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져온 괴담] 들러붙은 여자 ~ 完 ~2010.06.24 PM 01:36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처음으로 너를 만난 건, 니가 오토바이로 오타루에 왔을 때야.

뭐라고 하지, 투어링이었나? 너는 그걸 하러 왔어.

나는 마침 일이 있어서 오타루에 갔었고.

그 때, 여동생 나나코가 너를 택했다.

왜냐면, 나나코에게는 니가 부러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마치 빛에 꼬여드는 벌레들처럼 나나코는 너한테 이끌린거지."


나는 곤혹스러웠다.


"어째서, 나야. 뭐가 부러웠다는거야"


"니 안에 존재하는 따뜻한 가족이 보인거겠지.

그게 나나코는 부러웠던거다.

우리집은 말야, 한마디로 말하면 시궁창, 그 자체였다.

특히 나나코는 생전에 그 빌어먹을 아버지한테 학대를 받았다.

입 밖으로 꺼낸다는게 역겨울 정도야. 친아버지가 딸을 성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건.

게다가 아버지는 극단적인 사디스트였다. 잔인한 일이지.

그치만, 나도 잘한 건 없다. 괴로워하는 여동생을 못 본척 했으니까.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여동생에게 나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걸 저버린거지.

귀찮았어, 솔직히 말해서. 나한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나코는 절망적이었겠지. 혼자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어."


"자, 잠깐 기다려봐"


나는 남자의 이야기를 끊었다.


"기분 나빠졌나? 그렇겠지. 시궁창 얘기니까. 무리도 아니지."


남자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고, 입에 물었다.

좀 전까지 사람을 조롱하듯 비웃던 남자의 얼굴은, 심해(深海)처럼 차가운 표정이었다.

나는 얘기 내용보다 이 남자의 표정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계속해도 되겠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남자의 얼굴을 보지 않도록 조심했다.


"나나코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전부 묵살됐다.

아버지는 쓰레기지만, 정신과 의사로 엘리트였다.

경찰에도 협력하고 있었고, 경찰서의 간부와도 사이가 좋았다.

나나코는 찾아갔던 경찰관들에게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하고 돌려보내졌다.

다시 절망에 빠진 나나코는 정신을 놓아버렸고, 병원에 입원하게 됐지.

그것도, 아버지의 병원에 말야.

거기서도 나나코는 학대를 받았다.

아버지는 경찰에 찾아간 나나코를 용서하지 않았어.

나나코의 담당 간호사에게 지시해서, 매일같이 폭행하게 했다.

믿겨져? 그걸 시킨게 친 아버지라는게.

나나코는 자살했다.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모르는 로프로 목을 매서..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울었어."


나는 아무말 없이 남자의 얘기를 들고 있었다.

남자의 가족과 내 가족. 정반대의 가족이었다.


"나나코는 자살 한 뒤, 이 세상을 헤매다가 나에게로 왔다.

나나코에게는 재능이 있었지만, 나같은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협력하라고 말이지.

물론, 나는 그 얘기를 거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나코가 죽고나서, 처음으로 느낀 감정을 거역할 수 없었다.

나는 나나코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나나코에게 협력해서, 아버지와 경찰관, 그리고 간호사를 죽였다.

나는 그걸로 나나코가 만족할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어.

내가 가진 영혼에 대한 지식은 어중간 했던거다.

거듭 복수를 한다고해도 나나코는 이미 죽었다.

내 눈앞에 있는 악령이 된 나나코는 나나코이면서 나나코가 아니야.

단순한 원한 덩어리였다. 원한 덩어리가 만족하고 사라지는 일따위는 절대로 없다.

나는 낙담했다.

아버지를 포함해 세 명이나 죽였는데, 그저 나나코의 모습을 한 악령이 커져갈 뿐이었다.

그 때, 니가 나타났다.

단지 복수의 원한 덩어리였던 나나코가 너에게 이끌렸다.

나로써는 놀라울 뿐이었다. 어쩌면, 이라는 말도 안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나나코는 죽었다. 살아있는 사람과는 함께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를 죽이려고 했던거야? 장난치지마"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리석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희망이었다.

너와 있으면 나나코는 본래의 나나코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냥 죽이는거라면 너는 언제든지 죽일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바로 죽이지 않은거지? 어째서, 그렇게 빙 돌려서 일을 만들었냔 말이야."


나는 남자에게 따져 물었다. 남자의 표정에 변화는 없다.


"단순히 바로 죽이면 영혼은 이 세상에 머물지 않는다. 바로 사라져버리지.

괴롭히고,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고, 죽고싶게 만들면

영은 이 세상에 강한 원한을 남기게 되고, 긴 시간을 머물게 된다.

니가 영겁의 세월을 나나코와 함께 있어주기를 바랐다."


남자의 말에 나는 온 몸이 떨렸다.


"홋카이도에서 돌아온 너는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중상을 입었다.

그것도 내가 했다.

니가 다니던 회사의 인사부장 뇌에 침입해서, 해고 통지서를 쓰게한 것도 나다.

왼팔의 골절만 치료가 늦어졌지? 그것도 내가 했다.

그 외의 일들도.... 참 많은 짓을 했군."


나는 떨리는 주먹을 꼭 쥐었다.


"때려도 돼. 화를 참는 것은 전 샐러리맨의 서글픈 근성인가?"


나는 남자의 왼 뺨에 주먹을 날렸다. 남자가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뭐, 한 방정도는 각오했으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의자를 원래 자리에 놓고는 걸터 앉았다.

나는 분노로 온 몸이 뜨거워졌다.


"진정하라고 해도 무리일테지만, 끝까지 얘기를 들어.

나는 너에게 감사하고 있다"


"감사...!!?"


"네가 마지막으로 나나코와 함께 있을 때 말이야.

그 때, 나는 오카마의 부하에게 묶여서 마루에 엎드려 있었다.

오카마가 마지막을 잘 봐두라고 해서, 나는 너희들을 보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눈앞의 광경을 의심했다. 나는 기적을 보고 있었다.

단순한 복수의 원한 덩어리였던 나나코는 거기에 없었다.

너도 봤지? 그 나나코가 진짜 나나코다. 생전 모습 그대로의 나나코였다.

나는 울었다. 기적을 앞에 두고 나는 아이처럼 울 수 밖에 없었다.

빛을 보면 달려들던 벌레 같던 나나코가 처음에는 너에게 끌렸을 뿐이었다.

그것이 어느샌가, 정말로 너를 좋아하게 되버렸던거야."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너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지?"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얼굴에서 차가운 표정이 사라져있었다.

나는 마지막에 본 그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문득,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느껴졌다.


"울어주는건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너는 다정한 남자로군. 그런 일을 저지른 나나코를 위해서 울어주다니.

너는 정말로 강한 놈이다. 나는 너의 용기에 계속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남자다.

지금에서야 나나코의 마음이 이해된다. 우리들은 애정에 굶주려 있었어.

정말로 니가 부럽다.

나나코는 생전에 누군가를 좋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이 아니고, 나나코가 살아있을 때 너와 만났더라면......

너같은 용기가 나에게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울었다. 그 여자를 떠올리며 울었다.

그 여자는 적이다. 그 여자가 나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는 잊지 않아.

그래도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하늘을 바라봤다.


"나도 나나코도 사람들을 지독하게 괴롭혔다. 천국에는 갈 수 없겠지.

나나코도 지옥에 떨어졌어. 녀석은 다시 태어나도, 다시 괴로운 인생을 살겠지.

그래도 말야, 만약, 네가 그 아이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때는...."


남자는 나에게 등을 돌렸다.


".....제 멋대로 하려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그의 등에서 슬픔이 짙게 묻어나고 있었다.

나는 일의 전말을 알았다. 나는 울어주는 일 밖에 할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남자와 그 여자의 슬픈 과거. 내가 모르는 가족의 이야기가

내 가슴에 상처를 내고, 눈물 흘리게 하고 있다.

나는 그저 슬펐다.


"그럼 갈께"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나로부터 멀어져갔다.


"이제 너는 어떻게 할꺼지?"


내 물음에 남자는 발을 멈췄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수호령 같은건 없었다.

내 몸은 내가 지켜왔지.

하지만, 나는 이제 능력을 봉인할꺼야.

내가 너를 괴롭게 한 것 처럼, 이번에는 내가 괴로워할 차례다.

이제 너와는 만날 일 없어.

결국 내가 가야 할 곳은, 여동생, 아버지와 같은 곳이다."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레스토랑의 화장실에 돌아와 있었다.

화장실의 세면대앞에서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씻었다.

나는 그 남자의 말을 떠올렸다.



[ 결국 내가 갈 곳은 여동생, 아버지와 같은 곳이다 ]



그 가족에게 구원은 없는 것인가.

사람이 한 번 길을 벗어나면 원래의 자리로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세상무상을 느끼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테이블로 갔다.

행복한 모습. 그 가족은,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걸까..

내 가슴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야, 뭘 그렇게 멍하니 서있어"


누나의 목소리에 나는, 나로 돌아간다.


"아, 미안. 생각할게 좀 있어서"


"아까부터 계속 니 핸드폰 울렸었어.

왠지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뒀어"


나는 핸드폰을 봤다. 부재중전화 기록이 5건이나 남아있다.

존이었다.

무슨 일이지.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형님이세요?"


"응, 무슨일이야, 존? 부재중전화가 5개나 들어와있던데, 급한일이야?"


"아뇨. 제가 형님께 급한 일이 있을리가 없잖아요.

사장님이 당장 사무실로 오시라고.."


"사장님이?!"


나는 전화를 끊고 가족들에게 사과한 뒤, 레스토랑을 나왔다.

사장님을 기다리게 하는 것 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전력으로 달려서, 사장님이 기다리고 있는 탐정 사무실에 도착했다.


"무...무슨.... 하아....하아.... 일이예요, 사장님... 하아...하아...."


사장님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하아하아, 라니 기분나뻐! 먼저 숨 좀 돌려, 바보!"


내 눈앞에 물 한잔이 놓였다.


"형님, 드세요"


존이었다.


"아... 고마워, 존"


존은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나는 존이 준 물을 한 번에 들이키고, 숨을 가다듬었다.


"이제 괜찮아? 우선, 이 서류를 훑어봐."


사장에게 건내받은 서류를 봤다.

거기에는 내정 통지서 라고 쓰여있었다.


"이게... 뭡니까, 사장님?"


나는 갑작스럽게 받은 서류와 그 내용에 당황했다.


"보면 몰라? 너를 우리 회사에 채용한다는 얘기야.

너 아직 무직이잖아? 내가 널 고용해줄게"


사장님의 말에 놀란 나는 존을 쳐다봤다.

존이 웃는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에!? 아, 기뻐요!! 근데... 어, 어떻게 된거예요, 사장님? 갑자기..."


"당황했나보네?"


사장님이 요염하게 웃었다.


"사실 말이야. 너의 적이었던, 그 남자에게서 부탁받았어"


"그 남자!?"


나는 놀랐다. 그 남자가 사장에게 부탁을 했다고?


"나도 놀랐어. 우리 회사의 계좌에 갑자기 1000만엔이나 보내놓고

너를 고용해달라고 부탁하더라구.

최소한의 속죄라고 생각했겠지, 아니면 니가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고.

1000만엔이나 있으면, 그 어떤 초보라도 일류로 키울수 있어.

나는 흔쾌히 승낙했어. 그 마음을 받을지 말지는 네가 결정하는거지만"


나는 망설임없이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고개를 숙였다.


"너는 영적인 능력이 없으니까, 탐정으로 고용할꺼야.

미리 말해두지만, 쉽지만은 않을꺼야. 각오해두라구!"



사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존도 웃고 있었다.


나는 탐정이 되어 살아가기로 했다.


내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탐정의 길을 걷기 시작한 나에게는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것은 클라이언트의 이야기.


기밀사항이라 여기에는 쓸 수 없다.


그 소동으로 나는 강해질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 여자가 생각난다.


그 여자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괴로워하고 있겠지.


만약, 다시 그 녀석과 만난다면.. 그렇다면, 나는..






그 아이를 도와주고 싶어.
댓글 : 7 개
재밌게 잘 봤습니다^^
BGM 좀 알 수 있을까요?
오..잘봤습니다^^
오랜만에 괴담중 해피엔딩이네요
  • [Kaz]
  • 2010/06/24 PM 02:13
검은풀잎//
테일즈 위버 OST reminiscence 입니다
우왕 개감동이네여 ㅠㅠ
잘읽고갑니다 재밋네요
우와.. 마지막에 감동이네요 재밌게 읽었어요^^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

user error : Error.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