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XT창고] 겨울아이2014.07.29 PM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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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아파오던 배가 그녀의 걸음을 늦추고 있었다.
수금을 더 미룰 수는 없었다. 손바닥만한 부도직전의 공장, 수금을 해야만 밀린 임금과 거래대금을 처리하고 일을 받아올 수 있었다. 앳된 얼굴의 그녀는 세상살이의 모짊을 양쪽어깨에 두른지 이미 오래기에 익숙하게 다시 한 번 힘을 내었다. 하지만 23살의 그녀에게 이런 격정적인 진통은 여태까지 주어졌던 거친 세상만큼이나 더넘스러웠고 봉긋이 솟은 배가 한탄스럽기까지 했다.

두어 시간에 걸쳐 온 몸을 질질 끌고 도착한 또 다른 공장, 혹여나 심기를 건드려 일을 그르칠까 붙임성 있게 불렀다.

“하이고오, 김사장님. 저 왔어요. 내 좀 늦었죠 ?”

이런 살가운 재촉은 열여섯 생동안 전라도 시골에서 품앗이로 다져진 삶의 처세술이자 고등교육이란 것을 받아본 적 없는 그녀가 먼 타지에서 깨우친 생존방식이었다. 어렵사리 웃음지은 눈썹 끄트머리에는 감당하지 못할 산통에 자그마한 주름이 잡히고 차마 눈에 괸 고통을 떨굴 수 없어 지친 등허리께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애써 정신을 붙들어매고 그녀의 옷자락만큼이나 헤진 노란 봉투를 받아들고서 그녀는 다시 걸음을 뗐다.

전보다 강한 산통이 배를 가를 듯이 쑤셔댔지만 자신을 도울 그 누구도 없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거래처를 거쳐야만 했다. 그래야만 곧 태날 아이의 입에 젖내를 풍길 수 있기 때문이다. 걷다 주저앉고 또 걷다가 주저앉기를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한 후에야 수금을 마치고 공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속적이고 찢어질듯한 산통이 온 몸을 옥죄고 숨이 가빠왔다. 기어코 삼켜댔던 눈물이 망울져 떨어졌다. 조금이라도 달싹여 새어나가는 신음에 원망겨운 오열이 쏟아져 흐를 것만 같아서 입술을 깨물고 끄윽끄윽 가슴을 쳐댔다. 차디 찬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박았다. 한 방울, 한 걸음, 그대로 쓰러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녀에게는 지켜내야만 할 생명이 있었다. 무거운 걸음걸음에 책임이라는 중압감이 덧대어 붙어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였다.

모두가 자기 몫을 챙겨갔다. 그녀의 손에는 빈 봉투가 들려있었고 그 비어버린 봉투가 기꺼워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눈물겹게 한숨섞인 웃음을 지었다.

십여 시간에 가까운 산통으로 정신이 아득해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른 새벽과 같이 홀로 어렵사리 기어가는 모양새로 걸음을 옮겼다. 더욱 진해진 산통은 그녀를 고통스레 옭아매었고 그녀가 지난 자리에는 설움만큼 깊은 발자국이 패들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우리 곧 만나게 될 거라고 뱃속의 아이를 다독이는 말에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별이 밝아왔다.
1986년, 그 해 겨울이 시작되던 새벽이었다.


그래서 엄마, 사랑해.


댓글 : 8 개
ㅊㅊ
위에 코드랑 맞춰 그래서, 별이 왔다도 괜찮았을 거 같긴 하네요 ㅎㅎㅎ
그만큼이나 귀한 아이
여왕님의 어머니
엄마...
부모님 이야기 나오면 괜히 눈시울이 붉어져요...
싫은데...ㅜㅜ
1986년, 그 해 겨울이 시작되던 새벽
하늘의 별빛을 닮은듯한 눈망울을 가진 작은아이가 태어났고
별들은 아이를 축복해주듯이 매우 반짝거렸다.
86년 생이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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