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져온 괴담]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 10 ~2010.06.24 PM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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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수련중이던 기원의 방으로 세명이 찾아왔다.


"청하스님 아닙니까? 청도스님이랑 청송스님도 오셨군요."


'청'자 배의 스님 세명이 기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희는 그 동안 시주님의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러지 마십시오."


기원이 그들을 만류했다.


"저희는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저희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부탁 드리겠습니다"


세 스님의 얼굴에 비장한 기운이 맴돌았다.


"글쎄요..."


기원의 눈이 매섭게 그들을 주시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청하스님이 재빨리 대답했다.


"소꼬리와 소머리 말입니다..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해도 짐작도 안 갑니다


"소꼬리라......"


기원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인사입니다."


"인사?"


"네?"


기원이 덧붙여 설명했다.


"소머리나 소꼬리나 하등 쓸모 없는 것입니다,

돼지머리나 돼지꼬리로도 바꿀 수 있구요..."


"아...."


돌연 청하스님의 표정이 환해졌다.

나머지 둘은 여전히 멀뚱멀뚱한 표정이었다.


"그렇군요..."


청하스님이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들기 시작했다.


"시주님, 조금만 풀어서 설명해 주십시오"


청도스님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대화는 형식적인 것입니다.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죠"


"........"


기원의 표정이 온화해졌다.


"제가 대오각성한 그 때, 큰스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피차 다 알고 있는 판에 무슨 대답인들 상관 있겠습니까?"


그렇게 밤새 기원의 가르침이 내려졌다.




다음 날 새벽 일찍 기원이 방문을 박차고 나섰다.

김중호가 손에 둥글게 말린 신문지를 든 채 기원을 따라왔다.


'미친....'


기원이 어디론가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곧 법진대사의 방 앞에 도착한 기원이 문을 홱 열었다.


"........"


방 중앙에 법진스님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괜찮다고 말했잖습니까..."


기원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무엇이 이토록....."


법진스님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결단코...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기원이 눈물을 닦으며 돌아섰다.


"죽여 버리겠습니다"


기원의 눈에서 살기가 쭉쭉 뻗어 나왔다.

곧 스님들이 몰려 들었다.

스님들의 끝에 기모노 여인이 걸어 오고 있었다.

새빨간 핏빛의 옷에서 섬뜩함이 묻어 나왔다.

그녀가 기원에게 다가왔고, 곧 빙긋 웃었다.




-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


"닥치고 내 말 부터 들어라."




- 경청 하겠습니다 -


"요사한 혓바닥을 함부로 놀린 죄로 널 죽이겠다."




- 저는 진실만을 말했을 뿐 입니다 -


"죽는 것이 진실이냐? 네 년 말은 처음부터 틀렸어"




- 그럼 무엇이 진실입니까 -


"진실은 이미 존재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지니고 있어"




- 혹 진실이 불성을 일컫는 것입니까 -


"그렇다"




- 그렇다면 스님은 완전 틀렸습니다, 불성이야 말로

거짓이며 추악한 오물일 뿐입니다 -


"불성은 인간이 지난 최고의 잠재력이다, 너 따위가

함부로 말할 바가 못 되지"




- 불성은 진짜 존재가 내린 썩은 동아줄이요, 헐리기 직전의 난간 입니다 -


"진짜 존재가 뭐지? 신을 말하는 것인가?"




- 진짜 존재는 진화의 마지막 종착역 입니다 -


"무슨 소리야?"




- 인간이 진화를 거듭하여 수천억겁의 세월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


"생각해 본 적 없다"




- 더 이상 진화할 수 없는 포화상태가 되는데, 그것이 진짜 존재 입니다 -


"크크..혹 네 말이 사실이어도 아득히 먼 미래일 뿐이다"




사쿠라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 진짜 존재는 이미 수천억년 전에 나타났습니다 -


"닥치거라, 네 말은 증거도 없는 망상일 뿐이야"




- 스님께서는 대오각성을 하셨나요 -


"그렇다"




- 그럼 사람들의 전생을 보셨겠군요. 아닙니까? -


"맞다, 나는 사람들의 전생을 보았다"




- 사람들의 전생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


"요점을 말하라"




- 그들의 전생을 거슬러 가 보십시오 -


"거슬러 가라고?"




- 그렇습니다. 수천 수만 번의 전생을 마지막 까지 가 보십시오 -

"알겠다"




기원의 시선이 주위를 둘러 싼 스님 중 하나를 향했다.


"음.."


스님의 전생을 거스르고 거슬러 올라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유인원을 지나 공룡이 보였고,한참을 더 가자 삼엽충과 갑주어가 나타났다.

기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박테리아가 보였다. 그 상태에서 다시 수천번을 올라갔다.


'어?'


아득히 멀리서 흰 빛이 보였다. 강렬한 그 빛은 무척 거대했고 동시에 따스했다.


'이것이....'


기원이 마침내 마지막에 도착했고, 그 곳엔 빛이 있었다.

기원이 빛을 바라보자 빛도 기원을 바라보았다.


"......."


사쿠라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 묻겠습니다, 당신이 본 것은 빛입니다. 맞습니까? -


".....그렇다, 내가 본 것은 빛이다"




- 그 빛이 진짜 존재 입니다 -


"더 확인해야 봐야겠다"




기원은 김중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잠시후 다른 스님들까지 일일히 쳐다보았다.




- 어떻습니까 -


"네 말이 맞았다, 모두의 마지막은 빛이더군"




사쿠라가 손뼉을 쳤다.




- 이제 인정하시는 군요 -


"네 말대로 그 빛이 진짜 존재고 마지막 진화단계라고 가정하자"




- 가정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


"어쨌든 네 말이 맞다면, 어째서 그들은 다시 퇴보 된 거지?"




- 퇴보가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 택한 것입니다 -


"왜지?"




- 최종 진화한 그들을 맞이한 건 끔찍한 무료 였습니다 -


"무료?"




- 그들에겐 공기와 물이 필요없었습니다. 가족도 없고 자식도 당연히 없었구요 -


"그럼 번식은 어떻게 하지?"




- 그들은 더 이상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불사의 몸이 되자 그들의 가치관은 급격히 바뀌었죠 -


"어떻게?"




- 신체도 사라졌고 욕구도 사라졌습니다. 오로지 사념체만 남은 그들 입니다 -


"무섭군"




- 그들은 영원이라는 지루한 시간을 두고 여흥거리를 만들어 냅니다 -


"설마..."




- 그렇습니다. 그들은 내기를 했습니다, 진 존재는 벌칙을 받았죠 -


"벌칙이 우리란 말이냐?"




- 정답입니다. 벌칙은 백만번의 윤회죠 -


"아..."




기원의 머리가 순간 충격에 빠졌다.

사쿠라의 입이 쉴 새 없이 열렸다.




- 이제 아시겠습니까 -


"벌칙이 윤회 백만 번이면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 상대적인 겁니다. 영원에 빗대면 찰나 일 뿐이죠 -


"그렇구나... 이제 네 목적을 이해했다"




- 그들은 한가지 조건을 걸었죠. 그것은....-


"그것은 아마도 자살일테지?"




사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 맞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윤회에서 벗어 날 수 있죠 -


"달콤한 말이군, 요약컨대 자살하면 진짜 존재가 된다 이말이지?"




- 그렇습니다, 무척 이해가 빠르시군요 -


"그리고 우리가 여태껏 속았다 이 말이지?"




- 그렇습니... -


"닥쳐라, 네 말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야"




- ........... -


"네 말은 한가지 가정에서 출발하지, 그 빛이 진짜 존재라는 가정 말야...

만약 네 말이 틀렸다면 어쩔거지? 그 빛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어쩔거냐고...

난 네 년보다 석가모니와 성철스님을 더 믿는다"




사쿠라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했다.




- 고타마 싯다르타는 겁쟁이 일 뿐입니다 -


"함부로 말하지마라"




- 한가지 알려 줄까요? 당신은 대오각성한 것이 아닙니다 -


"뭐라고?"




- 대오각성은 고금을 통틀어 단 두 번 일어 났을 뿐 입니다 -


"........"




- 고타마 싯다르타와 성철.... 이 두사람만이 진정한 대오각성을 이루었죠 -


"계속 말해봐"




- 이유는 간단합니다. 진정한 대오각성을 이루면 바로 그것이 되거든요 -


"그것?"




- 진짜 존재 말입니다. 오직 두 명만이 산 채로 진짜 존재가 되었죠 -


"아까는 자살 뿐 이라 그러지 않았나?"




- 자살이 제일 쉬운 방법이고, 대오각성이 제일 어려운 방법입니다.

제가 말했잖습니까, 불성은 썩은 동아줄이라고 -


"아무나 잡고 올라갈 수 없다는 말이군"




- 그렇습니다. 천운에 천운이 겹쳐야 끊어지지가 않는 것이죠 -


"하하... 네 말은 틀렸다. 붉은 사쿠라..."




- 무엇이 틀렸습니까? -


"네 말대로 성철스님이 진짜 존재라고 믿어보자...

스님께서 이런 말을 남기셨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무슨 말인지 알고 있나?"




- .............-


" 이 말의 뜻은 있는 그대로 보란 뜻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 그것이 진실이자 진리란 말이지"




- 착각하고 있군요, 당신이 사랑하는 성철스님을 예로 들겠습니다,

성철스님의 열반송을 떠올려 보십시오 -


"........."




사쿠라의 말에 기원의 안색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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