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마마 팬픽]시작의 날2012.10.31 PM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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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형을 만들고 있을 때 들려왔다.

[내 목소리가 들리나.]
무미건조한 소리. 딱딱한 소리. 목소리는 그저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조금 자신을 도와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치만 난 특별히 소원이 없는 걸."
[하지만 돕지 않으면 세계는 멸망할 것이다.]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소원이 있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은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걸까. 인형을 만드는 몇시간. 목소리는 바늘에 찔려 손을 후후 불었을 때도, 실이 꼬여 인형 천이 못난 모양이 됐을 때에도, 인형 솜이 모자라 헐레벌떡 뛰어갈 때에도 나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완성!"

태어나 처음 만든 인형은 생각보다 귀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바느질을 제대로 못한 탓인지 관절이 축 늘어져 마법의 나라에서라면 움직일 것만 같은 방 속 인형들에 비해 한참 볼품 없었다.

"아... 실패야..."
[내게 소원을 빌면 고쳐줄 수 있다.]
"왜 넌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거야?"
[네게 소원이 생길 때까진 계속 함께할 것이다.]

소녀는 핏 하는 새초롬한 소리와 함께 인형과 책을 몇번이고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딱히 어떻게 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다른 인형들처럼, 아니 진짜 내 친구처럼 보일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처음으로 목소리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저기, 이 인형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해?"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면 된다. 이 별의 짐승들처럼 움직이게 만들어주겠다.]
"말같은 것도 하고 함께 놀아주고 함께 자고 할 수도 있어?"
[처음엔 본능대로 움직이겠지만 네가 처음부터 사육한다면 가능하다.]
"뭐야. 그거 어렵잖아."

소녀는 실망한듯 말을 멈추고 인형을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깐의 침묵, 하지만 그녀의 눈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럼 네가 이 인형이 되어줘."
[잘 이해가 안가는 말이다.]
"네가 이 인형이 되어서 나와 함께 해주면 돼! 망가지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있어줬으면 해."
"알았다."

목소리는 고민도 하지 않고 딱 잘라 말했다. 반쯤은 아무 생각 없이 말했던 말을 이렇게 쉽게 받아들일 줄이야... 지금이라도 거절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그럼 계약을 시작하겠다. 네 이름은?]
"...마리아야."
"그럼 마리아. 네 소원을 이루어주겠다."

그 말과 동시에 마리아의 가슴에서 시리는듯한 통증과 함께 아름다운 빛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둥근 원이 되어, 그녀의 품에 안겼다.

※ ※ ※ ※

"저기저기, 왜 말하는 게 그렇게 딱딱한 거야? 좀 더 귀여운 말투 써도 되잖아. 내가 가르쳐줄게."
"알았다."

※ ※ ※ ※

"너도 저기 있는 강아지처럼 애교부리면 더 좋지 않을까? 귀엽잖아."
"그래볼까?"

※ ※ ※ ※

"너는 뭘 해도 웃질 않네. 나와 함께 있는 게 재미없어?"
"그럴리가 없잖아. 난 그냥 감정이 없는 것 뿐이야."
"뭐야. 그게, 즐거우면 웃고 슬프면 울 줄 알아야 하는거야. 자 웃어봐."

※ ※ ※ ※

"마리아."

커다란 병원의 복도. 바로 몇분 전까지 여기서 끔찍한 싸움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거친 숨을 연거푸 내쉬는 작은 소녀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죽음의 위기를 마리아의 마음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좀 쉬면 편해질거야.."

작은 인형은 그녀의 어깨에 올라가 볼을 부비며 말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걱정스러운 말투. 마리아는 그 목소리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세차게 뛰던 심장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마워. 그런데... 여긴 어디야?"
"글쎄."

마녀의 존재가 느껴지자마자 앞 뒤를 보지 않고 병원에 뛰어들어 제지하는 사람들을 마법으로 막았으니 와서는 안될 곳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마리아는 걸음을 조금 빨리 하며 움직였다. 그리고 한참, 마리아는 어느 작은 방에 들어갔다. 그 곳에는 옷장을 축소한듯한 투명한 유리상자가 몇개 있었다.

"이게 뭔지 알아?"

인형은 그녀의 말에 상자를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말하였다.

"이건 미숙아를 기르는 장치네."

마리아는 그 말에 상자에 달라붙어 그 속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지금까지 봤던 어떤 아기보다도 작은 아이가 새근새근 숨을 쉬며 자는 모습이 보였다. 마리아는 어디선가 이런 장치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는 걸 떠올렸다. 아버지가 보는 신문에 적혀 있던 이름은...

"인큐베이터...라고 부를거야. 아마."
"그런 이름이구나. 인간들도 이런 걸 해낼만큼 발전했네."

잘 자라는 대견한 자식을 보는듯한 뿌듯한 목소리였다. 마리아는 목소리가 돕지 않았다면 아직도 인류는 짐승에 불과했을 것이란 얘길 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결국 우리는 싸우다 공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새삼스러운 존경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동시에 그녀의 머리 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이름!"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 이름이 없다고 했잖아. 앞으로 인큐베이터라고 부르는 게 어째?"
"인큐베이터... 상관은 없지만 너무 긴 이름 아닌가?"
"그래? 그럼 큐베 어때?"
"괜찮네."

큐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의 문이 열리며 무서운 얼굴을 한 몇명의 남자들이 달려들었다. 이대로 잡히면 훈계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은 기세. 마리아는 큐베를 껴안은 채 사람들을 마법으로 잠시 속박한 뒤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뭐가?"
"아까 당한 곳 말야."

그러고보니 잊고 있었다. 혼자였다면 결코 잊지 못했을 끔찍한 경험. 하지만 큐베가 있기에 모든 것이 기억 넘어로 사라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마리아는 자신을 천진한 눈으로 바라보는 큐베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큐베가 있다면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응, 괜찮아."

아직도 병원을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마리아의 뜀박질은 한없이 밝고 가벼웠다.언제까지고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큐베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 ※ ※

"으.."

사고는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마녀를 발견하고 들어갔던 폐성당이 마녀가 없었으면 당장이라도 무너질 곳이었다니... 마녀가 결계 밖에서는 힘을 행사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리아는 결계가 사라지자마자 아무 것도 못한 채 깔려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리프...시드는... 어디..."

마법을 쓰고 싶어도 소울젬은 마녀와의 전투로 탁할대로 탁해져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쥐고 있던 그리프시드는 어디론가 날아갔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소울젬은 그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마력을 보급할 것이고 결국엔 완전히 검은 빛으로 물들 것이다. 남은 것은 절망뿐... 하지만 그 순간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큐베!"

입에 그리프시드를 든 큐베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끝이 아니었다. 아직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큐베는 그여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마리아는 손을 뻗어 큐베가 입에 문 그리프시드를...

"큐베, 왜 그래?"

하지만 큐베는 그리프시드를 놓지 않았다. 그저 입에 문 채 마리아를 가반히 바라볼 뿐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큐베의 눈망울이 천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너는 지금까지 날 많이 도와주었어. 많이 배웠고. 그래서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함께 있었지."

큐베는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말투는 그녀가 가르쳐준 그대로지만 어째서인지 처음 만날 날이 떠오르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네가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법을 알려준 덕분에 계약도 많이 할 수 있었어. 예전에 비할 수 없을만큼 많은 마법소녀가 생겼지. 그만큼 마녀도 많이 생겼고."

마리아는 큐베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마법소녀와 마녀가 무슨 관계이길래 이렇게 말하는 걸까. 그리고 이 급한 상황에서 무슨 소릴 하는 걸까. 그녀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제외한 가능성들을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불길한 검은 기운으로 가득찬 소울젬과 그리프시드를 번갈아 본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네가 죽인 마녀들은 대부분 내 외모와 말투, 연기를 믿고 나와 계약해준 소녀들이야. 네 뛰어난 재능 덕에 모두 제거할 수 있게 됐고... 걱정하지마, 넌 이 우주에 기여함과 동시에 네 과오도 모두 지운 거니까."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큐베가 자신을 속일 리가 없다. 이건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그가 나를 시험하려는 것일 뿐이다. 처음으로 해보는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큐베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생길 과오는 엄청날 것 같네. 너는 상당히 뛰어난 마법소녀였으니까."

마리아는 그리프시드를 뺏기 위해 좀 더 팔을 뻗어 보았다. 하지만 큐베는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한걸음 물러날 뿐이었다.

"고마워. 마리아. 하지만 이제는 끝낼 때가 된 거야."

큐베는 마리아의 말을 기다리는 듯 입을 닫았다. 의외로 화는 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걸 놔버릴 것 같은 허탈감이 들뿐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건 산더미같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질문은 하나였다.

"그냥... 모르고 끝내면 안되는 거였어?"

아무것도 몰랐으면 보람있는 삶이었다는 위안이라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큐베의 말은 그녀의 모든 것을 무너트렸다. 고맙다면 지금 그녀의 앞에 나오지 않았으면 될 것 아닌가. 큐베는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분히 대답할 뿐이다.

"그냥 죽으면 마녀가 될 수 없으니까. 소울젬이 완전히 물드는 것보다 먼저 죽으면 안되잖아?"

소름끼치는 소리. 마리아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소울잼에서 전해오던 마력이 한계에 달한듯 격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반신에 전해지는 묵직한 중량이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죽여줘... 날 동정한다면 제발 죽여달라고..."

힘없이 내뱉는 말. 하지만 큐베는 조용히 말을 이어나갈 뿐이다.

"네 소원대로 난 앞으로도 영원히 이 모습이겠지. 이런, 그러면 네 과오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구나. 마지막이니까 울어줄게.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큐베의 눈에서 투명한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마리아는 감기기 직전의 눈을 떠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웃으면서 눈물 흘리는 큐베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허무함을 모조리 불태우는 마지막 분노를 담아 외쳤다.

"큐베에!!!!!!!"

그리고 그 순간 마리아의 몸도 마음도 격한 바람 속에 갈갈이 찢겨 나갔다.








Quitterie-키트리



바늘(針)의 마녀. 그 성질은 경애(敬愛).
우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채로 싸웠던 마법소녀의 비참한 말로.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우주를 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게임판 마녀-


-끝-

큐베 개새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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