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XT창고] 목욕탕에서2014.10.31 AM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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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후 3일째날이다
그러니까 약 30분 후면 그제 출근한지 48시간을 찍게 되겠다

오늘은 꼬질꼬질한 티 좀 벗으려고 새벽간 사우나에 갔다
탈의실 문을 열자 순식간에 후끈한 공기가 에워쌌다
확실히 날씨가 추워지긴 한 모양이다 하긴 곧 11월이니까

새로 받은 탕에 몸을 뉘이고 이틀간 쌓인 피로를 녹이다
위생관리사분께서 오시기에 채근하듯 잰걸음으로 위생매트에 올랐다
그렇게 멍하니 높은 매트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손질을 기다리는 정육점의 돼지고기가 이런 기분일까하는 객쩍은 생각도 스멀스멀 올랐다
나는 대중탕의 전신때밀이를 참 좋아한다
묵은 때와 함께 피로도 말끔히 씻기거니와
그 시간만큼은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딴 생각에 매진할 수 있으니까
특히나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부여한 강박에
멍하게 있는 즐거움을 잊은 요즘이라 이런 시간이 더 고팠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본인의 신체에 대한 컴플렉스가 굉장히 많은 사람이라
내 치부가 다른 누구에게 보여진다는 것에 꽤나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그런 것들을 가감없이 그리고 부담없이 내밀어보이는 순간이며
그것이 가능한 존재가 부모나 형제가 아니기에 드는 안정감이
일정 댓가를 치르고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주고받음에서부터 기인한다는 것이 우습잖다

이모님은 달궈진 팬 위에 올린 고등어마냥 나를 이리 저리 뒤집으셨다
엎드린 내 시야에 이모님의 부르트고 출렁이는 배가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왕복운동을 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말랐다 = 가난하다라는 시각은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다
오히려 웰빙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세간에서 떠들어대는 게 더 이상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니까
있는 사람들이나 저칼로리 건강식이라는 그 웰빙세태를 누리겠지만
우리같은 서민은 그런 게 어디있나 일단 저렴한 식단으로 배 채우기에 바빴고
건강관리라는 사치스러운 단어는 먹고 살기에 급급해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당연시 되어왔다

이런 저런 소비적인 딴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 새 전신때밀이가 끝났다
머리를 감고 가볍게 몸을 다시 한번 씻고 물기가 적당히 남겨진 채 탈의실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순간을 얼어붙게 만든다
사람의 감이란 건 참 우습지, 한 시간 전만해도 이 공기가 그렇게나 후끈하게 느껴지더니
이래서 통계적으로 수치화된 것이 아닌
한 인간의 주관적인 관점에 의한 감 혹은 촉같은 것을 잘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개중에 무엇을 믿어야할지 개괄하는 것 조차 객관적 근거가 없다면 그 역시 감에 의지한 선택일테니
사실 나라는 주체에게 놓인 상황이 수동태든 능동태든 어렵긴 매 한가지다

사우나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샀던 쓸데없이 비싼 새 속옷과 벗어두었던 옷을 다시 주섬주섬 주워입었다
3일째 같은 옷이다
연속으로 같은 옷을 입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매일 매일 다른 옷을 입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법이니까
뭐 당장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프론트의 문을 열고 밖을 향한 코끝에 익숙한 내음이 반가이 스쳤다
그 잠깐동안 비가 왔던 모양이다
더욱 반갑게도 주말은 비가 온다는군
꽤 마음에 드는 금요일이 될 조짐이다

오후 6시까지 또 열심히 달려볼까

댓글 : 22 개
힘내여
저도 간만에 목욕탕 갔다와야겠어요 ㅋ
힘내세요!
아..제목만 보고 아침부터 누가 쩡 달리는줄 알고 들어옴 ..ㅠ
이모님 '하얗게 불태웠어...'
아 얼마전에 고등어 먹었는데 생각났다
한편의 수필을 마이피에 올리셨네요. 문장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어쩜 글도 이리 잘 쓰시는지..!!!
고생하셨씁니다. 근데 컴플렉스가 많은 몸이란건 인정못하겠군요
ㄷㄷㄷㄷㄷ 48시간이시면 몸이 고달프시겠네요 빠른 퇴근후 푹잠을 추천 드립니다.
필력.... ㄷㄷㄷㄷ
호소력 짙은 문장이네용. 작년에 병원 입원해서 수술실 들어갔을 때 딱.. 나도 결국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죠..
어차피 한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수술실 안에 들어가서 누워 있고 수술 받으실분들 실려 들어오고 들어가고 하는 모습
보고 있자니.. 참 삶이란게 뭔가 싶더군요. ㅎㅎ
주말을 위해 달리는 직장인...
아침밥 챙겨 드시고 하세요.
고기 진짜 좋아하시나부다..ㅎㅎ;;
기운내세요
수필 보는 거 같네요...
정육점의 돼지고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귀여우십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
글 좋아요
혹시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좋아하시나요. 디테일 묘사가 비슷하시네요 ㄷㄷㄷ
진짜 필력이 대단하심...
완전 수필 이군요 ㄷㄷ
조금만 더 힘내세요! 퇴근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아아~
장면을 상상하면서 읽으니까
살짝 부끄럽군요. 후후 ^ㅅ^
여성분들 의외로 세신사께 많이 부탁하더군요.

나도 함 받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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