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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일기] 그녀 (BGM ♪ Maximilian Hecker - I'll Be A Virgin, I'll Be A Mountain)2014.07.21 AM 02:29
[꼬마]는 굳이 초점을 흐리고 창 밖을 내다봤다.
둔탁한 비의 마찰음이 때려대는 창 너머로 일찌감치 골목어귀엔 어둠이 앉아있었다.
옹잘거리는 입매로 물끄러미 바라본 공간에는 인기척 마저 차게 식어버렸고,
어울리잖게 꼬마는 그보다 더 낮게 식어버린 한 숨을 내 뱉을 뿐이었다.
[아이]는 이따금씩 부잣집 아가씨같은 옷을 입고 말끔히 빗어올린 포니테일을 자랑하곤 했다.
필시 무언가 결여되었을즈음 나타나는 행색이다.
몸집은 작지만 여느 아이들보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다부진 눈매가 또래들 사이에서 꽤나 위력을 행사하는 모양새인데
시선이 그 아이를 좇자면 동선파악이 겨워질만큼 활력이 넘쳤고 어린군중들을 휘어잡는 통솔력은 가히 빛나기까지 했다.
..만큼, 집으로 옮겨지는 발걸음에 떼꾼한 얼굴이 묻어났다는 것만은 모른 척 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소녀]는 어금니를 앙다물고 달싹이지 않았다. 뱉지않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유일한 찬사다.
소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왔고 보듬어왔다. 시큰둥한 시선, 소녀의 트레이드마크일까.
해묵은 비밀이지만, '뱉어낸 것'이 주는 죄의식을 다시는 들쳐 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작용처럼 나름의 정의(定義)이자 정의(正義)랍시고 시니컬한 표정 이상으로 날이 서 있기도 했고
종종 으름장을 놓은 덕분에 문제아라는 꼬릿말이 붙었지만 소녀는 괘념치않는듯했고
당장의 주림, 추위, 초라함을 벗기 위해 그렇게 표정을 감추고 꾸역꾸역 삼킨 설움은 분노로 드러났다.
여전히 어금니는 앙다문 채.
사실 소녀는 문제아라는 인식이 나쁘지 않았을 터였다.
머리가 좋아 노력에 비한바 상위권을 유지하는 성적이 시너지 효과를 내주길 바랐고
그 바람대로 쉽게 얕잡아 볼 수 없는 이미지를 타인이 앞서 구축해준다는 것은
귀찮은 절차를 몇 단계 생략케 해주는 좋은 거름망이었다.
미스테리하고 방탕하나 분에 충하여 말릴 수 없는. 소녀가 원하던 그 정도의 데미지.
[그녀]는 한 차례 넘어졌다.
늘 그래왔듯, 가난이라는 넝마는 벗어내기 더넘스러울정도로 맹렬히 그녀의 사지를 옭아맸다.
마치 태날 때 부터 그녀의 피부였던양 구는 것이 이젠 처량할 기운 마저 뺏아왔고
추위라도 피해야겠기에 되레 스무 해만큼 낡아빠진 넝마를 다부지게 쥔 채 걸음을 재촉해야했다.
꼭대기에 움을 틔우고 터를 놓지는 못했으나 나 여기 왔다는 갔노라고 작은 명찰 하나 걸고서 생긋이 웃었다.
양지를 뒷덜미에 얹었다. 힐끗 고개를 돌리면 멀찌감치 존재로만 느껴질 뿐이다.
늪은 벗어났지않느냐는 다독임에 제풀로 서럽다. 하지만 그녀는 그 설움마저 용납되지 않는 호사임을 알고 있었다.
긴장감없는 프레셔가 익숙했기에 제가 제 등을 떠밀고 죽은듯 걸었고, 죽은듯 숨쉬고, 죽은듯 죽었다.
살아야했다.
죽어도 살아야했다.
삶이란 원하는 죽음을 얻기위한 투쟁이라는 의식의 제반에서 비롯된 허무주의가 무겁게 눌렀다.
얻은 것도, 받은 것도 없었기에 남길 것은 태생적으로 가진 어떠한 것들.
적어도 외로움이나 타인에 대한 두려움, 척박한 이미지, 가난따위들에 관여치않고
온전하게 그 자체만으로 아직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죽어도 살 방법을
그녀는 하나 둘 찾아내기 시작했다.
[2006년 언젠가.]
♬ Now that it's over
댓글 : 6 개
- 악사당연의
- 2014/07/21 AM 02:35
온전히.
- Gun들지마
- 2014/07/21 AM 02:40
힘들고 외로운 2006년 이었군요........
이제 2년만 있으면 10년이 지났다는게 믿겨지지가 않네요
이제 2년만 있으면 10년이 지났다는게 믿겨지지가 않네요
- 린스하는토끼
- 2014/07/21 AM 02:58
잘읽었습니다.
- Lux_et_veritas
- 2014/07/21 AM 03:18
글 너무 좋다....
- DUKE NUKEM
- 2014/07/21 AM 11:17
개인적으로 2006년은 정말 기억하기 싫은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