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XT창고] 낡은 책냄새.TXT2015.11.10 AM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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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저릿하게 안겨들던 날이었다

일찍부터 어스름이 찾아오는 까닭에 백발의 노인은 익숙히 오래된 전구를 켜고 앉았다
빗내음을 타고 몰큰히 스며든 오래된 종이 냄새가 시선을 이끌고 결국 내 발걸음마저 이끈다

주름진 주인장이 내 존재는 괘념치도 않은 채 그이만큼 낡고 작은 의자에 앉아 바지런히 빗방울을 헤고 있기에
눈썹을 살짝 달싹이곤 이내 노란 전구빛에 반사된 책등으로 시선을 옮긴다
뽀얗게 앉은 먼지들이 그 세월과 주인장의 만성적인 게으름마저 짐작케하기 충분하다
하지만 그이는 필시 낡은 책들의 잠자리를 하나하나 놓치지않고 있음이다
서툴고 허름하지만 조심스러이 씌워놓은 비닐북커버들이 '녀석들 본디 자리가 여기였소'라고 말하는 듯이

어떤 이는 낡은 책냄새가 쿰쿰하다고 휘날리는 책먼지가 객쩍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그래서 좋음이라고 설득하기는 구차하다
그러나 차분한 빗소리와 함께 슬레이트 지붕아래서 짤강이는 풍경소리가 공간을 메울 때
낡은 책내음이 따스한 전구빛을 타고 코끝에 채이면 그만큼 정서적 안정감을 충족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백발의 주인장은 곧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다 이미 늘어질대로 늘어져버린 구식 카세트 테이프에 손을 댄다
카세트 테이프 위에 붙여진 견출지에는 심수봉이라는 익히 유명한 가수의 이름이 힘있는 필체로 꺾어쓰여있다
약한 노이즈와 함께 구슬픈 목소리가 작은 공간에 흐르자 처음으로 저음의 늙은 쇳소리를 낸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

내가 넘기던 책장의 울림과 그가 흥얼거리던 오래된 가요,
낡은 책내음에 취해 비틀거린 마냥 작은 어깨가 바스러져 흘러 내렸던 것을 오롯이 기억한다


댓글 : 5 개
필력이 상당하시네요
와우~
고전문학읽는 느낌같아요 ㅎ
짤강이는
이런단어는 정말 어떻게 생각해내시는 건지.
대단해요.
부러울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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