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 근래 있었던 일들 - 11월 2주 2021.11.15 AM 12:47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월요일 아침, 정확히는 일요일 저녁부터 목이 아팠다. 일요일 저녁에는 이게 어떤 느낌인지 깅가밍가했지만 월요일 아침이 되니 확실해졌다. 당연히 평소 자주 앓는 편도선염을 의심해 봤으나 통증의 양상이 그것과는 꽤 달랐다. 그냥 목이 칼칼한 정도 느낌. 왜 있잖은가 잘못 자고 일어나면 목이 따끔거리다가 물 몇잔 먹으면 괜찮아지는 그런 느낌. 쉽게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 있지는 않았으나 그 느낌이 수요일 아침까지 남아있다. 평소보다 꽤 많이 불편하게. 이 시국에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열이 안 난다. 열이라도 났으면 많이 불편할 뻔 했다.

평소보다 물도 많이 마시고, 특히 따뜻한 차를 많이 마셨지만 목이 가라앉지 않는다. 수요일은 굉장히 오랫만에 연차를 쓰는 날이었다. 영화 ‘듄’을 보기위해 이번 주 중에 하루는 연차를 쓰려 했었는데 와이프와 아들의 일정이 맞지 않아 낮(점심 즈음 몇 시간)에 애랑 같이있어달라고 해서 수요일에 쓰기로 했다. 마침 포호5의 출시와 겹쳤으나 아들이 깨 있는 시간동안 그걸 할 수는 없으니 의미없다. 아쉽게도.

수요일은 스케쥴이 굉장히 꽉 차있었다. 아침엔 병원엘 들렀다가 이발소에 들르고, 아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에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가 꽤 길어 보고나면 하루가 다 지나간다. 하루가 꽉 차있는 굉장히 타이트한 일정이다. 아침부터 아들과 뒹굴면서 이미 오늘 할당된 체력의 반 이상을 사용한 느낌이다. 나는 이미 꽤 지쳤다.

뭘 입어야 할지 굉장히 애매한 날씨다. 그리 많지도 않지만 반 이상이 작업복(수트)인 옷장 앞에서 잠시 고민을 해보다가 새로 산 후드티를 뒤집어 써 본다. 안쪽은 기모처리되서 따뜻하고, 바깥쪽은 처음 만져보는 촉감이다. 다소 까칠한 솜 같은 느낌. 이런 날씨에 아주 제격이지만 그 후드티는 목 뒤부분이 너무 타이트해서 이걸 입고 이발소에 갈 순 없겠다. 머리를 자르기도 불편할 뿐더러 잘린 머리들로 샤워하게 될 판. 평소 입던 쿨티에 야상을 걸치고 나간다. 첫 코스는 병원.

원래 가던 병원이 있지만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고, 그 이후 머리도 잘라야 하는데 평소 가던 병원을 가기엔 동선이 너무 길어져 집과 이발소 사이에 있는 병원에 가기로 했다. 와이프 말로는 약이 잘 듣는다고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병원엘 들어서자 요즘 병원같지 않은 황량함이 느껴진다. 요즘 생기는 병원들은 인테리어 자체에서 따뜻함이 알게모르게 꽤 느껴지곤 하는데 이 병원의 인테리어는 그런 게 없다. 그냥 본래의 기능에만 충실한 인포, 역시 본래의 기능에만 충실한 대기의자. 열리고 닫힌다는 본래의 기능에만 충실하고 다른 어떤 부가적인 효과들은 기대할수 없는 올드하고 차가워 보이는 문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외부 날씨, 혹은 온도나 분위기같은 느낌이 내부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는 인테리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나무들이 옷을 벗는 11월에 방문해서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왠지 봄이나 여름에 방문했다면 조금 다르게, 따뜻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환자들이 많지 않아 대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환자 자체가 많지 않았다기 보다는 환자 한명 한명을 보는 속도가 빨랐다. 진찰을 위한 의자에 앉고 의사가 잠깐 내 코 속과 입을 들여다보고, 몇 마디를 나누는 것으로 진료가 짧고 빠르게 끝났다. 알러지네요. 코 내부가 휜거 아시죠? 그것땜에 목이 자꾸 붓는것 같네요. 증상 심하면 수술하시는데 수술 고려해 보실만한것 같네요. 약 잘 챙겨 드세요. 시간을 잰 것은 아니지만 의사와 대면한 시간은 길게 잡아도 1분이 안 될것 같다. 누가 보면 내 뒤로 환자가 한 열 팀 정도 대기하고 있는 줄 알 것 같은 속도의 진료. 의사의 말에 근래 이비인후과 의사들에게 보지못했던 귀차니즘이 매우 강하게 느껴져서 궁금한걸 물어보고 싶은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다. 뭐 의사가 친절한게 무슨 필요겠나. 여기 인테리어처럼 의사로서의 기능만 잘 하면 되지. 비중격만곡증이 있는것도, 다른 사람들보다 꽤 심한것도 알고 있었는데 수술을 정말 고려해 볼만한 시기가 온 듯 하다. 수요일 아침에 3일치 약을 받아왔는데, 글을 쓰는 일요일 새벽까지도 증상은 없어지지 않았다.

바로 후에 들른 이발소. 이발소라는 호칭이 맞는것인가 하는 고민이 드는데… 내가 가는 곳은 확실히 미용실은 아니다. 손님의 100%가 남자. 99%도 아니다. 그 공간 안에 여자라고는 미용사님들 뿐이다. 평소 대기가 싫어 이리 저리 수를 써 봤지만 오늘은 평일. 그것도 오전 10시다. 오늘은 대기가 없겠지?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그것이 헛된 희망이라는것을 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용사님들이 아직 출근하시기 전인지 미용사님은 한 분이 나와 계시고, 대기석은 이미 만석이다. 간신히 마지막 남은 한 자리에 앉는다. 내가 받은 종이로 코팅된 번호표엔 6이라는 숫자가 쓰여있다. 헷갈릴까봐 친절하게 한글로 육이라고도 써있다. 9번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평일 아침 10시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기번호 6번이다. 곧이어 다른 미용사님들 두 분이 출근하셔서 미용사님이 총 세 분이 되었지만, 이제서야 대기 번호 2번까지 두 분이 앉았을 뿐. 대기가 한 바퀴를 돈 후에야 내 차례다. 언제 와야 안 기다리는거냐. 돌겠네 정말…

여기는 염색이 말도 안되게 저렴한데, 평일에 방문하면 염색+컷트 비용이 단돈 만 이천원. 주말에도 다른곳 대비 많이 저렴하지만 평일대비 꽤 비싸지긴 한다. 거울에 비춰 주변을 둘러보니 시간이 시간이다보니 나처럼 연차 쓴 한량이 이 아침부터 또 있을리는 없고, 대부분 나이 지긋하신 분들. 머리숯의 많고 적음과 머리 기장이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앉은 분들은 전부 염색 손님인 듯 하다. 내 바로 앞 자리에서 자르시는 분(대기 번호 2번이셨다. 부러웠다)이 자리에 앉자마자 미용사님에게 이런 저런 말을 던지시는데, 마스크위로 느껴지는 얼굴 표정이 좋지 않다. 얼추 환갑 언저리쯤 되셨을까. 미용사님은 얼추 나와 비슷해 보이시고… 특별히 추파를 던지시거나 하시는 것은 아닌데… 그냥 농담을 좋아하시는 것 같고 나도 저정도 농담은 상황에 따라 하는 것 같은데 상대방 분의 얼굴을 보니 좀 더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먹을수록 침묵은 금이 맞는가보다. 나와 가볍게 이야기할 때도 저런 표정이었는데 내가 못 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조용히 살아야지.

애와 잠시 시간을 보내다 극장엘 갔다. 하도 평이 좋아 영화를 보게 됐는데, 영화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으나 음악은 정말 대단했다. 주변 자리가 많이 비어 있어 들고 간 가방을 옆자리에 내려놓고 영화를 봤다. 다만 문제가 영화를 보는 동안 업무 전화가 너무 많이 왔다. 자리가 통로쪽이었고 내 뒤나 통로 건너편에 사람이 없어 다른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나, 휴대폰을 꺼내는 횟수가 너무 많아지니 짜증이 날 지경. 왜 하필 휴가날엔, 그것도 다른거 할 땐 전화가 안오다가 하필 영화 보는 짧은 시간에 이렇게 전화가 몰려서 오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 바쁘다는 문자로 바로 넘기긴 했으나 각각 다른 사람에게 다섯 통, 한 사람에게 세 통. 영화가 끝나면 후반 쿠키영상이 있건 없건 스탭롤 올라가는 동안 앉아서 음악을 좀 듣다 오는 편인데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다. 이미 업무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전화 걸 곳은 많다. 불이 켜지자마자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가며 전화를 돌린다. 내가 전화에 응답이 없으면 회사 망한줄 알 테니 전화를 꺼 놓을 수도 없고…


보기에 비해 꽤 값나가는 구성 


전화 왔던 곳들에 백콜들을 돌리고, 처리하기위해 전화를 또 몇 통 건다. 그러다보니 집 도착. 주차를 하고 집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옆자리에 가방이 없다. 뒷자리에 있나 싶어서 뒷자리도 봤지만 뒷자리에도 없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가방을 내가 마지막으로 의식한 곳이 어디인지. 의자. 극장 의자에 놓고 왔구나. 가슴이 철렁하다. 일 생각으로 아무리 정신이 없기로서니 가방을 놓고 오다니. 맥북없이 패드와 헤드폰만 넣었지만 없어졌을때 다시 살 수 있는 물건들은 아니다. 극장에 바로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려하는데 상담원 연결은 왜이렇게 더디고 상담원과 연결된 후에도 확인이 왜 이렇게 더딘 것인지. 실제로는 길지 않았으나 내 마음이 그랬던 건지 통화시간 5분 남짓이 한시간 같았다. 없으면 어째야 하나 CCTV 확인하면 찾을 수 있나 오만생각을 다 했으나 다행히 발견해서 보관중이라고 한다. 마음이 진정되니 인제 찾으러 가는 것이 귀찮다. 당장 다음날에 업무에 필요해서 바로 다녀 왔으나,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재작년이었나, 지갑 잊어버렸다가 찾은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생각도 난다. 그건 정말… 음… 굉장히 어이없는 일이었는데… 언젠가 시간이 나면 그 일에 대해서도 써 보는걸로,

밋밋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이벤트 덕에 매우 버라이어티한 하루가 되었다. 다음번엔 이런 식으로, 이렇게까지 버라이어티해지지는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댓글 : 0 개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