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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영화] [DAY20]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1954)2014.05.30 AM 03:51
제목: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Akira Kurosawa)
제작년도: 1954년
장르: 역사, 전쟁, 액션, 드라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불후의 명작인 <7인의 사무라이>는 3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에 걸맞게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겉으로 보면 주인공들이 모여 한 마을을 지켜낸다는, 굉장히 심플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이 전체적인 스토리안에 여러 상징과 인물들에 다차원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심플한 액션물이 아닌, 주제의식이 확고한 드라마로써로도 충분한 영화로 받아들여지게 합니다. <라쇼몽>이라는, 영화계에 내러티브 진행 방식의 혁명을 가져왔다고도 할 수 있는 작품과 함께 화려하게 세계 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구로사와 감독은 <7인의 사무라이>에서도 서사극이라는 틀에 등장인물간의 분명한 캐릭터성을 부여하여 영화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7인의 사무라이>는 정말 여러 방면으로 분석이 가능합니다. 편집 기법을 예를 들자면 당시 유행했던 헐리우드 컨티뉴이티 편집 기법과 소비에트 몽타주 기법을 혼합하여 당시로썬 신선한 방법을 사용했죠 (현재와선 이런 방법이 정말 워낙 흔해져서 별로지만). 내러티브로 말하자면 3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페이스와 7명의 사무라이와 주요 농민들에게 모두 골고루 비중을 나누어주어 서사극과 군상극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잡아낸 작품으로써, 이런 주인공과 동료들이 힘을 합쳐 일을 해내는 스토리가 많은 서브컬쳐에 정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지자면 <어벤져스> 또한 이 영화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도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명 깊게 본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구로사와 감독이 얼마나 '군중'이라는 요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를 연출하는지 였습니다. 영화는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데요, 만약 다른 감독이였다면 쉽게 지나쳤을 부분인 '지켜지는 사람들', 즉 농민들의 성격을 이차원적인 성격이라기보단 굉장히 현실적이고, 다차원적으로 표현합니다. 흔히들 이렇게 주인공에 의해 '지켜지는 사람들'은 주인공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아키타입으로 정의되는 캐릭터인 경우가 많지만, <7인의 사무라이>에선 '농민'들은 그보다 조금 더 영화의 주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 만큼, 농민들의 삶은 전쟁과 높은 세율, 그리고 무법자들에 의해 피폐해진 상황입니다. 어찌보면 당시 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의 서민들이 겪고 있던 삶과 비슷한데요, 그렇게보면 <7인의 사무라이>에서의 사무라이들은 이런 서민들이 현실 세계에서도 나타나길 고대하는 영웅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그런 직설적인 메타포로 관객들을 지루하게 만들기보다는, 그런 영웅을 바라는 군중 심리 그 자체를 탐구합니다. 단적인 예로 영화의 마지막 대사인 "이긴 것은 저들(농민들)이지 우리(사무라이)가 아냐"는 전쟁의 시대를 딛고 평화의 시대(에도 시대)로 나아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결국 영웅들이 죽을 때 살아남는 것은 농민들이며, 그들은 영웅들이 없어도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내내 농민들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공포이죠. 이들은 목숨이 두려워 직접 무기를 들고 (무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싸우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공포가 사라졌을 때 군중은 입장이 뒤바뀌어 상대에게 공포를 주는 것으로 바뀌게 되죠. <7인의 사무라이>에서 굉장히 많이 나오는 장면이 바로 도적들을 한명씩 낙마 시켜 많은 수의 농민들이 따라가 죽창으로 무참히 몇번이고 찔러버리는 장면인데요, 이런 장면은 일반적으로 동정심이 가는 농민이라는 캐릭터가 영화에서 할만한 행동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장면을 통해 구로사와 감독은 전쟁이 가져오는 폭력이란 광기는 공포와 종이 한 장이라는 것을 역설합니다. 실제로 영화 중반에 포로로 잡혀온 도적 척후병은 리더 격 사무라이가 막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에 눈이 먼 마을 사람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하죠. 한 순간에 바뀌는 군중심리를 정말 잘 반영하는 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7명의 사무라이가 한 것은 이 농민들을 이끈 것입니다. 실제로 농민들 자신들이 직접 싸운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군중은 영화에서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깥 요소에 의해 쉽게 흔들리지만 그 안에 있는 잠재력은 무시못 할 정도이죠 (아마 영화 후반에 마지막 밤에 숨겨둔 술이나 음식을 드디어 꺼내 먹는 장면이 군중이라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메타포적으로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포에 떨다가도 사무라이를 따라 전투 함성을 지르며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고 도적들을 포위하여 한 명씩 사냥하는 것을 보면 내러티브적인 만족감보다는 그 잔혹함에 서늘한 느낌마저 들기도 합니다.
이런 농민들의 다차원적인 성격을 반영하는 인물이 바로 미후네 도시로가 연기한 기쿠치요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장면중 하나이자, 많은 영화학자들이 명장면이라고 손꼽는 장면이 바로 미후네 도시로가 카메라를 직접 보며 왜 농민들이 이렇게 비겁하고 야비한 인간들이 되었는가를 사무라이들에게 성토하는 장면인데요, 구로사와 감독은 자신의 페르소나인 이 배우를 통해 군중이란 결국 사회와 세상에 의해 이끌리며 바뀌어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라이들이 벌이는 전쟁과 지방 영주들의 폭정에 의해 농민들이 도적이 되는 것이고, 죽어가는 사무라이에게서 무기를 빼앗는 것이죠.
기쿠치요는 농민 출신 사무라이로써 그는 출신이 농민이라 농민들을 이해하면서, 성격이나 거동은 산적들과 비슷합니다 (<라쇼몽>에서도 산적을 연기하였고, <7인의 사무라이>에서도 산적으로 변장하는 장면이 있지요). 그리고 현재는 사무라이로써 살아가고 있고요. 이렇게 기쿠치요라는 인물은 농민 출신이면서도 세상에 의해 그 얼굴이 바뀌어간 인물로, 구로사와 감독이 보여주는 '군중'이라는 개념과 흡사합니다. 어찌보면 기쿠치요와 이런 군중 심리에 대한 구로사와 감독의 연출은 "이들을 이렇게 공포에 빠트리게 한 것도 너희(군인)들이고, 이들을 이렇게 폭력에 중독되게 한 것도 너희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한줄평: "군중에 얼굴을 주다."
이 글은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30일 영화 챌린지"중 하나입니다.
"30일 영화 챌린지"는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랜덤하게 고른 30개의 영화를 랜덤하게 순서를 정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영화 하나씩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분석을 쓰는 겁니다.
제가 볼 영화들의 리스트는 여기(클릭)에 있습니다.
내일의 영화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페르소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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