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0일 영화] [DAY14] 미치광이 삐에로 (Pierrot le Fou, 1965)2014.05.20 AM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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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치광이 삐에로 (Pierrot le Fou)
감독: 장 뤽 고다르 (Jean-Luc Godard)
제작년도: 1965년
장르: 드라마

프랑스어로 "le fou"란 단어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미치광이란 뜻이 있지만, 그와 함께 "무엇인가에 미친 사람"과 "바보" 또는 "광대"라는 뜻도 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영화를 쭉 보다보면 이 네가지 의미 모두 주인공인 페르디낭에 부합하는 별명들이라, 언어유희를 많이 사용하는 고다르 감독 답게 제목도 참 적절하게 지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고다르 감독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이 <미치광이 삐에로> 또한 훌륭히 이해하기 힘든 작품입니다. 만약 <네 멋대로 해라>가 고전주의 헐리우드 범죄물과 50년대 이탈리안 네오 리얼리즘에 대한 격렬한 오마주를 자신 특유의 스타일로 풀어낸 작품이였다면, <미치광이 삐에로>는 고다르 감독의 데뷔작보다 훨씬 다차원적인 작품이자 고다르 감독 작품에서 갈수록 강조되는 영화적 해체주의(filmic deconstruction)의 색체가 강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정보 사이트같은 곳에서 시놉시스란을 보면 범죄에 휘말린 두 남녀가 암살자들을 피해 도망치는 스릴러에 가까운 느낌이 들지만, 고다르 감독 답게 플롯보다는 영화의 구조 그 자체에 중점을 두는 작품으로 영화, 내면, 사회, 이런 주제의식을 가지고 저글링을 하는 듯한 느낌을 가진 영화입니다.

이런 고다르 감독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고다르 감독의 배경부터 알 필요가 있습니다. 고다르 감독은 본래 <카예 뒤 시네마>라는 프랑스 영화 잡지의 컬럼니스트로써, 같은 출신의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과 함께 누벨바그라는 영화 트렌드를 이끈 사람입니다. 이 <카예 뒤 시네마>는 기존의 프랑스 (그리고 헐리우드) 비평가들과는 달리 영화는 제작자나 각본가가 아닌 감독이 영화의 질을 판가름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고(작가주의), 또한 2차 세계 대전 후 헐리우드 영화들을 몰아보게 되어 고전주의 헐리우드를 재발굴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잡지이죠. 그리고 이런 작가주의 배경과 고전주의 헐리우드에 대한 노스탤지아가 결합되고, 거기에 소비에트 몽타주 시네마와 이탈리안 네오 리얼리즘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 바로 고다르 감독의 영화관입니다.

<미치광이 삐에로>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내러티브에서 기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치광이 삐에로>의 플롯은 고다르 감독의 영화에 대한 해체주의적 접근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 중요성을 잃게 됩니다. 고다르 감독은 또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과 소격효과(연출자가 관객들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시키는 행위를 방해하는 기법)로 자신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였는데, 만약 그의 초창기 작품들이 영화적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오마주에 조금 더 치중을 하였다면 <미치광이 삐에로>를 기점으로 고다르 감독은 이런 소격효과를 조금 더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만사형통>같은 68운동 이후 정치적 작품들에서 이런 고다르 감독의 연출 방식이 확립됩니다. 그러므로 <미치광이 삐에로>는 본격적으로 관객들에게 그들이 보고 있는 작품은 영화 속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과 이야기가 아닌 영화 그 자체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주고, 이런 브레히트 이론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내러티브적으로 연결시키기보단 그 자체를 받아들여 감성적이 아닌 이성적으로 영화를 보게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 바로 플롯보다는 상징을 위주로 두는 편집방식입니다. 이런 몽타주 편집은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끊임없는 어찌보면 무의미해보이는 나레이션과 함께 영화의 내러티브를 희석시키고 주인공과 여주인공 그 자체를 관객들로 하여금 탐구하게 만듭니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고다르 감독은 대화씬에서 투샷 혹은 대화하는 인물 중 한명만을 카메라로 잡고 있게하여 그 인물이 마치 인터뷰를 당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듯이, <미치광이 삐에로>에서도 같은 기법을 사용합니다.

영화의 "삐에로"인 페르디낭은 지극히 포스트모던한, 세상의 흘러넘치는 정보량에 대해 진절머리를 느끼고는 니힐리스트적으로 변하게 된 현대인의 거울이라 할 수 있고, 그런 그를 관찰함으로써 관객들은 영화에서 자신의 여자친구와 여행을 하는 "페르디낭"이 아닌 현대인을 상징하는 한 남자로써 그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한가지 단적인 예로 바로 제 4의 벽을 허무는, 인물들로 하여금 카메라를 보고 관객들에게 직접 대사를 전하는 연출인데요, 이런 직접적인 대사 전달은 관객들로 하여금 거대한 스토리의 흐름 속에서 페르디낭을 놓아두는 것이 아닌, 페르디낭 캐릭터 자체만을 보게되어 페르디낭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보단 페르디낭과 자신을 비판적으로 비교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런 브레히트적 시도는 등장인물들 뿐만이 아닌 영화의 씬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보면 더욱이 쉽게 눈에 띕니다. <미치광이 삐에로>의 스릴러 씬은 헐리우드 장르 영화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지만, 그 구성을 보자면 영화적 해체주의에 충실히 입각한, 장르적 클리셰의 해체를 보여주어 또다시 관객들로 하여금 감정보단 이성을 먼저 두게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초반 프랭크 살해 장면은 절묘한 롱테이크와 대사를 뮤트 시키고 그 공허함을 큰 소리의 배경음으로 채운 소리 연출, 그리고 그 살해 장면이 결국 플롯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된 설명을 주지 않는다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살해 씬에 대한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보단 살해 씬이라는 것 그 자체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또한 무의미해보이는 인용구로 이루어진 선문답을 주고받는 씬으로 가득 찬 멜로 드라마적인 씬이나 굉장히 뜬금없다고 할 수 있는 뮤지컬 씬들은 하나의 거대한 내러티브의 부분으로서 존재한다기 보다는 그 씬 자체가 존재함으로 인해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미치광이 삐에로>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한가지 일관성있는 주제의식이 영화의 주요 포인트라고 보진 않습니다. 씬마다 하려는 말이 다르며 어느 한가지가 딱히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영화란 러닝타임 내내 흘러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장면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매체이고, 그런 영화를 상징하기 위해 <미치광이 삐에로> 또한, 마치 한순간에 울고 웃는 광대처럼, 거대한 내러티브보다는 각각의 씬의 순간이 선사하는 의미를 관객들에게 전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요.

한줄평: "우리는 삐에로처럼 순간의 삶을 산다."



이 글은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30일 영화 챌린지"중 하나입니다.
"30일 영화 챌린지"는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랜덤하게 고른 30개의 영화를 랜덤하게 순서를 정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영화 하나씩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분석을 쓰는 겁니다.
제가 볼 영화들의 리스트는
여기(클릭)에 있습니다.

내일의 영화는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타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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