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 잡플래닛 2021.09.07 PM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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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꽤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내가 어느 정도 잘나서 지금 이 정도 먹고사는 걸 수도 있겠지만, 여튼 이 회사 와서 사람이 많이 됐다. 뭔가에 쫒기듯이 삶에 허덕이던 그전 시절과 비교하면 삶의 만족도는… 그때도 낮진 않았군. 여튼, 모든 면에서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내 사회생활에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꽤 많이 만족하고 있고, 거의 모든 부분을 회사에서 제공한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좋다. 내가 느끼는 만족감을 다른 직원들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렇게 다니던 와중 이사님이 사무실에 거의 안 나오면서 제2의 인생 설계에 집중하겠다는 선언을 듣고 나서 타이밍 좋게도 최근에 이직 제의를 몇 군데에서 받기도 했는데(돈 천만 원 올려준다는 곳도 있었음), 이런저런 고민을 해 봤지만 일단 지금 회사에 더 다니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지금 회사가 정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다른 뭔가 성장 가능성이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단기간에 인수인계를 해 줄 수도, 문서 몇 장 쓰고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도 없는 내 일의 특성상 당장 내가 나가면 회사가 꽤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회사에 더 있어야겠다는 결론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기도 했다. 여튼 회사를 지금 총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지금의 조직이 정체되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도, 일하는 방식도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 몇 년을 보내고 있다. 이사님의 선언이 있기도 했으니, 내 밑이든 위든 영업 직원이라도 하나 더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사장님께 말씀드려 컨펌을 받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내 뒤라도 이어받을 사람은 만들어 놓고 나가야지.


 지난주 말에 그 공고를 올렸는데, 바라는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분들이 지원을 하신다. 세 분이 지원하셨는데 나보다 나이가 열 살 이상 많은 분들… 그분들이 오셔서 회사를 바꿔주실 수도 있겠지만, 기존에 하시던 다른 영업망을 살리는 것도 쉽지 않은 업무라 저분들이 바라는 연봉을 맞춰드리기는 사실상 어렵다. 기존 영업망들을 살리면서 연봉 이상 자기 할 일을 해온다면 회사 입장에서 연봉 많이 주는 게 뭐 어렵겠는가 싶지만… 주말 새 들어온 이력서엔 그럴 분도 보이지 않는다. 올라가있던 공고를 다시 보기 좋게 수정하고 다시 좋은 지원자분들을 기다린다. 우리 회사 진짜 좋은데… 같이 일할 사람이 나라는 거 말고는 진짜 좋은데… 이걸 공고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네…


 나랑 일하는 게 쉬운 건 아닐 거다. 바라는 기준이 낮지 않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어떤 스펙이 갖춰진 사람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된 사람을 바란다. 빠릿하고, 일 잘 하고, 선한 인상에 말도 잘 해야 하고, 자기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고, 팀원과 잘 협력하고, 성격은 모나지 않고 서글서글해야 하고, 얼굴에 인생의 고뇌가 너무 느껴지지는 말아야 하고, 너무 능글맞거나 뺸질거리지도 않고… 여러 조건을 모두 적용해보니 마지막 조건 때문에 나도 못 들어오겠다는 생각까지 닿는다. 적당히 좋은 분으로 뽑아야지… 사람을 뽑는다고 하자 주변에 알던 사람들이 자기가 가면 안 되냐며 반쯤 진담을 담아 물어보지만 전부 사양한다. 내 옆으로 사람이 들어오는 것보단 밑이든 위든 확실하게 되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좋기도 하고, 아는 사람은 널리 퍼져있는 것이 좋다. 진짜 욕심나는 분 한 분에게는 말씀드려봤는데 본인은 지금 일이 재밌다며 다니는 회사에 만족하신다고… 아니 그런데 회사 욕은 왜케 하시나…


 여튼 그렇게 공고를 올리고 보니 문득 궁금해져서 잡플래닛에 회사 이름을 쳐봤다. 음…? 평점 1점…? 주변 회사들을 아무리 둘러봐도 1점 받을 회사는 아닌데… 회사를 눌러 세부정보를 확인해본다. 작성한 내용은 보이지 않지만 별은 일단 한 개를 줬고, 승진 기회 및 가능성 1점. 복지 및 급여 1점, 업무와 삶의 균형 3점, 사내 문화 2점, 경영진 1점… 경영진에 대해서는 나와 생각이 같군… 근데 총점이 별 하나라니 이건 너무하지 않나, 배민에서도 별 하나 짜리는 거르는데. 내용이 너무 궁금해진다. 개발실 직원들에게 이야기하자 올 초에 이직하려다가 눌러앉은 한넘이 자기는 알고 있었다며…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알았으면 나한테 말을 해줘야지 이생키가… 다른 한 넘은 자기도 뭐라고 썼을지 너무 궁금하다며 자기가 회사 리뷰를 남기고 확인해보겠다고 한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내가 쓰면 나쁜 말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사측인게 티 날까 봐… 여튼 그 친구에게 써놓으라며 숙제를 나믹고 알고 있었돈 그 짜식과 같이 외근을 나선다. 월요일 오전 열시 미팅. 보통 이 시간엔 외근을 안 잡는데… 일정이 이렇게 됐다. 쯥.


 내가 다니는 10년 동안 지나간 퇴사자들을 죽 떠올려본다. 1점 줄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랑 싸우고 나간 경리일까? 변명할거리는 많지만 여튼 싸우고 갈구다가 관리 직원 두 명 내보냈는데… 중간에 몇 명 바뀐 막내들일까? 아니 근데 막내들이 회사 욕을 할게 뭐가 있지… 관리직원들은 다들 나간지 엄청 오래 됐는데… 내용을 봐야 누군지 특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뭔 내용이나며 동행한 놈을 다그쳐보니 이걸 쓴 게 누굴지 윤곽이 대충 잡힌다. 회사 밥이나 엄청 축내던 그분. 분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싫군… 여튼 그 양반은 19년 봄? 여름쯤에 퇴사했는데 왜 21년 1월에 리뷰를 남겼을까가 궁금하다. 그 사람이 아닌 걸까? 최근 1년 안에 퇴사자가 있었나…? 없는 것 같은데, 그 사람이 맞는 것 같은데 대체 왜 올해 초에 그랬을까? 라는 질문에 적절한 답이 떠오른다. 그 사람이 맞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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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근 일정은 협력사를 통해 납품한 금융사 기술 지원 건이었는데, 나는 그쪽 PM에게 얼굴도장이나 찍을 겸 다녀왔다. 사실 내가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건인데 엔지니어 혼자 달랑 보내기엔 좀 거시기 해서 둘이 같이 방문했다. 내가 기술 지원 건에 가서 할 일이 없는데… 크흠… 여튼 금융사는 진입할 때 보안을 굉장히 까다롭게 하는 편인데 여기도 그랬다. 아니 근데 해도해도… 차라리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이지 어플까지 깔게 하나… 싶어서 방문 등록을 기다리는 줄에서 엔지니어를 쳐다보며 “나는 요 밑에서 기다릴게. 혼자 다녀올 수 있지? 가방 맡기지 말고 나한테 줘 내가 잘 지키고 있을게.” 인솔자인 협력사 이사님에게도 90도 인사. “잘 부탁드립니다 이사님”


 엔지니어가 기술지원을 하는 동안 나도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열심히 봤다. 커피마시며 엔지니어의 가방을 지키는 것. 쉽지만은 않은 임무였다. 그래봤자 프랜차이즈 커피지만 커피가 묵직한 바디감이 느껴지는게 살짝 내 스타일이다. 외근에서 복귀하니 회사 점심시간에 거의 딱 맞는다. 오늘 점심 메뉴는 뼈해장국. 조금 걸어야 하긴 하지만 꽤 붐비는 집이다. 주차를 하고 뼈해장국집에 도착하니 11시 35분. 이미 웨이팅도 몇 팀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니 (구)막내가 자기들이 마지막 남은 테이블에 앉았다며 좋아한다. 자리에 앉아 앞치마를 두르기도 전에 ‘저 리뷰 봤어요, 누가 썼는지 알겠어요’. 지금 밥이 문제가 아니다. 넘나 궁금한 것… (구)막내가 자기는 이렇게 썼네 저렇게 썼네 저 리뷰 쓴사람 자기가 저격을 했네 뭐했네 말을 하지만 (구)막내님… 나는 님이 리뷰를 어떻게 썼는지는 관심이 없어요… 뭐 적당히 좋은 말 썼겠지… 알았으니까 빨리 리뷰나 보자며 내용을 보니 누군지 고민할 건덕지가 없다. 그 사람이구나.


 회사 리뷰 내용은 뭐 별게 없다. 문체는 악의에 가득 차서 쓴 것 같은데 대부분의 내용은 그리 문제 될 게 없다. 어느 회사에나 있는 그런 내용들. 칭찬인가 뭔가 헷갈리는 내용도 있다. 쓰여있는 대부분의 욕은… 다른 사람들보단 본인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 같은데… 내용이 거의 자개소개에 가깝다. 사장님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이런저런 욕 중에 본인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이 하나도 없다. 손가락질을 할 때 뭔가를 가리키는 손가락 하나 말고 손가락 네 개(세개냐 네개냐 하는 부분에 논쟁이 있지만 적어도 세 개는 확실)는 자기를 향해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본인에게 해당되는 말들을 너무 써 놓은 것… 배울 점이라곤 1도 없는데 자기가 최고인 줄 안다… 회사에서 게임이나 한다… 모르면 닥쳐야 반이라도 간다… 아무리 봐도 자기소개다. 아니 근데 이 사람은 회사에 10년 있으면서 승진도 할 만큼 했고, 복지나 급여도 꽤 괜찮았던 걸로 아는데 그 부분에 왜 별 하나를 준 거지? 뭐 하는 새끼지 이거…? 업무와 삶의 균형 별 세 개… 내가 회사 다니는 동안 이 양반이 롤 하는 거 말고 야근한 걸 본 적이 없는데… 롤이랑 디아 할 때 말고는 나보다 늦게 퇴근한 적이 없는데… 사내 문화는 자기가 다 망쳐놓고 별 두 개… 다만 경영진 별 한 개는 완전히 인정하고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


 참 찌질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퇴사한 것도 개발자가 뭐 새로운 기술 배울 생각은 없고 문 닫기 직전 수준의 기술인 ActiveX나 19년까지 만지고 있고, 자바스크립트를 회사에서 배우라고 그렇게 개 지랄을 해도 3년 넘게 귀 닫고 있으면서 게임하고 영화나 보면서 개발팀장이라는 이름으로 연봉이나 올리고, 그나마 신규 매출은 없고 기술 지원이나 하다가 그나마도 직접적인 기술 지원은 안 하고 이건 안돼요 저건 안돼요 이렇게 말로나 때우다가… 정말 회사 이미지 곱창 내놓고 결국 쫓겨나듯이 나갔다. 그렇게 나가고 나서 인수인계도 뭐도 똑바로 안 해놓고 나가서 뭔가 이슈가 있어서 전화했을 때 전화 안 받아버리는 고급 기술까지 쓰시던 분인데… 왜 나간 지 일 년 반이 돼서야 이런 리뷰를 남겼을까. 자기란 걸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걸까. 어차피 내용 보면 누구나 자기가 썼다는 걸 특정할 수 있을 텐데. 특정 사이트 이용자들이 많은 부분에서 오버랩된다.


 누가 썼나 하는 큰 의문 하나는 풀렸고,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문다. 왜 21년 1월에 리뷰를 남겼을까. 10년을 한 회사를 다니고 팀장까지 했으니 보이는 스펙은 좋다. “개발자가 10년이나 한 회사를 다니시다니 훌륭하시군요. 팀장까지 하셨으니 능력도 문제 될게 없겠네요”라며 다른 회사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을거다. 문제는 그다음… 길게는 5년, 짧게 잡아 3년은 본인 능력 개발이 아니라 챔피언들 개발이나 하고 다니고, 간간이 있는 업체 미팅(기술 지원)들도 실질적인 해결은커녕 이건 이래서 안 돼요 저래서 안돼요 하며 말로나 때우고 다녔으니 능력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수능 점수와 롤 티어가 반비례한다는 말이 있듯이 롤 실력만큼 개발 실력이 줄어들었다면… 개발 졸라 잘했어야 할 텐데 이상하네. 게임을 그렇게 하도고 브론즈였다. 내가 롤 할 때 내 티어 보고 ‘넌 팀빨이야 임마’이러다가 미드빵 몇 번 지고나서 이후엔 그냥 혼자 조용히 게임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런 자가 다른 회사에 가서 적응을 잘 할 리가 없다. 능력적인 부분이 부족한 건 물론이거니와 그 사람은 회사다니던 마지막 몇 년 동안 일다운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훌륭했냐 하면 그것도… 자기만 웃으면서 기분 나쁘게 하는 농담의 권위자. 장모님께 받은 오래된 아반떼 타고 다니면서 다른 직원이 산 디젤 크루즈를 똥차니 경운기니 하질 않나… 좋기만 하더만. 다른 회사의 타이트한 분위기에 그 사람이 잘 적응해서 훌륭하게 회사에 다녔을 리 없다. 아마 이 회사 저 회사로 옮겨 다니면서 적응하지 못하고 꽤 힘든 시간들을 보냈을 거다. 여튼 몇 년이나 같이 일하던 사람이니 잘 지내길 막연히 바라고 있었지만 그가 남긴 이것을 보니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회사의 리뷰 점수를 볼 땐 의심했었는데, 문체를 보니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다. 내가 이직을 안 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할 수 있다. 내가 다른 회사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 분들은 님은 잘 하시지 않을까요…? 하고 말 하긴 하지만 여튼 두려운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다.


 리뷰 내용에 이런 것도 있었다. ‘유지 보수와 솔루션 판매로 먹고살지만 메인 개발자들 외엔 다 쩌리임. 그나마도 최근 퇴사했다고 들었음’. 어쩐지 올 초부터 메인 개발자가 나갔네 어쩌네 하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듣곤 했다. 그런데 우리 회사 메인 개발자는 퇴사한 사람이 없다. 설마 본인을 메인 개발자라고 생각하고 쓴 건가…? 자기가 메인 개발자인 줄 아는 건 진짜 설마 아니겠지…? 점심시간에 한 게임씩 돌릴 때, 우리 회사 ‘메인 미드’긴 했다. 미드를 놓지를 않아… 내 기억엔 15년 이후로 이 사람이 메인 개발자인 적이 없는데… 이거 말고도 리뷰에 허위사실 유포가 있어서 사장님께 말씀드려서 고소를 하게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고소를 하게 하는 방향으로 거의 마음을 정했지만. 다른 직원분들과 논의하고 오늘 중에는 사장님께 말씀드릴 듯. 안 그래도 힘들고 불쌍할 인생에 고소미나 추가로 먹어라…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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