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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최근에 본 영화들 짧은 감상(라스트 듀얼, 나를 찾아줘, Her, 1917)2022.02.17 AM 11:57
최근에 책을 읽는 대신, 영화를 꽤 많이 봤다. 나는 좀… 같은 이야기를 보더라도 영화보다는 책을 선호하는 편이긴 하는데, 영화보다 책을 선호하는 이유는 영상에 순간적으로 흐르는 감정선의 흐름이나 표정들을 잘 캐치해 내지 못하는 편이고, 감독들이 의도적으로 하는 편집들(예를 들면 하늘을 가린다거나)을 알아채거나 그런 거에 영향을 받지 못할 만큼 내가 무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물론… 받았는데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몇 년 전에 보았던 영화 ‘조커’의 초반에서 감독이 의도적으로 하늘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CG까지 동원해가며 가려서 어떤 답답함을 주려고 했다고 하는데, 그런 것에 영향을 좀 덜 받는다고 해야 하나. 내가 능력껏, 혹은 눈치껏 캐치해야 하는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들보다는 친절하게 알려주는, 다시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어떤 감정들을 느끼기 편하다.
책을 원작으로 영상화된 작품들이 굉장히 많은데, 많은 경우 책보다 못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상영시간에 맞추려다 보니 이야기가 많이 생략되여 영화만 봐서는 캐릭터들의 행동들에 설득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고, 때로는 그냥 못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물론 사람에 따라 평가가 갈리겠지만 꽤 잘 옮겨졌다는 평가를 받는 ‘마션’을 봐도 나 개인적으로는 영화보다는 책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영화엔 일단 그 유명한 첫 문장이 안 나온다. ‘아무래도 ㅈ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ㅈ됐다’. 그거 외에도 주인공의 감정 묘사나 과학적인 설명, 대부분의 독백과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어떤 판단을 하게 되는 근거나 위험에 대한 내용들도 굉장히 많은 부분이 생략됐다. 물론 서양문화에서는 혼잣말을 굉장히 이상하게 보기도 하고, 그런 걸 넣으면 영화가 루즈 해 지니 삭제했겠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최근엔 영화를 꽤 보게 됐다. 소파에 누워서 배 긁다가 영화나 한편 봐 볼까 하고 몇 개를 봤는데, 본 영화들이 꽤 기억에 남을 만큼 훌륭했다. 운이 좋아 영화들을 잘 골라서 본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훌륭했던 영화들에 대한 감상을 짧게 써본다.
라스트 듀얼 : 맷 데이먼도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지만, 아담 드라이버를 정말 좋아한다. 스칼렛 요한슨과 나온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처음 본 배우였는데, 이 배우 때문에 스타워즈 시퀄도 봤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한 사건을 바라보는 세 개의 입장. 나에게는 사실인 것이 누군가에겐 아닐 수 있다는 매우 친절하고 훌륭한 설명. 그 시대의 정말 어이없을 정도의 여성에 대한 대우. 정말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마지막 결투 장면은 정말 처절하고 잔인하다. 그나저나… 절정을 느껴야 임신이 된다니. 그것이 과학적으로 옳다고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음…. 밴 애플렉이 출연했다고 하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해 한참 헤맸다.
나를 찾아줘 : 쇼크…. 보는 내내 경악… 정말 미친 영화… 내 결혼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다는데에 의의를 두고 볼 수 있었던 영화. 누구도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겠지만… 미디어에 대한 풍자도 충분히 표현했고, 극 후반부에 현실성이 약간 떨어지기는 하지만 정말 매우 인상적인 영화였다. 궁금함을 일으키는 영화 초반을 후반에 다시 보여주는 수미상관 구조를 이루며 끝나는데, 영화 초반의 궁금함은 정말 완벽하게 해소해 주지만 영화를 보고 난 직후의 기분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인공은 ㅈ됐다. 그게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너는 ㅈ됐다.
허(Her) : ‘조커’의 주인공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다른 영화. 넷플릭스에서 섬네일만 보고 볼까 말까 굉장히 오래 생각했던 영화였는데, 더 일찍 볼 걸 그랬다. 주인공이 찌질하게 그려진다고 들었었는데, 내가 좋아하던 시트콤 빅뱅이론에는 로봇에게 대딸…을 받다가 사고가 나는 사람도, 시리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어서 그런지 주인공이 찌질하다는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관계에 대해서, 실체에 대해서 굉장히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였다. 야한 장면이 꽤 나오는 편이지만 선정적이라기보다는 이야기의 진행에 꼭 등장해야 하는 장면으로 보기 불편하진 않았다(여체가 나오는 것은 아님). 친구로 나오는 크리스 프랫도 반가웠다. 굉장히 즐겁게, 신선한 쇼크를 받으며 봤다.
1917 :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정말 미친 영화… 영화가 일단 신기하다. 영화 시작한 지 십분이 넘어가는데 화면이 안 끊긴다. 롱테이크 영화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롱테이크는 보통 1분만 넘어가도 롱테이크라고 부르지 않나? 영화 전체에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장면 끊김은 단 두 번뿐. 당연히 어떤 기술로 하는 눈속임이겠지만 눈속임 솜씨가 거의 마술이라고 느껴질 만큼 대단하다. 그렇게 길게 찍는데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전쟁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잔인한 장면 같은 것이 거의 나오지 않으면서도 긴박감과 처절함 등이 너무나 잘 표현되었다. 클라이막스에서의 카타르시스도 대단했고… 한번 보고, 이런저런 정보들을 찾아보고 바로 다시 또 봤다. 첫 번째엔 안 보이던 수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면서 더 즐겁게 볼 수 있었다. 몇 번 더 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영화는 극장에 가서 봐야 하는데… 나는 영화를 봤을 때 기분이 씁쓸한 것들은 가급적 보지 않으려 하는데, 그런 이유로 기생충을 보지 않았었다. 근데 1917을 기생충이 이겼었단 말이지… 기생충도 봐야겠다.
- 서태지9
- 2022/02/17 PM 12:32
- 공허의 금새록
- 2022/02/17 PM 12:32
이것이 충격과 공포
- 고기나라
- 2022/02/17 PM 04:16
- 빈센트보라쥬
- 2022/02/17 PM 12:43
혹시 보지 않으셨다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도 추천드림
대표작은 랍스터, 킬링디어, 더페이버릿
1917은 실제로 꽤많은 편집점이 있지만 그 기술자체가 경이로움 ㄷㄷ
- 愉快한男子
- 2022/02/17 PM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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