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디자人] 서윤아 展 깊은 못_심연2014.10.15 PM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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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소개
깊은 못_심연(深淵)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나 늙어 죽을 때까지의 과정. 그 반복적인 굴레의 궁극은 무엇일까. 그 근원에 대한 물음을 위해서는 우선 자신에 대해서, 내면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수많은 개체 중 하나로서의 나를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내가 본 내면의 세계는 깊고 어둡고 고요한 곳이었다. 건조하고 황량하지만 따뜻하고 포근하기도 했다. 빛은 금세 빨려 들어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검은 것들이 공기를 가득 메웠다. 나는 그곳에서 환영처럼 눈앞에 어른거리다 사라지고 잔상처럼 머릿속을 헤매는 이미지들을 잡아 기록한다. 궁극의 실체에 다가서기 위해 응축하고 간결화한다. 그것은 마치 이 세계의 탄생에 대한,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과도 같다.

글 서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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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작가의 말과 작품이 어디서 꼭짓점을 이루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작가의 스타일과 작화기법만 다룬다면야 이런저런 감흥이 있을진데
의도와 결과물이 융화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일단 그런 겉치레들은 옆으로 비껴두고 생각해본다.
작품은 괜스레 스산할듯 심오하고 추상적이며 이내 얕은 기저의식에 부정을 심어놓기 딱 좋았다.


꽤나 오랜시간 뇌리에 자리잡아 패인듯이 새겨져버린 생각인데,
삶이란 잘 죽기 위함이 아닌가하는 어쩌면 약간의 염세주의에서 발현된 그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든, 식물로 태어나든, 동물로 태어나든
종국에 의미있는 삶이었다라고 평가받는 그 근원은 죽음 이후에 남겨진 것들이 아닌지.

죽음의 경로, 그 자체로야 이렇다 저렇다 평하기 어렵다.
뭇사람들의 삿대질을 받는 악인이어도 평화롭게 삶을 마감하고,
덕망높은 이인일지라도 처참한 죽음과 직면하게 되는 아이러니야 늘 겪어왔으니까.
다만 그 후에 세상에게 어떻게 남겨질지,
그러니까 실체의 존재보다 관념에의 존재로서 더욱 그 삶을 명확히하게 되므로
잘 살기 위한 몸부림은 역시나 잘 죽기 위함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언급한 두 내용이 가져오는 생경한 대립이 그러하다.
전자는 평화로운 죽음이라고 하나 오히려 그렇기에 치졸함의 극치로 논해질 것이고,
후자는 비참한 말로라고 한들 그 처참함 속에서도 신념이 꽃필 수 있음에 오히려 굳건한 의지가 솟는 법이라.
어떤 것이 '잘 죽기 위한 삶'이었고, '잘 죽은 결론'인가.


'어떤' 존재는 곧 '어떤' 소멸을 위함이다.


댓글 : 2 개
흰건 벽이고 검은건 그림이고 구멍은 콘센트네요.
콘센트에 전기장판 꼽고 저기 누워지면 밤에 분위기 쩔듯!
잘 죽든 비참하게 죽든 살아 있는 동안...
본인 스스로 떳떳하게 ( 그리고 즐겁게 행복하게 ) 사는 게 가장 좋은 게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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