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각사각] 암상2015.08.15 AM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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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C'mon through - Lasse Lindh)






초등학생 때의 체력장에서였다
윗몸일으키기, 멀리뛰기, 100m달리기 등을 통해 처음으로 운동신경을 가늠하게 되었다
마지막 종목은 체력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오래달리기였고
그 전 종목들과는 다르게 40여명이 넘는 남녀 아이들이 모두 섞여 출발선상에 모여섰다
호루라기 소리가 뙤약볕을 가르며 귓천정을 울리자 짧은 팔다리들이 일제히 뜀박질을 시작했다
경쟁자가 있는 경기는 언제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한 명 한 명을 제치며 나아가는 바람결이 상쾌했다
결승지점에서 나는 2등을 했다
1등을 했던 남자아이는 체구가 작아서 늘 2분단 첫째줄을 도맡았던 나와는 달리
당시 기억만으로도 다부진 체격에 그을린 피부가 유난히 생생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짧지만 엄마와도 함께 네 식구가 살게 된 적이 있다
걸스카웃이든 뭐든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어서 처음으로 부모님께 졸랐더랬다
유독 조용하고 떼쓴 적 없이 홀로 커왔던 막내딸이라 없는 형편에도 흔쾌히 수락해주셨고 아람단에 들었다
처음 입단했지만 어째서인지 부단장이 되었다 그냥 6학년이라 그랬던 것 같다
단장은 5학년 때 부단장을 했던 같은 학년의 남자아이였다
앙다문 입끝이 야무졌고 강단있는 눈매의 리더쉽이 돋보였던 그런 남자아이.

방학이 되어 약 3박4일정도 일정의 수련회를 떠났다
3일 째였나, 아침부터 두어 개의 산을 타고 넘는 꽤나 악랄한 코스였던 것 같다
산 중의 안개를 헤치고 남자아이가 앞서자 그에 질세라 잽싸게 따라붙었는데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서 많은 아이들이 뒤쳐지기 시작했고 선두에는 그 남자아이와 나만 남았다
비탈길과 수풀이 우거진 좁은 길을 터주며 앞서더니
골인지점이 다가오는 너른 길이 가시권에 들자 슬며시 선두자리를 내주었다
그 아이가 양보를 해주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똑같이 양보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댄스팀에 들어가고, 한 때는 연습생을 하면서도 정말 잘난 남자애들이 많았더랬다
연예인급 외모로 이미 팬덤을 거느린 아이도 있었고 유명 기획사과 컨택하던 아이도 있었고
나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습득력이 남달라 세계대회에 나가는 아이들도 있었고
그냥 금수저물고 취미로 춤을 추면서도 공부는 물론, 잘생긴 건 옵션이던 그런 아이까지
단체생활을 하면서 스스럼없이 친해지고 허물없이 지냈지만
언제나 속에는 경쟁심, 열등감, 시기심이 꾸물거렸다

오히려 여자애들한테는 관대(?)했다 특히나 언니들은 정말 편했고
동생들도 나를 마치 친오빠(???)마냥 의지했고 나도 크게 드러내진 않지만 예뻐라했다
예쁘고 실력좋은 여자애들을 보면 뭐랄까 정말 예쁜 바비인형을 보는 충족감이 생겼다
희한하게도 그런 남자애들을 보면 늘 시기심이 따랐다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신체적 차이때문일 거라 생각하고 있다
같은 조건 아래 남녀의 신체적 고저차는 자명했고, 그 조건 안에서 늘 져왔으니까
나는 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니까

아직까지도 그렇다
어떤 쪽으로든 잘난 구석을 지닌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껴도
그 앞에는 어쩐지 암상이 나서 이기고 싶어 안달복달이다
심지어는 남자친구였던 사람들한테도 늘 그런 마음이 생겼으니까.
사람이 어떻게 100% 잘날 수가 있나 모자란 구석투성이인 건 또 너무 당연한지라
늘 지고 지고 지고 지고 또 지고 지고 그래도 다시 이기고 싶어서 혼자 나한테 떼쓴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여전히 지고 지고 지고 지고 또 지고 그래서 다시 이기려고 떼쓴다

사실 되게 찌질한 거긴한데, 뭐어 나쁘지 않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얼마든지 기껍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충분히 좋다 앞으로 더 좋아질 예정이므로 또 열심히 떼쓰겠지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랬다












♬ Come come come
C'mon through c'mon you
come dig right into my heart
C'mon through c'mon you
come dig right into my heart

What is the body if not a place
were you store all anger
and happiness and pain
But it s worth it I love the thrill



댓글 : 3 개
반대로 저는 그냥 혼자 파고 드는 걸 좋아해서 경쟁심이 너무 없는 게 탈..
일장일단이 있는거죠 뭐 ㅎㅎ
소울매이트 OST 간만에 듣네용 요즘 공중파 새 드라마 예고에도 이 노래 나오던데
전 다른 사람 앞에 선다는건 뒤에서 쫓기는 불안감과 중압감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별로 즐기지 않아요.
1인자보단 2인자의 자리가 더 편하더라구요.남에게 지는건 상관 없는데 다만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는건 싫은데...그게 참 이기는 것도 쉽지 않아요.
글이 참 좋네요.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아람단 단어만 들어도 흐뭇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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