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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영화] [DAY16] 폴리테크닉 (Polytechnique, 2009)2014.05.22 AM 02:48
제목: 폴리테크닉 (Polytechnique)
감독: 드니 빌뇌브 (Denis Villeneuve)
제작년도: 2009년
장르: 드라마
이제 '30일 영화 첼린지'가 벌써 중간 포인트를 넘겼네요. 2000년대 최고의 영화중 하나인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시작으로 한게 벌써 15일이나 지나 (역시 2000년대 최고의 영화중 하나라고 칭송받는) <타인의 삶>으로 첫 15일을 끝냈습니다. 이제 남은 15일을 시작하는데 때마침 우연히도 오늘과 내일 둘 다 캐나다 감독인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작품을 보게되서 그런지 특별히 '2일 빌뇌브 감독 스페셜'을 할까 생각합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캐나다에서 요즘 주목하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도 이 감독 작품을 작년에 처음 접한 이 후로 그의 스타일에 빠져들어서 말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퀘벡 출신인 캐나다 감독입니다. 일단 '캐나다 영화계'하면 일반인들에겐 생소하고 ('캐나다'영화로 유명한게 없으니) 대부분의 한국의 시네필 분들께서도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말고는 아시는 분은 별로 없을 텐데요, 사실 영어권 캐나다는 지리상으로 보나 언어상으로 보나 미국이랑 문화시장이 거의 융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침식당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헐리우드와는 다른, '캐나다 영화 스타일'을 굳이 설명하자면 정부지원으로 만들어진 (실험적인)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아방가르드 영화들에 특화되어 있는 영화계라 생소한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 케이스가 있는데, 하나는 바로 혼자서 자기 마음에 꼴리는대로 영화찍고 사는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프랑스 영화계에 영향을 많이 받은 퀘벡 영화계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런 퀘벡 영화계 출신으로, 작년에 막 <프리즈너스>라는 스릴러로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헐리우드 데뷔를 한 감독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에너미>로 다시 한번 신선한 충격을 준 감독이죠. 이번 영화인 <폴리테크닉>은 2009년에 아직 빌뇌브 감독이 그다지 주목을 받고 있지 않을 시기의 작품으로 캐나다 영화계에 적지않은 충격을 준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과 내일 영화인 <그을린 사랑>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헐리우드 데뷔를 하게되죠.
<폴리테크닉>은 1989년,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레콜 폴리테크닉 드 몽레알(L'?cole Polytechnique de Montr?al)이란 대학교에서 어느 한 청년이 자살하기 전까지 Mini-14로 14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또다른 14명에 중상을 입힌 총기난사 사건을 배경으로한 영화입니다. 이 청년은 유서에서 자신이 페미니즘에 대한 반기로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썼는데, 실제로 사망자는 모두 여성이였고, 영화에서도 이 청년이 여자만을 노리고 사살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도 이런 여자혐오와 섹시즘, 나아가 세상에 존재하는 증오에 대한 영화 나름의 답을 추구합니다.
영화는 타이틀 스크린 이 후 범인이 자신의 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범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레이션으로 관객들에게 전합니다. 그의 주장으로는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보험으로써, 여성들은 불리할 때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내세워 사회로부터 자신의 지위를 부정하게 보장받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나레이션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하는 일이란 다름아닌 면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씬 바로 다음 씬에선 여주인공 발레리가 인턴 취직 인터뷰를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발레리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범인과 비슷하게 면도기로 다리 제모를 하며 준비하는 것을 감독은 보여줍니다. 이렇게 대사로썬 남자와 여자의 구분을 분명하게 하려하지만, 실제로 빌뇌브 감독이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동일성입니다. 범인이 주장한 여성혐오는 그 근원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시사하는 것이죠.
실제로 발레리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욱 많이 지원하는 우주 공학 계열이고, 인턴 인터뷰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꺼란 의심까지 받습니다. 거기에 발레리는 비주얼적으로 짧은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있는데다, 하이힐도 그다지 편치 않은 여자이죠. 이렇게 사회의 성(性)에 대한 시각이라는 주제를 영화는 여러방면으로 고찰을 하며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그리고 빌뇌브 감독은 무덤덤하게 범인이 행하는 총기 난사 사건 그 자체를 카메라에 담습니다. <프리즈너스>의 감독답게 빌뇌브 감독은 극도의 긴장감과 불편함으로 이 장면을 다루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퀀스는 모든 감정을 배제한 채 관객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집니다. 이 시퀀스에서 보여지는 감정이란 동정, 연민, 분노등등 개인적인 시각에서 보여지는 감정이 아니고, 대신 있는 그대로의 공포 그 자체가 20분간 스크린을 지배합니다.
이 혼란과 공포의 아비규환 속에서 범인은 인간이 아닌 증오와 공포를 의인화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인간적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빌뇌브 감독은 영화 내내 범인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며, 범인을 연기한 배우는 전혀 감정 표출을 하지 않고, 영화는 범인의 이름조차 관객들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런 연출 방식으로 빌뇌브 감독은 끔찍했던 폴리테크닉 참사를 있는 그대로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비논리적이고 의미없는 증오 그 자체를 탐구합니다.
그리고 이런 증오에 대한 탐구를 더욱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갑자기 컷트하여 사건 이 후의 삶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시간대를 옮기는 편집이 몇번 있는데요, 그런 시퀀스들 모두 증오가 남긴 공허함을 그리는데 주력합니다. 발레리의 남자친구인 장 프랑소와는 결국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하며 극단적인 길을 택하고, 발레리 역시 사건이 일어나고 몇년 후 아직도 그 날의 트라우마에 시달립니다. 이렇게 살아남아 증오와 공포에 속박되어 공허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보자면 증오란 결국 범인이 폭력으로 입증하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속박말고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빌뇌브 감독은 시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의 가장 기억에 남는 샷은 바로 범인이 자살을 하고 누워있는 장면인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마지막으로 죽인 여교수의 시신 옆에 쓰러지게 됩니다. 그리고 범인이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바닥에 서서히 퍼지더니 결국 여교수의 피와 연결되지요. 이렇게 범인은 죽은 후에야 증오가 아닌 화합을 접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도 결국 범인처럼 증오의 속박에서 풀려나야 되는 것을 말하려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화중 장 프랑소와가 응시한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보여주듯이, 증오가 낳은 폭력은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모든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만을 남기니까요.
한줄평: "결국, 죽음 뒤엔 증오는 남지 않는다."
이 글은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30일 영화 챌린지"중 하나입니다.
"30일 영화 챌린지"는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랜덤하게 고른 30개의 영화를 랜덤하게 순서를 정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영화 하나씩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분석을 쓰는 겁니다.
제가 볼 영화들의 리스트는 여기(클릭)에 있습니다.
내일의 영화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입니다.
루리웹에 많이 있는 여성혐오주의자분들이 꼭 보셨으면 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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