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0일 영화] [DAY06] 레드 리버 (Red River, 1948)2014.05.11 PM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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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레드 리버 (Red River)
감독: 하워드 혹스 (Howard Hawks)
제작년도: 1948년
장르: 서부극, 모험

헐리우드 고전주의를 공부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알게되는 이름이 바로 하워드 혹스입니다. 시네필이 아닌 일반인들에겐 고전주의 거장 감독이라고 하면 알프레드 히치콕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왠만큼 영화를 아는 사람에겐 하워드 혹스란 이름은 영화사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감독이라고 받아들여집니다. 혹스는 장르 영화계 초창기 시절 그야말로 있는 장르란 장르는 모두 넘나들며 명작을 양산해냈고, 헐리우드 고전주의라는 엄격한 틀안에서 자신만의 영화 철학을 다듬어 감독 지상주의 이론을 제시하고 지지한 "카예 뒤 시네마" 편집자들이나 앤드류 사리스같은 학자들에게 고전주의 거장이라고 칭송받게 됩니다.

<레드 리버>는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혹시안(Hawksian) 영화입니다. 남자들의 우정과 연대를 찬양하는 모험 활극이라는 것부터 시작하여, 겉으로는 콧대높지만 속으로는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혹시안 여성(Hawksian woman)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미묘한 에로티시즘, 그리고 왁자지껄하면서도 어딘가 냉소적이며 블랙 코미디같은 부분까지, 혹스 감독이 영화라는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두 주인공의 대립도 어찌보면 혹스의 스크류볼 코미디 작품에서의 남녀 대립으로 구체화되는 이성과 광기의 대립이며, 그 이성과 광기가 유쾌하게 혼합되어 끝나는 엔딩또한 혹스의 코미디를 연상시킵니다.

제가 저번에 본 <수색자>에서와 같이 <레드 리버>에서도 존 웨인은 전형적인 존 웨인 캐릭터가 아닌, 정의롭다고 할 수도 없는 강박적인 인물인 톰 던슨입니다. 그리고 그런 던슨이 어릴 때 주어와 키우는 인물이 매튜입니다. 어릴 때 자신을 구한 아버지같은 인물과 모험을 떠나며 대립하는 둘의 관계는 언뜻 <수색자>에서의 이선과 마틴을 상기시키기도 하는데요, 인물 내면에 대한 고찰을 중요시하는 포드 감독과는 달리 인물들 간의 대립과 케미스트리로부터 스토리를 짜는 혹스 감독 답게 톰과 매튜의 관계는 영화의 중심을 꿰뚫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드 리버>는 여러 곳을 넘나드는 모험이라는 맥락 위에서 펼쳐지는 부자지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축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과의 대립이 결국 커져 아들이 아버지를 저버리고 반란을 주도하는 사태가 벌어지게되는 최악의 사태를 혹스 감독은 자신 특유의 유쾌함으로 희극화시키는 저력을 발휘합니다. 존 웨인의 광기어린 연기(실제로 존 포드 감독이 혹스 감독 방문 차 <레드 리버> 촬영 현장에 들렸을 때 자신의 페르소나에 가까운 존 웨인의 연기를 보고 "난 저 새끼가 연기를 할 수 있었는지 몰랐는걸!"하며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도 결국 다음 씬에서의 흥겨운 배경음악과 함께 잊혀지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 사이에 혹스 영화 특유의 활기발랄하고 능동적인 혹시안 여성이 끼어들어 이런 심각한 대립을 희화시키고 유쾌하게 끝을 맺게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겉으로 보면 그저 유쾌하기만한 전형적인 서부극으로만 보이지만, <레드 리버>는 이렇게 심각할 수 있는 소재를 혹스 특유의 유쾌함으로 풀어냈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혹스의 다른 영화들과 같이 <레드 리버>에서의 광기는 희극화되고, 이런 연출로 혹스 감독은 자신이 갖고 있는 광기에 대한 냉소적 시각을 반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레드 리버>가 프랭크 로이드 감독의 <바운티 호의 반란>과 유사하다고 말하고들 하는데요, 스토리부분으로 봤을 때 굉장히 비슷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레드 리버>는 결국 전적으로 혹스 스타일로 다듬어진 작품입니다.

또 한가지 <레드 리버>가 강조하는 것은 방황이라는 테마입니다. 인물들 간의 대립(그리고 연대)은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텍사스 허허벌판에서 방황하는 것을 부터 시작되며, 주인공인 톰 또한 매튜의 묘사를 빗대어 봤을 때 자신의 약혼자를 잃어버리고 인생을 구체화된 목표없이 방황하는 남자로 묘사됩니다. 그런 의미로 생각하면 내러티브적으로 굉장히 허무하게 다가올 수 있는 영화 후반은 혹스 감독이 의도한 또다른 냉소적인 연출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방황의 허무한 종착이야말로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장 얄궂은 장난이고, 그런 허무함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인간이니까.

한줄평: "혹스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제가 본 버젼은 1948년 최초로 개봉한, 혹스 감독이 가장 마음에 들어한 흑백 127분 버젼입니다.



이 글은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30일 영화 챌린지"중 하나입니다.
"30일 영화 챌린지"는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랜덤하게 고른 30개의 영화를 랜덤하게 순서를 정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영화 하나씩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분석을 쓰는 겁니다.
제가 볼 영화들의 리스트는
여기(클릭)에 있습니다.

내일의 영화는 스티브 맥퀸 감독의 <셰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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