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이야기] [게임에선 못다룬 이야기] - 중세 기사도의 종말을 고한 크레시 전투 -2012.10.23 AM 12:16

게시물 주소 FONT글자 작게하기 글자 키우기


역사 배경의 전략 실뮬레이션의에서 전사(戰史)의 설명은 게임의 백미 입니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의 특성한 다량을 정보를 표기하기엔 한계가 있음으로 게임이 실지못한 내용중 흥미로운 내용들을 추려 올려 볼까 합니다.

그 첫번재는 100년전쟁이 영국으로 기운 분수령이자 중세 기사도의 종말을 고한 크레시 전투로 삼을까 합니다.

크레시 전투는 1346년 8월 26일 북부 프랑스 항구도시 칼레 남쪽의 크레시 지방에서 일어났습니다.
많은 역사가 들이 이 전투를 백년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이며 동시에 기사도의 종말을 고한 전투로 평가합니다.

영국군은 프랑스 군에 비해 수적,질적으로 열세에 놓여있었습니다.
에드워드3세가 이끄는 영국군은 12000명 이였으며 필리프6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은 3~40000명의 대군으로 중무장한 병사의 수도 월등히 많았습니다.

전투는 프랑스의 선공으로 시작 됬습니다.
프랑스는 자신들의 중무장한 기병대를 보조하기 위해 자주 석궁 용병대를 고용 하고는 했는대 이날도 제노바의 석궁병대가 고용되어 영국군을 향해 볼트의 소나기를 날렸습니다.

곧 영국 장국병들의 응사가 시작되었고 숙달된 장궁병들이 쏟아내는 엄청한 화살비 앞에 제노바 석궁병대는 속절이 쓰러져나갔습니다.(장궁은 배우기 힘들지만 숙달되면 석궁보다 분당 3~4배의 연사속도를 가질수 있습니다.)

또한 무리한 행군으로 지친 석궁병대가 자신들의 트레이드마크인 파비스 방패(석궁의 긴 장전시간동안 몸을 수있는 거대한 방패)를 가져오지 않아 피해가 더욱 커졌습니다.

제노바 용병대의 추태(프랑스 지휘관의 무질서한 행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를 지켜보던 프랑스 기사단이 뒤에서 용병대를 학살하며 영국군을 향해 돌격 했습니다.

드디어 프랑스의 정예인 중기병대가 나선것입니다.

중세의 중무장한 기병대는 현대의 전차와도 같이 보병에겐 무적의 존재 였습니다.
화살은 별다른 피해를 줄수 없었으며 강력한 석궁도 연사 속도가 느려 기병대의 돌진을 막기엔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모두 프랑스 중기병대에 의해 영국군의 진형이 박살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이날 프랑스 중기병대는 무려 16번의 돌진을 시도 했지만 영국군의 진형을 뚫지 못했습니다.

경사와 진흙탕, 영국군이 미리 뿌려놓은 장애물은 기병대의 돌격 속도를 늦추었고 그위로 고지에서 퍼붓는 장궁병들의 엄청난 화살비가 쏟아 졌습니다.

이 전투로 프랑스군은 일반 병사뿐 아니라 대부분의 귀족이 전사하는 뼈아픈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술적으로 더이상 중기병대가 무적이 아님을 증명하는 전투였으며 기사와 기사가 일대일 전투에 의해 쓰러진게 아니라 이름 모를 평민의 화살에 맞아 쓰러졌으며 대부분의 기사가 즉결처형(당시 기사는 제압 하기도 힘들지만 제압 해도 처형하기보단 몸값을 받고 풀어주는게 관행이였습니다.)당했음으로 기사도의 종말을 고한 전투로 기록됩니다.
댓글 : 5 개
중세 전투는 주로 어떤식으로 진형이 형성되었나요?
로마 제국 시대의 전투는 망치와 모루가 기본이었는데 중세 전투는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
불꽃캅// 고대 시대의 전투가 잘 훈련된 중무장 보병대와 그를 보조하는 기병대에 의한 망치와 모루 전술 이였다면 중세(적어도 크레시 전투 이전)은 무질서한 중기병대의 돌격와 그를 보조하는 잡병들로 대표될수 있겠습니다.
로마 시대 말엽부터 등장한 중무장 기병대는 점차 마구와 기마술의 발달로 보병 특히 잡병으로 분류되는 일반 징집병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 합니다.

전장에 적이 없는대다가 값비싼 갑옷과 말, 종자등 엄청난 유지비가 들어가는 기사는 자연히 사회 상류층으로 이루어 지다보니 부대가 모두 귀족이라 통제도 힘듭니다.

그래서 그냥 기사를 전장에 풀어놓는 방식의 전투가 유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상한 전술은 투사무기의 발달과 위협적인 기사의 돌진을 막을 만큼 잘훈련된 장창보병대가 등장 하기 전까지 꽤 잘 먹혔습니다.

어처구니 없어 보이지만 십자군 원정에서 잘훈련된 이슬람 병사들 조차 이 깡패 같은 유럽 기사들에 의해 초기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얼마나 장궁에 시달렸는지 프랑스가 장궁병만 보이는 족족 검지와 중지를 날려버렸고, 영국에선 거꾸로 V자가 욕이되는 오랜 역사가....
중세 기사들을 전쟁전문가나 역사전문가들이 괜히 깡통이라고 부르는게 아니죠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깡통따개가 없는 깡통은 여간 골치거리가 아니죠^^;;
Dragonㅡs //앗 또 뵙네요^^ 그리고 v자 에대선 잘 모르는 사실인데 역사에 대해서 박식하시군요!!
infrablue // 그렇습니다 파워 깡동이죠 ㅋㅋ 힘으로 딸려고 시도했던 많은 군대가 피를 봣지요
친구글 비밀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