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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XT창고] 소설 - 살인자의 기억법2014.07.07 PM 04:09
일맥일맥의 사건에 따른 전개가 아닌 의식의 흐름을 쫓는 전개가 '너무 잘 읽어지는 소설'
이미 많은 수식어를 곁들인 복잡한 문장의 소설들에 익숙해져있으나 그런 단편적인 이미지화를 통한 사건의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본의와는 관계없이 관찰자의 입장으로 내몰릴 공산이 크다. 눈이 따르는 대로 활자가 묘사하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놓인 인물을 그리며 그 인물들의 대화를 엿듣는, 독자의 역량에 따른 부담이 큰 법이다. 철저하게 이야기의 바깥에 놓여있게 되는 이유로 1인칭 화자라고 하더라도 관념적 대상으로서 이입이 되기보다는 객관의 나라는 '인물'을 그리는 경우가 잦기에 추상을 추리하는 이 소설은 이입이 한결 쉬웠다.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건네오듯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는 인물이 느끼는 의식의 형태가 추상적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간결하고 짜임새있는 문체가 잗다랗고 너저분해질 계제를 단호하게 바로잡는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전직 연쇄살인마가 어떠한 쾌감이나 충동이 아닌,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필요에 의한 살인을 계획하게 되는 이야기로 글의 구성은 그러한 주인공의 내면을 따르는데 가령, 흐름과 맞지않게 갑작스레 문단을 바꾸며 등장하는 혼잣말과 무미건조한 넋두리들이 그렇다. 짤막한 내면의 자각적 발로가 옴니버스형태로 서술되어 더욱 '나'를 '나'에게 몰입케한다. 마인드맵처럼 객체의 특성에 따라 연상되는 관념못지않게 무심코 스스로에게 던져대는 상념들이 곧잘 의식을 지배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사실을 시각적으로, 인지적으로 문득문득 떠올리게 한다.
이따금씩 '나'는 짓궂고도 무서운 농담을 던진다. 뜨막한 사이의 사람들 속에서 '나'는 그렇게 곧 잘 속을 알 수 없지만 그다지 신경쓰이지않는 흔한 인물이다. 실제로 미디어에서 보도되는 잔인한 살인범에 대한 주변인물들의 인터뷰를 보면 꽤나 잦은 비율로 당사자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칭한다. 그 속이 표면화 되었을 때 '평범'과 다른 괴리에 더욱 공포를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나'의 속으로만 외치는, 그러니까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한 채 독자에게만 전달되어지는 농들이 더욱 그를 늙수구레한 치매환자가 아니라 의뭉한 전직 연쇄살인마로 보이게 한다. 특히나 죄책감따위는 괘념치않는듯한 능글맞은 그 말투가 '나'를 더욱 '나'답게 표현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나'의 완벽하지 않은 기억이 가져오는 모순들이 수면으로 도드라져 결말을 예상하게 하는데 헨젤이 뿌려놓은 빵조각마냥 흐름을 잡아가는 구성이 상냥해서라기보다 작가가 스스로를 채근했던 것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더 곁가지 사이로 숨겨뒀어도 좋을 법한 조각들은 '이건 사실 나중에 하려고 한 말인데'라며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난듯한 모양새다. 그런 적극적 공세는 내게는 조금 더넘스러운 면이 있었다. 반전이 가져오는 공포보다도 조금씩 바스러져가는 기억과 그 기억만으로 구성된 내면세계의 조임과 그러한 숨막힘이 공포스럽길 바랐다면 더더욱이 가려두었어도 되었을 법도 한데 너무나도 태연히 반전이 아니라고 하는 듯한 반전이 그 사실에 더 깊이 집착하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하지만 이미 앞서 언급하였듯 화자의 의식을 쫓아 추상적으로 그려내는 화법이 그러한 틈을 메운다. 건축학으로 비유하자면 설계상으로 미미하게 마땅찮은 것들을 익스테리어로 그럴싸하게 보완한 게 되려나.
이 소설은 흔치않게 해설이 부록으로 실려있다. 많은 창작자들이 독자에게 무한히 내재된 무언가를 이끌어내고자하는 바람으로 이러한 '해설'을 덧붙이는 것을 지양하는 것과는 상이한 형태다. 아마도 대개가 그럴 것이다. 전문가의 해설에 저도 모르게 '설득'되어 다양한 심상의 가능성이 가로막혀 버리는. 이러한 '부작용'은 스스로의 비판적 사고가 빈약하다고 평해질 수도 있으나 이 소설 자체가 '나'라는 인물이 느끼는 추상심리를 여과없이 표현했기 때문에 고르지않은 전개에 어려움을 느낀 독자라면 충분히 읽어봄직하다. 글을 접하는 태도에는 권할만한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역시도 유연한 사고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한다.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접하는 대상에게는 본인이 체득한 알맞은 형태의 것이 있다. 이 소설의 끝에 해설을 첨하였다는 것은 독자에게 강압적인 판단의 벽을 세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다양한 태도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해설이나 해석이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쉬이 본인의 판단체계를 바꾸지는 않는다. 재차 강조하지만 그 태도가 수동적이든, 능독적이든 말이다.
댓글 : 13 개
- 충전완료
- 2014/07/07 PM 04:15
으... 길다... 댓글 쓰고 읽어야지
- 충전완료
- 2014/07/07 PM 04:19
근데....살인자의 기억법이란 책의 소개인것 같은데... 어려운 단어를 써서 설명하니 더 어렵다...
- 여왕님★
- 2014/07/07 PM 04:24
소개아닌뎅ㅋㅋㅋㅋ
- 신도멸각
- 2014/07/07 PM 04:21
매우 불친절한 리뷰입니다
- 여왕님★
- 2014/07/07 PM 04:24
txt창고잖아요 ㅋㅋ 그냥 쌓아두는 거예요 ㅎ
- 달이차오른다자자
- 2014/07/07 PM 04:29
이 책 몰입해서 봤는데.. 묘한 재미가 있음
- 여왕님★
- 2014/07/07 PM 04:36
매력있어요 어렵지도 않고 ㅎ
- 0세라비0
- 2014/07/07 PM 05:28
어.. 이거 어디서 소개를 몇번 봤는데... 갑자기 급 흥미가 생기는군요!! 장바구니에 넣어놔야겠...
(어이 집에 안읽고 쌓여있는 책은 어떻할거냐!!)
(어이 집에 안읽고 쌓여있는 책은 어떻할거냐!!)
- 여왕님★
- 2014/07/07 PM 05:30
ㅋㅋㅋㅋ 책도 은근 쌓아가는 재미가 있죠 ㅋㅋ
서울오면서 다 처분하고는 회사에 있는 책들로 연명중입니다 ;ㅅ;
서울오면서 다 처분하고는 회사에 있는 책들로 연명중입니다 ;ㅅ;
- 천재님!
- 2014/07/08 PM 01:24
살인자의 건강법이랑 순간 착각했네요ㅎㅎ
- 여왕님★
- 2014/07/09 AM 02:02
유명한가봐요 ㅎ 구미가 당기네요 !
- 우는모가지
- 2014/07/09 AM 12:21
아멜리 노통브 작가의 '살인자의 건강법'도 있어요~ 정말 강추!
- 여왕님★
- 2014/07/09 AM 12:52
오 추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