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져온 괴담] 악마와 같은 여자 ~ 2 ~2010.06.26 AM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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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25일.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

회장부인과 주눅 든 두 명의 남자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부인은 오십대 말의 나이인데도 아직 아름다움이 남아있었다.

계란형의 얼굴에 검은 눈동자였다.

그녀는 베이지색의 고급 쟈켓을 입고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청석에는 회장 측의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대형 로펌에서 나온

거물급 변호사들이 회장부인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 옆에 곱슬머리의 남자가 안경 뒤로 눈을 질끈 감은 채 뭔가 계산하는 표정이었다.

그 옆은 살인청부를 맡았던 킬러였다.

짧은 머리에 우람한 체격을 가진 삼십대 말의 남자였다.

그의 눈에서 알지 못할 섬뜩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진공상태 같은 법정분위기였다.

돋보기를 코에 걸친 재판장이 기록을 읽다가 킬러를 내려다보면서 담담하게 물었다.


“여기 기록을 보니까 총알이 네발이나 귀밑의 같은 곳을 관통했네?”


프로급 살인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재판장이 말을 계속했다.


“이 정도면 총구를 머리통에 들이대고 계속 갈겨 확인사살을 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재판장이 킬러를 쏘아봤다.


“아, 아닙니다. 일 미터 이상 물러서서 고개를 돌리고 쐈습니다.”


킬러도 뭔가 감지한 듯 완연히 당황해 하고 있었다. 아마추어라는 것이다.


“안보고 쐈는데도 그렇게 잘 쏘나?”


재판장이 다시 물었다. 그 어조에는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


“처음에 그 여대생 얼굴을 보고 한번은 총구를 겨냥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두발 째부터는 보지 않고 쐈습니다.”


첫발은 이마를 관통해서 총알이 뇌에 박혀 있었다.

그 말을 듣던 방청석 구석의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는 얼굴이 백짓장 같이 창백해 있었다.

죽은 딸의 복수를 위해 그는 직장까지 팽개치고 혼자 범인들을

집요하게 추적해 왔다고 했다.

그 앞으로는 만약에 대비해 교도관들로 벽이 쳐져 있었다.


“죽은 여대생의 팔뼈가 세 동강이 나 있던데 왜 그랬지?”


재판장이 물었다. 여대생은 죽기 직전에 극도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잘 모르겠습니다.”


킬러가 고개를 흔들며 부인했다.


“둘러메고 산으로 올라가다가 집어 던졌나? 그래서 팔뼈가 부러졌나?”


재판장이 다그쳤다.


“아닙니다. 죽이기 전 땅에 내려놓을 때조차 안 듯이 내려놨습니다요.”


킬러가 안절부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안 듯이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그때 움직였어? 이미 죽어있었어?”


재판장은 짐승몰이를 하듯 킬러를 여유 있게 쫓고 있었다.


“그 여대생을 푸대 자루 속에 넣어 산으로 메고 올라가는데 힘이 들어 잠시 내려놓고 쉬었습니다. 그때 발이 꼼지락거리는 걸 봤습니다요.”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습디까?”


재판장이 물었다.


“입에 청 테이프를 붙여 놔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죽여주는데 얼마를 받기로 했지?”


“저는 2억원을 달라고 하고 사모님은 1억5천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중간금액인 1억7천5백만 원에 낙찰이 됐습니다요.”


“살인을 청부받은 게 그거 하난가?”


“아닙니다. 그 전에 두 건을 더 청부 받았었는데 실패해서 사례비를 못 받았습니다.”


회장부인의 섬뜩한 다른 살인청부가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재판장님 먼저 이쪽에서 모두진술을 해야겠습니다.”


그때 회장 부인의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모두진술은 국민의 권리였다. 그런데 변호사를 이십년 해오면서 전두환,

노태우 전직대통령 재판 때 보고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법정에서 그 절차는 생략됐다.


“하시죠.”


재판장이 허락했다.

경력을 나타내는 듯 점잖은 은발의 변호사가 준비해 온 글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는 회장부인의 법정변호사중 대표였다.


“이 사건에서 명백한 건 여대생이 살해됐다는 사실 뿐입니다.

회장부인은 살인을 해 달라고 교사를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고 또 잃을 것이 많은 대기업

회장의 부인이 그런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부탁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변호사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여유 있게 계속했다.


“회장부인이 했다는 살인교사의 증거는 실제로 살인을

한 두 사람의 증언 밖에는 없습니다. 그 두 사람은 회장부인이 살인을 지시했다고

하면서 물귀신처럼 이 사건에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물고 늘어지면 재력이 있는 회장부인이

죽은 여대생의 가족과 합의를 해 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형이 감경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회장부인이 그 여대생의 미행을 부탁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살인범인 두 사람은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납치를 결정했습니다.

납치 후 가혹행위가 있었을 것입니다.

동강난 팔뼈가 그 정황을 입증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다 두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여대생을 죽이고 해외로 도피한 것입니다.

그리고 체포가 되자 회장부인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회장부인의 얼굴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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