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XT창고] 그 해 겨울2015.09.24 AM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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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이 뉘엿뉘엿 머리께를 감쌌다
버스 안에는 날씨답지 않게 짧은 치마로 한껏 멋을 낸 아가씨가 재잘대며 통화를 하고
한 켠에선 다부진 손에 케이크를 들고 목도리를 야무지게 맨 중년신사가 미소를 품고 섰다
아이가 성에 낀 창문에 달라붙어 손도장을 찍으며 개구지게 웃자
엄마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그런 아이를 좀 더 따스히 당겨 안으며 행선지를 살폈다

겨울이다

이마께에 송글히 땀이 맺힐 정도의 훈기에 시간이 더딤을 느낀다
마음은 이미 약속 장소까지 다다랐기에 약간의 답답증은 창문을 빼꼼히 열게 만든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과 앞서가는 자동차의 후미등이 반짝이며 흘렀고
이내 머지않아 버스의 뒷문이 열린다
아직 어둠이 뒷꿈치를 적실 정돈 아니다

날이 날인지라 번화가엔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런 북적거림마저 정겹고
크고 작은 상점과 가로수들 사이를 누비는 전구의 빛이 마주 잡은 손의 체온만큼 따스하다

곳곳에서 캐롤이 흐른다
상기된 양 볼에 온기가 돈다

2005.12.25.

댓글 : 3 개
여왕님의 스무 살 크리스마스였겠군요~
제 스무 살의 크리스마스도 상기하게 하는 글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
필력이 상승하는 계절이군요, 따뜻한 명절 보내시길~
정말 잘쓰시네요.

뭐든지 다 잘하세요 정말.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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