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져온 괴담] 껌 ~ 36 ~ 2010.06.22 PM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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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우우우우우


- 뚜우우우우우


- 뚜우우우우우


- 뚜우우우우우


-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


......


- 끼이이이이익


“우와아아앗!”


기사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날카로운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차체가 왼쪽으로 급선회한다.

다행히 난간에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뭐에요, 뭐!”


기사는 눈을 멀뚱거리며 격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아마 당사자가 가장 놀랐을 테지.

앞을 보니, 이 차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파란색 중형 승합차가 서 있었다.

갑자기 차를 멈춘 모양인데, 도로 한 복판에 차를 세우는 것만큼 위협적인 것도 없다.

더군다나 여기는 고속도로고, 우리는 시속 100킬로 이상으로 달리는 중이었으니,

하마터면 커다란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 아아. 니미 씨발. 저새끼. 씨발 뒤졌다 넌!”


기사가 점점 정신을 찾는가 싶더니 이내 흥분상태에 빠져든다.

난폭하게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돌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한바탕 하려는 모양이다.


“아 시간 없으니까 그러지 마세...”


기사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씩씩거리며 앞 차를 향해 걸어갔다.

앞 차의 운전석까지 다가간 기사가 창문을 몇 번 두드렸다.

그리고는 옆구리에 손을 올려놓고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나는 시계를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 슬라이드를 열었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

지금 이러고 있을 때에도 아내는 점점 변해가고 있을 것이다.

조수석의 창문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아저씨! 그냥 오세요!”


“아.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기사가 이렇게 말 하고는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열어! 열라고 씨발!”


“아 그냥 납두고 오시라고요! 지금...”


앞 차의 번호판을 보는 순간 말을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내 입에서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오...칠...칠...팔? 어? 뭐야 아까 그 차 아니야?”


“뭐라고요?”


-드르르르르륵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문자메시지가 온 모양이다.

슬라이드를 열어 내용을 확인한다.



[앞으로10초안에

이새끼치워주십쇼


00: 46 개새끼]



발신자 개새끼.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돌아와요 어서! 어서!!”


“열어! 열어! 개새끼야! 열라고!”


기사는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문을 발로 뻥뻥 차기까지 하며 오버를 하고 있었다.

문자의 내용으로 보건데, 저 차 안에는 분명히 오주임이 있다.

왜 이곳에서 우리를 식겁하게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주임이 지금 매우 위험한 놈이란 것만은 잘 알고 있다.


“어서요! 위험하다고요!!”


방금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기사는 여전히 독불장군마냥 내 말을 무시한다.


-드르르르륵


그 때 또 들리는 진동소리.



[분명히경고했습니



00:46 개새끼]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어, 어서 이리 오라고요!”


드디어 기사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절망적이었다.


“아 진짜 조금만 기다리라고요!”


“시간 때문이 아니에요! 지금 당신 위험...”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운전석 창문이 열리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기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 과정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창문이 점점 열리면서, 그의 표정도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보인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불쾌한 무언가가.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운전석에 앉았다.


“으, 어, 어, 으.”


기사가 어버버 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창문 밖으로 어떤 물체가 확 하고 튀어나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기사의 얼굴 전체를 감싸버렸다.

분홍빛을 띠고 온통 울퉁불퉁한 덩어리.

나는 저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똑똑히 기억한다.


“씨팔!”


거의 무의식에 가깝게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았다.

살면서 택시를 몰아볼 기회는 이때 밖에 없겠지.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자.

기사는 덩어리에 온통 뒤덮여서 이제는 거의 침식당했다는 표현이 옳아 보였다.

아마 필중도 저렇게 당했겠지.

차가 막 그곳을 지나칠 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열려진 창문 사이로,

그리고 괴물의 틈 사이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한 사람은 어딘가 낯이 익는 여자였고, 나머지 한 사람은,

바로 오주임이었다.

그리고 뒷자리의 괴물이 팔을 쭈욱 늘어뜨려 기사를 붙잡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괴물이라면 가능하다.

차끼리 수평이 되는 그 순간, 오주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는 소름끼치는 미소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를 악물고, 아까보다 더욱 더 발에 힘을 주었다.


......


......


“콜록, 콜록. 콜록, 콜록. 그래도 내 마지막을 봐 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네. 콜록, 콜록.
평생 나쁜 짓만 할 줄 알았는데 콜록. 처음 너한테 줬던 그 껌. 그 껌이 세상에 퍼디게 되면 모든 게 끝장이다. 콜록 콜록. 그리고 그건 시간문제이기도 하디. 세대가 너모 달라졌어. 내 딸이 함께라면 순식간에 퍼디게 될 거다. 그 후의 세상은, 너도 아마 예측할 수 있겠디. 끌끌, 콜록, 콜록. 나도 왜 이약을 만들어 놨는지는 모르겠어. 나도 세상을 저주하며 살았는데 말이야. 콜록, 콜록. 뭐, 자식 가진 부모 마음이 다 그렇디. 콜록, 콜록. 적어도 망가진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딘 않으니까. 콜록, 콜록. 언젠가, 아주 우연찮게라도 내 딸을 고칠 방법을 알아낸다면. 콜록, 콜록. 꼭 고쳐주게. 콜록, 콜록. 그리고 세상을, 세상을 구해...주..끄으...”


......


......


“씨발, 내 코가 석잔데 무슨 놈의 세상을 구해!”


터널로 들어왔다.

백미러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 쫓아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아내와 은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고, 계기판의 숫자는 어느새 120을 넘기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정신 나간 질주를 해 본적은 이 전에 딱 한 번 있었다.

처음 면허를 딴 스무 살의 어느 날,

새벽에 아버지 차를 몰래 타고 나가 무작정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정말 신났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톨게이트 부근에서 경찰에게 붙잡히기 전 까진 말이다.


차가 드디어 한강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20분 내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핸드폰을 들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 뚜우우우우


- 뚜우우우우


- 딸칵,


“여보세요! 여보세요!? 자기야. 자기야!”


- 아...빠?


아내가 아니라 은비가 전화를 받았다.


“어? 은비야. 엄마는. 왜 너가 받았니?”


- 아빠...... 엄마가 조금 이상해.


“뭐? 엄마가 지금 어떤데?”


수화기 너머로 은비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 흐, 흐흑. 엄마가 이상해. 흐아아앙.


“은비야. 은비야 울지마. 울지 말고 아빠 말 잘 들어.”


침을 한 번 삼켰다.


“지금 당장 방으로 들어가서 문 잠그고 있어. 어서!”


- 아빠. 아빠. 은비 무서워...


“그러니까 아빠 말 들어. 엄마가 문 열어달라고 해도 절대 열어주면 안 돼. 알았지?”


- 으아아아앙. 무서워 아빠. 으아앙.


“은비야. 어서 아빠 말 들어. 아빠 곧 있으면 가니까 조금만 참아.”


은비에게 말이 없었다.


“은비야 아빠 말 듣니?”


- 으응. 알았어. 아빠. 빨리 와야 해, 딸칵


계기판의 화살표가 어느덧 막다른 곳까지 다다랐다.


......


......


“우아아악!”


너무 놀라 심장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올 지경이었다.

마주 오는 차가 졸음운전이라도 했는지 중앙선을 살짝 넘어왔기 때문이다.

살짝만 핸들을 꺾었는데도 균형 잡기가 여간 쉽지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난간을 스치며 가까스로 차체를 진정시킨다.

심장은 요동치고, 식은땀이 뻘뻘 났다.

하지만 속도를 줄이지는 않았다.


이제 대부분의 비밀은 모두 알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다름 아닌 필중의 마지막 말이었다.

‘아직 말 하지 못 한 것들이 많으니 핸드폰을 보면 도움이 될 거다’라고 했던 말.

분명히 핸드폰은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아내에게 전화를 할 수 있었고, 오주임의 변화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 그렇구나!’ 할 정도의 비밀은 알아낼 수 없었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것 치고는 적잖이 시시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필중의 핸드폰을 충분히 살펴볼 여유를 갖지 않았었다.

그나마도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담긴 문자메시지를 읽는 데만 줄 창 시간을 낭비했었다.

주소록이나, 통화기록, 그리고 메모 같은 것들을 전혀 살펴보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전력질주로 아내와 은비를 구하는 일만 생각해야 한다.

핸드폰을 살피는 것은 그 이후로 미루자.

그러니까 세상을 구할 때로 말이다.


나는 영등포 로타리에 들어서서야 기름이 바닥났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 전부터 분명히 신호를 보내왔을 것이다.

하지만 신경 쓸 겨를도 없었거니와, 정유소에 들릴 틈도 없었다.

차가 이렇게 멈춰버릴 정도로 기름을 소진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문래동까지는 전속력으로 달리면 15분 정도로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15분을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심장이 터지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점 차 낯익은 상점들과, 건물들이 시야를 스치기 시작한다.

숨이 가빠오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아직까지는 용케 다리가 버텨주고 있다.

다시 한 번 오른손에 쥔 유리병과 왼 손에 쥔 핸드폰을 확인한다.

그리고 뒷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은 오부장 덩어리도 잘 있는지 만져본다.


-띠디 띠리리리, 띠디 띠리리리


그런데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표시가 안 돼 있다.


“하아, 하아. 여보세요?”


- 나에요.


오주임이었다.

여전히 조소가 섞인 불쾌한 목소리였다.


“하아, 흐윽. 하악. 너, 너 이 씹새끼.”


- 이제는 받자마자 욕이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요?


“하아, 하아, 하아, 할 말 없어. 끊는다. 하아, 하아.”


- 아 아. 잠깐만요.


오주임이 계속 말을 이었다.


- 그 핸드폰은 두고 가셔야겠어요. 이유는 아마 잘 아실 거에요.


“하아. 하아. 이유 따윈 모르겠고. 하아. 하아. 한 마디 밖에 못 해 주겠다. 하아.”


잠시 숨을 몰아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좆이나 까 잡숴.”


-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병신.”


- 좋아요 그럼, 딸칵


오주임이 전화를 끊었다.

열받아할 그놈의 얼굴을 생각하니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기분이다.

그런데 마냥 좋아하기에는 뭔가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통화내용을 곰곰이 되씹어보니 더욱 명확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요?’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한 거지?

설마?

그 순간 갑자기 뒤 쪽이 환해지는 것을 느낀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차 한 대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내게 돌진하고 있었다.

나는 감히 인도로 차가 침입해 올 줄은 예상하지 못 했다.

빛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푸른빛이 나는 중형승합차였다.

아마 번호판은 5778이겠지. 차량용 라이트가 순식간에 내 온 몸을 휘감았다.

이제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가족을 구할 수 있는데, 조금만 더 가면.......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곧 승합차의 거대한 위용이 내 시야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은비의 모습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댓글 : 3 개
; 설마 주인공이 죽진...않겠죠;;
근데 정말 맞네요 껌으로 세상을 지배한다-_-;;
  • ady
  • 2010/06/22 PM 10:09
어후 흥미진진하네요 ㄷㄷ
이렇게 죽고야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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