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이야기] 최후의 십자군과 로도스 공방전 - I2017.09.15 AM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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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기사단의 로도스 공방전>

 

 

 

1453529일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무역으로 재미좀 보나 싶었는데 수익이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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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메드2: 이게뭐야?? 개고생해서 콘스탄티노플 밀었는데 수입이 왜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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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체리 : 그게.. 십자군 해적들이 날뛰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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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메드2: 십자군?????

 

 

그랫다 십자군 원정으로 세워진 예루살렘 왕국이 멸망한지도 벌써 160여년이 지난 후였다.

 

1187년 이슬람의 영웅 사라딘에게 하틴의 뿔 전투에서 패해 성지를 빼앗긴 예루살렘 왕국은 1291년 결국 성지를 탈환하지 못한 체 마지막 도시인 아크레를 잃으며 멸망했던 것이다.

 

이때 대부분의 십자군 기사단도 와해, 소멸되었지만 구호 기사단만은 끝까지 살아남아 지중해의 작은섬 로도스에서 저항을 이어가고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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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메드2: 영감님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십자군 타령이에요?

좋은 말 할 때 항복하고 섬 비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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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피에르 도뷔송 : 어린놈의 자슥이 말본새 보소.. 느그 살라딘이는 그래도 예의를 알았는데 요즘 이슬람 젊은 놈들은 위아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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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메드2: 아 진짜 영감님 살라딘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었잖아요!!

이제 저도 못 참습니다!! 

 

 

 

결국 1480년 메메드2세는 메시드 파샤를 사령관으로 삼고 함선 160, 병사 10만을 동원해 로도스섬을 공격한다.

 

이에 맞서는 구호 기사단은 함선은 7척에 기사 600, 병사는 종자와 시민, 용병을 모아 2천이 채안되는 병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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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기사단원 : 아오 영감님이 쓸대없이 도발하니까 엄청 몰려오잖아요!!

그러길레 작작좀 털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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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도뷔송 : 기사단장이 니 친구냐 임마!!

그리고 요새끼고 싸우면 우리가 이겨 걱정하지마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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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사단원 : 테오도시우스 성벽 무너진거 몰라요? 재들 대포 엄청 큰거 쓴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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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도뷔송 : 확실히 오스만의 거포는 무섭긴하지...

하지만 테오도시우스 성벽 보다 3배 더 튼튼한 요새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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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기사단원 : 3?!!!

 

 

구호기사단은 로도스섬에 정착한후에 요새를 건설하는데 이게 엄청난 물건이었다.

 

성벽의 두깨는 테오도시우스 성벽의 3배에 달했으며 공학적으로 설계된 원형 타워들은 대포에 높은 내성을 발휘했다.

 

상륙한 오스만 병사들은 요새를 보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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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최신기술로 만들어진 로도스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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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체리 : 아니.. 이 작은 섬에 무슨 행성요새를 지어놨어.....

 

 

뭔가 잘못된것을 느낀 오스만군이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 하던대로 포진지를 설치하고 대포부터 쏘기 시작했다.

 

오스만군의 자랑인 거포 '바실리스크' 가 연일 불을 뿜었지만 포격전을 상정하고 만든 요새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오스만군은 초기형 박격포인 모탈도 동원해 성벽안쪽의 시민들을 공격했는데 이조차도 방공호같은 시설이 준비되어 별로 효과가 없었다.

 

가끔 운좋게 성벽 일부가 무너져도 좁은곳에서 펼쳐지는 십자군 기사들과의 백병전은 아군의 피해만 발생할뿐 아무 효과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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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 공방전 당시의 기사단 장비, 반면 오스만군은 이시기에도 사슬갑옷이 주며 그마저도 없는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원거리 무기도 화승총을 사용하긴 했으나 주력은 아직도 복함궁이라 

높은 성벽위의 판금갑옷을 입은 기사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는 어려웠다.

 

되려 십자군 기사들이 화승총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오스만군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었다.

 

이렇듯 별다른 소득 없이 오스만 측의 피해만 늘어가고 있을 무렵에 오스만군 진영에서 전염병까지 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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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메드2: 아 운빨 x망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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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도뷔송 : 아닌데?? 실력 갓흥겜인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근성의 메메드2세도 섬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스만의 로도스섬 1차 침공은 큰 피해만을 남긴 체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후 오스만의 술탄들은 한동안 로도스섬을 차마 공격하지 못했고 기사단은 그 틈을타 열심히 해적질을 하며 오스만 세력을 견제했다. 

 

그렇게 겨우 7척의 함선으로 동지중해의 제해권을 거머쥐고 번성하던 기사단에게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으니...

 

바로 오스만의 위대한 군주 슐레이만 대제의 등장이였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뒷이야기는 로도스 공방전 2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댓글 : 15 개
  • Pax
  • 2017/09/15 AM 01:07
중갑은 해전에서 꽝인데 성 요한 기사단이 해전을 어떻게 했는지 시오노 여사가 묘사를 안해서 좀 아쉽더군요.
지상전 할 때처럼 풀세트 챙겨입은 중갑보병빨로 했는지 아님 베네치아쪽 용병빨로 했는지...

이슬람 측도 해상무역에 닳고 닳았을텐데 바다위에서 기사단한테 일방적으로 깨지는게 좀 이해가 안 가기도 하고...
해전 없이 요새에서 버틴거같아요~
  • Pax
  • 2017/09/15 AM 01:12
아뇨 이슬람 배들 털 때 말이죠.
전문 무력집단이라지만 해상전에선 중갑보병이 딱히 크게 먹혀들거 같진 않은데 해적질에서 실패케이스가 별로 안나오는걸 봐선 압도적으로 털어먹은 것 같은데 예루살렘 왕국시절 동맹관계였던 베네치아의 서포트가 있었다면 어느정도 납득이 가니까요.
아하! 그냥 중갑입고 싸웟던거 같아요 레판도 해전 묘사한거 봐도 그냥 중갑입고 있더라구요.

아마도 아직까지 해전이 선상백병전이 중심이라 중갑이 유효했던거 같아요

둘째로는 오스만도 기마민족이다 보니 해군이 엄청 약했다고 하더라구용
  • Pax
  • 2017/09/15 AM 01:19
음... 바다위에서도 기사는 기사였군요.
설명 감사합니다.
운빨 조트망겜 ㅋㅋㅋ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아직 활동하고있는 십자군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십자군이 한때 해적질을 했다는 사실에 더 놀랐습니다.
저두 구호기사단 정보 처음봣었을때 깜짝 놀랬었습니당 ㅎㅎ
  • Pax
  • 2017/09/15 AM 02:22
단순 해적질이라고 말하긴 좀 어렵죠...
예루살렘왕국 함락 이래로 쭉 적성 유지하고 있던데다 그 시대엔 유럽과 중동 모두 전리품을 승자의 당연한 권리로 여겼으니까요.

사실 근세까지의 사략해적이란 게 대부분 같은 개념이긴 합니다만...
앗 역시 Pax님이 자세히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당시 해적은 어떤 의미로 국가의해군이기도 했으며 이교도인 오스만을 상대로 치루어지는 해적행위는 전혀 죄악이 아니었지요~
  • Durak
  • 2017/09/15 AM 05:58
호홍 갑옷입고 총쏘던 시절의 과도기적인 느낌이 낭만적이군요.
넵 ㅋㅋ 초기 열병기의 등장은 바로 갑옷이나 성벽을 사라지게 만드는게 아니라 되려 발전시키면서 마치 게임이나 만화에서 나오는 철과 화약, 과학과 종교가 교차하는 모습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꿀잼글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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