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만년필2020.03.23 AM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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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펜덕이다. 덕... 이라고 까지는 좀 뭐한가...? 뭐... 펜들의 역사를, 브랜드들의 이미지와 대표제품 라인 이런걸 줄줄 꿰고 있는건 아니지만, 남들은 잘 안 쓸만한 가격대 펜을 여러개 가지고 있다. 만년필도, 볼펜도. 


꽤 예전부터 부터 항상 가지고 싶은 것은... 역시 육각별. 몽블랑 만년필. 작년즈음부턴 어린왕자. 한정판이라 이제는 구하기도 어렵겠지만. 참 멋있게 생겼다. 가격도 참 멋있다. 사치품 다운 가격이다. 진짜 살까 못 살까하는 그 라인에 굉장히 애매하게 걸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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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이 글을 보든 사달라는거 아니다. 나도 원하면 살 수 있다. 또 다른 18개월이 걸리겠지만...


얼마 되지않는 내 용돈에서 매달 십만원씩 모았었다. 어떤 달은 덜 모으기도, 가외 수입이 생기면 조금은 더 모으기도. 꼴랑 저거 하나 사려고. 실제 사용은 진짜 오지게도 안하고 일주일에 글자 몇 글자 쓸 것 같지도 않은데. 지금 다른 펜들도 그러고 있는데. 


 결국 만년필값을 다 모았었다. 일년 반쯤에 걸쳐서. 이 글을 쓰는걸로봐서 결론은 다들 예상하겠지만 못샀다. 돈이 있어도 못 사겠더라. 그것을 위해 모은 돈인데도. 저 만년필 값이면 아들 일년 태권도 학원 값이랑 비슷하다. 와이프 줬다. 그 돈을 와이프에게 주면서 기분 좋았을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기분이 꽤... 좋지 않았다. 안 좋았다. 슬펐다. 저런거 하나도 못 사는 내가 한심했다. 돈을 못 버는 편도 아닌데. 내 손에 돈이 없는것도 아닌데. 


 얼마전에 업무 미팅차 어떤분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갖고싶은 아이템...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은 3년째 라이카를 갖고 싶어서 침만 흘리고 계시단다. 30대 초반. 미혼. 남성. 


 열변을 토했다. 가지시라. 지금 아니면 가질 수 없다. 어정쩡한거 사 봐야 라이카 생각 계속 날 거다. 이중지출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겐없지만 대리님에겐 아직 할부가 있다. 24개월 할부로 지르시라. 50만원씩이면 되지 않느냐... 3년동안 고민한 것도 비용이다.. 못 사고 시간 흐르면 3년후에도 같은 고민만 하고 있을거다. 지금 사면 그땐 할부가 끝난 라이카가 손 안에 있으실 텐데. 지금 사시라.... 사시려나... 살거면 빨리 사서 나도 구경 좀 시켜줬으면. 


 소비란게 참 그렇다. 소비를 하면 내가 무엇이라도 된 양 나를 감싸고 있는 소비가 나인 양 허영심에 둘러쌓인다. 남들보다 비싼 맞춤 수트. 또래 친구들에 비해 그럭저럭 괜찮은 차. 나를 감싸고 있는 분에 넘치는 물건들이 마치 나인 양. 분수에넘치는 할부나 렌트에도 마치 응당 그것을 누릴 자격이 되는 양. 


 지금까지 해 온 여러가지 소비들로 미루어 볼 때, 지금 내가 어마어마하게 갖고 싶어하는 이 것을 갖는다고 해서 내가 더욱 더 행복해질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껏해야 한 달쯤 신줏단지 모시듯 하다가 지금 가진 다른 펜들과 같이 책상에 굴러다니는 처지가 되겠지. 몽블랑이니까 그래도 케이스 안에 들어간 채로 굴러다니려나. 


 물질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있다. 그러나 물질로 받을 수 있는 작은 위안조차 아니라면 어디서 그것을 받아야 할까. 

댓글 : 3 개
  • Pax
  • 2020/03/23 AM 01:29
ㅎㅎ 전 몽블랑은 좀 별론데 워터맨의 30만원대 라인들이 좀 끌리더군요.
글 쓰신거 보고 생각해보니 이 생각을 10년째 하고 있습니다.
저도 저 만년필 살까 말까 했었는데 요즘은 만년필에 관심이 급 꺼져서리....
워터맨 뉴헤미스피어랑 퍼스펙티브 사용중인데 본문 보니까 더 사고싶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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