡힌다는 보장은 없잖아. 그리고 껌을 뱉는 것은 순식간이야.”


“그것뿐이 아니에요. 용케 껌은 뱉었지만, 급하게 뱉느라 문 바로 앞에 떨어진다면 어떡할 거죠?”


가만 보니 얼마 안 되는 확률에 계속 연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우쯤은 굳이 괴물이 없더라도 널려있는 게 현실이다.


“한 명이 잡히더라도 우린 둘이니까, 남은 한 명이 껌을 뱉으면 되잖아.”


“그...”


필중이 약간의 시간차를 주며 말을 했다.


“그 한 명은 누, 누가 할 건데요?”


“뭐? 무슨 한 명?”


“괴물에게 잡히는 사람 말이에요. 전 못해요. 저 괴물에게 절대 잡히고 싶지 않다고요.”


“괴물에게 잡히는 거, 내가 하면 되잖아.”


“하지만, 동시에 잡힐 수도 있죠.”


아무래도 필중은 여기서 나가는 것에 회의적인 모양이었다.

경찰도 불렀겠다,

괴물이 문을 열지도 못하겠다,

필중으로서는 아무리 확률 좋은 도박이라도 꺼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나가야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경찰을 기다릴 수 없고, 온다고 해도 저 괴물을 대체 어떻게 상대할 건지가 의문이었다.

헛기침을 한 번하고 말을 이었다.


“그럼 나 혼자라도 나가겠어. 단,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필중은 긍정도, 부정도 취하지 않았다.


“제 정신이에요? 혼자서 여길 어떻게 나가요.”


“그러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달라고 하잖아. 들어줄 거야, 말거야?”


필중이 노골적으로 내 눈을 피했다.


“뭐, 뭔지 말이나 해 보세요.”


“내가 괴물에게 잡히면, 늦게라도 좋으니까 껌을 뱉어줘.”


필중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보다 내가 먼저 말을 했다.


“알아. 동시에 잡힐 수 있는 위험 충분히 알아. 그러니까 내가 잡히는 걸 확실히 본 다음에라도 껌을 뱉어달라고. 뒤늦게나마.”


“문은요? 문은 누가 열어요?”


“문도 내가 열께. 내가 열고, 내가 잡히면 되잖아. 넌 멀찌감치 보다가 내가 끌려가기 전에만 와서 껌을 뱉어달라고. 그리고 내가 빠져나가면 그 때 다시 문을 잠그면 되잖아.”


정말 최소한의 부탁이었다.

하지만 필중은 여전히 나의 눈을 피하며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아까 전에는 괴물 앞에서 문까지 열어 나를 구했잖아. 이제 와서 그렇게 두려워하는 이유가 뭐야?”


그러고 보니 그 때도 필중은 껌을 뱉어주지 않았다.

잡혀 있는 내게 껌을 뱉으라고 소리만 쳤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껌을 뱉는 것은, 그 행위로만 본다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닌데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어쩌면 뭔가 숨기는 것이라도 있는 것일까?


“말했잖아요. 눈앞에서 더 이상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그럼 말 다했네. 이번에도 내가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을 것 아니야?”


“그, 그런.”


필중의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문 쪽으로 성큼성큼 가기 시작했다.

내게는 더 이상 필중을 설득할 시간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 그러지 말아요! 안 돼. 안 된다고. 이 껌은 뱉을 수 없어!”


필중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지 이 껌은 뱉을 수 없다는 말이 조금 신경 쓰일 뿐이었다.


“갑자기 그 장기자랑이 떠오르네. 필승 말이야, 정말 대단했었어.”


필중에게 농담을 한 마디 건 냈다.

그리고 문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 앞에 서자 괴물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되었다.

다시 봐도 끔찍한 모습.

특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양주임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다가가자 괴물은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까치발을 들고, 손을 잠금쇠 위로 가져갔다.

그러자 뒤에서 필중의 소리가 들려온다.


“안 돼! 안된다고!”


-끼익, 철컥.


잠글 때는 그렇게 안 잠가졌으면서, 열 때는 얄미울 정도로 손쉽게 풀린다.


“필중아. 너만 믿는...”


-벌컥!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괴물이 들이닥친 것이다.


-콰악!!


그리고 껌을 뱉을새도 없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괴물에게 붙잡혔기 때문이다.

그것도 얼굴을.


“끄으으으으읍!!”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동안의 기다림으로 한이라도 서린 탓일까?

괴물이, 붙잡은 내 얼굴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우쉬치이추히우추”


괴물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씨팔" 하고 욕을 내뱉는 필중의 소리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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