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져온 괴담]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 8 ~2010.06.24 PM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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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기원은 보현사로 떠났다.

보현사는 충주 근방에서 가장 큰 절답게 스님의 수도 상당했다.

기원이 보현사 문을 들어서자 한 스님이 물었다.


"보살님, 어찌 오셨습니까?"


"큰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큰 스님을요?"


스님은 놀라며 말을 이었다.


"큰 스님은 사람을 안 만나신지 꽤 되셨습니다.."


"이걸 전해 주십시오.."


기원이 품속에서 서찰을 꺼냈다.

스님은 합장을 한 뒤 종종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갔다.




한참을 기다리자 중년의 스님 한 분이 다가왔다.


"그대가 폭포암에서 왔소?"


"네, 그렇습니다."


"따라오시오"


중년스님은 기원을 반기지 않는 눈치였으나, 기원은 신경쓰지 않았다.

둘은 절 깊숙히 위치한 어느 방 앞에 멈추었다.


"큰스님.... 손님 모셔 왔습니다.."


"들어 오시게"


안에서 커렁커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기원이 중년스님께 합장을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작은 체구의 노승 한명이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자 노승의 모습은 가죽만 남은 고목나무 같았다.


"앉으시게, 그래 진각스님이 보냈다고?"


"예.. 진각스님이 이리로 보내셨습니다."


기원이 공손히 대답했다.


"내 제자 중에 쓸만한 건 진각과 진수 뿐일세...

그런 진각이 추천한 사람을 내 어찌 홀대 하겠는가..."


"홀대라뇨... 송구스럽습니다, 큰스님.."


가만히 기원을 보던 노승이 물었다.


"자네 공부는 많이 했는가?"


"아닙니다, 이제 겨우 산 입구에 올랐는걸요.."


"그래? 어디 한 번 보지.."


노승이 기원의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기원도 노승을 바라보았는데, 둘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자네.... 지금 무엇이 보이는가?"


"지금 소 머리가 보입니다."


"아직 멀었네, 가서 더 하고 오게나.."


노승이 몸을 돌려 버렸다.

기원이 합장한 뒤 나오자 밖에 여러스님이 서 있었다.


"큰스님이 시주님을 하안거에 합류 시키라고 하셨습니다"


"하안거를요? 전 출가도 아직......"


"원칙상 안되지만 큰스님의 명이라서요..."


기원을 보는 주위의 시선이 따가웠다.


"허...."




그렇게 기원의 하안거가 시작되었다.

하안거란 여러명의 스님이 한방에서 같이 참선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름엔 하안거 겨울엔 동안거라고 불렀다.

널찍한 방에 십 수명의 스님들이 가부좌를 튼 채 수련중이었는데, 제일 구석에 기원이 자리를 잡았다.

참선하는 스님들은 기원을 불편한 눈으로 바라 보았는데, 그도 그럴것이

기원은 머리도 밀지 않은 속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이었다.

이젠 제법 친해져서 전과 같은 껄끄러움은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기원이 비슷한 나이의 청하 스님과 절 내를 걷고 있던 중 이었다.

앞 쪽에서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비명이 터졌다.


"악.. 왜 그러십니까? 으.. 제발 말로 하십시오.."


둘이 가보자 그 곳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한 50대의 스님이 빗자루로 청년승을 마구 때리고 있는 중이었다.

청년승은 이리저리 피했지만 50대의 스님이 잘도 쫓아갔다.


"청하스님, 무슨 일입니까?"


기원이 옆에 있던 청하스님께 조용히 물었다.


"저기 때리시는 분이 진수스님인데 무척 고약하신 분입니다"


말하는 청하스님이 약간 움츠러 들었다.


"진수스님이라면 큰스님의 제자라던...."


"맞아요, 하도 성격이 고약하고 폭력적이어서 한번씩 사단이 일어나곤 하죠"


잠시 후 진수스님이 빗자루를 던져 버리고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스님 저를 죽일 작정 이십니까?"


"닥쳐라, 이 놈... 중놈이 밥 값을 못하면 두드려 맞아야지.."


진수스님이 정말로 죽일 듯 때리자 주위에서 뜯어 말리기 시작했다.


"그만하십시오, 스님... 저러다 죽겠습니다.."


"이거 안놔? 니들도 두드려 맞고 싶나 보구나.."


"헉.. 아닙니다."


기원이 그 광경을 보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새파란 하늘에서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철썩"


순간 기원의 눈에서 불똥이 터졌다.

달려온 진수스님이 기원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어딜 보고 있느냐... 제대로 봐도 모자랄 판에.. 너도 두드려 주랴?"


"........."


기원이 뺨에 손을 댄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천치같은 놈!! 눈깔이 삐었구나!!"


진수스님이 한 대 더 치려하자 청하스님이 뜯어 말렸다.


"아이고 스님.. 이 분은 저희 손님입니다... 때리시면 안된다구요...


그 뒤로 진수스님이 뭐라고 소리쳤으나 귀원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2년이 지났다.

기원은 수련에 매진한 끝에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기원의 기도가 날로 범상치 않게 되자 큰스님이 다시 호출했다.


"듣자하니 자네의 공부가 깊어졌다더군"


"약간 얻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다시 물어보겠네."


큰스님과 기원이 서로를 직시했다.


"이번엔 무엇이 보이는가?"


"소 꼬리가 보입니다."


"틀렸네, 더 하고 오게나.."


큰스님이 혀를 차며 돌아서자 기원이 망설임없이 일어났다.




다시 3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물을 마시던 기원이 바가지를 떨어뜨렸다.

그리곤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침내 대오각성을 이룬 것이다.

기원이 춤을 추자 스님들이 모여 들었다.


"시주님, 무슨 일입니까?"


기원이 동작을 멈추고 청하스님을 바라보았다.

청하스님의 뒤로 수천 번의 전생이 나타났다.

기원이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향했다.

그들에게서 윤회의 고리가 보였다. 그들은 수많은 생을 그 고리속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문든 몇 년전에 뺨을 맞은 기억이 났다.


'왜 맞았는지 알겠군'


기원이 걸음을 옮겼다. 다른 스님들이 멍하니 기원을 뒤따랐다.

얼마쯤 가자 앞에서 진수스님이 오고 있었다.

기원이 가까이 가자 진수스님이 합장했다.


"퉷"


기원이 합장하는 진수스님에게 침을 뱉었다.


"헉"


주위에서 헛바람이 터지고 순식간에 소란스러워 졌다.


"퉷"


기원이 한번 더 침을 뱉고 진수스님에게 합장했다.


"나무아미타불.."


진수스님의 얼굴에서 묘한 웃음이 피어 올랐다.

기원은 다시 걸음을 재촉해 큰스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큰스님이 일어나 있었다.


"무엇이 보이는가?"


"늙은 땡중 하나가 보입니다"


"축하하네"


기원이 큰스님에게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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