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 월급2020.04.11 PM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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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올랐다.

2011년 8월에 이 회사에 입사해서 지금이 2020년.

햇수로 10년차. 만으로도 9년을 거의 채워간다.

10년만에 세전 기준으로 받는돈이 딱 두 배 됐다.

뭐.... 월급만 회사에서 받는건 아니지만. 


보너스가 작년부터 꽤 덜 나오기 시작해서

실 수령액은 재작년보다도 못한 상태일것 같지만...

여튼 세전으로 명세서에 찍히는 금액은 딱 두배. 뭔가 뿌듯하다.

 

72의 법칙을 대입해서 만 9년...으로 계산해보면 매년 8프로씩 올랐다.

이 뭐같은 경기에... 내 만족을 기준으로 보면 적지 않다.

어쨌든 올해는 꼭 보너스 받아봐야지.

 

직급도 대리로 입사해서 어느덧 차장.

이 코딱지만한 회사에 직급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결혼하기 전에 입사해서 지금은 어느덧 애가 9살. 초등학교 2학년.

요즘은 학교를 못가서 뭐.... 2학년인게 실감은 나지 않지만. 

 

 

몇일 전 아들 옆에 누워 아들을 재우는데, 아들이 묻는다.

 

아빠 회사는 얼마나 다녔어?

 

음 아빠는 회사다닌지 십오년정도 됐어

 

아니 예전 회사 말고 지금 회사

 

지금 회사는 십년째 다니고 있지

 

아니 원래는 그 노란 건물에 있었자나

 

아 그거. 아빠가 다니는 회사가 통째로 이사한거라서 아빠가 회사를 옮긴건 아니야

 

아 전에 노란건물에 있을때랑도 같은 회사야?

 

응 아빠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십년째 다니고 있어 너가 세상에 없을 때부터

 

헐 완전 오래됐네 나 없을땐 왜 일했어?

 

아빠가 일을 해야 아빠도 밥 먹고 엄마도 맛나는거 사 주지 임마~

 

나 없으면 일 안해도 되는거 아냐?

 

근데 인제 너 잘 먹일라면 인제 열심히 일 해야지 아빠가 눈감아 임마 

 

 

새삼 실감이 난다.

옆에 누워서 나한테 장난치는 키 130정도에 몸무게가 33키로나 나가는

몸만으로 보면 한 반쯤 키운듯 한 아들놈이 

세상에 없을때도 이 회사에 다녔구나. 참 오래도 다녔다 싶다.

아들과 이야기 하는 잠깐사이에 10년동안 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짧지 않은 세월이니만큼 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 개인에게도, 회사에게도, 사회 전체에도. 

 

좋건 싫건 내 삶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회사에서도

일을 일로만 생각하려.. 애 쓰는 편이긴 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월급에 기반한 알량한 책임감에 

뭐같은 성질머리에 윗 사람도 가끔 들이받았었고

요즘은 대가리 컸다고 사장님과도 맞먹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일 안하는 상사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기도 하고

회사 내부적인 일로 외부에 얼굴들기 창피할만큼 낯부끄러운일도 몇번 겪었지만

가끔 일이 잘 될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결국 옮기지는 않았지만 과분한 조건의 스카우트도 몇 번 받기도 했었다. 

 

물론 일은 매달 얼마 되지 않으나마 통장에 꽂히는 월급때문에 하는 것이지만,

돈 때문만에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일하는 시간 자체가, 

내가 주인이 아닌 내 삶 자체가 너무 비참해지기 때문에 

그저 일에 불과힌 그 일을 나와 어느정도 동일시하며 

일 안에서 보람을, 즐거움을 찾으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엔 일은 일일 뿐. 

그만두지 않을 만큼만 월급주는법을 배우는 학원이라도 다니듯이 

정확히 그 언저리에서 월급을 주는 사장과 

연차가 쌓여갈 수록 늘어나는 책임. 

이 나이에도 이 연차에도 윗 사람의 따뜻한 한 마디를 바라고 마음 상해하는 나 자신과 

동료 직원들의 당연한 기대, 회사 정책과 내 생각과의 괴리에서 오는 스트레스. 

여러가지가 버무려져 굳이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먹고 살려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에대한 환멸은 점점 늘어난다.  

 

하고 싶은 일이라도 하면 좀 나을 수도 있겠으나 

뭘 하고 싶은지 이 나이에도 아직도 뚜렷하지도 않고 

그나마 하고싶어지는 것들을 하기에는  

어깨에 얹혀진 것들을 내려놓을 수 없어 

그저 지금까지의 관성으로 계속 나아간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생각을 해 보지만 

딱히 뾰족한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 안에서 행복을 찾기는 쉽지 않아 

내 즐거움을, 내 행복을 알아서 찾으려 해 보지만 그나마도 여의치 않다. 

이런 나를 돌아보면 지난 10년 동안에도 그랬고, 

앞으로 올 10년후, 20년 후에도 그렇겠지만 

난 아마 그리 좋은 직원도, 아빠도,... 남편도 되지 못할 듯 싶다. 


댓글 : 12 개
차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제가 답을 드리죠...

이 세상이 허접한것 같아도..

질서가 0.1%도 틀리지 않게 꽉 질서가 잡혀있습니다.

회사에서 왜 자괴감이 노느냐????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본인은 월급만 가져가고, 그 거래처는 본인의 회사 것이지... 본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즉,, 10년 열심히 해도 본인것이 1도 없어서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주변을 둘러보시고, 내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시고,,, 준비하기 바랍니다.

그게 답이고,,,,,

준비하는 사람하고, 안한사람이 나중에 퇴직하고 퇴직금을 받았을때

준비안된 사람은 결국, 주식, 허접한 사업하가가 퇴직금까지 날리고 눈물을 쏟는 모습을

많이 봐왔습니다.

관심없는 분야의 유투브채널도 돌아다녀 보시고, 시내에서 평소 안가던 음식점도 가보세요..

이런 답을 원하고 쓴 글은 아니었는데... ㅎㅎ
말씀하신 대로는 잘 하면서 살고 있는것 같아요.
여튼 감사합니다 ㅎㅎ
  • i109
  • 2020/04/11 PM 06:00
글 잘 쓰시네요.
지금까지의 관성으로 계속 나아간다.. 포함해서 많이 공감합니다.
칭찬 완전 감사합니다 109님
책 한페이지도 제대로 못보는데

눈으로 읽으면서 머리로 한번 더 곱씹게 만드는 필력이 상당하신거 같습니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고

괜찮아요~ 잘하고 계십니다 차장님~!
이런 주제가 그런 공감을 이끌어 내기 쉬운 것 같아요
칭찬 완전 감사합니다 야옹님 ㅎㅎ
삶의 흔적과 고민들이 느껴지는 좋은글이네요.. 그리고

'그러나 결국엔 일은 일일 뿐.'이라는 말이 공감되네요.

여러번 고민하고 스트레스도 받아 봤는데 결국은 위와같은 결론에 도달하더라구요..
뭘 어쩌든 일은 일일 뿐이더라구요
내 일도 아니고 남의 일을 대신 해 주는... ㅎㅎ
아버지의 삶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살짝 눈물이 날뻔....

어찌보면 이게 남자의 인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앞으로의 미래에 행복한일만 있을수있길 기원합니다.ㅎㅎ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깨에 얹혀질 것들이 생기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기도 해야 할 것 같고... ㅎㅎ
감사합니다 R8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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